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대의 문서들은 대개 오랜 세월에 걸쳐 편집, 가필된 복합 저작물입니다. 시대와 상황, 그리고 손을 대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더하거나 덜어지고, 심지어 왜곡까지 되면서 오늘날의 최종(?) 텍스트로 자리 잡은 것입니다. <중용>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자사로 비정되는 최초 저자에서 주희에 이르는 동안 숱한 손길이 이런저런 변형을 가한 것이지요. 그래서 문맥의 흐름이 부자연스럽기도 하고, 중복도 있고, 억지로 우겨넣은 것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전문가의 문헌비평이 세밀하게 밝혀낼 문제입니다. 저는 다만 제 삶과 인격 수준에서 그런 어기(語氣)와 내용을 가려 보고 나름대로 독법을 선택하면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중용>을 읽기 시작할 때 텍스트 전체를 보고 그 구조를 살피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조심스레 가다 보면 그럴 때가 오려니 하고 있었는데  제16장에서 많이 망설이게 되더니 급기야 제17장부터는 뭔가 이상한 느낌을 본격적으로 받기 시작했지요. 그래서 공부를 멈추고 유심히 <중용> 뒷부분을 살펴보았습니다.  

 

그 결과,  <중용> 텍스트는 대략  16장 내지 20장을 경계로 하여 앞 뒤 내용이 다른 듯합니다. 제2장에서 시작한 전반부는 중용에 대하여, 후반부는 성(誠)에 대하여 논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제1장은 이런 차이를 통합하기 위해 주희가 집어넣은 서론 또는 총론이 아닐까 합니다.    

 

문제는 제16장부터  제20장까지입니다. 제 눈에는  제17장에서 제19장은 확실히 억지스러워 보입니다. 추정컨대 후대에 끼워 넣어진 듯합니다. 이 판단에 의거 우리 읽기에서 제외하겠습니다. 문헌비평적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내리는 결단이라 오류 가능성이 있지만 억지스러워 보이는 내용을 구태여 견강부회하거나, 동떨어진 상태 그대로 문맥과 상관없이 주절주절 떠드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은 나중에 더 공부해 보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제16장도 느닷없이 귀신 이야기가 나와서 만만치 않게 낯설기는 합니다. 허나 앞서 읽은 대로  성미(誠微)를 중용의 다른 묘사로 읽으면 제16장이 <중용> 전반부와 제20장 이하 후반부를 잇는 지도리로 자리매김 되어 큰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제20장 내용도 뭔가 복잡하고 어수선합니다. 다섯, 셋, 아홉 등 숫자를 통한 열거 어법 모두가 공자의 오리지널 어록인지도 의심스러울 뿐만 아니라, 중복된 문장이 걸러지지 않은 것을 보면 후대의 편집 과정에서  착잡이 일어났음에 거의 틀림없습니다. 誠을 직접 언급하는 후반부부터 진정성이 있는 본문으로 보고 싶으나 큰 문맥의 흐름으로 보아 전반부를 誠을 설명하기 위한 토대쯤으로 이해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여 그냥 처음부터 진행합니다.    

 

2. 제20장 본문 첫 부분입니다.  

 

 哀公問政. 子曰 文武之政 布在方策 其人存則其政擧 其人亡則其政息. 人道敏政 地道敏樹 夫政也者蒲盧也. 故爲政在人 取人以身 修身以道 修道以仁. 仁者人也 親親爲大 義者宜也 尊賢爲大 親親之殺 尊賢之等 禮所生也.  

 

애공이 정치를 물었다. 공자는 말씀하셨다. "문왕과 무왕의 정치는 방책에 펼쳐져 있으니 그러한 사람이 존재하면 그러한 정치가 이루어지고 그러한 사람이 없으면 그러한 정치는 멈춘다. 사람의 도는 정치에 민감하고 땅의 도는 나무에 민감하다. 대저 정치라는 것은 창포나 갈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를 행하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으니, 사람을 취하는 데는 몸으로써 하고 몸을  닦는 데는 도를 가지고 하며, 도를 닦는 데는 인(仁)을 가지고 한다. 仁이란 人이니 친족과 하나 됨이 으뜸이고 의(義)란 의(宜)이니 현명한 사람을 높이는 것이 으뜸이다. 친족과 하나 됨에 있어서의 순서와 현명한 사람을 높이는 데 있어서의 등급이 예가 생겨나는 바탕인 것이다.  

 

3. 정치는 단순히 제도가 아닙니다. 살아 있는 생명체와 같습니다. 그래서 공자께서는 사람의 존부에 정치의 존부를 일치시킨 것입니다. 좋은 토양에서 나무가 잘 자라나듯 훌륭한 정치가의 손에서 바른 정치가 빚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정치를 행하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습니다(故爲政在人).    

