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有百花秋有月(춘유백화추유월) 갖은 꽃들 피는 봄, 달 뜨는 가을

夏有凉風冬有雪(하유량풍동유설) 바람 시원한 여름, 눈 오는 겨울

若無閑事掛心頭(약무한사괘심두) 쓸데없는 일 따위 마음 두지 않으면

便是人間好時節(편시인간호시절) 겨울 가을 여름 봄 모두 좋은 나날들

_무문혜개(無門慧開) 짓고 강용원 옮기다.

 

이 시를 발견한 곳은 우이동 어느 쌈밥집이다. 아직도 연탄난로를 쓰는 노포다. 밥 먹다 말고 내가 연탄과 난로 사진을 찍자 다른 곳도 있다며 바깥쪽을 가리킨다. 식당 주 공간 아닌 보조 공간인데 연탄 광으로 쓴다. 거기 벽에 떡하니 이 시 담은 액자가 걸려 있다. 승려가 쓴 것으로 보이는 붓글씨 서체가 특이해 사진에 담았다가 내친김에 번역까지 해 글 들머리 화제부터 삼았으나 시는 오늘 이야기 문을 여닫는 조연일 따름이다. 주인공은 연탄이다.

 

사진 찍고 돌아와 내가 연탄 이야기를 꺼내자, 주인과 직원이 옛 벗을 만난 양 오래된 기억을 서로 꺼내놓으며 수다 삼매로 들어간다. 1965년 서울로 와 도시빈민으로 살아온 내게 연탄은 어두운 기억으로 점철된 존재다. 무엇보다 연탄가스 중독으로 세 번 쓰러져 바보(!)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사실부터 떠오른다. 연탄가스 중독이 거듭해서 일어났지만, 대책은 없었다. 절대빈곤이 마주한 절벽이었다. 그 암담함을 돌이키면 눈물조차 나지 않는다.

 

그다음은 단연 고된 배달 기억이다. 성북구 동소문동 616번지는 대표 산동네로 당시 서울 사람이면 모를 수 없는 빈촌이었는데 그중에서도 극빈층에 속했던 우리 집은 대부분 연탄을 낱장 구매해 손으로 날랐다. 그나마 돈이 좀 돌면 두 장, 마르면 한 장을 가운데 구멍에 매듭진 새끼줄을 넣어 들고 산 아래 연탄 가게서부터 꼭대기 우리 집까지 날랐다. 초등학생인 내가 그 일을 했고 어른인 아버지는 일절 손대지 않았다. 그게 당연한 줄 알고 살았다.

 

이제 연탄재 이야기다. 산동네 쓰레기는 일주일에 한 번 쓰레기차가 울리는 종소리를 듣고 일주일 치를 모아 메고 들고 발바닥이 땅에 닿지 않을 정도로 뛰어가 쓰레기차에 던져넣어서 버렸다. 왜냐하면 쓰레기차가 계속 멀어져가기 때문이다. 이때 주된 쓰레기가 다름 아닌 연탄재다. 이 일도 내 몫이었다. 눈 내리면 미끄럼 막고, 장마 끝엔 파인 길 메우는 경우 빼고 연탄재를 이렇게 모아줬으니 나도 난지도 표고를 100m 높이는 데 공을 세운 셈이다.

 

1950년대부터 보급되기 시작해 1990년대 초반까지 서민 사회를 상징했던 연탄은 한창일 때 서울에서만 하루 1,000만 장을 소비했다. 지금은 서울에서 1,800가구가 연탄을 쓴다. 그나마 이문동에 있던 마지막 삼천리 연탄 공장이 2024년 문을 닫았다. 전국적으로는 74,000가구 정도가 연탄을 쓴다. 20곳가량 남아 소규모 생산을 이어가는 중이다. 한 시대가 저물어간다. 연탄과 더불어 출발한 내 10대가 이제 70대로 접어들었으니 내 인생도 저물어간다.

 

연탄은 본디 왜놈 발명품으로서 병탄기에 들어와 우리 삶에 이식되었다. 그 자체를 바로 정치적 의미와 결부시켜 해석할 수는 없지만 고난에 찬 현대사 속 서민 애환에 드리운 식민지 유제, 이승만과 박정희 그림자를 지우고 이해할 수도 없다. 사라지는 연탄과 더불어 사라져야 할 유제와 그림자가 여전히 날뛰는 현실에서라면 연탄 한 장 바라보는 일이 예사로울 수 없다. 내란 상황에서 불안해하는 일은 연탄가스 중독을 걱정하는 일과 어찌 그리 비슷한가.

