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이후의 철학
시노하라 마사타케 지음, 최승현 옮김 / 이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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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노하라 마사타케(지음)/ 최승현(옮김)/ 이비출판사










인간 이전이 없으니, 인간 이후도 없다. 철학은 해석하는 학문이기에!!!

책의 제목은 인간이 멸망한 세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역자의 말처럼 인간이 존재하기 이전 그리고 인간 소멸 이후의 사유를 말한다.






한 세계가 붕괴되고 있다는 느낌은 세계 핫토필에서만 접하는 일이 아니다. 멀쩡히 길가던 청년이 도로 한복판에서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칼에 찔리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빚을 감당하지 못한 모녀가 아파트 관리비를 유서와 함께 놓아둔 채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세계다. 일용직 노동자 A, B, C의 죽음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내 알 바 아니기 때문에). 수도 서울의 D 동네에서는 두 달에 한두 명꼴로 학생이 뛰어내리거나 아니면 과도한 경쟁을 견디지 못한 학생 어머니가 뛰어내린다(집값 내릴까 봐, 학군에 해를 줄까 봐 쉬쉬하느라 이런 건 기사에 나오지도 않는다), 부모의 과도한 관심과 경제적인 지원을 부담스러워 스스로 생을 마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정부에서 주는 급식카드를 들고 식당 주인의 눈치가 보여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으로 한 끼를 때우는 아이가 내 주변에도 몇 명 있다. 일일이 다 적자면 이 페이지를 넘기고도 남음직한 멸망 이전의 현상들......


철학의 부재다. 중세 이후로 신학은 그 맥을 잇지 못하고 뒤처져서 과학의 뒤를 따라기지만, 철학은 다르다. 철학자들은 늘 과학보다 앞섰다. 니체를 보라. 양자역학의 최전선에 있는 과학자들이 주장하기 훨씬 이전에 니체는 '관점'을 언급했던, '보는 것'을 언급했던 위대한 천재였다. 이후의 철학자들은 대부분 니체를 흉내 내고 있다. 아니면 니체를 반박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존재감을 세울 뿐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무엇인가?

나의 고등학교에는 문예부와 미술부가 강했다. 문예부에 들어가기 위해서 시를 심사 받았는데, 국어 샘과 선배들에게 통과를 받아야 합격되는 방식이었다. 1학년 입학 한 달 후 2학년 선배들이 나를 데리러 왔다. 야! 신 ○○ 문예부로 와라!! 나는 문예부에 들어가지 않았다. (선배들의 시건방진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다 ㅎㅎㅎㅎ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가장 시건방적인 후배였음 ㅋㅋㅋㅋ)



만 15세, 고등학교 1학기를 마치고 시노트 한 권 분량 정도의 시를 쓴 나는 시인이신 국어 샘께 노트를 들고 갔다. "샘, 제 시 좀 봐주세요^^ "샘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시면서도 읽어보시고 간단히 평가해 주셨다. 또 그 무렵 시노트를 우리 학교 문예반 리더이자 청소년 문학 대횐가 뭔가에서 대상을 받았던 내 절친의 친구 시 좀 쓴다는 박 양에게 들고 갔다. 다음날 박 양이 내게 직접 말하지도 않고 내 친구 편으로 전한 감상평 .......


"너의 시는 지극히 포스트모더니즘적이야."



나는 화가 났다. 그렇게 열심히 쓴 시를 단 한 줄로 평가한 것이 화난 것이 아니라, 내가 포스트모더니즘이 뭔지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지금도 나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뭔지 모르겠고, 포스트모더니즘적이라는 말은 더 모르겠다. 내가 철학 책을 읽는 이유다. 읽으니 재밌다. 책의 여러 장르 중 철학에 가장 애정을 쏟는다. 읽다 모르면 용어가 나오면 유튜브든 뭐든 검색해 본다. 그리고 막힌 부분부터 다시 읽는다. 잠을 줄여가며 며칠을 이 책 두 권과 함께 했다.







세계는 독립을 기조로 삼는다. 사물도 인간도 세계에서 독립적이다. 저자는 '인간은 인간을 벗어난 세계에 살고 있다'라는 그레이엄 하먼의 논문에서 영감을 얻었다. 인간의 척도를 넘어선 거대한 것의 일부네 불과하다는 차크라바르티의 사유, 세계 형성의 원리에서는 가브리엘과 메이 야수의 사유, 인류세를 철학적 관점에서 본 서양의 현대 철학자들과 일본의 현대 철학자들 예술가들을 가로지르며 주장을 펼친다.


