투명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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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 요렇게 생긴 책을 위한 사마천司馬遷의 헌사, 단소정한短小精悍. 투명 블루에 소략한 디자인. 행간 넓혀 애써 늘여마지 않았음에도 본문은 물경 90쪽. 내장비만 전무全無. 옥에 티, 잦은 대가大家 인용.

 

투명성이 신뢰를 낳는다. 이것이 요즘 유행하는 믿음이다. 이 때 사람들이 잊고 있는 것은 하필이면 신뢰가 급격하게 의미를 잃어가고 있는 사회에서 투명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대단히 높아졌다는 사실이다.(5쪽)

 

투명성과 신뢰는 본디 상호모순입니다. 투명성은 앎의 영역입니다. 훤히 들여다보여 드러나지 않음이 없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신뢰는 모름의 영역입니다. 알지 못함에도 믿고 그렇게 여긴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치에 터하면 “투명성이 신뢰를 낳는다.”는 “믿음”은 잘못된 것이고, 잘못된 믿음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사회 상황은 적실한 것입니다.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최대한 드러내라고 요구하는 것이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드러내라는 것이 아닙니다. 정작 문제는 뒤집힌 맥락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투명성의 요구는 맥락을 뒤집어 놓은 누군가의 기획입니다. 기획자의 투명성은 그 기획의 경계 밖에 있는 불투명성의 투명성입니다. 불투명성의 투명성은 불투명성을 호위하기 위한 설정 투명성입니다. 설정 투명성이기 때문에 절대성을 강제합니다.

 

절대군주인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를 신하 삼으면서 수탈의 진화는 정점을 찍었습니다. 모순을 전술로 쓸 정도이니 절정고수, 깨달은 악마 경지에 다다른 것입니다. 그 화신이 대한민국에 강림하였습니다. 안의 불투명한 킬킬거림과 밖의 투명한 눈물을 완벽하게 공존시킴으로써 자기 자신의 불투명성의 투명성과 국민의 투명성을 일치시키는 신공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신공의 기운이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나가고 있습니다. 매판이 애국으로 투명해지고 있습니다. 독립 혁명가가 테러리스트로 투명해지고 있습니다. 한해에 200번 넘게 통화하는 사이가 별로 친하지 않은 사이로 투명해지고 있습니다. 단원고등학교 아이들 250명은 가난한 주제에 제주도 놀러가다가 단순 교통사고로 죽어 투명해지고 있습니다. 신기방기무인지경.

 

이 슬프고도 우스운 신기방기무인지경 속에서 가만 생각해봅니다. 이 땅에서 투명성이란 것은 진실을 희화하기 위한 정치적 사투리가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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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불교입문 - 알기 쉽게 풀이한 초기불교의 핵심교학
각묵 스님 지음 / 이솔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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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어떤 종교도 어떤 철학도 불교라는 바위 앞에서는 달걀입니다. 그 사상의 광대무변廣大無邊함은 췌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 광대무변함이야말로 불교의 치명적 약점이라는 진실을 덮어버릴 만큼.

 

1. <시사인>에 실린 장정일의 『예수는 괴물이다』 서평 가운데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무신론자인 지젝은 외부의 충격과 만나기를 피하지 않으며, 사랑하기 위해 선택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기독교를 높이 산다. 반대로 불교는 자아를 비우고, 무차별심을 연마하고, 모든 정념을 억누르고자 한다. 이런 입장은 타자의 심연이나 외상과 거리를 두는 형태를 취하지만, 배면에는 유기적이고 조화로운 세계가 전제되어 있다. 그 때문에 불교는 파시즘이나 국가주의와 쉽게 결합될 뿐 아니라, 광란의 경쟁이 벌어지는 자본주의에 효율적으로 참여한다. 자본주의가 발전한 나라일수록 불교의 선이나 동양에 기원을 둔 뉴에이지 종교가 높은 인기를 얻는다.”

 

지젝이 말한 기독교가 (실제로 그런지와 무관하게) 불교와 선명하게 대비되는 부분을 인용합니다.