 

그러면 훌륭한 정치가인가 아닌가를 어떻게 판단할까요? 그의 실천(身)을 보고 압니다. 그 실천의 수련이 도리에 의거하는가를 보고 압니다. 그 도리의 수련이 어짐(仁)에 의거하는가 보고 압니다. 요컨대 어짐을 실천하는 사람이 훌륭한 정치가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어짐이란 무엇일까요? 仁者人也. 초간단 답인데, 그게 참으로 어렵습니다. 어질다는 것은 사람답다는 것이다, 어진 사람이야말로 사람이다, 대략 이런 뜻으로 읽어서 큰 무리가 없겠지만 아무래도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입니다. 이 느낌을 해소하는 일은 일단 뒤로 미루고 문맥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친족과 하나 됨이 으뜸이다(親親爲大)라는 말이 仁者人也의 이를테면 콘텐츠입니다. 물론 친족이란 말이 좀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마치 친족처럼"으로 읽으면 금방 괜찮아 집니다. 마치 친족처럼 사람과 사람 관계가 연속성, 일치성 속에 있는 것이 바로 어짐(仁)이라는 뜻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어짐(仁)이란 생명의 연대성입니다.  

 

 仁者人也  親親爲大 뒤에 의(義)란 의(宜)이니 현명한 사람을 높이는 것이 으뜸이다(義者宜也 尊賢爲大) 라는 말이 따라 나옵니다. 대구(對句)임에 틀림없지만 그 위상이 문제입니다. 義를 仁과 대등한 범주 놓으면  仁이란 가치로 훌륭한 정치가를 판단한다는 전체 논지가 어그러집니다. 그러므로 형식적 대구를 전체 뜻에 종속시켜 義를 좁은 의미의 仁의 대칭적 표현으로 이해하는 게 좋을 것입니다.  

 

현명한 사람을 높이는 인간관계는 親親의 연속성과는 달리 불연속성을 전제해야 합니다. 현명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불일치를 인정해야 합니다. 이런 차이점을 설명하는 말이 바로 親親之殺 尊賢之等 입니다. 쇄(殺)는 차이가 없다는 뜻이고 등(等)은 차이가 있다는 뜻이니 확연히 구분됩니다.  

 

결국 어짐(仁)은 생명의 수평적 연속성을, 옳음(義)은 수직적 불연속성을 담당합니다. 이 구별된 가치의 통합에서 예가 생깁니다(禮所生也). 그러면 禮가 仁의 상위개념일까요? 아닙니다. 禮는 仁을 성찰적으로 살핀 仁의 다른 이름입니다. 미분화적 仁은 그저 親親之殺지만 분화적 성찰 이후 仁은  尊賢之等이라는 義의 관점을 포괄하는데 바로 그것을 禮라 이름 한다는 것입니다.    

 

사물의 이치로 보면 仁이 禮의 근원입니다. 親을 거치지 않은 賢이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연속성을 전제하지 않은 차등은 그 자체로 폭력이기 때문입니다. 허나 역사적 사실로 보면 仁은 이상태(理想態)이고 禮는 현실태(現實態)일 것입니다. 불연속적 계층구조가 정치의 질서를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불가피하기 때문입니다. 절대 평등의 이상은 현실 정치의 폭압과 착취를 막기 위한 가치적 영원회귀로서 작동하는 개념입니다. 그러므로 禮에 발을 디디고 仁을 추구하는 실천 과정이 바로 바른 정치인 것입니다. 문득 20세기의 전설 체 게바라의 말이 떠오릅니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항상 불가능한 꿈을 꾸자!"  

 

 4. 바른 정치의 목표이자 기준인 어짐(仁)이 모든 인간이 "마치 친족처럼" "하나 되는" 생명의 연대성을 뜻한다면 그 구체적 방법은 무엇일까요? 개인적으로 파자(破字)해서 글자 뜻 새기는 일을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이 경우는 어쩐지 꼭 그래야 할 것만 같아 그리 해 보지요. 간결합니다. 仁은 두(二) 사람(人)입니다. 둘이 모여 이루는 그 관계가 사람됨의 본령이라면 바로 그게 소통, 즉 관통과 흡수 아니겠습니까? 단도직입으로 말하자면 어짐(仁)이 곧 중용입니다! 서로 소통함으로써 평범함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 어짐(仁)이라는 말입니다.  

 

5. 그런데 본디 人은 보편적인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동이(東夷)족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였다는 것이지요. 이런 맥락에서 다시 보면 仁者人也라는 말은 어짐이란 동이족의 가치 내지 품성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공자 사상의 핵심인 仁, 즉 中庸이 동이족의 사회정치적 실천이자 이념이라는 말입니다.   

