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6일 이후의 모든 이름 있는 날은, 아마도

단 하나의 질문으로

온 영혼이 퉁퉁 부어오를 것입니다.

 

 

"과연 그러한가?" 

 

 

누군가에게 '선생님'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살아온 세월이

서른하고도 다섯 해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오늘 스승의 날, 비록

나를 스승이라 찾는 이가 거의 없지만

문득 돌아봅니다.

 

 

"내 뒤태는 과연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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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 아닌 아이들 생각으로

잠에서 깬

어버이날 아침

 

 

세월호 안에서

아이들이 "움직이지 못 한" 지

스무사흘 째인 날 아침

 

 

오늘 이후

내 생에 남은 모든

어버이날 아침은

 

 

아이들 생각으로 이리 아뜩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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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위에서 자다 깨어보니

 

 김기택


배 위에서 잠이 들었다.
바람소리에도 흔들렸고 물소리에도 흔들렸다.
망망대해 나 혼자였지만
물소리 바람소리 사방에서 소란스러웠다.
오래 전부터 들어온 소리처럼 편안하였다.
바다처럼 커다란 아가미로 숨쉬었다.
출렁거리는 들숨 날숨마다
무수한 햇빛 방울이 다닥다닥 달려 있었다.

갑자기 파도가 커지고 높아지더니
배가 한 쪽으로 크게 기울었다.
중심을 잃고 물에 빠지고 말았다.
눈을 떠보니 전동차 안이었다.
빽빽한 사람들 사이에 낀 채 서 있었다.
나는 선 채로 허우적거리고 있었고
사람들은 모두 거친 파도소리를 내며
급제동으로 쓰러진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       *       *

 

악무한, 의 

악몽

부디, 잠에서

깨,

.......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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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고 찬란한 당신을

 

이 병률

 

 

풀어지게

 

허공에다 놓아줄까

 

번지게

 

물속에다 놓아줄까

 

 

*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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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도끼를 삼켰다

 

이 수명

 

자신을 찍으려는 도끼가 왔을 때

나무는 도끼를 삼켰다.

도끼로부터 도망가다가 도끼를 삼켰다.

 

폭풍우 몰아치던 밤

나무는 번개를 삼켰다.

깊은 잠에서 깨어났을 때 더 깊이 찔리는 번개를 삼켰다.

 

 

*       *       *

 

나무가 저를 죽이려는 도끼, 번개를 삼켰다, 할 때 대뜸 어떤 느낌을 받으셨습니까?

 

삼키다는 말은 두 가지 대칭되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하나는, 억지로 참다.

예컨대 그는 울분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외면과 체념입니다.

 

다른 하나는, 큰 힘으로 쓸어 가거나 없애버리다.

예컨대 거대한 불길이 마을 하나를 송두리째 삼키고 말았다.

직면과 관통입니다.

 

울분을 삼키듯 상처를 삼킨다는 느낌인가요?

불길이 마을을 삼키듯 상처를 삼킨다는 느낌인가요?

 

이 느낌 차이에서 상처는 지속, 증폭되기도 하고 반대로 치유되기도 합니다.

이는 흐느끼면서 우는 것과 엉엉 소리내어 통곡하는 것의 차이와 같습니다.

흐느끼면 슬픔에 휘감깁니다.

통곡하면 슬픔이 뿌려집니다.

 

다시 한 번 위 시를 천천히 읽어보시겠습니까?

 

생떼 같은 세온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상처를 어찌 삼켜야 할까요?

이 슬픔을 어찌 울어야 할까요?

이 차이의 공동체적 함의는 과연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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