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두구의 저주 - 지구 위기와 서구 제국주의
아미타브 고시 지음,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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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변화를 둘러싼 통계구조는 여론 조작에 초점이 맞춰진다. 1인당 탄소발자국이라는 개념이 한 가지 좋은 예다.···이 척도···상당수는 미국 데이터를 사용한다. 미국 데이터는 일관되게 미국 1인당 탄소발자국 규모를 과소비···탓으로 돌린다. 이런 틀 짓기에서 기후 변화는 개인 책임과 소비자 선택 문제로 왜곡된다.

  당연히 이 그래픽과 도표는 미군 관련 기관이나 미국 권력이 개입한 기관 배출을 누락시킨다.···에너지 거대 기업 BP(British Petroleum)가 자금을 댄 연 1억 달러 광고 캠페인이기 때문이다. 이런 대규모 브랜딩과 광고 캠페인은 기후 영향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 지우고” “기후 변화가 당면한 현실이 아니라 미래 위협이라고 생각하는 견해를 유도하려는 목적에 봉사한다.(210~211)

 

기후 변화를 기술·경제 중심 미래 관심사로 치부하는 짓은 대체로 부국, 그 가운데 특권층이 저지른다. 부국이든 빈국이든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후 변화는 인종·계급·지정학과 관련한 역사에 뿌리내린 정의 문제다. 이런 관지에서 기후 협상은 그저 배출량이나 온실가스 문제가 아니다. 여태 논의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논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큰 현안, 그러니까 궁극적으로는 세계체제 권력 배치 문제다.(220~221)

 

특권층 부역자 정권이 들어선 직후부터 높은 무역 적자를 기록하면서 경제가 흔들거리자 특권층 부역자 언론조선일보가 과소비를 질타하고 그 근원에 전 정권 포퓰리즘이 있다는 bullshit을 날린 바 있다. 싸잡아 개돼지책임으로 돌리는 전형적 제국 어법이다. 식민지 시대에 배운 협잡을 식민지 후기 시대에도 그대로 써먹고 있으니 일관된다는 점만큼은 칭찬할 만하다. 물론 여전히 저들 조국은 일본 제국이라 충성심 때문일 테니 당연하기도 하다.

 

문제 책임을 개인에게 지우는 이 못된 짓거리는 필연적으로 당면한 현실이 아니라 미래 위협이라고 생각하는 견해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현 정권이 잘못하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따라서 당장 해결할 필요는 없다는 쪽으로 비틀어야 하기 때문이다. 현 정권에게 당장 해결할 능력, 아니 그럴 의지가 아예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망하는 일과 일본 흥하는 일이 같다는 계산 서 있으니 웃고 싶은데 간지럼 태우는 형국이다.

 

무역 적자 문제를 경제 중심 미래 관심사로 치부하는 짓은 대체로 부역자, 그 가운데 특권층이 저지른다. 가난한 식민지 사람들에게 무역 적자 문제는 민족·계급·지정학과 관련한 역사에 뿌리내린 정의 문제다. 이런 관지에서 무역 적자 문제는 그저 수출입이나 적자 폭 문제가 아니다. 여태 논의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논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큰 현안, 그러니까 궁극적으로는 식민지 후기 체제 권력 배치 문제다.”

 

억지처럼 보이는 이 진지한 패러디는 오늘날 지구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 가운데 제국주의 역사와 현 세계체제 권력 배치가 일으키는 현안으로서 정의 문제가 아닌 경우란 없다는 사실을 전달하기 위한 소박한 수사다. 얄팍한 감각이라 할지라도 중첩 식민지 저 반대편에 서 있는 자들을 생각하면 베꼈다고 한들 감수 못 할 일이겠는가. 절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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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브 고시 지음,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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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변화에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대개 변두리에 있는 이들이고, ··물과 맺는 관계에서 기술문명 영향을 최소한으로만 받는 이들이다.···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가난하며 정보를 전파하는 네트워크에 접근하지 못한다. 사실 그들은 사회적 스펙트럼에서 세계적 학자나 과학전문가 정 반대편에 놓여 있다.

  ···기후 변화에 관한 우리 첫 번째 메시지가 변두리 농부나 먼 길 걸어야 물 길어다 먹을 수 있는 여성이 아니라 과학자에게서 나오는 이유는 그들이 무슨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차리는 유일한 존재라서가 아니다. 그보다 그들이 세계적으로 권력을 휘두르는 사회 내에서 좀 더 가시적인(visible) 존재기 때문이다. 슬프게도 변두리 농부나 먼 길 걸어야 물 길어다 먹을 수 있는 여성은 그들이 사는 사회에서 너무나 가장자리로 밀려나 있는지라 좀처럼 가시적 존재가 되기 어렵다.(210)



2017822<녹색 의학 이야기를 시작하며>에서 이렇게 말한 기억이 있다.

