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두구의 저주 - 지구 위기와 서구 제국주의
아미타브 고시 지음,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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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주의 역사적 모델이 정착형 식민주의 모델과 매우 달랐던 인디아는 오늘날 자국을 정착형 식민주의 이미지로 재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322~323)

 

마지막 총탄 한 발이 남았을 때, 왜놈과 부역자 조선 놈 중 누구를 쏘겠느냐 물으니 백범 김구는 당연히 부역자 조선 놈을 쏜다고 했다. 이민족이야 이민족이니까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제 민족을 수탈하고 살해하는 일에 잔악한 앞잡이 노릇을 하는 일은 그 자체 패륜성이 엄중할 뿐만 아니라 당하는 이가 겪는 심적 황폐화를 극대화한다는 점에 유념한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일제가 항복하고 나서 그 식민지인 조선에 진주한 점령군이 실시한 군정은 일제 조선총독부 체제를 유지·온존하고, 그 위에 제국 본진 USA 체제를 얹었다. 체제는 거대한 시스템만을 말하지 않는다. 사적 통로로도 깨알같이 조선 전통을 잠식해 들어가 속속들이 붕괴시켰다. 예컨대 콜로라도 출신 공군 대위가 음악교육 기초를 놓은 결과 USA 자국민도 잘 모르는 포스터가 조선 아이들에게 명망가가 되고 <콜로라도강의 달밤>은 명곡이 되었다. 나 또한 어린 시절 포스터 노래를 참 많이도 불렀다. 이런 기조는 지금까지 불변이다. 아니. 갈수록 강경이다.

 

일제 식민지 시대 특권층 부역 집단이 그대로 군정을 거쳐 이승만 정권을 장악하면서 다시 그대로 USA 식민지 체제에 부역했고, 박정희 쿠데타 이후에는 조국 근대화로 위장한 식민지 심화 작업에 팔 걷어붙이고 나섰으니 당연한 일이다. 이 나라 부동산 투기 원조는 정치자금 마련하려고 강남을 아파트로 테라포밍한 박정희다. 거기서 시작된 각종 토건은 오늘까지도 자국 식민주의 선봉이다. 고층 빌딩, 아파트, 고급 빌라, 별장, 전원주택들이 토착민을 내쫓고 부역자 떨거지를 정착시킨다. 이쯤 되면 대한민국 특권층 부역자가 스스로 부여한 항구적 임무가 자국을 정착형 식민지 이미지로 재건하는 일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우리는 백범이 한 말을 다시 떠올린다. 그가 도리어 이승만 마름이 쏜 총탄에 스러졌다는 사실도 떠올린다.

 

정착형 식민주의라는 말은 분명 낯설다. 하루하루 살기 바쁜 소시민에게 살갑게 다가들지 못한다. 일상에서 이 말 실재를 감지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언어가 지니는 함의를 추적하기보다 상징이나 은유로써 직관적 이미지를 구축하는 편이 쉽다. 가령 대통령 취임식에 박근혜가 입고 나왔던 카키색 황군 정장 이미지는 지지자에게 아무런 언어적 설명 없이도 대뜸 존숭 감정을 일으킨다. 그 존숭 감정은 당연히 일제에 대한 충성심이 독립된 대한민국에 대한 토착 충성심을 내쫓고 정착하게 만든다. 정착은 사람이 실제로 땅에 뿌리 내리는 일에 국한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정착 가운데 이미지로서 사투리가 있다. 이 나라 특권층 부역 집단이 토착 표준 한국어를 내쫓고 정착시킨 사투리가 셋이다: 미국식 영어, 일어, 신라어. 미국식 영어는 USA 사투리고, 일어는 일제 사투리고, 신라어는 영남, 특히 TK 사투리다. 그중 신라어는 요즘 심지어 뉴스, 예능, 드라마, 영화에서 끈질기게 야금야금 정착하고 있다. 귀 밝은 자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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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브 고시 지음,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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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적과학이 군국주의와 식민주의를 강화해온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세계 지배적 국가와 지배적 계급에 유리한 결과를 생산하는 쪽으로 편향돼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이 유산이 남긴 흔적은 심지어 오늘날에도 진즉부터 일부 엘리트 과학·기술 기관이 공공연히 드러내 온 지구공학에 대한 집착에서 찾아볼 수 있다.(318)