 

이리 말하면 대뜸 우파 민족주의를 떠올리시며 실소를 머금으실 분이 계시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습니다. 저 또한 막무가내 민족을 주려 끼고 열 올리며 현실 부조리를 외면하는 우파 민족주의 할 생각 조금도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저는 仁, 즉 中庸이 오늘 이 땅에서 사회정치적 실천이자 이념이 되지 못한다면 우리가 동이족임을 자랑하는 일이 얼마나 가소롭고 기막힌 자기기만인가를 말씀드리자 합니다. 

 

입만 열면 공맹을 말하고 도리를 논하는 이 땅의 이른바 주류-보수는, 지금,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매판적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민족, 국격 운운 뒤에 숨어 사적 이익을 추구하느라 끊임없이 거짓말을 재생산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어찌 공맹을 안다고 할 것입니까? 이들이 어찌 仁을 안다고 할 것입니까? 이들이 어찌 중용을 실천한다고 할 것입니까? 이들이 어찌 동이족임을 자랑할 자격이 있다고 할 것입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 제16장 본문입니다. 

 

子曰 鬼神之爲德 其盛矣乎. 視之而弗見 聽之而弗聞 體物而不可遺. 使天下之人齊明盛服 以承祭祀 洋洋乎如在其上 如在其左右. 詩曰 神之格思 不可度思 矧可射思. 夫微之顯 誠之不可揜 如此夫.    

 

공자는 말씀하셨다. "귀신의 덕 됨이 성하도다. 보아도 보이지 않으며 들어도 들리지 않지만 만물의 주체가 되어 하나도 빠뜨리지 않는다. 천하의 사람들로 하여금 재계하고 깨끗이 하여 옷을 잘 차려입고서 제사를 받들도록 하고, 양양하게 그 위에 있는 것 같고 그 좌우에 있는 것 같다." <시경>에 이르기를 "신의 이름을 헤아릴 수 없거늘 하물며 싫어할 수 있겠는가!" 하였다. 대저 미미한 것의 나타남과 정성스러움을 가릴 수 없는 것이 이와  같도다.  

 

2. 느닷없이 귀신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 귀신은 특별한 의미가 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냥 이해하는 그 귀신 이미지를 애써 벗겨낼 일 없다고 생각합니다. 움츠러들고 펼쳐지는 세계 운동으로 합리화하여 설명하는 주자식 해석이 오히려 별나 보입니다. 그런  의미의 귀신이라면 거기에 무슨 덕이 있을 것이며, 거기다 대고 제사는 또 뭣 하러 지내는 것일까요?  

 

오감에 잡히지는 않으면서 분명하고 적확하게 일어나는 사물의  운행을 인지할 때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경외감을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인격적 이미지로 떠올리면 바로 그게 귀신이 됩니다. 인간 지식과 지혜로 감당 안 되는  우주의 이치가 신비 영역으로 '모셔지는' 것은 공자 시절이나 지금이나 근본적으로 동일합니다. 거기에 경건함을 부여한다고 대뜸 미신 운운하는 짓이야말로 방자한 행태입니다. 물론 이는 뭐든지 귀신 역사라고 보는 신비주의 종교나 퇴마 신앙과는 다릅니다.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겸허함이 인간동형론적으로 표현된 문화현상 수준에서 적절하게 머무르는 게 옳겠지요.    

 

3. 그러면 중용을 논하는 자리에서 귀신 이야기는 왜 나온 것일까요? 아마도 핵심은 맨 마지막 문장일 것입니다. 미미한 것의 나타남과 정성스러움을 가릴 수 없는 것이 중용의 요체인데 그런 이치를 가장 극적으로 드러내주는 현상이 바로 귀신이다, 이런 맥락입니다.  그것을 귀신 현상으로 묘사한 말이 "보아도 보이지 않으며 들어도 들리지 않지만 만물의 주체가 되어 하나도 빠뜨리지 않는다( 視之而弗見 聽之而弗聞 體物而不可遺)."입니다.  

 

그러므로 "미미한 것의 나타남과 정성스러움을 가릴 수 없는 것"이라는 말의 뜻은  "보아도 보이지 않으며 들어도 들리지 않지만 만물의 주체가 되어 하나도 빠뜨리지 않는다."는 말의 뜻과 함께 이해되어야 합니다. 미미한 것의 나타남(微之顯)과 정성스러움을 가릴 수 없는 것( 誠之不可揜)이 대구(對句)라는 사실은 누가 봐도 자연스럽습니다. 微: 誠, 顯: 不可揜, 이렇게 되는 것이지요. 드러나고 가릴/덮을 수 없는 것의 짝은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미미함과 정성스러움의 짝입니다. 그 둘은 어떤 의미에서 짝일까요?   

