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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거란전쟁 - 상 - 고려의 영웅들
길승수 지음 / 들녘 / 2023년 11월
평점 :

고려사는 조선사에 비해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고려왕조는 조선왕조만큼이나 긴 세월동안 한반도를 지배해 왔는데 체계적인 사료가 많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이 아쉬울 뿐이다. 이번에 길승수 작가님이 KBS 대하사극을 준비하면서 고려사 중에서 고려와 거란의 2차 전쟁 부분을 사실에 기반한 소설로 탄생시켰다.
맞는 말일지는 모르지만 삼국지만큼이나 생동감 넘치는 필력으로 전쟁사를 고려와 거란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부분이 특히 마음에 든다. 당시 우리나라를 둘러싼 국제 정세에서 송나라는 지고 있고, 거란이 뜨고 있는 시점의 미묘한 지정학적 스토리가 박진감을 더해준다.
서희의 담판으로 거란의 1차 침입을 훌륭하게 물리친 고려는 강조의 정변을 구실로 2차 침입을 받는다. 2차 침입은 거란의 황제가 직접 40만에 가까운 대군을 이끌고 위세를 과시한다. 거란에서는 강조의 정변이 고려를 침공할 훌륭한 빌미를 제공한 셈이다.
강조의 정변으로 황제가 바뀌는 상황을 구실로 고려를 침공한 두 나라는 흥화진에서 맞붙는다. 책의 시작은 거란의 군대가 고려를 침공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어떤 나라 못지 않은 체계를 갖춘 거란의 황제와 신하들의 말과 행동을 실감있게 다룬다. 황제가 직접 나선만큼 거대한 전공을 세워야 하는 부담으로 첫 산성 전투를 치루지만 고려는 만만치 않다.
거란의 계속된 산성 공격은 고려에 큰 타격을 입히지 못하고, 고려군은 훌륭한 수성의 실력을 보여준다. 고려군은 '모루와 망치'라는 우회 기습 작전으로 거란군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하지만 거란군 또한 오합지졸이 아닌 정예군의 실력으로 맞붙는다.
특히 오늘날의 계엄사령관이라 할 수 있는 통군사 최사위의 문무를 겸비한 통솔력, 인품 등은 21세기 지도자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충분할 듯 하다. 아마도 작가가 이런 부분을 의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훗날 귀주대첩에서 대승을 거둔 강감찬이 활약할 귀주는 구주라 표기되고, 이 곳에서는 구주군과 항마군으로 나뉘어 거란과 대치한다. 정예군으로 구성된 구주군과 일반평민으로 구성된 항마군의 전략 차이에도 불구하고 치열한 전투에 임하는 태도가 존경스럽다.
항마군이 포위된 구주군을 구출하러 가는 장면은 진정한 의(義)의 표본을 보여준다. 구주군은 전국 방방곡곡 명성이 자자한 고려 최고의 군대로 최고의 활약을 보여준다. 최량이 지은 구주군가는 위기에 처할 때마다 구주군을 위험에서 구해내는 원동력이 된다.
1010년 11월부터 12월까지의 전쟁사를 난중일기처럼 시간순으로 적어놓아서 마치 역사서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어떤 부분은 고구려 시대의 살수대첩을 보는 듯 하며, 어떤 부분은 조선시대의 명량대첩을 보는 듯도 하다.
작가가 강조한 것처럼 조선시대에 이순신이 있다면, 고려시대에는 양규가 있다. 이순신의 활약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양규의 인물은 새롭지만 고려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결코 가볍지 않다.
고려시대 중에서 거란과의 전쟁 부분에 양규의 인물을 중심으로 고려인들이 뭉치는 진정한 전쟁소설의 백미가 아닐까 한다. 하편에서 계속 이어지는 치열한 전쟁의 스토리를 한 숨에 읽어 내려 가보려 한다.
비록 소설이지만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내용들이 많이 나오고, 그 동안 몰랐던 부분에 대해 많이 알게 해준 삼국지 같은 소설이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감사하게 읽고 주관적인 의견을 적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