 


1992년 미국 국립과학아카데미는 지구공학을 대기 화학적 변화의 영향과 싸우거나 대항하기 위한 우리 환경에 대해 실시되는 대규모 공학적 조치(large-scale engineering)”라고 정의하였다. 2009년에 나온 영국 왕립학회의 보고서는 지구 온난화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기후시스템에 대한 정교한 대규모 개입(intervention)”으로 정의하며, “기본적으로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 이산화탄소 제거 기술, 태양의 빛과 열의 일부를 우주로 반사하는 태양 복사 관리로 구분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ETC Group도 유사하게 기후와 관련된 사항을 포함하여, 지구 시스템에 대한 의도적인 대규모 기술적 조작으로 정의했다.(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자료실-번역 일부를 수정해 인용함)

 

지구공학은 지구에서 일어나는 어떤 문제도 과학·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 또는 낙관론에 젖은 기획자 눈으로 보면, 장밋빛 청사진이다. 인위적 개입 자체를 비판적으로 보면, 지배적과학이 부추기고 제국 엘리트 과학·기술 기관이 공공연히 일으키려는 토건 정치 일면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설혹 전자가 맞다 치더라도 실험·시행 과정에서 정의롭지 않은 결과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왜냐하면 역사가 증명하듯 그 과학·기술은 언제나 세계 지배적 국가와 지배적 계급에 유리한 결과를 생산하는 쪽으로 편향돼 있기 때문이다. 이 편향은 제국주의 본성이지만 판돈이 줄줄이 걸린 토건 지구공학에서 극대화될 가능성이 크다.

 

ETC Group지구 해적질(Geopiracy: 2010)에서 지구공학을 반대하는 이유를 아래와 같이 적시했다.

 

실험될 수 없다. 지구공학을 실험해보는 일은 불가능하다. 기후에 관해 확인할 수 있는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 지구공학은 대규모 차원에서 실행되어야만 한다. “실험혹은 야외 시험은 실제 세계에서 지구공학을 적용하는 일과 사실상 같다. 왜냐하면 작은 규모의 시험은 기후 영향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중들과 생물다양성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날 테고, 즉각 비가역적 상황을 몰고 올 가능성이 크다.

 

불공평하다. OECD 정부와 막강한 기업들(이들은 지난 세기 동안에 기후 변화와 그로 인한 생물다양성에 미친 영향을 부정하거나 무시했으나, 온실가스 배출에 거의 모든 역사적 책임이 있다)가이아를 판돈 삼는 이 도박을 실행하기 위한 예산과 기술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진정으로 좀 더 취약한 국가와 대중의 이익을 대변하리라고 믿을 어떤 근거도 없다.

 

일방적이다. 모든 지구공학 제안은 수백억 달러의 재정 규모 안에서 실행될 수 있으므로, 부유한 국가와 백만장자에게 지구공학은 실행하기에 상대적으로 값싸고 간단하다. 몇 년 안에 실행 능력은 그 기술을 가진 소수(개인, 기업, 국가) 손에 집중된다. 지구 생태계를 조작하려는 일방적인 시도를 금지하기 위한 다자적 수단을 갖추는 일이 시급하다.

 

위험하며 예측하기 어렵다. 지구공학적 개입 부작용은 미지수다. 지구공학은 여러 가지 요인으로 말미암아 쉽사리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있다: 기계 실수, 인간 실수, 생태계와 생물다양성, 지구 기후에 대한 부정확한 이해, 알려진 바 없는 자연 현상···

 

조약을 침해한다. 많은 지구공학 기술은 잠재적으로 군사적 목적을 지니는데, 실행에 옮겨지면 유엔 환경적 조작 조약(UN Environmental Modification Treaty: ENMOD)을 침해한다. 이 조약은 적대적 목적으로 환경을 조작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구차한 변명에 불과하다. 지구공학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생명 다양성을 보호하기보다는 다른 선택을 하도록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 지구공학 연구는 종종 시간을 구매하는 일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정부에게 기후 변화로 야기된 피해 보상을 지연하고,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행동을 회피하기 위한 명분만 준다.