 

우리는 이 대구가 "보아도 보이지 않으며 들어도 들리지 않지만 만물의 주체가 되어 하나도 빠뜨리지 않는다( 視之而弗見 聽之而弗聞 體物而不可遺)."는 문장의 역접 상태를 그대로 반영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보아도 보이지 않아 미미하지만 만물의 주체가 되어 하나도 빠뜨리지 않아 벗어남/어긋남이 없으니 내세우지 않아도 자연스레 나타나고 가려지지도 않는다는 뜻입니다.  

 

요컨대 여기 誠은 성실함, 정성스러움이라는 덕성이라기보다 벗어나지/어긋나지 않는다는 역동적, 실천적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微는 庸이 되고 誠은 中이 됩니다. 中庸의 다른 묘사가 바로 誠微입니다!  

 

드러내지 않고, 자랑하지 않고, 권력화하지 않고, 이득을 챙기지 않고 겸손히 "평범한" 소통을 이루는 일에서 늘 벗어나지 않음이 중용이고 성미입니다. 그 성미의 덕이 성(盛)하여 만인이 재계하고 깨끗이 하여 옷을 잘 차려입고서 제사로 받드니 도처에 그 대동의 기운이 깃드는(洋洋乎如在其上 如在其左右) 것입니다.  

 

4. 그렇습니다. 핵심은 귀신이 아닙니다. 드러나지 않는 올곧은 소통의 실천으로 대동세상이 드러나게 하는 것이 바로 중용이다, 이게 핵심입니다. 그게 바로 민주주의입니다. 그 안목으로 보면  오늘 이 땅에 준동하는 "특별한" 정치깡패들의 작태란  참으로 가소로운 허깨비 놀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 제15장 본문입니다.  

 

君子之道 辟如行遠必自邇 辟如登高必自卑. 詩曰 妻子好合 如鼓瑟琴 兄弟旣翕 和樂且耽 宜爾室家 樂爾妻帑. 子曰 父母其順矣乎.   

 

군자의 도는 비유컨대 먼 길 가는 일도 가까운 데서 시작하고 높은 곳 오르는 일도 낮은 데서 시작하는 것과 같다. <시경>에 이르기를 "처자가 화합하니 거문고 타는 듯하네. 형제가 어울리니 익히 즐겁구나. 온 가정이 기쁘고 온 가족이 즐겁도다." 하였다. 공자는 말씀하셨다. "부모가 아마 (중용의 이치를) 따랐을 게다."  

 

2. 군자의 도, 즉 중용은 마법도 신비도 아닙니다. 마치 지금 여기서 내디디는 첫 발자국에서 시작하여 꾸준히 가다 보면 어느덧 천리 밖에 당도하듯, 낮은 자락에서 출발하여 땀 흘리며 오르다 보면 아득한 산꼭대기에 다다르듯, 그렇게 중용은 실천되는 것입니다.  

 

중용은 과정입니다. 중용은 굽이굽이 흐르는 강입니다. 너절해 보이는 일상사 갈래 갈래마다 스며드는 빛줄기입니다. 문득 깨닫는 인식론적 격절 경험으로는 중용을 말할 자격을 얻을 수 없습니다. 저자를 떠난 면벽 용맹정진으로는 어림없는 게 중용 실천입니다.  

 

평범한 가정의 처자, 형제가 이루는 소통에서 하루하루 중용을 찾을 수 없다면 아무리 고귀한 가치인들 무슨 의미가 있을 것입니까?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 일구어내는 사소한 행복의 고갱이 속에 중용이 없다면 그것은 이미 중용이 아닙니다.  

 

3. 공자께서 또 한 번 정곡을 찌르십니다. "가정이 평화로운 것을 보니 아마도 그 부모가 중용의 이치를 따른 모양이로구나!" 부모의 일상적 실천이 길이 되고 강이 되어 가정과 사회, 그리고 국가 전체의 평화가 이룩되는 도리를 천명한 만고의 명언입니다.   

 

허다한 고수들이 순(順)을 안락함, 순조로움 등으로 이해했지만 우리는 그 견해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리 읽으면 부모의 안락함과 순조로움이 결과적 상태가 됩니다. 그것은 이 장 전체 문맥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앞 장과 비교해도 자연스러운 흐름이 형성되지 않습니다.  

 

여기 부모는 제14장 부부와 본질적으로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중용 실천의 발원지이자 모든 사회, 국가, 나아가 전 인류의 요람입니다. 그러므로 여기 부모의 순(順)은 동사입니다. 중용의 도리를 "따른" 원인적 실천입니다. 이렇게 읽어야 본 장의 앞부분 비유 문장과 뒷부분 인용 문장이 유기적으로 연결됩니다.  