 

내란 수괴들이 벌인 기이하고 더러운 짓거리가 점입가경이다. “노상원 뒤에는 김충식이 있다. 김충식은 명신이 엄마 내연남으로 일본 왕족 밀서를 명신이 연놈한테 전달했다. 국 이 내란 맨 뒤에는 일본이 있다.” 어젯밤 분노와 슬픔으로 내가 처마신 술은 왜놈 발명품 가짜 소주다. 오늘 아침 일어나니 연탄가스 중독에서 막 깬 상태와 같다. 대체 이 악무한을 어찌할까. 若無閑事掛心頭 便是人間好時節이라니. 대체 어떤 삶이면 이렇게 노래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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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내희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 


역사적 사건을 기억하고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데 사진 이미지만큼 효과적인 것도 드물다. 사진 기술이 널리 사용된 20세기에 일어난 사건 가운데는 사진으로 기록된 점 때문에 더욱 생생하게 기억하거나 이해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개인적으로 뇌리에 저장해둔 그런 이미지 가운데 전쟁과 관련한 것이 몇 개 된다.


한국군도 참전한 베트남전쟁이 아직 계속되고 있던 1970년대 초에 세계의 신문들에 실려 사람들의 눈을 의심케 한 유명한 사진이 있다. 원경은 연기가 자욱해 어디인지 분간이 되지 않고 중경에서는 군인들이 여럿 걸어오는데 그들 앞에서 아이들이 뭔가에 쫓겨 뛰어오고 있고 그중 한 소녀는 발가벗었다. 베트남계 미국인 기자가 촬영한 사진 속에서 당시 아홉 살이던 소녀가 그런 모습으로 나타난 것은 베트남 공군이 그녀가 살던 마을에 가한 네이팜탄 공습으로 등에 심한 화상을 입었기 때문으로 알려진다.

다른 하나 아직도 내 뇌리에 선명히 남은 사진 이미지는,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당시 그 나라 좌파 정부의 요청으로 군사작전을 펼치고 있던 시기 파키스탄의 아프가니스탄 난민수용소에서 찍었다는 한 소녀의 얼굴 모습이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지 1985년 6월 호 표지에 실렸던 그 사진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열두 살 소녀 샤르바트 굴라의 깊이를 알 수 없는 눈길이었다. 1945년 9월 2일 일본과의 전쟁 승리를 축하해 뉴욕의 타임스 광장에 모여든 사람들 가운데 한 해군 병사가 간호사 복장을 한 여성에게 열렬하게 입맞춤하는 장면을 찍은 사진도 뇌리에 선하다. <라이프> 지에 실린 그 사진은 제2차 대전 승전의 기쁨을 표현하는 가장 유명한 이미지의 하나로 꼽힌다.

또 하나 잊지 못할 전쟁 사진이 있다. 거기서 시선을 집중시키는 피사체는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혀 있던 유대인들이다. 사진 속에서 그들은 하도 피골이 상접해 꼭 해골만 같다. 저런 상태로 어떻게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하는 처참한 그들의 모습을 보면 그 순간 눈이 저절로 커지고 입이 벌어지며 얼굴은 일그러지게 된다. 그런 이미지를 한 번 보고 나면 결코 잊을 수 없는 것은 나뿐만 아닐 것이다. 참고로 지난 1월 27일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가 해방된 지 80주년 된 날이었다.

예상외로 아는 사람이 드문데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독일군으로부터 해방한 것은 소련군이다. 수용소 해방을 위해 독일군과 교전을 벌이다가 소련군은 병사와 장교 합쳐서 231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나는 이 사실을 러시아의 유엔 주재 대사 바실리 네벤자가 최근에 열린 국제 홀로코스트 기념행사에서 한 말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네벤자는 소련군이 아우슈비츠로 진군할 때, 레닌그라드 공방전(1941년 9월 8일〜1944년 1월 27일)에서 아사 직전의 러시아인들을 회복시킨 경험을 지닌 소비에트 의사들이 동행한 사실도 말하고 있다.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는 어린이 300명을 포함한 7,000명 이상의 수감자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들 가운데 내가 본 사진 속의 이미지처럼 피골이 상접하여 해골 같았던 사람들은 수용소에서 풀려나는 것만으로는 살아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죽기 직전의 해골 같은 사람들도 살아났다면 그것은 소련군 덕분일 공산이 크다. 독일군에 포위당했다 탈환된 자국의 레닌그라드에서 아사 위기에 몰린 사람들을 살려낸 경험을 지닌 의사들을 아우슈비츠로 데려간 것은 소련군의 세심한 조치였다고 봐야 한다. 그런 배려가 아니었더라면 아우슈비츠 수감자들은 수용소에서 풀려났어도 다수가 목숨을 잃었을 가능성이 크다. 소련군은 아우슈비츠를 해방하기 위한 전투 과정에서도 목숨을 많이 바쳤을 뿐 아니라, 자국민이 대량으로 겪은 아사 비극을 그들이 해방할 수감자들이 겪지 않도록 의사들을 데려와 보살피게 했으니 커다란 인도주의적 공헌을 한 셈이다.