 

우리의 기후를 상품화하고 기후 폭리(Climate Profiteering) 우려를 낳는다. 기후 위기를 위한 행성 차원 해결책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이미 특허 사무소에 특허 신청을 쏟아내고 있다. “plan B”를 정말 실행해야 할 상황일 때, 사적으로 소유되어 있다면 끔찍한 일이다. 행성을 변화시킨다는 진지한 기술이 결코 상업적 이익을 얻도록 해서는 안 된다.···(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자료실-용어를 포함해 번역 일부를 수정해 인용함)

 

이 이야기는 이미 우리가 살펴본 제국주의 면면을 그대로 재현해주고 있다. 사실 미국이 1960년대에 이 지구공학 이슈를 먼저 던지고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전경과 전망을 짐작할 수 있다. 2021년 스웨덴에서 하려 했던 태양 복사 관리 시스템 SCoPEx(하버드대학이 개발) 실험이 전격 중단되었다. 거기에는 부작용이 나타날 경우, 기획자와 피해자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중대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예상되는 부작용 가운데 하나가 열대 몬순기후 요동이다. 그렇게 되면 아시아·아프리카 등 가난한 나라들에 피해가 집중된다. 이 사실을 미국이 모르고 진행했을까? 무슨.

 

변방 무명 의자 깜냥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내용이 많아서 인용 중심 이야기가 돼버렸다. 사실 의학에 관한 이야기는 첨단적인 데까지 닿으려 매 순간 공을 들이지만 이런 분야는 입 대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제국주의 문제를 따라 여기에도 왔으니 다행이다. 어찌 보면 과학보다 공학이 해맑게 중립적일 듯도 하지만 실은 자동으로 강자 손에 붙기 마련이라 더 막무가내 부역 기계다. 이 진실을 정색하고 마주할 때 새삼 소름 돋게 무서운 존재가 바로 공학한 인간이다. 유튜브에 세뇌당해 특권층 부역자 주구 노릇 하면서 자신이 거기 합일되어 있다고 착각하는 부류다. 저 기계 인간이 기계보다 더 무서운 까닭은 악마적 정신을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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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학(ecology)’이라는 용어를 만든···헤켈은 독어권 국가에서 다윈 진화론을 대중화시킨 가장 중요한 인물이기도 한데, 이는 생태학이 탄생 순간에 이미 생태적 사고와 사회적 다윈주의 간에 관련성이 구축되어 있음을 뜻한다. 헤켈은 북유럽 인종 우월주의를 신봉했고, 인종 혼합을 반대했으며, 우생학을 지지했다.···생태학은 처음부터 반동 정치체제와 관련 있었다.(312)

 

서구 에코파시즘 사상은 신비주의에서() 파생하지 않았으며, 사회적 다윈주의·우생학주의·말살주의(exterminationism)-이들 모두는 궁극적으로 뿌리 깊은 인종주의 산물이다-같은 과학주의에서() 비롯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에코파시즘을 유독 위험하게 만드는 요인은 그 생물학적 동기가 오늘날 여러 과학주의 형태와 너무도 쉽게 결탁하고 있다는 점이다.(317)

 

1980년대 말, “환경이슈가 본격 대두됐지만 생태()”라는 말은 아주 드물게 쓰이기 시작할 무렵 나는 이미 생태학이 머지않아 다른 학문과 결합한 용어를 무수히 만들어내리라고 예언했다. 그래서 생태학과 여성학을 결합하는 공부 모임을 만들었다. 30년 훨씬 넘긴 세월 동안 나는 생태학이 처음부터 반동 정치체제와 관련 있었으며, 그 생물학적 동기가 오늘날 여러 과학주의 형태와 너무도 쉽게 결탁하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내 무지는 기본적으로 내 탓이다. 그러나 정교하게 발톱을 숨기고 있는 제국주의, 거기서 배워왔으면서도 모르쇠로 일관해온 유학파 특권층 부역 집단 탓이 더 크다. 제국과 특권층 부역 집단이 지닌 현실 영향력을 감안하면 이들 책임은 범죄 성질을 띨 수밖에 없다. 그나마 밝혀진 범죄는 빙산 일각일 뿐이다.