 

4. 중용 실천의 발원지가 부부/부모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음미하겠습니다. 한 개인이 아닌 두 사람, 그것도 평등한 여성과 남성, 더군다나 부부/부모가 빚어내는 "관통과 흡수"가 중용의 요체라는 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귀중한 통찰은 바로 중용 자체가 사회적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중용은 그러므로 개인적 덕목이라는 굴레를 벗어야 합니다. 개별적 명상과 웰 빙의 감옥에서 놓여나야 합니다. 공동체적 실천 개념으로 제자리를 찾아야 21세기 인류 문명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 앞에 있는 <중용>은 래디컬(radical)한  <중용>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 제14장 본문입니다.  

 

君子素其位而行 不願乎其外. 素富貴行乎富貴 素貧賤行乎貧賤 素夷狄行乎夷狄 素患難行乎患難 君子無入而 不自得焉. 在上位不陵下 在下位不援上 正己而不求於人則無怨. 上不怨天 下不尤人. 故君子居易以俟命 小人行險以僥幸. 子曰 射有似乎君子 失諸正鵠 反求諸其身.  

 

군자는 그 자리를 바탕으로 하여 행하고 그 밖의 것은 원하지 않는다. 부귀에 처하여서는 부귀한 처지에서 행하며 빈천에 처하여서는 빈천한 처지에서 행하며 이적에 처하여서는 이적의 처지에서 행하며  환란에 처하여서는 환란을 당한 처지에서 행하니 군자는 어디를 들어가더라도 자득하지 아니함이 없다. 윗자리에 있어서는 아랫사람을 업신여기지 아니하고 아랫자리에 있어서는 윗사람에게 매달리지 아니하며 자기를 바르게 하고 남에게서 구하지 아니하면 원망할 것이 없다. 위로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아래로는 남을 탓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군자는 쉬운 데 처하여 명을 기다리고 소인은 위험한 것을 행하여 요행을 바란다. 공자는 "활쏘기는 군자와 비슷함이 있으니 정곡을 맞추지 못하면 돌이켜 자기의 몸에서 (원인을) 찾는다."고 하셨다.  

 

2. 앞 장에서 중용 도량이 사람이고, 그 사람은 평범한 상대방이고, 그런 상대방의 처지에 서서 자신을 성찰하는 자가 군자임을 말했다면 본 장은 자신의 처지가 어떻게 바뀌더라도 자득하는 자가 군자이고 , 그러려면 쉬운 데 처하여 명을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끝맺음은 동일하게 스스로를 살피는 것(反求諸其身)으로 기본 평행 구조를 살렸습니다.  

 

사람과 삶의 양대 화두 가운데 하나가 "자기 단일성" 문제입니다. 독립된 존재로 어떻게 자율성을 확보하며 살아가느냐 하는 문제이지요. 이 문제 또한 대칭적 가치가 마주하는 장을 형성합니다. 불연속적 자율이라는 한 가치와 연속적 의존이라는 가치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두 가치는 어느 하나를 버리는 선택을 할 수 없는 게 사실입니다. 그리 하면 병이 되지요. 연속적 의존을 버리면 분열증이 되고 불연속적 자율을 버리면 우울증이 됩니다. 분열증은 남과 더불어 살 수밖에 없는 측면을 포기한 것이고 우울증은 그럼에도 인간은 홀로 가는 생명일 수밖에 없는 측면을 놓친 것입니다.  

 

제13장은 분열증으로 가는 길을 경계했습니다. 남 없이 어찌 살 수 있느냐, 그러니 남 처지에 서 보라, 그리 말하고 있습니다. 제14장은 우울증으로 가는 길을 경계합니다. 남 탓, 환경 탓이 다 무엇이란 말인가, 자득(自得)함 없이는 참 사람이 아니다, 그리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나지만 남이 있어 내가 되는 것입니다. 한 편, 남 없이 살 수는 없지만 남은 끝내 내가 아닙니다. 이 불가항력적 모순을 어찌하면 내 인격 속에, 내 삶 한가운데 통합할 것인가, 하는 고뇌가 다름 아닌 중용입니다. 이 중용은 물론 보편 가치입니다. 그러나 고뇌하는 주체가 처한 삶의 맥락과 지평에 따라 구체적으로 다른 역동성을 지닙니다.  

 

공자는 제후적 가치와 맞서고 있는 사대부입니다. 신라 식으로 말하면 성골, 진골 아닌 육두품인 셈이지요. 제후적 가치는 분열적입니다. 거기에 맞서지만 현실 벽에 자꾸 가로막히다 보니 공자는 부지불식간에 의존성이란 절망감에 휩싸이는 자신을 목도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 자신을 단호히 세우기 위해 자득(自得)의 비수를 꺼내 든 것이지요. 과연 고수의 심리학입니다! 
 

3. 그러면 그 자득(自得)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바로  居易以俟命,  쉬운 데 처하여 명을 기다리는 자세에서 옵니다. 적어도 공자의 대답은 그렇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제시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개량주의처럼 보이니까요. 아무튼 공자는 극단적 모험주의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아니면 말고" 식으로 무리하게 일을 도모하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혁명은 불가하다는 의중을 드러낸 셈입니다.  

