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이자 작가인 리어노라 캐링턴의 '내 플란넬 속옷'을 오디오북(세계 여성 작가 페미니즘 SF 걸작선)으로 들은 후 찾아 읽었다. 단편집 '내 플란넬 속옷'의 표제작. '야자나무 도적(원제 Sisters of the Revolution: A Feminist Speculative Fiction Anthology)'에도 수록.


Untitled - Leonora Carrington - WikiArt.org


[네이버 지식백과] 레오노라 캐링턴 [Leonora Carrington]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294099&cid=40942&categoryId=34394


나는 섬에 산다. 감옥에서 나올 때 정부가 내준 섬이다. 불모의 섬이 아니다. 분주한 대로(大路) 한가운데 자리한 교통섬이라 차들이 낮이고 밤이고 사방에서 굉음을 내며 질주한다.

플란넬 속옷 외에 나는 신사들이 골프를 칠 때 입는 트위드 재킷을 입는다. 누가 준 것이다. 그리고 운동화도 있다. 양말은 신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뭐라 분류할 수 없는 내 외양을 보고 몸을 사리지만, (주로는 여행 책자에서) 나에 대해서 들은 바가 있는 사람들은 순례를 온다. 아주 간단한 문제다. - 내 플란넬 속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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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모욕하는 걸작들'로부터

[네이버 지식백과] 멕시코 초현실주의자들 (라틴 아메리카 문화의 이해, 2000. 8. 15., 정경원, 서경태, 신정환)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808689&cid=62119&categoryId=62119



그렇다면 여성들은 초현실주의에서 배제되기만 했을까? 물론 그렇지 않다. 지금껏 덜 조명되었을 뿐, 여성 초현실주의 창작자들의 존재는 꾸준히 예술의 지평을 넓혀왔다.* 여성 초현실주의자들은 특히 자서전과 자전적 소설을 많이 썼다. 이 여성들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삶에 대해 말하며 남성 초현실주의자들이 여성을 대상화해 존재를 왜곡한 것에 저항했다. 그들의 일기와 자서전은 당대를 반영하는 자료인 동시에 남성 예술가의 시선을 벗겨내고 여성 작가들의 관계를 드러내는 수단이 되어주기도 한다. 예를 들면 리어노라 캐링턴과 레메디오스 바로가 멕시코에서 서로를 분신처럼 여기며 함께한 글쓰기 작업이 그렇다. 여성 초현실주의자의 재발견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실체가 있는 인격체인 여성 예술가들의 창작을 우리는 아직 제대로 알지 못한다.
 
* 초현실주의 예술은 운동으로서의 초현실주의가 종결된 후에도 여러 형태로 변형되어 지속되었다. - 아름답게 미친 여자들, 그들은 누구인가 _이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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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서점의 오월 - 80년 광주, 항쟁의 기억' 중 '3부 항쟁은 끝나지 않았다'로부터 옮긴다.



'녹두서점의 오월' 3인 공저자 중 한 사람인 김상집이 지은 '윤상원 평전'도 담아둔다.


1981년 2월 대통령이 된 전두환이 광주를 방문한다는 정보를 알게 되었다. 전두환이 미국을 방문한 직후 ‘전남 초도 순시와 영광 원자력발전소 기공식에 참석하려고 광주에 온다’는 것이다. 전두환에게 우리의 의사를 알리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광주학살의 총책임자인 전두환에게 우리 가족들이 구속자들의 사형이 집행될까 봐 얼마나 애태우고 있는지 보여 주기로 했다. 우리는 ‘사형수를 없애 주세요’, ‘광주 구속자 석방’이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만들어 전두환이 지나가는 연도에서 기습 시위를 할 계획이었다.

전두환이 광주에 오는 2월 18일, 나는 오전 수업만 하고 조퇴를 했다. 남편 면회를 마치자마자 약속 장소인 YMCA 앞으로 갔다. 오후 6시경부터 도청 앞에 제복을 입은 사람이 드문드문 보이더니, 어느새 경호원들로 보이는 사복 차림을 한 사람들이 도로 주변을 가득 채웠다. 우리 가족들은 20명 정도 모였으나 눈에 띄지 않게 서로 떨어져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밀려왔다.

전두환과 직접 마주친다고 생각하니 항쟁 기간에 느꼈던 공포가 다시 엄습했다.

어두워지기 시작할 무렵 저 멀리 전두환과 이순자가 탄 차가 나타났다. 앞뒤로 경호하는 차가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연도에는 동원된 공무원들이 서 있었으나 아무도 박수를 치지 않았고, 무거운 침묵만이 흘렀다. 전두환이 탄 차가 YMCA 앞을 통과하는 순간, 나는 소리쳤다.

"가자!"

그러고는 차도로 뛰어들었다. 플래카드를 든 어머니들도 모두 뛰어왔다. 그때 전두환은 뛰어나오면서 소리치는 우리를 환영 인파로 알았을까? 그는 차창 밖으로 손을 내밀고 흔들었다. 전두환의 손이 내 앞으로 다가오자 나는 전두환의 손을 부여잡고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쳤다.