가브리엘, 메이 야수, 티머시 모턴, 그레이엄 하먼, 한나 아렌트와 들뢰즈, 차크라바르티에 이르는 서양의 철학에 오히려 관심이 있었으나 일본 철학자들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해본다. 일본에서 철학이 발달했다고? 그렇다면 왜 철학인가?라는 의문과 함께!!!







인간은 이 세계가 '인간'으로만 구성되어 있다고 착각한다. '인간이 가장 우위에 있다'라는 착각, 그 위선을 완전히 내려놓을 때 이미 철학 하는 인간이 되어 있을 것이다.


덧. 입문서를 잘 선택해야 한다. 입문서가 너무 가벼워서도 반대로 너무 이해하기 힘들어서도 안된다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이 책!!!!



다섯 가지 주제로 읽는 현대 철학. 정의, 타자, 자유의지, 의식, 신실재론 등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철학자들의 사유가 궁금하다면 《현대철학의 최전선》을 읽어보시길.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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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꽃 길 시골하우스
이영희 지음 / 델피노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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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 장편소설/ 델피노(펴냄)







평안 산장을 향해 가던 동화 작가 하유는 길을 잘못 들어 헤매던 중 비를 만난다. 브라프가 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로 시작되는 문장에서 브라프가 뭐지? 생각했는데 개 이름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이미 운명은 정해져 있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만남도 이별도 일도 사랑도 모든 게.....






챕터 마지막 문장에 감꽃이나 작약, 오미자와 제라늄 등의 꽃말이 쓰여있다. 꽃말이 그 챕터의 주제와 잘 어울린다. 하유는 엄마와 재산을 동시에 잃고 혼자 남겨졌다. 재산을 빼앗다시피한 것은 이모였다. 주인공 여하유와 설시곤, 두 사람의 이름이 좀 낯설게 느껴졌다. 나머지 등장인물 정은이나 유라 등은 작품 속에 자연스러웠는데 오히려 주인공 하유 이름이 동동 뜨는 느낌?^^





원래 목적지인 평안 산장이 아닌, 시골 하우스 감꽃 마을에서 이 주일을 머무르게 된 하유. 예쁜 사람은 어디 가나 사랑받는 걸까? 하유를 딱하게 여긴 권숙 아줌마. 사투리가 정겹게 느껴졌다. 진주가 고향인 작가의 진주 인근을 배경으로 한 작품은 한 편의 청춘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랄까? 오랜만에 만나는 연애소설에 읽는 내내 설레는 기분이었다.





땅의 주인은 땅일 뿐, 인간이 영원히 소유할 수는 없는 법이죠 p19


주인공 시곤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 문장이었다.

시곤과 하유는 서로에게 점점 끌리게 되고 이들의 사랑은 과연 이루어질까?






어릴 때 경험이 정말 중요한 것 같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 식물을 접할 일이 없어서인지 성인이 되어서도 꽃은 예쁠 뿐 그 이름을 다 모른다. 감꽃의 모양이 어땠는 지 갑자기 떠오르지 않았고, 이 책을 보며 감꽃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 외에도 작가가 소개하는 많은 식물들 나는 검색으로 그 생김새를 찾아본다. 꽃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 생김새도 예쁘지만 향기 때문이다. 꽃은 저마다 다른 향이 난다. 꽃처럼 향을 자체적으로 발산하는 사람이 될 수 없어서 향수를 뿌린다. 향수를 뿌리면 그 향이 나를 지켜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가을날 로맨스 한편. 엄마를 잃은 하유가 어떤 방식으로 삶의 난관에 직면하는지,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는? 나아가 사랑을 어떻게 이루는지 기대감 가득 안고 읽은 책이다.







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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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죽음들 위픽
정지돈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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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돈(지음)/ 위즈덤하우스(펴냄)





감삼동, 배자못, 금호호텔 지하 나이트.....

이런 단어가 언급되어서 너무 놀라웠다.





소설 속 배경인 배트맨의 고담 D 시는 우리가 아는 바로 거기 맞다 ㅋㅋㅋㅋ

그에게 엄마는 나약하고 퇴폐적이고 가족을 버린 존재였다. 여성에 대한 비뚤어진 증오심과 환상, 앙심과 선망이 뒤범벅되어 그의 내면을 지배했고 아버지와도 점점 멀어졌다. P23



소설, 에세이, 비평서를 교차로 쓰며 우리 시대를 다루어온 정지돈 작가. 그의 작품은 난해하다는 편견이 있었는데 이번엔 달랐다. 59페이지 분량의 소설은 그가 쓴 소설 중에 가장 재미있게 읽혔다. 정지돈이 쓴 작품이 맞는가 싶을 만큼.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다. 누가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 하나 없는 괴상한 도시 D 시.