 

조선일보가 언론 전체를 끌고 다니듯 제국 과학주의가 지식사회 전반을 끌고 다닌다. 그 환원주의를 비판하면 과학 혐오자로 몰린다. 과학주의라는 사조, 아니 사조랄 수도 없는 편향을 성찰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 특권층 부역자가 제국 가서 학위 따면 대학과 학계를 점령하고 당연히 현실 정치로 잽싸게 몸을 밀어 넣는다. 3월 초 독립운동가 재심사를 목적으로 보훈처가 <독립운동 훈격 국민공감위원회>를 띄웠다. 임명된 학자위원 과반수(9/17)가 뉴라이트 계열 특권층 부역자다. 저들이 특정 인물, 실제로는 독립운동 전반을 재심사한다. 이 블랙 코미디 하나만으로도 대한민국은 사실상진행형 식민지임이 증명된다. 범죄는 증강 일로를 걷는다. 여기서 저 부역 집단과 제국을 관통할 혈로는 어떻게 뚫어야 하는가. 아득하고 아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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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과 그 속에 거하는 영들이···생생하게 살아간다는 사실은 풍경이 자체적으로 의미를 창조할 수 있고, 자기 이야기를 들려줄(스토리텔링: 인용한 이 부연) 수 있다는 증거다. 이는 인간이 장소에 대해 문화적 구조를 만들어내고, 거기에 자신이 창조한 의미나 신화를 부여한다는 서사와 완전히 다르다.(307)

 

어제(49)는 제6번 국도(정확히는 국도변을 따라 만들어진 자전거도로) 남양주시 구간 일부를 걸은 데 이어, 예봉산(679m)과 예빈산(590m) 경계를 이루며 조안리에서 팔당리로 넘어가는 계곡 길을 걸었다. 20km가량 이 길을 걸으려 내가 경의·중앙선 팔당역에 내렸을 때 가장 먼저 맞닥뜨린 풍경은 한강 건너편에 우뚝 솟아 있는 어떤 산이었다.

 



그 산을 보자마자 왈칵 눈물이 솟구쳤다한순간이 아니라 화장지를 꺼내 눈물을 여러 번 닦아야 할 만큼 지속되었다물론 그 까닭을 정확히 말로 표현할 수는 없다다만 어떤 미세한 으로는 그제 들은 소식과 본성이 같으면서 형태가 다른 몸 반응이를테면 풍경과 그 속에 거하는 영들이···생생하게 느껴지는 증험처럼 다가온다.

 

이렇게 느끼는 이유는 생명을 드러내기에 가장 적합한 내 감각이 울음이기 때문이다풍경즉 장소 자체가 지니는 생명력”(308)이 전해질 때 가장 신속·정확한 내 반응은 우는 일일 수밖에 없다울기 전까지 나는 그 산을 앞에서 직접 본 적이 없다지도에서 본 그 검단산이리라고 추정했을 뿐모를 때 울음만큼 참된 스토리텔링은 없다.

 

내가 차후 검단산에 관해 어떤 앎을 지니게 된다고 해서 그 앎이 검단산에 대해 문화적 구조를 만들어내고거기에···의미나 신화를 부여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내 울음이 그런 일을 용납하지 않는다먼저 자체적으로 의미를 창조할 수 있고자기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는 증거를 보여준 주체가 바로 풍경그 산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 검단산과 네트워킹할 때 더불어 나눌 이야기들은 제국 서사와 완전히 다르다제국 서사는 인간아니 서구 인간을 초자연적 존재로 전제하고 그들만이 의미를 창조하고 이야기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우리 서사는 거꾸로 초인간적 자연에’ 그 지위를 돌려준다인간 언어가 너무 형편없어서 눈물 한 방울조차 감당하지 못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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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벼랑 끝으로 내몰린 까닭은 전 세계가 식민지적 착취와 소비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엄청난 가속도가 붙었기 때문이다.