 

“외부의 충격과 만나기를 피하지 않으며, 사랑하기 위해 선택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기독교)

 

“타자의 심연이나 외상과 거리를 두는” (불교)

 

다시, 이 대비에서 불교 부분만을 꺼내 생각하겠습니다. 불교가 타자의 심연이나 외상과 거리를 두는 것이 맞을까요? 얼핏 보면 잘못된 통찰이라 여겨집니다. 그도 그럴 것이 불교는 자비의 종교라는데. 싯다르타 왕자가 고통으로 신음하는 궁 밖의 백성을 보고 출가했다는데. 이 문제에 관해 통속불교의 행태 아닌 붓다 원음이라 일컬어지는 빨리어 경전을 바탕으로 하는 이른바 초기불교 내용으로 판단해보기로 합니다.

 

 2. 『초기불교입문』은 저자인 각묵이 직접 접한 초기불교 경전의 가르침에 터하여 쓴, 빠짐도 군더더기도 없는, 정갈한 입문서입니다. 불교신문에 연재하고, 불자들이 인터넷 매체에 올려놓을 때부터 틈틈이 읽어온 내용을 단행본(2014년 9월 30일 출간)으로 다시 촘촘히 읽었습니다. 그 동안 이리저리 흩어져 뒹굴던 생각들이 단정하게 정리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동시에, 그 동안 품고 키워왔던 의문이 더욱 깊어지는 것도 함께 느꼈습니다.

 

이 책에 따르면 불교의 핵심은 사성제四聖諦로 집약됩니다. 사성제의 고갱이는 고苦입니다. 고苦의 문제를 풀어 열반, 그러니까 행복에 이르는 길이 다름 아닌 불교입니다. 일一에서 팔만사천八萬四千까지 허다한 숫자들로 가득 찬 온갖 가르침의 목록, 그 번다함이 부질없어지는 요약입니다. 고苦의 진경으로 들어가야 불교의 속살이 드러납니다.

 

3. 고苦는 빨리어 dukkha를 번역한 것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번역 자체를 문제 삼을 수 있습니다. 한자문화권에서는 고통苦痛이라는 합성어를 오랫동안 써왔기 때문에 일상의 차원에서 둘을 분명하게 구분하지 않지만 기본적으로 고苦는 정신적 괴로움suffering이고, 통痛은 육체적인 아픔pain입니다. 물론 둘은 서로 관통하고 흡수합니다. 정신의 괴로움은 육체의 아픔을 유발하고, 육체의 아픔은 정신의 괴로움을 유발합니다. 하지만 완전히 포개지지는 않습니다. 구분은 불가피합니다.

 

경전을 만들 당시 빨리어 전통에서 dukkha는 통痛과 구분되는 고苦였을까요? 만일 그렇다면 불교, 아니 붓다의 근본 가르침에 큰 구멍이 뚫려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번역 당시 고苦로써 통痛까지 포괄했다는 증거가 없는 한) 번역이 잘못된 것이므로 적어도 한자문화권 불교 전체에 일대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두 경우 모두 큰일입니다!

 

dukkha 언어학적 검증은 제 능력 밖의 일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번역이 바르다고 전제하고, 그러니까 붓다의 가르침이 고苦를 중심으로 전개된다고 보고 이를 화두 삼는 것입니다. 과연 『초기불교입문』전체에서 통痛이 전면으로 등장하는 경우는 전혀 없습니다. 물론 고苦를 ‘해체하여’ 설할 때 ‘육체적 괴로움’을 포함하기는 하지만 ‘육체적 괴로움’은 이치상 부정확한 표현일뿐더러 거의 전혀 존재감 없는 고苦의 하위개념에 지나지 않습니다. 붓다의 가르침은 명백히 고苦-패러다임입니다.

 

붓다는 왜 통痛을 범주로 인식하지 않았을까요? 생태문화적 맥락을 먼저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고대 인도는 정신주의의 본향이었습니다. 정신주의는 채식문화와 결합되어 있습니다. 채식문화의 육체에 대한 감각·인식은 식물적입니다. 식물적 감각·인식을 지닌 사람에게 육체의 통痛은 정신의 고苦에 비하면 거의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육식문화의 전통에서 형성된 서구의학이 진통鎭痛적 본질을 지니며, 심지어 정신조차 진통제적 성격의 차단 약물로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금방 수긍이 가는 이야기입니다.