이미 말한 대로 지난 1월 27일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가 해방된 지 8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런 뜻깊은 날이니 기념 의식이 거행된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런데 한 가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일은 행사 주최 측에서 여러 나라 인사들을 초청하면서 소련의 후신 러시아 쪽만 쏙 뺐다는 것이다. 매년 1월 27일에 열리는 아우슈비츠 해방 기념행사에 벨라루스와 함께 러시아가 초청받지 못한 것은 2022년 이후부터라고 한다. 그 이유를 짐작 못 할 바는 아니다. 그때 이미 서방의 나토가 지원하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에 전쟁이 임박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당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친나치화, 돈바스 내 러시아계 주민 차별과 학살, 그리고 특히 나토의 끝없는 동진이 자국의 안보에 실존적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특별 군사작전을 예고하던 중이었다. 결국 2월 24일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이뤄졌고, 전쟁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해방 기념행사 주최 측은 그 뒤로 러시아를 기념행사에 초청하지 않았고, 그런 처사를 한 것은 올해도 마찬가지다.

아우슈비츠는 폴란드에 소재한다. 러시아는 그래서 기념행사에 참여하고 싶어도 폴란드가 막아서면 할 수 있는 방도가 없다. 폴란드는 냉전 시기에는 바르샤바협력기구의 일원으로 소련의 우방이었으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미국이 주도하는 나토 즉 북대서양조약기구의 일원이 되었고, 나토국가들 가운데서도 가장 반러시아적 태도를 드러내는 나라가 되었다. 그래도 그렇지, 폴란드든 아우슈비츠 기념행사 주관 조직이든 아우슈비츠 해방을 기념하는 행사에 러시아의 참석을 봉쇄한다는 것은 상식, 아니 양식에 어긋난다. 더구나 그날 행사에는 영국 국왕 찰스,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 외에 아우슈비츠의 비극을 자행한 나치의 후신인 독일의 총리 올라프 숄츠까지 초청받아서 참석했다는데 말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해방 80주년 기념행사에 러시아를 배제하는 것은 철면피한 냉소주의적 역사 지우기요 왜곡이라 함 직하다. 냉소주의는 이때 어떤 사실을 놓고 그에 대한 무지 때문에 드러나는 태도보다는 고의적 무시의 태도를 가리킨다. 지난 1월 27일 아우슈비츠에 모인 인사들 가운데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해방한 것이 러시아의 전신인 소련이고, 소련이 그 과정에서 큰 희생을 치르며 큰 인도주의적 선행을 베풀었음을 모르는 사람이 많았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도 행사 주최 측은 그런 점을 무시하고 러시아를 초청 대상에서 배제하는 냉소적 태도를 드러냈다. 심각한 역사 왜곡이라 하겠다.

이 맥락에서 올라프 숄츠가 미국인 세계 최대 갑부 일론 머스크가 오는 23일의 독일 총선과 관련 ‘독일을 위한 대안’ 정당을 지지한 것에 대해 비판하는 과정에서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을 해방한 것은 미국이라고 말한 점이 주목된다. “우리는 미국이 우리나라를 해방하고 우리가 다시 민주주의가 되게 도운 데 대해 기쁘게 생각한다.” 숄츠의 이 발언은 그러니까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을 패퇴시킨 것이 미국이라는 것이다. 사실과는 전혀 부합되지 않는다. 독일에 진군해서 베를린을 함락시키고 나치로부터 최종 항복을 받아낸 것은 전쟁 기간 무려 2,700만 명의 희생을 치른 소련이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도 40만 5천 명 이상의 전사자를 낳았으니 중대한 공헌을 했다고 봐야 하겠지만, 소련과는 비교되지 않는다. 숄츠가 나치로부터 독일을 해방한 것이 미국이라고 한 것은 명확한 역사 왜곡이다.

같은 맥락의 왜곡은 유엔에서도 이루어졌다. 유엔 사무총장 안토니우 구테흐스는 1월 27일 국제 홀로코스트 기념의 날을 맞아서 한 연설에서 “나치와 그 부역자들”에 희생당한 민족으로 유대인, 로마니인, 신티인 등은 언급하면서 러시아인은 언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유엔 사무총장이 나치 범죄 희생자 목록에서 제2차 세계대전 중 희생당한 소련인 수백만 명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은 언어도단”이라는 것이 러시아의 외교부 대변인 마리야 자하로바의 반응이었다. 제2차 대전 중에 나치가 유대인 600만 명을 살해한 것은 당연히 저주할 범죄행위이지만 당시 그들에게 목숨을 잃은 것이 유대인만은 아닌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이라 하면 흔히 홀로코스트를 떠올린다. 세계인은 그래서 이스라엘에 대해 그들이 팔레스타인에 대해 무자비한 억압과 파괴, 전치, 고문, 살상을 일삼아도 눈감아 주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의 만행으로 가장 큰 인명피해를 본 것은 이미 말한 대로 무려 2,700만 명의 사망자를 낸 러시아다. 물론 그들 모두가 나치에 의해 직접 살해당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들이 희생당한 것이 나치가 일으킨 전쟁 때문임은 부정할 수 없다. 아우슈비츠를 해방한 것, 나치와 전쟁에서 결정적 승리를 거둔 것, 또 전쟁 기간 엄청난 희생자를 낸 것 등 제2차 세계대전에서 소련이 한 역할은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데, 세계평화와 화목을 선두에 지켜야 할 유엔의 수장인 사무총장까지 냉소주의적인 역사 왜곡의 대열에 참여하니 가증스럽지 않은가.