  비인간도 과거와 달리 더는 침묵하지 않음을 명확히 해준 계기가 이 같은 기간 압축이다. 다른 존재와 힘-박테리아, 바이러스, 빙하, , 제트기류-역시 이제 침묵을 깨고 더없이 화급하게 눈길을 사로잡고 있어서 우리는 더 이상 그들을 비활성 지구 부품으로 취급하거나 백안시하기 불가능하게 되어버렸다.(272)

 

단일 종이라는 개념은 오류다. 이제 인체에 다양한 미생물이 대거 공생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바다. 생물학자들은 인체 90%가 인간 세포가 아니라 박테리아로 이루어져 있다고 추정한다. 어떤 미생물학자는 인체를 현미경으로 보면 온갖 생명체가 더불어 살아가는 산호초처럼 보인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미생물은 인간 추론 능력, 감정, 기분에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다른 종들이 존재해야 인간 언어 능력과 사유 능력을 실현한다면, 그런 능력이 인간에게 귀속된다는 생각은 오류가 틀림없다.(275)

 

비인간 목소리를 그 본디 장소에 되돌려 놓아야 한다면, 그 일은 무엇보다도 우리 야생 자아에 남겨진 가장 중요한 유산인 스토리텔링을 통해서 이뤄져야 한다···

  ···우리에게는 상상력을 발휘해서 비인간 목소리와 행위 주체성을 회복시키는 과업이 주어졌다.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예술적 노력이 그랬듯, 이 또한 미학적임과 동시에 정치적인 과업이다. 그리고 지구를 괴롭히는 위기 규모가 워낙 방대한 까닭에 오늘날 그 과제에 더없이 절박한 도덕적 긴박성마저 더해지고 있다.(283)

 

최근 10년가량 내가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여온 바는 죽은 존재가 하는 말을 알아듣는 일, 비인간 존재가 하는 말을 알아듣는 일, 결국 이 둘이 하나라는 진실을 몸으로 알아차리는 일이었다. 416 아이들을 매일 대면하고, 식물·지의류·균류·조류·세균·바이러스를 공부해 숲으로 들어가고, 이들 무고한 생명과 생태를 살해한 제국주의와 후기식민주의를 해부하는 모든 일이 모여들어 이제 어떤 근원적 향기를 풍긴다. 우리 이야기가 분명히 지성소 가까이 다가왔다는 증거다. 그 증거가 오늘 아침 출근길에서 소식으로 전해졌다.

 

출근할 때 30여 분 숲길을 걷는다. 여느 사람처럼 내 건강을 위해 걷기운동을 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나는 human-biont인 나 홀로 고립되어 존재하는 생명체가 아니므로 나는 내 건강을 위해 걷는다고 말할 수 없다. 나는 다양한 미생물이 대거 공생하고 있는 공동체다; 90%가 인간 세포 아닌 박테리아로 이루어져 있는 복합 생명체다; 현미경으로 보면 온갖 생명체가 더불어 살아가는 산호초처럼 보이는 희한한 생명 공간이다; 나와 공생하는 미생물은 내 추론 능력, 감정, 기분에 영향을 미친다. “들은 우리건강을 위해 걷는다고 말해야 한다.

 

왜 숲인가? 목소리와 행위 주체성을 회복시켜야 하는 비인간 당사자임과 동시에 다른 모든 비인간 공동체 본진이 숲이기 때문이다. 숲에서 나는 내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어차피 내 귀로는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내 몸과 공생하는 모든 미소 생명들이 숲과 대화한다는 진실에 나를 맡길 따름이다. 그들이 숲에서 들은 이야기를 인간 언어로 번역해줄 테고, 추론 능력으로 나타낼 테고, 감정과 기분으로 발양시킬 테니 나는 그 변화를 통해 숲이 무슨 말을 하고 어떻게 행위 주체로서 행동하는지 안다. 이로써 들은, “우리는 숲과 네트워킹한다.

 

이 과정이 다름 아닌 우리 야생 자아에 남겨진 가장 중요한 유산인 스토리텔링이다. 스토리텔링에는 제국 과학이 가닿을 수 없다.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예술만이 수행할 수 있는 미학적임과 동시에 정치적인 과업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숭고한 영, 그러니까 제국주의가 부존재 처리한 존재들이 더불어 부르는 장엄한 노래다. 이 장엄한 노래를 나는 오늘 아침 숲 한복판에서 들었다. 차마 감동과 전율이 범접할 수 없는 절대 고요에 안겨 안개 흐르듯 지나왔다. 이 소식을 가장 먼저 그대에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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