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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두구의 저주 - 지구 위기와 서구 제국주의
아미타브 고시 지음,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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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가 1세기 반 동안 냉각을 겪어왔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익히 알려져 있다.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중반까지 절정을 이룬 이 시기는 흔히 작은 빙하기라고 불린다. 그 시기에 대기 중 탄소 농도가 급격히 하락했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런 이상 현상은 일반적으로 태양 활동이나 지진 활동 변화 같은 자연적요인 탓으로 돌려졌다. 그 이상 현상은 유럽이 북·남미에 대한 통제 고삐를 단단히 죄고 있을 때 일어났는데, 이 사실은 오랫동안 우연한 결과로만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 연구는 또 다른 가능성을 시사한다. , 유럽이 살육을 자행함으로 시작된 재앙에 가까운 북·남미 인구 감소가 작은 빙하기 전 지구적 평균 기온하락에 어느 정도 작용했을 가능성 말이다. 16세기와 17세기에 너무나 많은 아메리카 인디언이 살해돼서 한때 식량 재배 용도로 쓰이던 방대한 경작지가 숲으로 되돌아갔다. ·남미 대륙에서 갑작스럽게 푸른 나무가 늘어나자 이산화탄소가 엄청나게 격리되고, 그에 따라 전 지구적 기온하락을 결과한 역 온실가스 효과가 일어났다는 가설이다.

  이 가설은 물론 입증된 적이 없다. 하지만 만약 작은 빙하기가 부분적으로나마 실제 인간 활동으로 말미암았다면, 이는 인류가 기후변화를 유발한 우리 시대와 17세기를 연관 짓는 또 다른 근거일 수도 있다.(76~77)

 

스티브 테일러는 자아 폭발-타락-에서 이런 사실을 전해주었다.

 

어떤 사람들은 유럽인 아메리카 원주민 정복을 나치 유대인 학살과 비교하지만, 여러모로 그보다 훨씬 심각했다. 1492년 콜럼버스가 도착하기 전에 남북 아메리카 인구가 얼마였는지 확실하게 아는 사람은 없다. 2천만 명에서 1억 명까지 각기 다르게 추정하는데, 실제는 그 중간 정도로 봐야 한다. 유럽인이 들어온 이후 놀라울 정도로 줄었다. 1860년경 북아메리카 인디언은 단 34만 명에 불과했다.”(138)

 

중간이면 6천 만이다. 사실상 이들을 모두 죽였다. 아니다. 그동안 새로 태어난 사람까지 헤아린다면 훨씬 더 많은 사람을 말살했다. 사람만이 아니라 기대어 살던 동물, 깃들어 살던 풍경, 더불어 살던 생태 조건 전체를 도륙했다. 오늘날 우리가 차마 예측할 수 없는 전방위·전천후 변고를 유발했음이 분명하다. 작은 빙하기가 어떻게 자연적 현상일 수만 있는가. 입증돼야만 진실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인간에게 진실이란 얼마나 알량한가.

 

신라 <헌강왕(49/875~886) 본기>에 왕이 시중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대목이 있다.

 

지금 민간에서는 짚 아닌 기와로 지붕을 덮고, 나무 아닌 숯으로 밥을 짓는다고 하는데 과연 그러한가?”

 

의견이 분분하다. 그 가운데 이런 주장이 있다: 숯을 만들기 위해 과도하게 벌목함으로써 숲은 물론 생태계 균형 전반이 무너져 신라가 멸망하는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현재 이 문제에 관해 전문가들이 어떤 의견 일치를 보았는지 나는 모른다. 분명한 사실은 10만 명 살았던 경주에서 일어난 이 일이 이렇게 해석될 수도 있다면, 사람 6천만 명과 그들이 살아가는 주위 공간을 말살한 일이 작은 빙하기를 몰고 온 한 원인일 수 있다는 가설은 다만 가설일 수 없다.

 

우리가 그동안 교육받은 세계사는 인도유럽어족, 더 좁혀 앵글로아메리칸 제국이 저지른 해악을 은폐 넘어 왜곡 미화로 각색한 흑역사다. 고등학생 시절 세계사 공부할 때 늘 품었던 불만 가운데 하나가 세계 역사라면서 시대와 단원 구분이 왜 유럽 중심으로 돼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그때는 모든 교과서 원본을 미군정이 만들었고, 특권층 부역자들이 덧칠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특권층 부역자들은 바로 이 시각에도 제국주의 관지를 알아서 기며 수용하고 있다. 제국 두뇌와 식민지 특권층 부역자 두뇌가 이렇게 공조하는 한 세계사는 끝날까지 픽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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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추적 봄비가 내리는 일요일 오전, 백악산으로 향한다. 뜻밖의 여정이다. 능선 따라 백악마루로 가지 않고 남쪽 사면으로 접어든다. 임기 말 문재인 전대통령 내외가 자상하게 챙겨 개방한 길이라 한다. 지나치다 싶을 만큼 안전과 편의에 신경쓴 흔적이 역력하다. 틈틈이 버섯에 예를 표하며, 주위 숲과 내려다보이는 도시 풍경을 번갈아 본다. 얼마쯤 가다가는 아예 우산을 접어 넣고 가랑비와 뒷비를 맞으며 간다.