아우슈비츠 행사 주관 측은 러시아는 쏙 빼놓고 우크라이나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는 초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의 부역자로 그가 지휘한 극우민족주의 세력이 10만 가까운 폴란드인과 수만의 유대인을 학살한 전범 스테판 반데라를 국가 영웅으로 추앙하는 나라다. 젤렌스키 정권에도 지금 반데라를 국부로 숭배하고 극우민족주의를 제창하는 친나치 세력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도 폴란드 정부는 젤렌스키는 80주년 기념식에 초청해 축사할 기회를 부여하고, 아우슈비츠 해방의 최고 주역인 소련의 후신 러시아의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에게는 초청장을 보내지 않았다. 이유야 분명하다. 아우슈비츠가 소재한 폴란드는 지금 나토 소속이고, 러시아는 나토가 추진하는 전략적 패퇴의 대상 국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우슈비츠 해방의 내력을 안다면 푸틴은 빼고 젤렌스키만 초청했다는 것은 뭔가가 크게 잘못되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의 국제관계, 세계질서는 뒤죽박죽이다. 특히 서방 자유주의 세력의 행태가 상식과 양식의 범위를 넘어섰다. 20세기 초반에 양차 대전을 치르면서 세계는 가공할 물적 인적 희생을 치르고 종전 뒤 유엔이라는 나름대로 의미 있는 국제기구를 탄생시킨 바 있다. 유엔은 그 헌장을 통해 국제관계에서 최종심급의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세계평화를 위한 최고 보루라고 봐야 한다. 하지만 구테흐스 사무총장의 최근 발언을 보면 거기서도 평화의 기본 원칙과 가치는 사라진 모습이다. 유엔의 수립을 통해 가동되기 시작한 국제관계, 세계질서가 와해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아우슈비츠 80년을 맞은 지금 세계는 매우 어수선하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성숙한 자본주의 국가들이 밀집한 서방 세계가 최근에 막가는 행동을 보인 데 있다. 자본주의에서는 자유주의가 지배 이데올로기로 작동한다. 문제는 그렇게 되면 자본의 자유와 권리가 가장 먼저 고려된다는 것이다. 서방 세계가 자유주의를 국제관계의 원리로 삼을 때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주도한 서방 세계가 ‘가치-기반 국제질서’를 제창할 때도 군수산업이나 에너지산업, 금융자본 등 자본의 이해관계가 최우선으로 고려된다. 미국 등은 가치-기반 국제질서의 원칙을 내세우며 그에 순종하지 않는 조선인민공화국, 중국, 러시아, 이란, 베네수엘라, 쿠바 등을 전제 또는 독재 국가로 매도해왔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자유를 수호한다고 하면서 서방 자본주의 국가들이 실제로 한 것은 철저히 자국 자본의 이해를 지키고 확장한 것이었을 뿐이다. 그들은 약소국가들이 인민 복지와 안녕, 주권을 지키려 하면 정권 전복을 꾀하며 곳곳에서 색깔 혁명을 일으키기도 했다.

어디 그뿐인가. 자유주의는 자본의 자유와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느라 파시즘과 동맹하는 것도 꺼리지 않는다. 오늘날 자유주의와 파시즘의 동맹은 바로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집단서방이 동유럽에서는 친나치 세력이 국가권력을 장악한 우크라이나에, 서아시아에서는 나치의 가장 큰 희생자임을 자처하면서 나치와 진배없는 폭력성과 잔인성으로 팔레스타인인을 대규모로 학살하는 아파르트헤이트 국가 이스라엘에 온갖 무기를 대주며 지원하는 것이 그것이다.

아우슈비츠 기념행사에는 올해도 많은 국가의 수반, 주요 인사가 참석했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는 거기 참석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들 대부분이 서방국가에서 초청되었다는 것이 중요한 한 이유다. 서방 세계는 지금 세계평화를 망치는 장본인이며, 아우슈비츠 행사에 초청된 인사들은 서방 세계의 반평화적 행태에 가장 큰 책임을 진다고 봐야 한다. 러시아와 벨라루스 등 지금 서방과 척진 국가 인사들은 초청받지 못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아우슈비츠 해방의 의미 자체가 부정된 것과 다르지 않다. 심각한 역사 지우기요 왜곡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지워지고 왜곡되면 역사가 어떻게 바로 서겠는가. 아우슈비츠 80주년을 보면서 우울한 생각이 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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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내희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


지난해 10월 21일 독일의 외무부 청사 앞에 일군의 군중이 모여 집회를 벌인 일이 있었다. 그 집회를 조직한 것은 팔레스타인 연대 집단들이었다. 튀르키예의 국영 통신사 아나돌루 아잔시에 따르면, 그들은 아날레나 베어복 외무장관이 10월 10일 연방 의회에서 행한 발언의 내용 때문에 모였다고 한다. 베어보크 장관이 무슨 말을 했기에 팔레스타인 지지자들이 항의 집회를 한 것일까.