 

아마도 공자는 진정한 혁명, 즉 정곡(正鵠)을 맞추는 일은 反求諸其身, 돌이켜 자신의 몸에서 찾아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길고 묘한 여운을 남기는 말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네 마음속에 있다."는 예수의 말과 흡사한 울림을 줍니다.  

 

보는 이의 처지에 따라 불멸의 이상을 천명한 것으로도, 사회동원력을 지니지 못한 데서 오는 한계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역사상 완벽한 대동 세상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유한하고도 부분적인 성취는 어찌하든 매한가지인 셈입니다. 방법론적 선택에서 우열과 정오를 가릴 수는 없습니다. 그 때 그 때 각기 흐름을 타는 것이지요. 설혹 이 居易以俟命만이 옳다 하더라도 무엇이 거이(居易)이고 무엇이 행험(行險)인지는 자신과 그 공동체가 처한 상황에 따라 결정해야 하는 구체적 문제입니다.  

 

4. 허나 궁극적으로는 중용의 도가 부단한 성찰을 거쳐 나오는 내면의 힘 아니면 안 되는 실천임에 틀림없습니다. 변혁 또한 다르지 않겠지요. 사회적 성공과 인격적 성숙이 균형을 이루어야 진정한 성취라 할 수 있으니까요.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래서 이런 논의는 항상 뒷문을 열어놓는 것입니다. 결코 끝나지 않는 이슈이므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인도철학
R.뿔리간들라 지음, 이지수 옮김 / 민족사 / 1992년 12월
평점 :
품절


 

1. 저는 개인적으로  전혀 불교와 상관 없이 대칭성의 사유 양식을 탐색하고 연마하는 과정에서 원효에 도달한 특이한 경험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과정의 절정 어름에 초기불교를 만났습니다. 원효로서는 빠알리어 경전을 전혀 대할 수 없었겠지만 초기불교 사상이 원효의 품을 벗어난 것을 담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지금까진.  하지만 좀 더 면밀하게 초기불교 쟁점을 살피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비록 제가 불교적 접근으로 원효를 만나 게 아니지만, 하여 그것을 불교사상이라 이름하지 않지만, 원효가 스스로 젖줄을 댄 샘이 붓다가 맞다면 , 붓다의 가르침을 관통하고 흡수하는 일은 더없이 유익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름대로 reference의 결을 좇으며 초기불교의 속살로 다가가고 있는데 그 와중에 접했던 여러 가지 담론들이 어떤 공통된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초기불교 담론을 생산하는 주체들이 불교라는 정체성 안에서만, 특히 초기불교 가르침 안에서만  세상을 바라보려 한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게 붓다의 본디 가르침 맞아?, 그러면 그것으로 끝!, 이런 식이라는 느낌입니다. 非佛說이면 불교와는 상관 없다, 이런 것이지요. 더군다나 그 기준이 매우 逐字的입니다. 같은 뜻이라도 다른 용어를 쓰면 물리칩니다. 객관적으로 볼 때 매우 초보적인 수준이지요. 행간을 보지 못하는....... 

 

하여 저는 붓다를 불교 경전과 그 주석서를 통해 이해하는 한편 붓다를 둘러싼 조건,  synchronic한 지평과 diachronic한 맥락을 살피기로 했습니다. 인류가 낳은 최고 지혜가 맞지만 붓다 또한 한 인간입니다. 그에겐 그의 삶의 정황이 있습니다. 문화가 있습니다. 언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매우 구체적이고 상대적입니다. 그리고 한계 또한 분명히 있습니다. 아무리 붓다라고 해도 그의 가르침은 백과사전도 아니고 완벽한 논리에 터 잡은 철학 교과서도 아닙니다. 이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印度的 사유라는 커다란 조건을 탐색해 볼 필요를 느낀 것입니다. 그 가운데 R. 뿔리간들라의 <인도철학>을 손에 들었습니다.  

 

이 책은 오해 받고 폄훼되는 인도철학의 정수를 compact하게 석명한다는 취지를 담은 듯합니다. 베다에 대한 자세를 중심으로 인도사상 전체를 정통파와 비정통파로 나눕니다. 비정통파를 앞에 배치하고 정통파를 뒤에 배치하여 서술합니다. 그런데 비정통파에서는 불교를, 정통파에서는 베단따를 중심축으로 세웁니다. 두 부분에 대한 내용만으로 책 전체의 절반을 채웁니다. 그리고 뒤에 인도의 시간관과 역사관이란 장을 마련하여 불교사상과 베단따의 일치를 말합니다. 저자의 생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알게 하는 구성이며 내용입니다. 물론 저는 이런 큰 흐름에 주의하려고 이 책을 읽은 것은 아닙니다. 인도적 사유의 전체적 지평과 맥락에서 붓다는 무엇인가? 이걸 물으려고 읽은 것입니다. 읽은 뒤 제 생각은 대체로 이렇습니다. 