D 시의 오래된 저수지에서 여자의 유해가 발견되었다. 유해를 처음 발견한 것은 아이들이었다. 이후 배자못 아래에서 수십 구의 유해가 나왔다. 연도는 가각 달랐다. 소설의 등장인물의 융의 어머니도 그렇게 죽었다. 사람들은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을 때 지미를 찾아왔다. 스무 살의 헤어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던 지미는 사내와 결혼했다. 지미가 그를 택했을 때 그의 다소 쳐지는 외모에 다들 놀랐다.




목적을 정확히 유추할 수 없는 글을 쓰고 싶었다는 작가. 한 편의 누아르를 보는 기분이었다. 거창한 작가의 말을 쓰지 않으려 했다는 작가의 말이 함축적이다. 책에 쓴 사건 중에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은 하나도 없다는 융의 말. 소설은 진짜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도시 D를 살아가는 1인으로서의 묘한 연대감, 어떤 면에서는 죄의식마저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소설 아닌 소설을 쓰는 그는 정지돈 역시 독특하다.




내가 빨강을 좋아하는 것을 다들 어떻게 안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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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거란전쟁 - 상 - 고려의 영웅들
길승수 지음 / 들녘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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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대하사극 원작소설 『고려 거란 전쟁 고려의 영웅들』 상권









길승수(지음)/ 들녘(펴냄)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조선의 역사에 비해 너무나 축소되고 심지어 왜곡된 고려의 역사! 태조 왕건, 서희, 강감찬의 귀주대첩, 무신 정변, 몽골 침입, 원 간섭기, 최영 장군 등 고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한정적이다. 조선 왕들과 왕비들의 이름을 줄줄 외우는 반면, 고려의 왕들은 그 이름조차 낯설다. 역사는 암기과목이라는 편견과 일본 유학파 출신 사학자들의 왜곡된 프레임으로 바라본 역사





지나치게 우리 역사를 확대해석해서도 안되겠지만, 축소하거나 은폐해서는 더더욱 안될 일이다.


소설은 고려 VS 거란의 전쟁 중 2차 전쟁인 양규 장군의 활약이 빛나는 흥화진 전투를 다루는 유일한 소설이다. 또한 작가의 전작인 《고려 거란 전기: 겨울에 내리는 비 1, 2권》를 대폭 개정한 책이다.





상하권 합해서 900페이지 분량의 대하소설은 최근 KBS 대하 사극으로 영상화되었다. 최수종 배우님 주연의 32부작, 공영 방송 KBS 방송 50주년 기념작이며 제작비 무려 270억 규모에 ICT 기술을 접목한 작품으로 알고 있다. 몇 차례 공개된 티저 영상을 보았는데 마치, 잘 만들어진 최신 OTT 드라마 느낌이었다.





책을 읽기 전에 잠시 고려사를 머릿속으로 정리해 보았다. 고려를 둘러싼 적들 위로는 여진, 거란과 대립하는 송나라 등 국제정세가 고려에 불리하다. 역사적 사실에 작가적 상상력을 덧붙이는 역사소설. 작가의 흥화진 배경 묘사에 놀라웠다. 인근의 강과 하천, 산을 묘사한 부분이 마치 그림 그리듯 펼쳐졌다. 대화를 통한 거란의 핵심 인물들 소배압, 야율율서(요 성종), 요나라 대신 한덕양 등의 성격 묘사도 흥미진진했다. 다소 기분파? 인 성종의 취향에 맞추기 위해 아부하는 간신들의 아첨은 어느 시대에서나 보는 모습. 특히 우리의 장군들에 대한 묘사도 인상적이지만 적이 장수인 소배압의 입장에서 그 심리를 어쩜 이리 그려냈을까 놀랍다. 최사위와 이섬의 농담, 무장 안소광 외에 리뷰에 다 쓰기도 힘들 만큼 많은 인물들의 묘사는 탁월하다. 마치 그 사람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온듯한???? 게다가 작전회의 내용이나 군대가 포진한 배치도, 각종 방어선이나 전차진 배열, 전술 그리고 당시 관직의 명칭과 역할 등은 철저한 고증과 검증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화포가 나오기 이전이라 전쟁은 힘으로 밀어붙이는 방법밖에 없었다. 특히 산성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고려를 상대로 한 전쟁에서는 딱히 해법이 없었다.