“레바논이 붕괴하기 직전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레바논에서도 테러리스트가 무책임하게 민간인들 뒤에 숨어서 이스라엘에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을 봅니다. 그것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베어복이 말하는 ‘테러리스트’란 헤즈볼라다. 헤즈볼라는 레바논에서 가장 큰 합법적 정치 및 군사 세력으로 알려져 있다. 베어복은 그런 세력이 민간인 뒤에 숨어 이스라엘에 미사일을 발사한다며 테러리스트라고 단정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주장은 전혀 조리에 맞지 않는다. 레바논의 합법 세력이 레바논에 있는 것이 문제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베어복은 헤즈볼라의 합법적으로 레바논 민간인과 함께 있는 것을 테러범이 하는 짓거리로 몰고 있다.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에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도 “용납할 수 없는” 일로만 치부할 수 없다. 그들이 그런 공습을 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이스라엘이 가자지역에서 하마스 세력을 제거한다며 민간인 학살행위를 자행하는 데 대해 같은 이슬람으로서, 또 저항의 축 일원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는 셈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이스라엘이 가자지역을 초토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서안지구를 유린한 데 이어서 레바논 영토까지 침공한 것에 대한 방어적 대응이기도 하다. 게다가 헤즈볼라는 이스라엘군과는 달리 전쟁 수칙을 지키며 공습 대상을 군사시설에 국한하며, 가자지역과 베이루트 등을 무차별 폭격해 고의로 인명을 살상하는 전쟁범죄를 저지르지는 않는다.

베어복이 헤즈볼라는 민간인 뒤에 숨어서 이스라엘을 공격한다며 비난한 데에는 불순한 의도가 숨어있다. 헤즈볼라에 대한 근거 없는 비판이라도 해서 엄청난 수의 민간인을 불법적으로 살상하는 이스라엘에 면죄부를 주려는 것이 그것이다. 이스라엘은 1948년에 75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을 그들의 고향에서 쫓아낸 나크바를 저지른 뒤로 폭행, 불법적 체포, 고문, 성폭행, 살상 등 온갖 악행을 저질러 왔다. 그들은 지금도 2023년 10월 7일에 자국을 공격한 하마스 세력을 제거하겠다며 가공할 폭격으로 가자지역을 초토화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인의 공분을 불러일으킨 극악무도한 행위로 수십 만의 사상자를 낸 것에 대해 이스라엘이나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독일 등 서방 세력은 ‘부수적 피해’라고 둘러댄다.

국제법에 따르면 적군을 공격하더라도 비전투원 즉 민간인의 희생이 나올 것이 명확하면 공격을 멈춰야 한다. 그런 법 규정이 생긴 것은 이스라엘이 가자지역에서 저지르는 것처럼 소수의 하마스 전투원을 공격한다며 수십 만의 비전투원을 희생시키는 따위의 불법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그런데도 베어복은 헤즈볼라 군이 “민간인 뒤에 숨어서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민간인이 전투원과 함께 있으면 공격해도 좋다는 것으로 위법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이스라엘은 작년 9월 27일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를 암살하며 33명 이상의 사망자, 175명 이상의 부상자를 냈다.

독일의 정치계급이 이스라엘의 천인공노할 인종청소 행위를 두둔해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독일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상대로 자행한 불법적 침탈 행위를 외면한 것은 물론이고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의 불법 점령에 맞서 알-악사 홍수 작전을 펼친 뒤 이스라엘군이 가자의 민간인을 대량 학살하는 동안에도 이스라엘의 든든한 뒷배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그렇게 하는 동안 독일은 이스라엘에 엄청나게 많은 무기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진다.

국제법을 위반하며 학살행위를 자행하는데도 이스라엘을 지원해주는 나라가 물론 독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 나라의 선두에는 미국이 있고, 영국이나 프랑스 등 서유럽 국가 대부분이 친이스라엘 정책을 펼친다. 그러나 최근의 팔레스타인 전쟁에서 독일이 유럽에서 가장 많은 무기를 제공해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과 레바논 등에서 자행한 학살을 앞장서 지원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독일은 이스라엘 지원이 자국의 국가이성이라고 말한다. 독일의 전 총리 앙겔라 메르켈은 2008년에 이스라엘의 의회 크네세트를 방문해 “이스라엘의 안보는 독일의 국가이성”이라고 말하며 독일이 이스라엘의 안보에 책임을 지고 있음을 강조한 바 있다. ‘국가이성’은 “국가를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하여 지켜야 할 국가의 행동 기준”을 가리킨다. 독일이 이스라엘의 안보를 자국의 국가이성으로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가는 메르켈의 후임자인 숄츠와 그가 이끄는 연립정부가 10월 7일 사태 이후 미국 다음으로 그리고 유럽에서는 최대로 이스라엘에 무기를 공급한 점이 웅변하는 셈이다.