 

사회정치적 지평도 고려할만합니다. 어떤 연구에 따르면 불교가 인도 사회에 깊고 넓게 뿌리내리지 못한 까닭은 붓다 자신이 그렇듯 10대 제자 거의 대부분이 크샤트리아 이상의 신분을 지닌 사람들이었다는 상징적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합니다. 기층 민중에게 어필하는 면이 약했다는 지적입니다. 기층 민중에게는 통痛이 훨씬 더 민감하고 절박한 문제입니다.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해 육체적으로 더 쉽게 많이 아픈 문제는 분명히 통痛의 문제이지 고苦의 문제가 아닙니다.

 

붓다 이후 제자들은 이 문제를 인식하고 스승의 가르침을 보완하여 현실 삶의 아픔을 보듬는 쪽으로 나아가지 않은 듯합니다. 적어도 『초기불교입문』에 정리된 바에 따르면 그 문화적 한계를 극복하는 것보다는 스승의 ‘해체’설법을 번다한 소박 분석체계로 만들어 도그마 짓는데 심혈을 기울였던 듯합니다. 모든 종교·사상의 에피고넨이 걸었던 길을 그들도 따라간 것입니다.

 

4. 통痛과 고苦를 이치에 따라 처음부터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앞서 통痛은 육체에, 고苦는 정신에 일단 귀속시켰습니다. 상호침투에 대해서도 말씀드렸습니다. 이런 얼개를 전제하고 볼 때 적어도 현실의 인간 생명현상에서 통痛을 앞서는 고苦는 없습니다. 육체가 있고서야 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육체가 없는 정신 현상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이미 인간의 영역 밖입니다. 『초기불교입문』에서 나타나는 바 고苦의 대표적 원인인 갈애渴愛는 기본적으로 목마름입니다. 육체로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집착적 욕망인 갈애를 정신 현상으로까지 확대한다 해도 뿌리는 결국 육체입니다. 고苦 앞서 통痛이 갑니다. 통痛이야말로 인간의 숙명입니다. 고苦는 거의 대부분 선택의 문제입니다. 고苦를 푸는 도道로 풀리지 않는 통痛이 있습니다. 그 통痛은 의학의 영역이라 할 것입니까. 그러면 고苦 또한 정신의학의 영역이라 하면 그만일 것입니다. 좀 더 쫀득하게 촘촘하게 진실에 육박하는 정신이 필요합니다. 그게 『초기불교입문』에서 저자가 자주 말하는 “고구정녕한” 붓다의 정신이 아닐까요.

 

0. 『초기불교입문』 앞에 향 맑은 마음으로 다시 앉습니다. 아니 이 가르침을 내린 붓다 앞에 삼가 온몸으로 엎드립니다. 문득 질문 하나 솟아오릅니다.

 

“일 년 넘도록 딸의 시신조차 찾지 못하고 있는 다윤 엄마의 울부짖음을 고苦라 할 것입니까?”

 

대답이 “그렇다.” 하면 저는 붓다의 따귀를 후려갈기고 돌아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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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감에 대하여 - 저항과 체념 사이에서 철학자의 돌 1
장 아메리 지음, 김희상 옮김 / 돌베개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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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아메리가 『늙어감에 대하여』를 펴내고, 제4판에서 결정적인 부분을 고쳐 쓴 뒤, 스스로 삶을 마감하기까지 10년, 그 중간 어디쯤 시간에 제 인생이 서 있었습니다. 그가 자신의 삶을 사랑으로 보듬고, 존경으로 예우하며, 최상으로 매듭지은 시간의 결과 겹을 제 삶의 감각과 사유, 그리고 행동에 포개기 참으로 적절한 기회였습니다. 지난 두 달, 때로는 서성이고 때로는 가부좌 틀고 때로는 누우며 그 포갬 속에 머물렀습니다. 쪼갬이 여명을 드러냈습니다.