"사형수를 없애 주세요, 구속자를 풀어 주세요!"

그 순간 일대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어머니들이 든 플래카드는 순식간에 경호원들의 손에 찢어졌으나, 어머니들은 온몸으로 대통령이 탄 차를 막았다.

잘 훈련된 경호원들은 권총을 빼 들고 우리 가족들을 겨누며 밀쳐냈다. 철커덕 철커덕 총알을 장전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한순간이었다. 전두환이 탄 차는 도청 안으로 사라졌다. 우리 주변으로 순식간에 경호원과 시민들이 몇 겹으로 모여들었다. 많은 시민이 몰려드는 것을 본 경호원들은 감히 총을 쏘지 못했다. - 2장 살아남은 자 2: 폭도 (정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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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잇고 2024-05-18 17: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아.. 짧은 글만 읽어도 그 긴장감과 안타까움이 느껴지네요....ㅠㅠ

서곡 2024-05-18 18:10   좋아요 2 | URL
1981년에 감히 광주를 방문한 전**......차창 밖으로 선뜻 손 내미는 만용을 좀 보세요

서곡 2024-05-18 18:11   좋아요 2 | URL
죽음을 각오하고 그 앞으로 돌진한 분들의 용기가 정말 대단합니다

서곡 2024-05-18 18:15   좋아요 2 | URL
멈추지 않고 서울 명동성당에서 단식농성까지 하여 결국 특별사면을 이끌어내십니다

렛잇고 2024-05-18 18: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ㅠㅠ 하아... 뭐라 말할 수 없는 갑갑함을 느낍니다.
 

'몸, 멈출 수 없는 상상의 유혹'(허정아 지음)이 아래 글의 출처.


https://dic.daum.net/search.do?q=abut 레메디오스 바로의 'abut'은 정신분석학자 김서영의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무의식에 비친 나를 찾아서'에도 나온다. 김서영의 이 책 표지화는 레메디오스 바로의 '불면증'. https://v.daum.net/v/20210604142607321 바로의 '불면증'을 소재로 미술사학자 이주은이 쓴 칼럼. 이주은의 책 '그림에, 마음을 놓다'에 레메디오스 바로의 '환생'이 있다고 한다.



Abut - Remedios Varo - WikiArt.org


Born Again - Remedios Varo - WikiArt.org


국내에 출간되었던 '레메디오스 바로, 연금술의 미학'은 현재 절판.




초현실주의 작가 레메디오스 바로의 작품이다. 중세의 연금술사처럼 보이는 여인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자 그 속에서 자신과 똑같은 모습의 분신이 나타난다. 이것은 인간에 내재된 본질적 욕망, 자신의 분신에 대한 상상력을 보여준다. 몸에 대한 상상력은 몸을 벗어나고자 하는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과 떨어질 수 없다. 자신의 몸을 떠나 다른 몸을 상상하는 것, 이것이 몸을 상상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 01 상상과 현실, 그 사이를 흐르는 몸 / 2부. 또 다른 ‘나’, 몸 밖을 상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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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4-05-18 0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곡님 덕분에 ˝레메디오스 바로˝ 구글 검색해보니 엄청나네요^^ 책 제목과 딱인 그림이네요^^ 책은 아직 못 읽어봤지만

서곡 2024-05-18 11:31   좋아요 0 | URL
네 꿈꾸는 듯한 느낌이지요? ㅎㅎ 주말 잘 보내시길요!
 

로베르토 볼라뇨의 장편소설 '부적'에 화가 레메디오스 바로가 등장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레메디오스 바로 [Remedios Varo]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294102&cid=40942&categoryId=34397



그녀는 나에게 들어오라고 한다. 그녀는 찾아오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말한다. 내가 앞서 걸어가고 그녀가 뒤따른다. 들어가요, 들어가세요. 그녀가 말한다. 나는 조명이 희미한 복도를 따라 두 개의 창문이 있는 널찍한 거실까지 걸어 들어간다. 창문은 안뜰을 향하고 있고 한 쌍의 무거운 연보랏빛 커튼이 드리워져 있다.

나는 창 쪽으로 다가가 커튼을 젖힌다. 검은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눈에 들어 온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등 뒤에서 레메디오스 바로가 미소를 지으며 동시에 내가 누군지 궁금해 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창문은 작은 안뜰을 향해 있고 그곳에선 다른 대여섯 마리 고양이들이 낮잠을 자고 있다. 고양이가 참 많네요! 모두 당신 거예요? 대충 그래요. 레메디오스 바로가 대답한다. 나는 그녀를 쳐다본다. 검은 새끼 고양이가 그녀의 품에 안겨 있다. 레메디오스 바로가 고양이에게 카탈루냐어로 말한다.

얘야, 야옹아. 어디 있었어? 한참 찾았잖아, 야옹아 bonic, on eres?, bonic, feia hores que et buscava. - 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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