독일과 이스라엘의 역사적 관계는 널리 알려져 있다. 나치 지배 시절 독일은 600만 명이 넘는 유대인을 학살했다. 독일 사회가 이스라엘에 대해 원죄 의식을 갖는 것은 그런 면에서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독일의 행태를 보면 이스라엘에 대한 죄의식을 강조하는 것이 계산에 따른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최근에 독일은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을 반-유대주의로 규정해 불법화했다고 전해진다. 언뜻 보면 과거 자신이 유대인에게 자행한 학살행위를 반성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반-유대주의 불법화 이후 독일 당국이 보인 행태를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독일 당국은 이스라엘군의 팔레스타인인 학살에 항의해 시위에 나선 사람들과 온라인 등에서 비판 활동을 조직한 친-팔레스타인 활동가들을 빈번하게 탄압하고 체포하기 시작했다.

독일은 이스라엘의 안보를 자국의 국가이성으로까지 격상한 것을 ‘과거 청산(Vergangenheitsbewältigung)’이라 부르는 모양이다. 독일 사회가 자신의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려 하는 것이야 어떻게 탓할 수 있겠는가. 독일이 20세기 후반에 국제사회에서 제법 좋은 평가를 받은 데에는 유대인 학살을 뉘우친 모습을 열심히 보여준 점이 적잖게 작용했을 것이다. 한국인의 견지에서 보면 독일이 과거 청산에 나선 태도는 식민 지배 기간 온갖 악행을 저질러 놓고 아직 제대로 반성하는 기색이 전혀 없는 일본과 비교하면 큰 대조를 이룬다. 그러나 독일이 자신의 과거를 정말 제대로 청산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작년 11월 1일과 올해 1월 3일 자로 서아시아 전문매체인 <미들이스트 아이>에 기고한 두 편의 글에서 독일 포츠담대학의 사회학 교수 위르겐 마케르트가 하는 지적이 정곡을 찌른다. 마케르트 교수에 따르면, 홀로코스트를 저지른 데 대한 반성으로 독일이 이제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이스라엘을 지지하겠다고 하는 것은 진정한 과거 청산의 태도라기보다는 자국 이익을 계산한 행보인 측면이 크다. 독일은 이스라엘의 안보 지원을 국가이성이라 강조하지만, 독일이 청산해야 할 과거에는 유대인 학살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독일에는 예컨대 아프리카의 나미비아를 식민 지배하면서 1904〜08년 사이에 헤레로족 6만과 나마족 1만 명 이상을 살해한 죄과도 있다. 자신의 잔혹한 식민 지배의 청산을 계속 외면해오던 독일이 나미비아에서 대규모 종족살해를 범한 사실을 인정하고 30년에 걸쳐 11억 달러 정도의 원조를 제공하기로 한 것이 겨우 2021년이다. 이런 점을 놓고 보면, 독일이 자신의 죄악을 유대인 홀로코스트로만 국한하는 행위는 과거 청산이 아니라 은폐일 소지가 다분하다. 유대인에 대해서만 사죄 의사를 드러내는 것은 정착-식민 역사를 포함한 자신의 다른 잘못된 과거는 청산의 대상에서 제외하려는 심산일 공산이 큰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이스라엘의 안보를 위해 앞장섬으로써 독일은 새로운 범죄에 가담하고 있기도 하다. 지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을 대상으로 자행하는 종족학살은 독일 나치 세력의 소행을 빼닮았을 뿐만 아니라 능가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런데도 독일은 자신의 국가이성을 내세워 이스라엘에 대해 미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무기를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독일의 그런 지원은 나치 시기 자신이 범한 종족학살 행위를 반복하고 정당화하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가자지역에서 대규모 살상행위를 자행하는 이스라엘을 국가이성의 명분으로 지원하면서 독일은 스스로 말하는 과거 청산을 사실상 무효로 만드는 셈이다.

마케르트는 독일이 유독 유대인 홀로코스트만 자국이 저지른 유일무이한 절대적 과오로 치부하는 것은 교활한 역사 왜곡이요 부정인 것으로 본다. 나치 치하 시기 12년은 독일 전체 역사에서 예외적으로 비정상적이며 비이성적인 시기였을 뿐이고, 독일은 원래 계몽된 문명국이라는 이미지를 만들려는 수작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독일의 국제 범죄 행위가 나치 시기로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독일에는 그전에 이미 아프리카와 태평양, 중국 등에서 식민지 또는 제국주의적 지배를 자행한 역사가 있다. 독일이 홀로코스트에 대해서만 죄의식을 표명하는 것은 그런 점에서 자신의 다른 어둠의 역사를 은폐하기 위함인 측면이 크다. 마케르트는 자신의 역사적 범죄 전체를 인정하지 않는 한 독일 사회는 왜 자국이 나치 시기에 홀로코스트라는 극악한 반인륜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는지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그에 따르면, “나치 독일은 그냥 하늘에서 전례 없는 문명 붕괴 상태로 떨어진 것이 아니다.”

‘문명국가’ 독일이 최근에 보인 반문명적 행태가 개인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는데 그 역사적 원인을 이해하는 데에 마케르트의 논고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자기 모국이 저지르는 범죄 행위를 국제무대에 고발하는 서구 지식인은 그리 많지 않다. 베어복 같은 독일 지배층은 왜 레바논을 불법 침략한 이스라엘군 대신 자국 영토를 지키는 헤즈볼라 세력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하는지, 독일은 왜 미국 다음으로 이스라엘에 무기를 많이 지원하는지, 왜 최근에 이스라엘 비판을 반유대 범죄로 만들었는지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은 독일의 역사적 범죄를 들춰내 신랄하고 엄정한 비판을 가하는 그의 논고 덕분이다.