 

저는 이 주해 리뷰를 쓰는 동안 홀연히 향아설위向我設位를 실행에 옮겼습니다. 향아설위는 수운水雲선생께서 태동시키시고 해월海月선생께서 완성한 위대한 제의祭儀 혁명입니다. 단도직입으로 말하자면 하느님을 내 맞은편 벽에 세우는 것, 그러니까 향벽설위向壁設位가 아니라 내 안에 세운다는 말입니다. 절이든 기도든 나를 향하여, 내게 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사실 이 진리는 붓다께서도 그리스도께서도 이미 설파하신 것입니다. 다만 그를 따른다 말하는 자들이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을 따름입니다. 하여 오늘 여기 자신을 향하여 절하는 불자도 없고 자신을 향하여 기도하는 기독자도 없습니다. 그들이 절하고 기도하는 맞은편에는 다름 아닌 우상이 서 있을 뿐입니다. 불자에게 붓다는, 기독자에게 그리스도는 실제로 모두 우상일 따름입니다. 저는 불자도 기독자도 아닙니다. 아니 그런 우상숭배자이기를 거절합니다. 어느 새벽 문득 일어나 제게 절하였습니다. 어느 새벽 문득 무릎 꿇고 제게 기도하였습니다. 비로소 거기서 저 아닌 저를, 우상 아닌 붓다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느닷없는 향아설위 향벽설위 이야기와 장 아메리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궁금하실 것입니다. 향벽설위는 이원론적 세계관의 산물입니다. 장 아메리가 저 치열함과 결곡함에도 깨부수지 못한 은산철벽이 바로 서구 이원론적 세계관입니다. 도처에 모순 감각과 역설 지향이 번득이지만, 그에게 죽음은 끝내 아我가 아니었습니다. 끝내 벽壁이었습니다. 그러면 길은 일원론에 있을까요? 이미 아시다시피 아닙니다. 제가 제게 절하고 기도함으로써 저 아닌 저를, 우상 아닌 붓다 그리스도를 만났듯, 진정한 향아설위는 불이불일不二不一의 세계관입니다. 여기가 길입니다.

 

제가 향아설위를 실행에 옮긴 것은 하늘에서 떨어진 벼락이 아닙니다. 사십 년 동안 축적해온 비대칭적 대칭의 사유가 변곡점에 도달하면서 일으킨 질적 전환입니다. 그 변곡점에 장 아메리라는 변수가 작용하였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프리모 레비와 함께입니다. 그들이 변수로 작용한 것은 외부에서 “습격”해오는 죽음의 문제, 그 상처에서 오는 죽음의 문제를 저와 우리 공동체가 긴급하고도 치명적인 현안으로 떠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문제의식과 제 문제의식은 같으면서도 다릅니다. 같은 부분은 함께 다지고 다른 부분은 홀로 열면서 저는 제 길을 가야 합니다. 이 깨달음의 결과가 바로 향아설위입니다.

 

제게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모릅니다. 모르므로, 그저 모를 뿐이므로 갑니다, 극진히 갑니다. 희망도 지나고 절망도 지나서. 낙관도 지나고 비관도 지나서. 나도 지나고 붓다 그리스도도 지나서. 마침내 삶도 지나고 죽음도 지나서. 오직 이뿐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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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21 23: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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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22 09: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늙어감에 대하여 - 저항과 체념 사이에서 철학자의 돌 1
장 아메리 지음, 김희상 옮김 / 돌베개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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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경멸받아 마땅한 조건 아래서 고른 죽음만이 부자유한 죽음이며, 때가 아닌데 선택한 죽음은 비겁자의 죽음이다. 인생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고른 죽음은 다를 수 있다. 자유롭고, 충분히 의식했으며, 외부로부터 그 어떤 습격도 받지 않았다.” 자유죽음에 열광하는 광인의 이야기다.(202쪽)

 

우리가 아무런 이의 제기 없이 어려서부터 배운 그림그리기 방식은 먼저 그리고 싶은 대상의 경계선을 그린 다음 나중에 그 내부를 색칠해서 채워 넣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치를 정확히 따지자면 본디 사물의 경계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물의 자체 연장延長이 멈춘 곳이 경계선처럼 보일 따름입니다. 말하자면 경계선은 관념의 산물입니다. 이 관념을 기축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마치 보편적 방식인 듯 오해되고 있지만 그리스-서구 전통입니다. 동아시아나 고대헤브라이 전통은 처음부터 사물의 자체 영역을 채워 그리다가 그 연장이 멈춘 곳을 자연스럽게 경계로 받아들였습니다. 이른바 근대화, 아니 서구화가 진행되면서 망각된 진실 가운데 하나입니다.