청와대 전망대에 이르러 심호흡하고 고요히 선다. 청와대, 경복궁, 광화문 광장, 세종대로, 목멱, 저 멀리 비구름에 가려진 관악까지 이슥히 들여다본다.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복받쳐오른다. 생애 마지막 공부라 여기며 공들인 식물 공부가 필연적으로 제국주의, 부역 생태 서사 공부로 흘러가면서 숲에 드나드는 목적이 달라진 탓이다.

백악 풍경에 대한 감사함과 부역 정권을 내려다보는 참담함이 뒤엉켜 한동안 우두커니 서 있는다. 그냥 내려올 수는 없다. 곡진히 사납게 빌어마지 않는다. 특권층 부역 집단이 잡은 권력을 향해 검정부적 두 장 날린다. 한결 홀가분해져 숲을 나온다.

하늘은 식민지 회색으로 여전하지만 비가 멈춘다. 청와대 둘레길 끄트머리에 이를 즈음 신라말을 구사하는 패거리를 만난다. 그 고주파 폭력을 막아내지 못하고 서둘러 청운동으로 내려온다.

허름한 식당에 들어 매운 국물 시켜 막걸리 잔을 든다. 이름 모를 막걸리 맛이 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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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두구의 저주 - 지구 위기와 서구 제국주의
아미타브 고시 지음,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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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바꾸기(renaming)는 식민주의자들이 자기가 정복한 풍경 옛 의미를 지우는 중요한 도구 가운데 하나였다. 뉴잉글랜드에서 청교도들은 피쿼트족을 말살한 직후,···그들을 떠오르게 하는 바를 지상에서 차단하는 작업에 전념했다. 이를 위해···생존자들이 스스로를 피쿼트라고 부르는 행위를 금지했으며, 피쿼트강은 템스강으로 피쿼트 마을은 뉴런던으로 바꿨다. 뉴런던과 관련해 저들은 친애하는 우리 조국 주요 도시를 추억하기 위해서라고 천명했다.(71)

 

항일무장투쟁 전사였던 증조부 덕분에(!) 평생 일제 경찰에게 감시당하며 살았던 조부는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버텼다. 가족을 볼모 잡고 하는 협박을 견디지 못해 막판에 신농(神農)씨라 하고 이름은 그대로 두었다. 좌도 선맥 영향 아래 있었던 조부는 신농을 동이족이며, 더군다나 강()씨 시조로 알고 있었다. 조부는 창씨를 한 적 없었고, 일제는 이 사실을 알 리 없었다. 조모가 해주시는 이야기를 들으며 어린 나는 그저 통쾌하게 여기고 깔깔댔다.

 

일제가 이름을 바꾸려고 혈안이 되어 날뛴 대상은 비단 사람만이 아니었다. 대표적인 예가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이다. 현재의 인사동 지역에는 조선 초기에 한성부 중부 관인방(寬仁坊)과 견평방(堅平坊)이 있었고(()은 고려와 조선시대에 수도의 행정구역 명칭의 하나로 성안의 일정한 구획을 말함), 1894년 갑오개혁 당시에 이루어진 행정개혁 때는 대사동(大寺洞), 원동(園洞), 승동(承洞), 이문동(李門洞), 향정동(香井洞), 수전동(水典洞) 등이 있었다. 인사동이라는 이름은 일제가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관인방과 대사동에서 가운데 글자 인()과 사()를 각각 따서 붙였다. 대사동이라는 명칭은 이 지역에 고려시대에는 흥복사, 조선시대에는 원각사라는 큰 절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졌다. 결과적으로 인사동은 본디 지니고 있었던 역사와 풍경이 삭제되고 발음만 존재하는 이름이 되었다. 바로 이런 짓이 제국주의가 애용한 풍경 옛 의미를 지우는 중요한 도구. 그 도구 효과는 100여 년 뒤 한 아이가 이렇게 묻는 일로 나타났다.

 

인사동은 인사 잘하는 동네라는 뜻인가요?”

