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이 초파일이자 어버이날이었다. 한강 작가의 '아기 부처'에 관한 아래 논문으로부터 일부 여기 옮긴다.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불성을 지니고 있다(一體衆生, 悉有佛性)는 인간의 끝없는 변화 가능성을 믿는 어머니는 과거를 뉘우치며 수행하는 선오후수(先悟後修)하는 인물이다.

 

어머니는 심즉불(心卽佛)을 믿고 수신(修身)하고 있고, ‘나’는 꿈에 진흙으로 아기 부처를 빚어내고 있다. 그것이 흉측한 이미지의 부처라 하더라도 마음에 부처가 이미 자리하고 있음을 의미하므로 두 인물이 불성(佛性)을 믿고 있다는 점에서도 동일하다.

 

현재의 어머니의 발화는 인용 부호로 처리되고 있는데 반해, 과거의 어머니의 말에는 인용 부호가 생략되어 있다. 그것은 ‘나’와 ‘어머니’의 경계를 지워버림으로써 어머니의 말은 서술자인 ‘나’에게 귀속되어 ‘나’의 말이 된다. ‘눈물로 세상을 버티려고 하지 마라’는 어머니의 말이면서 스스로를 통박(痛 駁)하며 촉구하는 자신의 말이다.

 

한 인물임을 말해주는 장치로써 일체동근(一體同 根)임을 의미한다. 단지 어머니의 수신(修身)에 자극이 되어 불현듯 깨달음에 이른 것이 아니다. 어머니의 수행이 곧 ‘나’의 수행이 되어 일상의 지속적인 수련의 결과로 변화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날카롭고 차가운 금속성의 이미지로 가득한 세계는 부처가 든 ‘연꽃 봉오리’를 피어나게 하려는 수행으로 생명력이 있는 식물의 세계로 변한다. 마음의 겨울을 견디는 동안 상처에 내성이 생기면서 비로소 봄을 맞게 된다. 그곳은 “어린 싹 같은 연푸른빛이 생생하게 차올라 있는” 곳이며, ‘철조망을 너머 날아가는 푸른 산까치’처럼 인식의 경계 를 넘어서게 된다.]출처: 관(觀) 수행으로 본 한강의 「아기 부처」2015 방민화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978573




사진: UnsplashY.H. Zh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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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엽의 '청춘을 불사르고'에 나오는 내용인데 김일엽은 어릴 때 윤심덕과 같은 동네에 살았나 보다. 일엽은 심덕이 등교하는 모습이 너무 부럽다. 나이는 일엽이 한 살 위다. 


[네이버 지식백과] 윤심덕 [尹心悳] (한국근현대사사전, 2005. 9. 10., 한국사사전편찬회)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20015&cid=62048&categoryId=62048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452861&ref=A 2022년 4월 30일 뉴스 (윤심덕 미공개음반 발견)

다홍 저고리에 까만 치마를 입고, 해죽해죽하며 우리집 앞을 지나 학교로 걸어가는 윤심덕이를 볼 때마다 나는 너무나 부러워서 멀거니 바라보느라고 정신이 완전히 팔려버리던 먼 옛날의 일이, 생각할 때마다 떠오른다.

나는 심덕이가 자유롭게 학교 가는 것이 너무나 부러워서 엄마가 홀앗이로 젖먹이 내 동생을 내게 업히기 위해, 당신도 나를 하루 바삐 학교에 입학시키려고 벼르면서도 이 핑계, 저 핑계로 자꾸 미루는 데 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때 내 나이는 만 아홉 살. 어떻게 하루 바삐 학교에 입학하게 될까 궁리하는 것이 나의 일과였다. 궁리궁리 끝에 나는 생전 처음 엉뚱하고 대담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이 업은 채 심덕의 뒤를 따라가서 간청한 결과, 심덕의 청으로 입학하게 되는 꾀를 내었다.

"아이를 업고 학교에 구경을 갔는데, 학교 못 가는 내 사정을 듣고 심덕이가 말해줬어요. 아이 보는 아이도 아이만 내려놓으면 학교에 못 다닐 리가 없다면서 우선 아이를 업고 입학부터 하라고 해요."