어떤 전투이든 지금까지 쌓아놓은 경험상 해법은 다 있다 싶었는데, 유일하게 정확한 해법이 없는 것이 산성을 공략하는 것이었다. P60


전장은 이성이 지배하는 곳이 아니었다. 마음속에 감정들이 극단으로 요동치는 곳이다. 용기라는 미덕도 사실은 감정의 극단의 한 형태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P159






모계사회인 거란, 어머니의 영향에서 벗어난 성종은 이제 자신의 역량을 펼쳐 보여야 했다. 그래서인지 친히, 4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로 침입한다. 실제 역사에서 양규 장군의 어린 시절이나 그의 출생 배경, 과거의 지명이 주체적으로 오늘날 어디인지, 흥화진 전투 당시 이동경로의 구체적인 설명이 기록으로 많이 남아있지 않은 점 몹시 안타깝다. 강감찬 장군의 기록도 마찬가지다. 너무 오래전이라 남아잇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이후 조선에 의해 고려의 역사가 축소되면서 사라진 것인지, 현재 북한과 중국에 해당하는 지역이라 그런지는 모를 일이다. 또한 이 소설에서 강감찬 장군만 기억하는 우리에게 양규 장군과 함께 김숙흥이라는 인물을 역사의 전면에 내세우는 점 눈부시다. 또한 소설에서 무녀인 신녀가 제사를 지내고 동명왕의 령을 몸에 모시는 장면 사람들이 동명왕을 추앙하는 점도 인상 깊다. 당연히 아는 사실이지만, 고려는 고구려의 후예임이 명백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라서 우리에게는 또 다른 임무가 주어졌다. 이번 임무는 첫 임무보다 훨씬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이번에는 단순히 성을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밖의 북적들을 공격하여 그들을 우리의 땅에서 몰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P292






특히, 양규 장군의 곽주 탈환작전은 역사적 승리이며 또한 이 드라마의 백미이기도 하다. 드라마가 고려와 거란의 전쟁에 초점이 맞춰져있다면 소설은 그 시대에 활약한 장군과 초야의 병사들, 무명의 인물들에게 맞춰져있다는 점. 고려사, 요사, 송사를 두루 공부한 저자, 조선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료가 부족한 고려의 역사를 전면으로 세우는 과감하고 위대한 소설이다.

1권은 강민첨 장군이 서경에서의 승리 장면으로 끝난다. 강민첨 장군을 치하하는 공덕비는 조선 정조 시대에서야 세워졌다고 한다. 예산에 장군의 묘가 있다고 한다. 조만간 답사를 가 볼 생각이다.




역사는 가장 강력한 스토리의 원천이다!!!! 아! 위대한 고려여!!!!!!!








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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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T LIM : 달리는 무릎 ILLUST LIM
이유리 지음, 정아리 일러스트 / 열림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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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림원(펴냄)








어느 날 무릎에서 말소리가 들린다면....?


이 기발한 상상을 작가는 어떻게 해낸 걸까? 작가도 달리기를 좋아하는 것이 분명하다. 굳이 무릎이 아니어도 좋다. 내 몸 어디선가 들리는 낯선 존재의 소리, 우주인이 아닐까 생각하고 싶은 존재의 음성.







초단편이라 금방 읽었다. 읽는 내내 독특하다는 생각을 했다. 사철 누드 제본으로 된 이 책, 정아리의 일러스트가 소설을 몽환적인 분위기로 이끌어준다. 온 우주를 누비는 기분이다.

나 같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소설의 주인공 희수는 부정적인 의미의 자신을 떠올린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외로워서 돌아버리기 직전의 나였다면 무릎의 소리라도 반가웠을까? 내 안의 자아 2, 자아 3과 종종 대화를 나누는 나는 희수와 무릎 존재의 대화가 낯설거나 우습지 않았다.....






그곳에서 선택된 자와 선택받지 못한 자가 있을지도....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잠 못 드는 밤, 희수는 이어폰을 꽂고 천변을 달렸다. 내가 잠 못 드는 밤 책을 친구 삼듯이....


다시 돌아오면 자랑하겠다는 말을 남긴 존재는 떠나버렸다. 존재가 돌아올 때까지 희수도 무언가가 되어 있을까? 나도 무언가가 되고 싶다.. 누구든 원하는 무언가가 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게 이 소설은 특별히 무언가를 위로하지 않으면서도 다정한 위로가 되었다.


걷어차이는 사다리 말고, 흑수저 출신의 N 포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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