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ucalion and Pyrrha Praying before the Statue of the Goddess Themis, c.1542 - Tintoretto - WikiArt.org






커다란 무덤이 있었어요. 왕릉만큼 크진 않았지만, 끗발 있는 사람 무덤으로 보였지요. 묏등에 잔디는 없이 흙만 있었고요. 아는 사람들 여럿이 그 무덤을 파헤쳤는데, 제가 삽을 들고 무덤을 찌르니까 이상한 게 하나 딱 걸리더라고요. 송장인가 싶어 살펴봤는데, 넓직한 돌이 있고 한가운데 금이 가 있었고 그 금 속으로 제가 삽을 푹 넣었어요. 콱 찍었지요. 그랬더니 꺼먼 발이 하나 나와서 꿈틀대더라고요. 양말을 신고 있는 발이었어요.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하긴 꿈이니까 이런 일도 벌어지겠네요. (웃음)

- 그리스 신화에 보면 삽자루가 긴 오래된 삽이 나와요. 성서에 노아의 홍수가 있지요. 그리스에도 대홍수로 멸망하는 신화가 있는데, 이때 노아처럼 유일하게 살아남은 인간이 듀칼리온과 피라예요. 이 둘이 다시 세상을 창조하지요. 피라가 삽자루가 긴 삽을 들고 있는데, 이는 공동체를 재건한다는 의미예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듀칼리온과 피라 부부는 참혹한 대홍수 가운데서 살아남은 뒤 제우스에게 제를 올린다. 제우스는 세상을 재건하기 위한 사람을 달라는 듀칼리온의 소원을 들어주는데, 듀칼리온이 던진 돌은 남자가 되고 피라가 던진 돌은 여자가 되었다.

- 삽으로 돌을 찍어내렸을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 그리 나쁘지 않았어요. 삽은 네모 삽이었지요.

- 피라의 삽도 네모 삽이에요. 우리가 대형 공사를 시작할 때 첫 삽을 뜬다는 표현을 하잖아요. 이런 표현의 배경에는 신화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을 거예요. 우리가 알든 모르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권여선 작가의 '안녕 주정뱅이' 수록작 '봄밤'에 인용된, 톨스토이의 '부활'에서 분자와 분모로 사람을 가늠하는 방식이 아래 밑줄긋기에 있다.

Spring Night, 1965 - Horia Bernea - WikiArt.org


부활의 봄밤 - 권여선 ‘봄밤’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399503&ref=A (손정수)




노보드보로프가 많은 혁명가로부터 크나큰 존경을 받고 있고, 매우 박학다식하고 똑똑한 사람이란 평가를 받고 있음에도 네흘류도프는 그를 도덕적 자질로 따지면 중간도 못 가는 형편없는 혁명가로 분류했다. 분자에 해당하는 그의 지력은 엄청났지만 분모에 해당하는 그의 자만심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서 이미 오래전에 그의 지력을 능가해버렸다.

노보드보로프는 혁명과 관련된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확고한 논거를 통해 거창하게 설명할 줄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흘류도프가 보기에 그의 혁명활동은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자 하는 허영심과 공명심의 발현에 불과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본 적도 만난 적도 없지만 먼저 태어나 살다 간 언니가 있었다. 그게 바로 작가 아니 에르노가 마주한 가족의 숨겨진 비밀이다. 그녀는 그녀의 방식으로 - 냉철하면서도 감정을 배제하지 않는 - 죽은 언니를 진혼한다. 태어나자마자 죽은 언니가 있는 한강 작가의 '흰'이 떠오른다.

The Two Sisters, 1891 - Maurice Denis - WikiArt.org






부모님과 나 사이에는 이제 당신이 있어요. 보이지 않지만 사랑스러운 당신이. 나는 당신에게 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멀찌감치 밀려났습니다. 당신이 영원한 빛에 둘러싸여 하늘 위를 날아다니는 동안 난 그늘로 떠밀려갔지요. 무남독녀라 누구와도 비교당하지 않고 살던 내가 비교의 대상이 된 거예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Beach at Gravelines, 1890 - Georges Seurat - WikiArt.org






끝나고 나니 필자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처음 생각한 것과 어떻게 다른가?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가 쓴 글에 ‘난폭하게 굴어도 좋다‘고, (요약이) 부정확하거나 대강대강으로 느껴지더라도 괜찮다고 허가해야 한다. 말은 조금의 뒤틀림도 없이 누군가의 머리로 들어가지 않는 법이다. 우리는 비틀림의 성격을 알아야 한다.

필자가 말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고 여기는 내용을 요약하라. 이 글이 ‘이런 얘기였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내용을 요약하라. 과장되게 요약하라. 글을 조롱하거나 패러디한다면 어떻게 요약하겠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릴 때 보고 많이 슬펐던 기억이 오랜만에 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