마케르트가 특히 강조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테러 행위를 지원하는 것이 독일에는 이로운 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단 이때 ‘독일’은 독일의 인민과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의 불법적 종족학살을 비판하는 반유대 행위로 처벌받는 독일인들은 독일의 정치계급, 이들과 함께하는 지배 블록, 특히 자본 세력과는 구별해야 하며, 독일의 과거 청산도 다른 방식으로 하려 한다고 봐야 한다. 독일이 이스라엘을 지원한다고 할 때 ‘독일’은 따라서 독일의 인민과는 다른, 독일 상층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독일 국가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마케르트는 독일 당국이 지금 “수많은 독일 은행들, 보험사들, 투자자들, 연구 기관들, 대학들, 무기회사들”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독일이 한사코 이스라엘 안보를 위해 나서는 것은 그들 지배 블록이 “시장, 이윤, 그리고 중요한 지식”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지식노동자 출신으로서 나는 독일의 연구 기관과 대학들이 이스라엘의 대팔레스타인인 종족학살에 가담하고 있는 점에 대해 특히 관심이 간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에서처럼 독일에서도 작년에 대학에 이스라엘의 가자 인민 학살을 규탄하는 집회가 널리 열렸었다. 물론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이 반유대 행위라는 법이 제정되었으니 그런 집회가 용납되었을 리는 없다. 반유대 행위 통제에는 대학 당국들도 소매 걷어 올리고 나선 모양이다.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적 발언을 할 것이 예상되는 외부 강사의 초청 강연을 취소시키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그와 함께 대학들이 일제히 친이스라엘 행보를 보였다는 전언도 있다. 이스라엘의 대학이나 연구소가 이스라엘의 점령 및 학살행위에 연루된 것을 알면서도 독일 대학들이 그들과의 협력을 위한 예산을 늘린 경우가 많다는 말이다.

독일과 이스라엘 대학 간의 협력 증진을 ‘학술적’인 순수한 활동이라고 옹호한다면 누가 믿을까. 설령 그런 성격을 지니더라도 그것은 양측이 이미 이익공동체라는 점의 반영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독일과 이스라엘 대학들에서 진행하는 공동 연구에는 팔레스타인인의 생체 정보 등을 활용해서 위치를 특정해 정밀 타격하는 기술의 개발도 포함되어 있을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독일 대학과 연구소 등은 이스라엘의 상대와 더불어 종족학살에 참여하는 것과 진배없다. 물론 그들이 수행하는 연구의 많은 부분은 미국 다음으로 무기를 많이 제공하는 독일의 군수 자본과도 깊이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마케르트에 따르면 독일에는 지금 “신자유주의 시대에 감시 기술에서 인구 관리에 이르기까지, 드론과 AI 전쟁에 이르기까지 독일 측이 배울 것이 무척 많은 팔레스타인 실험실을 잃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 이런 점은 독일이 스스로 국제법을 무시하며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것은 문명국의 국가이성과는 관계가 멀다는 것을 말해준다. 자신이 과거 나치 시절에 행한 것과 다르지 않고 심지어 더한 악행을 저지르는 이스라엘의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그렇다면 독일의 이해관계 때문인 셈이다. 단 이때 이익이 독일인 전체의 것이라기보다는 지배계급의 그것임을 확인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독일 당국이 팔레스타인인에게 연대를 표명하기 위해 나서는 자국 인민을 탄압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인민의 그런 행동이 지배계급의 이익과 상반된다고 여기는 것이 무엇보다 큰 이유일 것이다. 역시 문제는 다수의 이해관계와 소수의 이해관계를 대립시키는 자본주의라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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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몇 주간 그렇듯 오늘 아침에도 미리 세운 계획은 없다. 지하철 속에서마저 생각이 구름처럼 떠간다. 그러다가 산보다는 물을 보러 가야겠다 싶어 마침 타고 있는 4호선에서 우이신설선으로 갈아타고 북한산 소귀천 계곡 백운천을 일단 걷기로 한다.

 

북한산 소귀천 계곡은 북한산 계곡 걷기 과정에서 그 일부를 걸은 적이 있다. 오늘은 나머지 부분을 물에 주의하면서 걷는다. 물길을 따라가며 흐르는 모양과 소리를 곱고 촘촘하게 담는다. 쌓인 눈을 요리조리 피하고 덮인 얼음 아래를 엎드려 기며 작은 시내는 졸졸 흘러간다. 낙차 이루는 돌 사이에서는 초르르 소리내고 떨어져 물끼리 닿아서는 똘랑똘랑 소리낸다. 이 모든 소리가 인간에게 이완과 평화를 선물한다. 늘 같은 소리 같지만 지루하거나 지겹지 않으니 언제나 다른 소리임이 틀림없다. 그 소리에선 말간 내음도 피어오른다.