 

삶과 죽음의 문제에서 이런 이치를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인간이 유한한 생명현상으로서 그릴 수 있는 것은 삶의 내용뿐입니다. 죽음은 그릴 수 없습니다. 사후세계에 관한 이야기가 없는 것은 아니나 엄밀히 말하면 죽음을 삶의 또 다른 양상으로 보는 세계관에 터한 묘사이지 죽음 자체에 관한 것은 아닙니다. 죽음이란 삶의 내용이, 그 운동이 멈춘 다음의 알 수 없는 사태입니다. 산 사람이 죽음을 선택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산 사람은 자기 삶의 마지막 모습을 선택하고 그에 따른 연장을 멈출 수 있을 따름입니다. 장 아메리가 부자유한 죽음, 비겁한 자의 죽음, 자유죽음의 선택에 관하여 말한 모든 것은 그리스-서구 전통입니다. 장 아메리가 나중에(이 책의 4판 서문에 언급하고 내용에서도 자유죽음 문제를 바꾼 것과 『자유죽음』을 펴낸 것이 1977년이고 그 이듬해 그는 이를 실행에 옮겼습니다.) 선택한 자유죽음이란 죽음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삶의 마지막 시공간에 일어나는 생명사건을 주체적으로 선택한 것입니다.

 

비록 자신의 전통에 따른 어법을 구사했지만 장 아메리가 실제에서는 죽음의 자유를 구가한 것이 아니라 삶의 최종적 자유를 구가한 것이란 사실을 알 수 있는 근거가 있어 다행입니다.

 

인생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그가 늙어감에 대하여 그토록 단호하고 결곡한 어법으로 일관한 것은 “인생을 사랑하는 마음에서”였습니다. 그토록 사랑한 인생이기에 마지막 사건의 선택과 실행도 그 사랑의 연장에서, 최고의 연장에서 극진히 치르고자 하였습니다. 자기 삶, 자기 생명에 대한 최고의, 최후의 예우이며 헌정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장 아메리의, 장 아메리에 의한, 장 아메리를 위한 삶의 길이었습니다. 누구도 그의 죽음을 말해서는 안 됩니다. 누구도 그의 죽음을 말할 수는 없습니다. 누구든 그가 사랑한 그의 인생을, 삶을 말해야 합니다. 누구든 그가 사랑한 그의 인생을, 삶을 말할 수 있습니다.

 

비인간적 권력집단 나치에 맞서 싸운 전사 장 아메리가 치열하게 말해온 늙어감과 죽음이 이야기를 읽고 이제 여기 우리가 뼈에 새길 것은 생명의 존엄과 삶의 자유라는 사실이 분명해졌습니다. 장 아메리의, 장 아메리에 의한, 장 아메리를 위한 삶이 곧 우리 자신의, 우리 자신에 의한, 우리 자신을 위한 삶입니다. 그 선택의 즉각적 결과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논쟁중인 안락사나 존엄사 문제에 대하여 관점을 정면으로 뒤집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죽음을 말하기 때문에 대뜸 살인죄 문제가 대두되는 것입니다. 삶을 말해야 도리어 인권과 존엄의 문제가 옹골차게 논의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세월호사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비인간적 권력이 저지른 가장 극악무도한 패악은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 자체가 아닙니다. 자기 생명과 삶을 사랑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짓밟고, 자유로운 선택을 가로막은 것입니다.

 

“가만히 있으라.”

 

이 한 마디가 칼보다, 총보다, 더 잔악무도한 흉기였습니다. 이 흉기는 세월호선장의 것이 아닙니다. 이 흉기는 매판독재반통일 권력집단의 것입니다. 이 흉기는 단순 사건으로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일천오백 년 매판독재반통일 역사의 집장태集藏態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제 대한민국이 참된 국가이려면, 그 국가가 우리 자신이려면 세월호사건, 그러니까 아이들의 원통하고 참혹한 죽음 이후, 우리의 삶은 우리의, 우리에 의한, 우리를 위한 삶으로 혁명적 전환을 기해야 합니다. 장 아메리의 자유죽음은 맹골수도 바다 건너에 남겨진 우리의 자유삶이여야 합니다. 장 아메리가 그 곡진함으로도 뚫지 못한 삶과 죽음의 화쟁和諍은 오늘 여기 우리의 과제로 남습니다. 자기만의 행복을 넘어 공공의 삶에 참여함으로써 큰 수레의 장엄한 삶을 살다 간 장 아메리를 다시 한 번 온 영혼으로 추모하며, 아직 추모해서는 안 될 아이들을 온 영혼으로 끌어안습니다. 부디 죽음의 신화는 역사가 되고 삶의 역사는 신화가 되는 날 오기를!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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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감에 대하여 - 저항과 체념 사이에서 철학자의 돌 1
장 아메리 지음, 김희상 옮김 / 돌베개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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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어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끈질긴 느낌인 ‘두려움’. 그것은 쉽게 놓아주지 않는 질긴 손길로 내 인격의 일부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두려움을 가졌다”라고 말할 수가 없다. 오히려 “나 자신이 두려움이다”라고 말할 따름이다.(195쪽)

