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헤겔과 현대 사회 ㅣ 오퍼스(OPUS) 총서 7
찰스 테일러 지음, 박찬국 옮김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24년 11월
평점 :
찰스 테일러 (지음)/ 세창출판사(펴냄)
'현대가 묻고 헤겔이 답하다'라는 역자의 소개 글은 헤겔이 묻고 현대 사회가 답하다는 문장과 같다. 헤겔을 논하지 않은 철학자가 없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헤겔을 설명하는 명제로써 단순히 변증법, 정반합을 논하는 정도의 수준이 아니다. 우리는 어쩌면 헤겔의 그림자를 통해 현대를 해석하는 것이 아닐까, 슬라보예 지젝에 의해 오히려 그가 살았던 당대 사회 못지않게 그 존재감을 증명하는 헤겔. 그가 위대한 이유는 존재 증명에 대해, 좀 더 쉽게 말하면 '있음'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그 대답은 철학자들이 할 것이 아니라 우리 현대인들이 해야 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읽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쓰기 위해서라고 대답했다.
사람이 살면서 몇 가지 고비를 넘긴다고 하는데 올해가 그중 하나인가 싶을 만큼 많은 일들이 있었다. 돌아보면 최고이자 최악의 해였던 2024년. 다시 돌아보고 싶지도 않을만한 사건(바디우적 사건)들이 있었다. 올해 다시 읽는 이유를 묻는다면 나는 이제 더 솔직하게 대답할 수 있다. 읽는 이유는 하나다. 살기 위해서!라고 대답하겠다. 살아있기 위해서, 더 잘 살아있기 위해서...... 죽어있는 상태가 간절히 살고 싶다.
철학 책 한 권 읽는 데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문단 하나를 뛰어넘는 데 며칠이 걸린다. 다시 서문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목차를 더듬다가 몇 번이나 걸려 넘어진다. 이제 거의 완독까지 왔구나 싶었을 때 간단한 소감 한 줄도 쓸 수 없어서 다시 책의 서두로 가서 매만지게 된다.
이 책을 만나기 위한 선작업으로 우선 헤겔을 알아야 하고 (내가 다 알았다는 얘기 절대 아님), 이 책의 저자인 찰스 테일러가 쓰신 〈헤겔〉이나 〈자아의 원천들〉 정도는 읽어두면 좋다. 슬라보예 지젝을 함께 알아두는 것도 좋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거의 한 달 붙잡고 있었는데 오늘 문득 '나는 여전히 제자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름 돋는 무서운 경험이었다. 이제 뭘 좀 아는 것 같았는데 돌아보니 아는 게 하나도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 '드러남'에 대한 공포...... 철학 책 읽다가 느끼는 공포라니!! 사람들은 비어있음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채운다. 헤겔 철학으로 채우고 헤겔의 시대 그와 함께 했던 삼총사 횔덜린과 셸링.... 헤겔의 삶을 추적하면서 그와 관계된 인연들을 살펴보다가 문득 거기서 멈췄다!!!
헤겔을 읽다가, 내 의식의 흐름은 여러 과제를 만났다. 천재 철학자 셸링과 그의 연인 카롤리네에게로 (누가 철학자들의 사랑 이야기책으로 좀 써줬으면^^) , 왜 이 여자는 대내외적으로 문화적인 업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기억에 악하기만 한 존재로 남게 되었을까? 이 부분 아직 더 해결해야 할 과제.
그리고 헤겔이 있기 전 칸트의 철학, 라캉, 들뢰즈, 가다머, 데리다 그리고 슬라보예 지젝까지 (지젝 책 최근 번역서 #잉여향유 읽는 중!!!) 사실, 나는 늘 마음에 담고 있던 인생철학자 지젝을 만나기 위해 위 모든 작업을 한 것 같다. 심지어 그와 동시대를 사는 행운이라니!!!!
헤겔의 철학은 바깥 없는 담론이다.
헤겔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 대가를 먼저 정확히 평가해야 한다는 푸코의 사유를 접고서 이제 본 텍스트 #헤겔과현대사회 로 다시 돌아가서,
1931년생이신 찰스 테일러, 현존하는 위대한 철학자 중 한 분!!
헤겔 연구서 그의 대표작인 1080페이지 분량의 벽돌 책 「헤겔」 을 조금 압축하여 다시 쓴 책이다. 헤겔은 자신의 철학을 통해 당대 사회에 어떤 영향력을 끼쳤는지 그리고 여전히 현재성을 포함한 존재인 헤겔의 철학을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책 서문을 보면 그의 전작 〈헤겔〉에서 어려운 부분을 과감히 삭제하고 조금 쉽게 쓰셨다고 하는데 .... "네에"??!!!!!