 

소귀천 계곡 타고 내려오는 백운천과 다른 한 갈래는 백운대가 아니라 만경대 산마루 밑에서 발원하니까 백운천이란 이름은 이래저래 이상하다. 소귀천도 마찬가지다. 소귀내 또는 쇠귀내라 하거나 우이천이라 하면 될 텐데 뭔가 뒤죽박죽이 된 느낌이다.

 

여기가 아니라 우이령에서 발원한 다른 줄기가 본류라고 생각해 우이천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하더라도 백운천이라는 이름은 맞지 않다. 차라리 만경천이라 해야 한다. 우이령 쪽을 왜 본류로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전체 산세나 맥락을 보면 우이천은 쇠귀천 계곡을 포함한 쪽을 본류로 삼아 쇠귀내 또는 소귀내로 부르는 민중 전승을 따라 복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찮은 문제처럼 보이지만 이런 혼잡부터 바로잡아야 제국주의 그늘을 걷어내고 자주민주 사회로 나아가는 바탕이 굳어진다. “쇠귀내물이 오늘 전한 말은 이로써 충분하다.

 

두 물길이 만나 중랑천에 닿기까지 도시 한가운데를 관통하며 흐른다. 생태하천으로 조성되기 전 우이천은 다른 내와 마찬가지로 생활하수가 모여 흐르는 오염된 지상 하수였다. 지금은 물도 비교적 맑고 산책로도 편리하나 둔치가 좁아 풍경은 소박하다.

 

우이천은 재미난 서사 하나를 품고 있다: 아기공룡 둘리. 빙하 타고 내려온 둘리가 발견된 곳이 한일병원 근처 우이천이라는 이야기다. 물 흐름에 비추어 터무니없는 상상이라 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따지면 엿새 만에 천지를 창조했다는 이야기는 얼마나 터무니 있나. 한 시대를 풍미했던 만화 서사가 기억을 타고 전승돼 이곳에 살아 있는 문화로 엄존하는 현상은 그 자체로 가치와 미학을 지니기에 충분하다. 이런 서사를 품어 들이는 범주 인류학으로 보편과 특수를 가로질러 우리 일상이 풍요로워진다면 하늘에서 떨어진 빙하인들 어떤가.

 

우리가 식민지를 겹으로 거치며 살지 않았다면 물과 얽힌 서사가 더 유구하고 풍요로웠을 텐데 참으로 원통한 일이다. 하류로 내려갈수록 아픈 물 체취와 신음이 감지된다. 내 몸도 따라 천추 통증을 전한다. 더는 걷지 못한다. 예를 표하고 마무리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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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광화문 가기는 박근혜 때처럼 어느덧 내 루틴-내게 익숙한 표현으로는 리추얼-로 자리 잡았다. 한의원 진료 끝내고 지하철로 이동하면 공식 집회가 제법 진행되었을 무렵에 도착한다. 폭력성에 찌든 탄핵 반대 집회장을 지나 흥겨움으로 넘실대는 파면 촉구 집회장 가까이 다가가자 대기 온도부터 달라진다. 부는 바람결도 그렇다. 자동으로 발걸음에 운율이 실린다.

 

저마다 다른 사연 전하는 목소리, 어깨춤을 부르는 노래, 민주주의를 치유하는 구호, 가슴과 가슴을 가로지르는 함성이 어우러질 때 모두는 자연스럽게 웃고 손뼉 치며 발장단을 맞춘다. 다르고도 같은 맥락이 되풀이해 순환하면서 천천히 흘러간다. 어느 순간 갑자기 기이한 조바심이 비수처럼 옆구리를 파고든다. 화들짝 놀라 이 감정 녀석 멱살을 움켜쥔다: 너는 누구냐?


답 듣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내가 반복을 통해 흥이 나선으로 상승하는 놀이에 아직도 익숙하지 않구나! 개인 삶은 물론 정치 저항을 싸움으로 인식하며 살아온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말이다. 내가 오랫동안 시달렸던 우울증도 그 탓이 크다. 우리 세대가 그려냈던 공통된 풍경이기도 하다. 알아차려 주자 조바심이 빙그레 웃으며 떠난다.

 

나는 이내 분위기 한복판으로 되돌아간다. 천천히 행진을 따라간다. 분위기는 달아오르다가 가라앉기를 거듭하는 듯하더니만 어느 시점부터 변함없는 탱탱함으로 고공비행한다. 행진이 절정에서 끝난다고 해야 할지 끝에서 절정을 맞는다고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채로 흥은 홀가분하게 흩어진다. 신명과 일상이 절묘하게 융해되어 명동 일대를 평정한다. 밥 먹으러 간다.

 

식당 옆자리서 장년 여성 넷이 술을 마신다. 대화를 주도하는 위치에 있는 듯한 사람이 뚜벅 이렇게 말한다: 저런 삶들도 필요하지. 그래봐야 소수지만. 다른 사람 아무도 이 말에 반응하지 않아 뒷이야기는 없다. 나는 홀로 묻는다: 다수는 누굴까? 답 듣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구경꾼이지. 얼마든지 구경해도 된다. 구경만으로 누리는 변화에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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