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민파파의 회고록'(토베 얀손)으로부터 옮긴 아래 글 속 "해티패티"는 해파리 비슷한 동물이다.

사진: UnsplashIbrahim Alonge 해파리 사진들을 보고 해파리의 신비를 새삼 느꼈다.


'우리는 예술가다 - 위대한 여성 예술가 15인의 삶 그리고 작품 이야기'에 '토베 얀손, 핀란드 ― 살아 있는 예술' 편이 실려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가만히 앉아 수평선을 향해 항해하는 해티패티들을 바라보았다. 나는 해티패티들과 함께 신비로운 여행을 하며 허송세월하고 싶다는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삐딱한 톱니바퀴 두 개가 흐르는 강도 아닌 바다에서 어떻게 작동해서 배를 움직였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신비롭기까지 하다. 그러나 관점을 바꾸어 보자. 해티패티가 자신의 전기로 (혹자는 그리움 또는 불안이라고 말하지만) 나아갈 수 있다면, 배가 톱니바퀴 두 개로 바다를 헤쳐 나간다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

- 제3장……이 장에서는 나의 명예로운 첫 구조 작업과 그 충격적인 결과, 그에 따른 몇 가지 생각과 니블링의 습성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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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오늘 '괴테와 융'(이부영)을 읽고 있었다.

사진: UnsplashMohammad Alizade 녹 사진을 찾아보며 녹이 아름다운 피사체라는 사실을 불현듯 깨닫게 된다.






"무의식은 그야말로 수프 속 머리카락 같은 것이다. 그것은 완전무결함 가운데 조심스럽게 숨겨진 불완전함, 즉 모든 이상주의적 요구의 고통스러운 부인으로서 인간 본성에 달라붙어 그것이 열망하는 완전무결한 순수성을 비통하게 흐려놓는 대지의 잔여물Erdenrest이다. 연금술적 사고에서 녹은 녹청과 마찬가지로 금속의 질병이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금속의 나병이야말로 철학적 금을 준비하기 위한 토대인 ‘참된 원질료’vera prima materia다."* *칼 구스타프 융, 기본저작집 제5권, 201쪽

녹이 슬어야 동전이 비로소 제값을 지니게 된다는 철학자 탈레스의 말은 연금술의 뜻풀이였다면서 융은 인간정신의 전체성에 관한 저 유명한 주장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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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오늘의 포스트로부터: '세계사를 바꾼 50권의 책' 중 '침묵의 봄'(레이첼 카슨) 편이 아래 글의 출처이다.

Bronze sculpture of Rachel Carson. Artist: Una Hanbury (1904-1990) Year: 1965 By Bailey614






케네디 대통령은 과학 자문위원회를 구성하여 《침묵의 봄》에서 제기한 주장을 검토하도록 지시했고, 그 결과 농업에서 DDT의 사용이 전국적으로 금지되었다. 또한 카슨은 농무부가 농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동시에 살충제 규제도 책임지고 있으므로, 이해의 충돌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1970년 미국 환경 보호청이 새로 설립되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의의는 《침묵의 봄》으로 인해 환경 논쟁의 조건이 변화하고,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대중에 환경 운동이 확산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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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손정수 교수가 악스트 Axt 2021.11.12 월호에 발표한 '존재의 심연에 다가가는 두 가지 이야기 방식 —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과 「마틸다」'가 아래 글의 출처이다.

The lost Paradise, c.1897 - Franz Stuck - WikiArt.org






산드라 길버트와 수전 구바의 『다락방의 미친 여자』(1979)에서는 『프랑켄슈타인』을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과 함께 밀턴의 『실낙원』에 대한 여성적 대항서사로 설명한다. 『프랑켄슈타인』이 『실낙원』을 의식하고 있다는 증거는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그로부터 인용한 "제가 청했습니까, 창조주여, 흙으로 나를 인간으로 빚어달라고? 제가 애원했습니까, 어둠에서 끌어올려달라고?"라는 구절이 에피그램으로 삽입되어 있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그러니까 『실낙원』의 아담의 자리가 『프랑켄슈타인』에서는 괴물로 대체되고 있는 것인데, 저자들은 괴물과 그를 만든 빅터 프랑켄슈타인, 그리고 그들을 만든 메리 셸리가 공유하는 소외와 죄의식이라는 유전자를 감식해내면서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남자 괴물이 실은 위장된 여성"*이라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산드라 길버트·수전 구바, 『다락방의 미친 여자』, 박오복 옮김, 이후, 2009, 423쪽. - 손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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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때문에 '실낙원'을 찾아 보았었다. 아래 글의 출처는 아르테 출판사의 '프랑켄슈타인'(이나경 역) 역자해제로서 "퍼시"는 '프랑켄슈타인'의 저자 메리 셸리의 남편인 시인 셸리의 이름이다.

Portrait of Eve, 1578 - Giuseppe Arcimboldo - WikiArt.org






익명으로 발표되었으나, 퍼시의 작품으로 여겨지던 『프랑켄슈타인』은 1831년, 스탠더드 소설 시리즈에서 새로운 판본으로 출간되면서 메리 셸리의 저작임을 정식으로 밝히게 되었다.

프랑켄슈타인의 이야기는 기독교 창조 신화의 패러디이기도 하다. 피조물이 글을 배우고 혼자 읽은 책으로 존 밀턴(John Milton)의 『실낙원』이 등장하는 것이 이 유사 관계를 재확인한다. 다만, 신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인간 창조는 프랑켄슈타인에게서 쓰디쓴 실망과 악몽으로 반복된다. 신에게서 부여받은 고유한 자질, 인간을 초월적인 존재로 승격시키는 상상력에 대한 믿음은, 프랑켄슈타인에게서 태어난 추한 괴물에 의해 가차 없이 좌절당한다. 비평가들이 지적했듯이, 피조물이 맑은 웅덩이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놀라는 장면은 『실낙원』에서 시냇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는 이브를 환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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