헤겔은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 당대에 이미 철학자가 누릴 수 있는 모든 위상을 경험했고 스타 철학자로 매 강의마다 청중이 차고 넘쳤으며 멀리 러시아에서 귀족들이 마차를 타고 강의를 들으러 올 정도로 인기에 인기를 누린 분인데 과연 그들이 헤겔 철학을 알고 들었을까 싶은 의문이 있다 ㅎㅎ
헤겔 이후 수많은 철학자들이 그를 해체하고 넘어서려 했지만 모두 제 발에 걸려 넘어진 푸코의 말처럼, 헤겔을 넘어서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
헤겔이 제시한 개념들 절대지는 반드시 해체되어야 할 주적인 것처럼 여겨지던 시절도 있었다. 헤겔은 어떤 이들에게 보수적인 철학자로 혹은 파시즘의 원조로 기억되지만 헤겔 연구자 찰스 테일러는 헤겔은 보수주의자도 자유주의자도 아닌 시대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그만의 '독특한' '정치철학'이었다고 말한다.
이는 저자가 헤겔을 오늘날의 시각에서 판단하지 않고 헤겔의 시대 속으로 걸어들어가 헤겔에 대해 엄중한 평가를 했기 때문이 아닐까? 책에서 저자는 헤겔이 '스피노자주의'라거나 '범신론'이라고 비난받았던 이유에 대해서도 분석한다. 또한 헤겔이 칸트나 피헤테로부터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삭제했는지도 언급한다.
아니 근데!! 정신현상학 서문 부분& 헤겔의 역사철학 부분에서 카라마조프의 이반을 살짝 언급하시는 저자님 ㅎㅎ (기승전 도스토옙스키 여기서도 !!!) 프랑스 혁명에 대한 헤겔의 분석, 계몽주의는 지성의 편협한 관점이기에 아무것도 이성적 의지를 방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다. 인간이 더 위대한 주체라는 사실. 헤겔의 정치철학보다 이 책 저자님의 해석이 더 흥미롭다. 공포정치는 죽음과의 대면에서 생긴다는...
혹은 나폴레옹이나 심지어 파멸적인 결과들도 그 나름의 기여를 했다고 보는 관점들. 저자의 생각은 헤겔의 정치철학을 다루는 장면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근대사회의 전개에 대한 헤겔의 예상이 빗나간 부분까지 짚어낸다. 철학의 과제, 이성적인 인간의 주체성 나아가 완성에 도달하는 부분까지!
헤겔의 철학을 단순히 분석하는 정도가 아닌 저자만의 관점으로 다시 말하는 책이다. 헤겔이 제시 질문들은 이 책이 처음 쓰인 1979년보다 더 현실적인 모습으로 우리 사회에 접근해 있다. 헤겔의 시의성!!! 여전히 논쟁적인 뜨거운 철학자!!
덧. 이 책은 내게 철학으로 가는 출발점이지 결과물이 아니다. 그래서 읽기 시작한 정신 현상학, 천 개의 고원, 그리고 슬라보예 지젝....
한 줄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텍스트를 붙들고 두통에 시달리면서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은 생각이 들어야 하는데 그저 단순히 즐겁기만 하다니!!! 최고의 연말이 아닌가!!
→적다 보니 리뷰보다 인용문이 더 중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런 책은 처음이다 ◁◁◁◁
▷ 만약 우리가 본질적인 것, 즉 보편적 이성과 일체가 된다면 우리는 세계사는 물론 이러한 우연성과도 화해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실제로 자기 자신을 보편적 이성의 매체로 보게 되면 죽음은 이제 '낯선 것이 아니게 된다. 그것은 계획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러한 의미에서 이미 죽음을 넘어서 있다. 죽음은 이제 한계가 아니며 그것을 초월하는 이성의 생명 속에 흡수되는 것이다. p120
▷ 헤겔이 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끊임없이 원자론적 공리주의적 도구주의적 인간관과 자연관으로부터 비롯되는 환상과 왜곡을 비판할 필요를 느끼고 있으며 그와 동시에 그러한 왜곡이 끝없이 산출하는 낭만주의적인 반대 환상을 꿰뚫어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성의 필연적 전개에 관한 헤겔의 존재론이 그가 공격하는 학설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는 환상적으로 생각된다고 할지라도 그가 우리에게 말할 만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이유는 그가 심원한 통찰력으로 계몽주의적 인간관과 자연관의 환상과 곡해를 비판하고 있다는 데 있다 p156
▷ 헤겔은 〈정신〉의 구체화인 이러한 구체적인 공동체들을 민족정신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민족정신들이 역사의 주체이다. 우리가 여기에서 관계해야만 하는 〈정신〉은 민족정신이다 p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