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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하이웨이
에이모 토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22년 7월
평점 :

에이모 토울스 장편소설/ 현대문학
왜 1954년인가?
그는 지금, 바로 여기, 현재를 쓰지 않았다. 미국의 1954년은 어떤 해인가? 한국전쟁이 끝났고 베트남 전쟁이 시작되기 전!!! 전쟁과 전쟁 사이, 여기서 '사이'란 어떤 의미일까? 다음에 올 격변을 잉태 중인 조용한 시기. 수면 아래의 시간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경제적 부흥과 사회적 격변이 공존. 지극히 한국의 관점에서 50년대 베이비붐 시기를 떠올리는 정도? 미국인 작가, 예일대 출신, 잘나가는 금융인 출신의 백인 남성 작가에게 1954년이란 결국 내가 가닿을 수 없는 시간대다. '정의'하기를 포기하겠다.
링컨 하이웨이는 실제로 존재하는 미국 최초의 횡단 도로라고 한다. 동부에서 서부를 가로지르며 미국인들의 자존심! 이동과 자유의 상징이기도 한 링컨 하이웨이!! ( 한국으로 치면 경부 고속도로쯤 될까? 아무튼) 작가는 1954년을 무척 사랑하신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해를 어떤 연도를 사랑했는가? '어떤 해'를 '사랑'한다는 개념이 있었던가? 다시 돌아가고 싶은 해는 있었지만 한 해의 존재 자체를 사랑했던 적이 없었다.
이 소설은 단순히 물리적 여행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전후 미국의 이상과 현실, 계층과 가족, 정의와 복수 같은 다양한 주제를 시대의 공기 속에 녹여낸다.
에이모 토울스 선생님의 인터뷰를 찾아보았다. 소설의 뼈대 구상에만 1년이 걸리는 작가, 40대 후반에서야 베스트셀러로 등장한 작가다. 인생의 의미를 아는 40대에 소설을 쓰기 시작한 이 작가의 이야기 규모와 질감은 언제나 방대하고 압도적이다. 여덟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소설.
대문자 J인듯한 주인공 에밋은 조기 퇴소를 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어머니의 가출, 아버지의 죽음, 너무나 어린 동생이 그가 가진 배경의 전부다 이제 에밋은 계획대로 어린 동생을 잘 돌보며 살 수 있을까?
작가는 에밋의 삶을 순탄하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소년원 동기 더치스와 울리는 에밋의 삶에 예고 없이 나타난다. 하! 이들 등장하는 장면이란!!
에밋, 빌리, 샐리, 더치스, 울리, 존 목사, 율리시스, 애버커스 교수 여덟 명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되 3인칭 혹은 1인칭으로 서술된다. 특히 네 명의 청소년 에밋, 샐리, 더치스, 울리의 삶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데 이들의 가정은 온전한 역할을 하지 못한다. '가정'혹은 부모라는 울타리가 무너진 경우, 아이들의 삶이 어떻게 되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논의할 점이 많지만 여기까지!! 소설 초입부터 예사롭지 않았던 빌리는 하!! 역시 똑똑이!
『모스크바의 신사』가 고요한 호텔의 방 안에서 세계와 인간을 응시하는 정적인 사유의 소설이었다면, 『링컨 하이웨이』는 그 응시가 밖으로 달려 나온 동적인 소설이다. 두 소설은 극적으로 대비된다. 사유의 관점에서 후자의 경우 토론거리가 많아 보인다. 독서모임 책으로 유용할 듯싶다.
읽어야지 마음먹으면 벽돌 책이든 뭐든 완독해 내는 편인데, 『모스크바의 신사」는 결국 3분의 2지점까지 오기를 몇 번 반복 끝에 완독하지는 못했다. 현대문학의 까만 바탕에 반짝이는 금장 표지는 무척 고급스럽고 예쁜데, 여전히 3분의 2지점에 와 있다. 조만간 끝낼 예정이다 ㅎㅎ ( 이 말을 수년째 하는 중)
제목 옆에 '지도 없이 목적지를 내달리는 사람들에게'라는 내가 정한 책의 소개 문장은 1954년 미국 배경의 소설이 2025년의 대한민국과 어떻게 오마주 할지 예측하게 하는 문장이기도 하다. '목적지도 없이 달리는 멍청한 인간'이라고 조롱하지 마시길! 삶에는 때로 특별한 목적지가 없는 경우가 많다. 있던 목적지를 잃기도 한다. 수많은 젊음들을 보았다. 방황하고, 흔들리고, 빼앗길 것조차 없이 태어나는 존재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교만하게도 나는 목적 없는 독서는 하지 않는다. 오로지 읽는 이유는 재미나 감동이 아닌, 지식 추구! 지적 욕구 충족이었다. 요즘은 무슨 책을 읽어도, 무슨 글의 리뷰를 써도 한결같이 아프다. '내 아픔이 아닌 것에 눈 뜨는 것' 북스타그램 5년 하면서 배운 점이다.
글을 닫으며
문장에 뭘 더 하고 싶은 게 많은데, 그것은 아마도 여덟 명의 화자, 각자의 입장 혹은 시점에서 느낀 점, 리뷰가 아닐까 생각한다.
1920년대 러시아 배경의 『모스크바의 신사』로 전 세계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에이모 토울스가, 이번엔 미국 대륙을 가로지르는 1950년대의 도로 위로 우리를 초대한다.
『링컨 하이웨이』는 단순한 로드 트립이 아니라, 길 위에서 펼쳐지는 정체성과 성장, 우정과 상실, 과거와 미래에 대한 복합적인 이야기다.
에이모 토울스 특유의 우아하고 절제된 문체, 디테일한 시대 묘사,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는 따뜻한 시선은 이 소설에서도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소설에서 에밋의 차, P57에 언급되는 연푸른색
스튜드 베이커 찾아봤다. 마차 부품 제작 회사에서 출발한 미국의 자동차 회사 스튜드 베이커는 대공황 때 파산하기도 하지만 재기하더니 결국 1963년 미국에서 자동차 생산을 중지한다. 미국에서 탈것과 관련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회사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