 

“···2016년 여름 더위는 대단했다. 한의원 냉방기기가 맥을 못 추었다. 환우들의 불편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 여름이 다 갈 무렵,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6년째 세 들어 있는 한의원 건물이, 여름에는 창문을 통해 직사광선이 들어오지 않고, 겨울에는 그 반대여서 신의 한 수라 여기며 좋아했다. 작년 여름, 비로소 알아차린 사실인데, 창문으로 직사광선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구 자전축이 변하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까, 혹 그렇다손 치더라도 어떻게 일상에서 이리도 선명하게 감지될 수 있을까, 의심했으나 그땐 그냥 지나쳤다.

 

사실은 그대로 사실이었다. 북극점이 최근 10여 년 동안 1m가량 동쪽으로 이동했다. 북극점 이동은 북극 얼음이 녹으면서 지구 전체의 무게 배치가 바뀌어 일어났다. 이 사실을 아는 순간, 내게는 어떤 묵시록적 베임의 감각이 일어났다. 날카로운 통증이 하나의 옹골찬 각성을 일으켰다. 물론 이전부터 기후 변화를 포함한 생태학적 문제에 등한하지는 않았지만, 와락! ‘녹색의 화두를 정색하고 들어야겠다는 절박함이 살을 찢고 들이닥쳤다는 말이다.”

 

변두리 사람은 이론이나 사변으로 접근·소통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신체 직관이랄 수 있는 감각이 우선한다. 그리고 그 감각은 구체적·일상적 생활 한가운데서 형성된다. 내가 직사광선에 섬세한 지각력을 지니게 된 까닭은 환자가 느낄 불편함을 먼저 알아차려야 하는 임상의기 때문이다. 특히 가난한 동네 진료소는 의학 외적 요소들이 오히려 더 깨알같이 영향을 미친다.

 

생태·기후 변화 문제라고 다르랴. 과학자가 세운 깃발이 변두리 생활인 깃발과 같을 리 만무다. 정확히 말하면 후자는 가시적인(visible) 존재가 아니므로 아예 깃발 자체가 없다고 해야 맞다. 없는 깃발을 보는 눈이라야 제국 발 마케팅 과학을 찍어내며 볼 수 있다.

 

마케팅 과학은 이익 창출을 위해 진실을 도구화한다. 도구화된 진실은 네트워킹에 참여하지 않으므로 부분에 머무른다. 부분은 오류다. 오류 권력체제가 제국이다. 제국을 거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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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위기가 지닌 명확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유럽식 모델을 따르기 위해 가장 집중적으로 테라포밍된 지역에서 비상한 힘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는 사실이다.(201~202)

 

이쯤에서 문득 새삼스러운 의문 하나가 떠오른다: 지구 위기라는 표현은 타당한가?

 

제국 인간이 저지른 패악으로 정말 지구가 위기에 처한 상황인지 묻는다. 위기는 제국 인간을 포함한 부역자 인류에게 닥친 일 아닌가 묻는다. 그 인간으로 말미암아서 인간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생태 조건으로 변해 인간이 멸망하고 다른 많은 생명이 억울하게 죽임당한다는 사실로 지구 위기라는 표현을 쓰는 일은 그야말로 주제넘지 않은가 묻는다. 인류를 포함한 여러 생명이 사라진다고 해서 지구 생태계 전체가 사라지지는 않는다면 어떤 모습으로든 지구 생태계는 태양계가 사라지지 않는 한 지속될 텐데 지구 위기라는 표현은 인간 위기를 투사한 말하자면 신이 자기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했다는 서사와 같은 전도아닌가 묻는다.

 

아미타브 고시가 앞서 점잖게 말한 한 대목을 떠올리면 답이 나온다.

 

우리 시대 기후변화는 다름 아니라 400년에 걸친 테라포밍···이라는 도전에 지구가 응전하는 행동이다.(120)

 

··로 번역하면, “지금 우리가 지구 위기라고 명명한 문제는 지구가 위기에 처하는 문제가 아니라 지구가 인간을 응징하는 문제, 그러니까 인간이 저지른 악행에 지구가 벌을 주는 문제다.” 인간이 자복하고 그나마 선처를 빌 수 있는 길은 유럽식 모델을 따르기 위해 가장 집중적으로 테라포밍된 지역을 자연에 깃들어사는 수준으로 디-테라포밍하는 일뿐이다. 6천 년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가 아님을 모른다면 발끈할 주제조차 되지 못한다.