 

2. 거칠게 말하면....... 모헨조다로 문명의 주체를 정복하고 외부에서 들어온 아리안의 사유 체계인 베다. 그 베다적 사유의 有的 기조. 즉 불멸의 궁극적 실재가 있다는 생각. 그것은 실제로 인도 사회의 영적 지휘집단인 브라만의 상징이며 그 체제를 인정하는 것이 정통입니다. 붓다는 이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붓다는 無的 기조를 유지합니다. 無常, 그리고 無我, 그 결절점에 苦. 이 세 가지가 붓다의 진실입니다. 無常도 無我도 브라만의 진실은 아닙니다, 苦는 더더욱 아닙니다. 붓다의 이 가르침은 그러므로 매우 사회정치적입니다. 매우 실천적입니다. 브라만의 카스트를 거부합니다. 평등 공동체를 만듭니다. 그는 고대 공화주의의 패러곤입니다! 수드라와 언터처블의 고통을 현안문제로 받아들입니다. 그들의 無常은  현실 삶의 불안입니다. 그들의 無我는 현실 생명의 위태함입니다. 살아 꿈틀거리는 고통을 외면한 그 어떤 교설도 邪道이며, 그 어떤 질문도 無記의 대상일 뿐입니다.  

 

붓다는 스승이지 학자가 아닙니다. 붓다는 땅에서의 삶을 말하지 구름 위의 꿈을 말하지 않습니다. 붓다는 실천을 말하지 이론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 제자들은 스승의 살아 있는 말을 서둘러 죽은 언어로 봉인하여 경전을 만듭니다. 경전은 소수 엘리트, 특히 크샤트리아의 독점 재산이 됩니다.  아뿔싸, 어느덧 불경이 베다가 되고 크샤트리아가 브라만이 됩니다! 하여 경전은 구름위로 올라갑니다. 수드라, 언터처블은 속수무책입니다. 이 흐름이 노골화하는 상황에서 상좌부와 대중부가 갈리고, 소승과 대승이 갈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초기불교가 붓다의 원음을 보존하고 있다는 말은 매우 신중하게 의미부여를 해야 합니다. 붓다의 고구정녕한 가르침을 지켰는지 여부는 초기불교 정체성의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초기불교 운동을 수행할 때, 그러므로, 그 무엇보다도  붓다의 가르침과 그 실천 구조가 이 땅의 백성들에게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이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불자로서 어찌 하면 바르게 붓다의 가르침을 따를 것인가 하는 내적 질문에 함몰되면 사회동원력을 얻기 어렵습니다. 사회동원력 문제는 이미 불교가  대승, 소승으로 갈릴 때 물은 바 있는  뼈아픈 질문입니다. 대승이 자신을 그리 부르고 상대방을 소승이라 한 게 100% 악의가 아닌 한, 소승으로 지목된 집단은 역사적으로든, 현안 의식으로든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붓다의 가르침이 사회동원력을 지니는 철학적 내용과 종교적 실천을 담보하고 있느냐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아야 합니다. 대승이라 떠들던 너희가 불교를 이렇게 만들지 않았느냐는 식의 책임론은 답이 아닙니다.

 

만일 그 문제에 답변을 내놓을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면 그대로 소승이 맞습니다. 소승이 맞다면 초기불교는 애당초 붓다의 가르침을 구어 전승에서 시작하여 빠알리어 문자로 독점한 크샤트리아 중심의 장로(테라) 집단의 독선적 종교가 맞습니다. 어떤 이들은 초기불교를 테라와다 불교라 하면서 무척 자랑스러워하는 모양이지만 테라와다 불교는 그대로 소승불교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테라와다 불교는 재가불자의 깨달음을 인정하지 않는 것에서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붓다의 측근에서 가르침을 간수하고 전승시킨 기득권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집단적 정체성에서 비롯한 것이 분명한 이상 빠알리어 경전을 강조하면 할수록, 아비담마를 중시하면 할수록 초기불교는 엘리트 불교, 주지주의적 이성 불교, 유명론적 개별자 불교로 남을 가능성은 짙어질 것입니다.  이 위험성은 명백하게 붓다와 반대 방향을 지시합니다. 그러므로, 엄중한 베다 정통성을 거부하고 평등한 생명의 닙바나 공동체를 지향한 것이 붓다의 길이거늘 오늘의 그 제자들은 서로 자신이 붓다의 진정한 계승자라 하면서 스승의 길을 거스르고 있지 않은가, 준렬하게 물어야만 합니다.  