 

그 형 이상득이 공공연히 골수까지 친일이며 친미라고 추켜세웠던 이명박이 대통령 짓 할 때 전국 지명을 도로명으로 바꾸는 거대 토건 범죄를 일으켰다. 내가 범죄라고 말하는 까닭은 그 짓이 일제가 저지른 국토 창씨개명 시즌2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 범죄 과정에 엄청난 돈이 개입했으리라 본다. 사람이든 땅이든 이름 짓고 바꾸는 일은 편의 너머 생사 문제다. 제국주의가 식민지 사람··풍경 이름에 칼을 들이대는 행위는 또 다른 제노사이드(onomacide).

 

리베카 솔닛은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에서 명명은 해방의 첫 단계다.”라고 말했다. 해방 운동은 자기 이름을 정확히 불러주는 일에서 시작한다. 반제 운동은 살해된 이름을 되찾아주는 일에서 시작한다. 반제 운동은 숨긴 부역자 특권층 이름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일에서 시작한다. 아니. 그 전에 제국이 어떻게 사람과 땅과 풍경 이름을 살해했는지 결결이 겹겹이 드러내야 한다. 이 일조차 하지 않는 국가에서 진정한 공동체성을 찾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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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동인도회사가 구성한 암보이나 이야기는 아무 잘못 없는 영국 무역상이 대학살을 당했다고, 영국인이 무고하게 희생당했다고 호소하는 내러티브였다.···

  이런 의미에서 대학살은 백인·기독교인 순교를 지칭할 뿐 당시 북·남미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자행된, 유럽인이 다른 종족을 살육한 대량 살상에는 쓰이지 않았다.···

  결백과 순교라는 환상, 이 해로운 유물이 지금보다 더 선명하게 가시화한 적은 없다. 오늘날 백인 피해자 의식에 관한 신화는 영미 정치 체제를 뒤흔들 만큼 강력한 형태로 다시금 부상하고 있다.(64~67)

 

어쩌면 여기가 근본 지점일지 모른다. 이 내러티브는 자기가 학살 가해자면서 학살당한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도착 또는 투사가 어떤 깊은 연원을 지니는지 말해준다. “결백과 순교는 인류 죄악을 대신 걸머지고 십자가 위에서 죽임당한 메시아,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에게 헌정된 표상이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인 유대인은 대표적 죄악 표상이다. ·남미 원주민을 포함한 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유색인종은 그 연장이다. 그 죄악 인종들에게 포위되어 있으니 성전을 수행해 박멸해야 한다. 제국주의 논리 고갱이다.

 

그 논리대로라면 예수 그리스도는 실패한 메시아다. 죄악 무리에게 살해당함으로써 죄악을 척결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반대로 메시아 사역을 성공이라고 한다면 서구 백인은 메시아처럼 실제로 순교해야 맞다; 다른 종족을 말살하지 않아야 한다. 이 간단한 이율배반을 과연 저들이 몰랐을까. 이는 앞서 말한 의도적 무지와 궤가 같다. 결백도 순교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 오직 살육을 정당화할 목적으로 그리 날조했다면 둘 사이 모순은 없는 셈이다. 날조해서라도 모순 없는 상태를 만들고야 마는 폭력성이 바로 저들의 견고한 죄악 본성이다.

 

달리 생각해보자. 자신들이 정말 결백한 순교자라고 생각하는 오류와 죄악 세력을 말살할 권한을 부여받았다고 생각하는 오류 사이 모순을 익히 알면서도 거기서 오는 이득을 극대화해왔다면 이는 심각한 질병 상태다. 정신 분열이든 해리성 정체 장애든 다중 인격 장애든 명칭과 무관하게 치료가 거의 불가능한 정신병이다. 문제는 극단적 죄악 본성과 극단적 정신병 상태가 결국 만나고야 만다는 데 있다. 바로 이 국면으로 진입하는 세계 속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 앵글로아메리카 프레임에 휩쓸린 제국 지배층 행태는 꼭 똑 병든 악귀 자체다.

 

가장 잔혹한 살인은 광신도 초범이 저지른다. 신께서 분부한 일을 수행한다는 확신과 무경험에서 오는 어설픔이 맞물려 마구 찌르고 자르고 째고 뚫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잘못된 살인 자체도 문제지만 죽임당하는 사람이 겪는 극대화된 정신적·육체적 고통은 이루 다 형언할 수 없다. 서구 제국주의가 일으킨 제노사이드는 모두 이런 잔혹함으로 물들었다. 참된 철학이라면 이 잔혹함 한가운데서 윤리를 구성해야 한다. 참된 종교라면 이 잔혹함 한가운데서 구원을 구성해야 한다. 참된 의학이라면 이 잔혹함 한가운데서 처방을 구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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