할수없이 엄마는 허락하게 되었다. 나는 심덕의 은혜를 깊이 느끼며,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하루도 결석하는 날은 없었다. 늦잠을 잔 날, 밥마저 늦으면 걸어서 그냥 눈을 집어 얼굴을 씻으며 학교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내가 아랫반이어서 잘은 모르지만, 그런 심덕이는 수완이 좋고 사건에나, 일에나, 교제나 다 능란하고 부모님에게도 효성스러웠다. 13, 4세부터 그 부모와, 자기와, 자기 형제의 옷을 다 꿰매고, 조석도 다 책임지면서도 여전히 학교에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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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오직 내 한 몸이 되자." 

Youth, 1915 - Kuzma Petrov-Vodkin - WikiArt.org


인생은 어렸을 때부터 나에게는 잔학하였다. 소녀 시대에 부모를 잃고 형제를 영별한 나는 철모르게 청춘 시대를 맞아 개성의 눈뜰 새도 없이 나한테 아버지뻘이나 되는 이와 이해 없는 결혼을 하였다. 그러다가 내가 차차 개성의 눈을 뜨고 인생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 때에, 나는 단연히 이때 애인도 돈도 없이 앞뒤를 돌아보지 않고 단지 대담한 일만 하였다.

그러나 요행히 세상에 버림을 바치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처세책에 활달치 못하고 경험이 적은 나는 그동안 많은 고심을 하였다.

그러나 나는 또 한 번 다시 선언한다. 내 몸은 일체불안, 일체의 속정에서 뛰어났음을 처세책에 졸렬한 나는 간혹 근신하는 태도를 취치 않고 여기저기 많이 출석하며, 또는 찾아오는 손님을 무제한으로 인사한 까닭으로 세상에서 공연한 오해를 샀다. 그러나 나는 지금 와서 확실히 깨달았다. 나는 오직 내 한 몸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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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as, 1993 - Menez - WikiArt.org


오늘날 어떤 마법사들은 찻잎이나 잔 밑바닥에 남은 커피 찌꺼기에서 운명을 알아내며, 나무들, 비, 잉크 얼룩 혹은 계란의 흰자위에서 운명을 읽어내는 마법사들도 있다. 또 단순히 손금이나 유리 구슬로 점을 치는 마법사들도 있다. 마구쉬는 그가 거처하는 숯 창고 앞에 위치한, 사람이 살지 않는 건물에서 운명을 읽어낸다. 이웃한 건물에 달려 있는 여섯 개의 커다란 창과 열두 개의 작은 창들은 그에게 카드 장이나 매한가지다.

"창문에 너의 운명이 나타나는 즉시 누군가가 그 운명을 대신 살도록 하는 게 더 현명한 처사야. 나중에 너의 운명이 너를 찾아 헤매게 해서는 안 돼. 운명은 인육의 맛을 아는 호랑이처럼 주인을 노리거든." 마구쉬는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이렇게 덧붙였다. "아마도 언젠가는 창문에서 너의 운명과 관련된 영상이 모두 사라지게 될 거야."

"내가 죽게 되는 거야?" 나는 조바심을 내며 물었다."꼭 그런 건 아니야. 넌 운명 없이도 살 수 있어." 마구쉬가 대답했다."하지만 개들조차 운명이 있잖아." 내가 항변했다." 개들은 운명을 피할 수 없어. 순종적이니까."

마구쉬의 운명은 언제나 나를 매혹시키고 나의 운명은(아무리 보잘것없어도) 그를 매혹시킨다. 하지만 결국 우리 두 사람에게 유일한 소망이 있다면 그건 우리의 운명이 보잘것없어 보이는 한 계속해서 그 집 창문을 바라보며 우리의 운명을 남들에게 선사하는 것이다. - 마구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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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elier, 1987 - Menez - WikiArt.org


카실다는 양재사다. 우리는 부르사코에 살고 있으며 수도에 가는 날이면 그녀는 힘에 부쳐 몸져누울 지경이다. 멀리 떨어져 있는 북쪽 동네로 가는 날이면 가뜩이나 더 그랬다.

"넌 이런 것들이 신경 쓰이지 않겠지. 얼마나 행복한 나이야! 너 여덟 살이지, 그렇지?" 그러고는 카실다 쪽을 보며 말했다. "키가 자라지 못하게 아이 머리 위에 돌덩이를 하나 올려놓지 그래요? 우리의 젊음은 자식들의 나이에 달려 있다오."

모두들 내 친구 카실다를 내 엄마로 생각했다. 웃겨서 배꼽 빠지겠네! - 벨벳 드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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