 

대승불교는 적어도 나가르주나 이후 천년 이상 베다적 가치에 맞서 치열하게 싸우다 12세기 이후 이슬람 침공과 맞물리면서  안타깝게도 인도 역사에서 사라졌습니다. 이를 단순화하여 힌두교에 흡수 당해 사라졌다는 식으로 몰아버리면 안 됩니다. 그 과정에서 대승불교는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왔고 그 연장선에 우리가 서 있다는 사실을 잊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 기나긴 역사의 흐름을 타고 우리에게 다가온 대승불교를 두고 나가르주나는 허무주의다, 대승불교는 힌두교와 습합되었다, 심지어 대승경전은 非佛說이다.......이리 말하는 것은 너무 경솔한 인식입니다. 나가르주나가 붓다의 원음과 다른 용어, 생각을 구사했다 하더라도 이는 논의의 진행과 사유의 심화 과정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의 사유가 전개된 논쟁적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  드러난 텍스트만 보고 쉽게 말하는 것은 피상적인 태도입니다. 옳든 그르든 힌두교는 인도의 무의식입니다. 인도 땅 한복판에서 힌두 무의식을 100% 떨어내고 살아갈 수 없는 현실이 불교에 적용되었다고 해서, 가령 너희가 알고 있는 관음보살은 사실상 힌두신이라고 비아냥거리는 것은 성숙한 태도가 아닙니다. 만일 초기불교가 정말 100% 순수 불교라면 그 환경이 대승불교처럼 정통파 사상체계와 항시 맞대고 싸워야 하는 절박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문제는 뭐가 순수불교냐 이런 게 아닙니다. 순수불교라면 뭘 해야 하느냐 이런 겁니다.  붓다의 본디 가르침을 알면 그걸 알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태도입니다. 정녕 초기불교가 붓다의 본디 가르침이 맞다면 그 가르침대로 사는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은 나라들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함께 말해야만 합니다. 스리랑카, 타이, 미얀마....... 거기서 불교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나라들처럼 우리나라에도 초기불교가 왕성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런 생각을 대강 정리하면서 다시 한 번 책을 살펴보니 불교철학을 매우 중요하게 다루고 있음에도 저자 자신이 빠알리어 경전을 모르기 때문에 생긴 공백이나 불균형이 있을 수 있겠다, 싶더군요.  하지만 어쨌거나 이 정도만으로도 필요한 통찰을 주기엔 넉넉하다고 봅니다.

  

3. P. 리꾀르는 사유 진화의 단계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제1차 소박성(la 1ère naïveté)->비판(la critique)->제2차 소박성(la 2nde naïveté). 저는 이것을 그대로 제1차 초기불교->대승불교->제2차 초기불교로 대치해 보았습니다. 제1차 초기불교는 물론 역사적 초기불교입니다. 말 그대로 소박 불교입니다. 원형 복원, 불가능이고, 그럴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대승불교라는 비판의 단계, 즉 부정의 단계를 거쳤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불교는 스리랑카 불교일 수 없습니다. 스리랑카 불교에는 원효가 없습니다. 제2차 초기불교는 비판, 즉 대승불교를 안고 가야 합니다. 그게 역사입니다. 그게 도저한 현실입니다. 무엇을 비판했는지 다시 직면하면서 통과해야 합니다.  

 

겉 모습이 같다고 해서 제1차 소박성과 제2차 소박성이 같은 것은 아닙니다. 제2차 소박성은 부정의 부정입니다. 부정의 부정은 한 차원  높아진 긍정, 즉  無碍自在한 선택과 양립의 비결정성, 고졸한 기품입니다. 동그라미 한 개와 선 몇 개로 사람을 그리는 네 살 짜리 꼬마와 장욱진이 다르듯. 그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불교 지성과 대중의 진지한 성찰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청됩니다. 저는 두 가지 정도를 우선 먼저 간절하게 기대해 봅니다.   

 

 (1) 문헌비평 - 불경도 문헌입니다. 시대 상황과 사람의 의도에 따른 수정, 가필, 오류의 가능성은 어디에든 있습니다. 따라서 문헌 비평은 필수입니다. 

 

 (2) 인문사회학적  토대 - 불경만 알겠다고 하는 사람은 불경도 모릅니다. 인간과 사회의 구체적 정황(context)을  읽는 안목을 갖추어야 합니다.  

 

빠알리 경전이든 산스끄리트 경전이든 붓다의 가르침이 맞는지, 그렇다면 그게 어떤 구체적 정황에서 나왔는지, 그렇게 나온 가르침이 사물의 보편적 이치에 맞는지, 결국 오늘 여기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이것들을 묻지 않는 상태의 모든 신뢰와 주장은 '네 살 짜리 꼬마의 그림'이지 '장욱진의 그림'이 아닙니다. 진실을 현실의 발걸음으로 좇아가려는 사람은 늘 이렇게 물어야만 합니다.  

 

"그런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