 

지난 일주일은 슬픔과 분노, 그리고 허탈이 뒤범벅된 나날들이었습니다. 세월호사건 일주기중심의 정국이 될 수밖에 없었는데 권력집단이 보여준 행태는 오로지 패악과 협잡뿐이었습니다. 국정, 아니 바로 이 세월호사건 최고책임자는 국가를 이탈하였습니다. 정치권 수뇌부는 재보선에 정신 팔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 식민지 경찰은 유족과 시민에게 캡사이신과 물대포를 쏘아댔습니다. 희생된 아이의 부모를 목 조르고 방패로 찍었습니다. 신문기자를 포함한 시민 100여 명을 연행하였습니다. 이 때 동원된 경찰병력은 무려 172개 부대 13,700명이었습니다. 차벽트럭 28대를 비롯한 470여 대 차량으로 이른바 ‘산성’을 쌓고 시민과 유족의 이동을 가로막았습니다. 전쟁을 방불케 하는 이 상황의 진실을 관제언론은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유족과 시민을 폭도로 모는 왜곡 보도를 자행하였습니다. 익숙한 풍경입니다. 이 익숙함에 실려 목하 대한민국은 깊은 두려움 속으로 침륜되어 가고 있습니다.

 

두려움. 그것은 이제 대한민국 국민 각자의 인격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두려움을 가졌다”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나 자신이 두려움이다”라고 말할 따름입니다. 크게는 전쟁 위협에서 작게는 집회 현장의 ‘채증’ 위협까지 도무지 헤어날 길 없는 두려움을 내재화한 채 숨죽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권력집단이 노상 훤화喧譁하는 바, 국론통일이며 민생안정입니다. 스스로 두려움이라는 정체감을 지니는 국민. 이것은 저 일제가 규정한 황국신민皇國臣民입니다.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의 주권자인 국민이 결코 아닙니다. 절대적 권위 아래 무릎 꿇어야 하는 신민에 지나지 않습니다. 두려움이 휘몰고 온 저주입니다. 아, 감히 어쩌지 못 할 이 국가적 차원의 도저한 두려움이라니.

 

두려움은 숙명에 육박하는 무게를 지녔습니다. 두 가지 근거가 있습니다. 하나는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옴짝달싹 못한다는 것입니다. 폭력성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두려움의 대상에 의심을 품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초월성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 무기를 다 가지고 있는 두려움의 생산자는 죽음입니다. 죽음을 움켜쥐고 두려움으로 광범위하게 우리를 억압하는 세 주체가 바로 정당성 없는 권력과 매판 자본, 그리고 타락한 종교입니다. 지금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치명적인 위험성은 바로 이 세 주체의 동맹이 더없이 강고하다는 것입니다.

 

국가의 보호에 깃들면, 자본의 풍요에 실리면, 종교의 구원에 기대면 두려움이 사라질 것이라 여겨 너나없이 충성하고 헌신하고 몰두한 결과, 도리어 노예가 되어버린 이 국민에게 역사가 베푸는 자비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수탈과 살해가 반복될 뿐입니다. 그러면 대체 이 땅에 태어나 겪을 수밖에 없는 이 모멸에서 어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요?

 

첫 걸음은 이것입니다. “나 자신이 두려움이다.” 장 아메리의 고백owning을, 그 직시를 온 영혼으로 하는 것입니다. 직시한 두려움이 바로 용기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할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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