 

서울 와 첫 10년을 살았던 산동네에서 내려다본 도심 빌딩 은 어린 내게 가히 그랑 로망이었다. 60년 가까이 지난 그 서울은 그때와 비교할 수조차 없는 skyscraper ‘이지만 늙은 내게 더 이상 로망이 아니다. 내가 노망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정신으로 내려다본 서울은 그대로 저주다. 기후 재앙을 빨아들이는 악마 목구멍이다. 어제보다 대기 상태가 좋다는데 스마트폰에 뜬 그림이 고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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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안보 기관이 기후변화에 대해 내놓은 보고서에 나타나는 일관된 한 가지 공통점은 서구세계가 지구 위기로 말미암은 비극적 영향에서 보호받는다고 가정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가정은 얼핏 보면 그럴듯하고 심지어 설득력마저 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이와 같은 서사가 완전히 거꾸로임을 보여주는 사례는 수없이 많았다. 그 가운데 가장 최근 예가 바로 코로나19 팬데믹이다.···

  ···그 팬데믹이 거쳐온 경로는 지구 위기 역시 직관에 반하는 놀라운 방식으로 펼쳐지리라는 암시를 던져준다. 예컨대 베트남 1인당 소득은 유럽 여러 나라 소득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적다. 하지만 중국과 국경을 길게 접하고 있음에도 코로나19 발생률이 현저하게 낮았다.···

  반면 고전한 나라에는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벨기에, 그리고 물론 영국과 미국 같은 부국이 대거 포진해 있다. 이런 결과가 드러내는 불행한 측면 가운데 하나는 서구 엘리트가 소중히 여기는 신념, 곧 그들 국가가 지닌 부, 인프라, 그리고 줄곧 칭찬받아온 의료체계가 코로나19 팬데믹이 몰고 올 비극에서 자신을 보호해주리라는 신념 탓이었다는 사실이다. 근본적 우월성에 대한 맹신과 강대국 허세가 맞물리면서 서구는 일부 동아시아 국가들이 취한 방법을 선뜻 채택하지 못하고 최악에 이르렀다.(187~188)


 

인간이 타락의 임계점을 넘어섰음을 절실히 느끼게 하는 특정 공간이 몇 있다. 대표적인 예가 대형교회 건물이다. 그중에서도 과연 저게 예배당인가를 의심케 하는 강남의 모 교회 건물은 참으로 화려해서 참으로 기괴한 느낌을 준다. 이 화려해서 기괴한 교회 안에서 배양되는 신앙은 과연 어떤 것일까, 나는 전혀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 교회 신도 한 사람과의 인상적인 조우를 기억한다.

 

부티와 교양미를 풍기는 노인이 들어섰다. 나는 정중한 인사로 맞았다. 그가 지적하는 단 하나의 증상은 불면이었다. 여러 방식으로 진단해보니 원인 질환이 따로 존재했다. 다름 아닌 우울장애였다. 내가 설명을 시작하자 다 듣지도 않고 그는 말을 끊었다.

 

예수 잘 믿는 사람은 우울장애에 걸리지 않아요.”

 

이게 무슨 말인가. 내 귀에는 예수 잘 믿는 사람은 가난하지 않아요.’와 똑같은 말로 들렸다. 기복으로 굳어진 한국 개신교가 그려준 부적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개신교 신자들의 우울장애를 치료해왔다고 했더니 그는 대뜸 그들의 신앙은 잘못된 것이라 했다. 나도 더는 예의를 지킬 마음이 없었다.

 

제 진단은 어르신 신앙으로 부정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인정하고 우울장애 치료부터 받으시지 않으면 저는 불면증 치료할 수 없습니다.”

 

그는 크게 화를 내며 일어섰다. 나도 큰 소리로 외쳤다.

 

간호사님, 환자분 나가십니다!”

 


내가 쓴 숙의 의학 소설 나니까 망정이다에 나오는 이야기 <부적>이다. 서구세계에서는 , 인프라, 그리고 줄곧 칭찬받아온 의료체계가 부적이었던 셈이다. 무릇 부적은 부도수표 같은 물건이다. 속으면서도 부적 마니아는 부적 신앙을 버리지 못한다. 물론 그래서 부적이 부적이다.

 

코로나19 팬데믹 비극 한가운데 있을 무렵, 프랑스 외교 정책 전문가 한 사람이 <뉴욕타임스>와 인터뷰하면서 자기 나라를 한국과 비교하는 일은 견딜 수 없다고 했다. 지금도 그 사람은 그 감정을 견지하고 있으리라. 물론 부적 부작용이다. 진정 과학·의학도 그 앞에서는 쪽을 못 쓴다.

 

근본적 우월성에 대한 맹신과 강대국 허세, 그 본질은 무엇일까? 맹신과 허세는 그들 국가가 지닌 부, 인프라, 그리고 줄곧 칭찬받아온 의료체계에 근거했을 텐데 어찌 이며 일 수 있을까? 근거 자체가 그렇다기보다, 최고·유일·전부로 인식한 행태가 이며 . 실로 맹허다~

 

서구가 빠져 허우적거리는 늪은 단순하다: 동어반복인 진리 체계 안에서 배 두드리기. 자기 바깥 드넓은 진리 세계를 정복과 절멸 대상으로 삼았으므로 스스로 목을 죄고 있는 자신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시간이 없다. 한 찰나 바삐 자기 자신을 인류학대상으로 삼아야만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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