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읽는 중인 실비나 오캄포의 이 책에서 '우리들'이란 단편소설로부터 일부 옮긴다. 쌍둥이 형제 이야기.

우연히 발견한 그림 - 화가 이름이 Jane DesRosier





"넌 절대로 거울을 들여다보지 마! 그건 시간 낭비야! 머리를 빗거나 넥타이를 매려거든 너와 판박이인 에두아르도를 보면 돼." 우리 친구들은 내게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우리 둘이 국화빵처럼 닮은꼴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의 왼손과 오른손, 나의 오른쪽 눈과 왼쪽 눈이 서로 다르듯이 우리 사이에도 차이가 있음을 안다. 내 자랑은 아니지만, 에두아르도에 비해 나의 옆얼굴이 더 완벽하다. 인기 폭발인 볼우물도 웃을 때 보면 내 것이 더 깊게 파인다.

나는 형이 사랑했던 여자들 말고는 다른 여자들과 연애를 하려고 애써본 적이 없다. 사실 이따금씩 내가 조금만 독립적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용기가 없었다. 나는 행복하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굳이 사서 고생을 하겠는가.

"왜 늘 ‘우리’라는 복수형을 써요?" 그녀가 내게 물었다. "귀에 거슬려요?" "에두아르도는 내 애인이에요. 무슨 얘긴지 알겠어요?" 그녀가 쏘아붙였다. 나는 우울하게 발길을 돌렸다.

"넌 나인 것처럼 연기해야 돼. 그녀를 ‘나의 어린양’이라고 불러." 나 자신을 에두아르도라고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어렸을 때 비슷한 놀이를 수도 없이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를 어린양이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우리 둘이 함께라면 세상에 못 할 일이 없을 것이다. 에두아르도와 나는 보통 사람들보다 더 큰 능력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쌍둥이라고 해도 감히 어떻게 이런 행동을 할 수 있겠는가?

레티시아가 내 품에 안겨 있던 시간에 에두아르도를 본 사람들이 퍼뜨린 악의적인 소문이 그녀의 귀에까지 들어갔던 것이다. 레티시아는 에두아르도가 다른 곳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그의 품에 안길 수 있는 불가사의한 상황이나 복제 가능성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나쁜 심보로 포커 판이 벌어졌던 집에서 에두아르도의 사진을 찍었는데, 그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 사람은 사진 뒷면에 날짜와 주소를 적어 레티시아에게 보냈다.

나는 그녀가 우리 둘 중 한 사람을 살해하거나 경찰에 신고할 거라고 생각했다. 분명 수치심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어떻게 해서든지 에두아르도와 나를 갈라놓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에두아르도와 나는 짐을 꾸려 함께 그 집을 떠났다. 이제는 그 집에 사는 게 따분하게 느껴졌다. 아니, 견디지 못할 정도였다. - 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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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nold Böcklin - Gottfried Keller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 커먼즈)


[네이버 지식백과] 켈러 (독일문학사, 1989. 4. 1., 프란츠 마르티니, 황현수)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050960&cid=60603&categoryId=60603






오랫동안 돈이 모자라 허덕이는 등 근심의 그림자가 영혼에 드리울 때에도 그들은 대단한 정치적 순발력을 발휘해 차츰 원기를 회복한다. 이것이 또한 젤트빌라 사람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젤트빌라 사람들은 견해와 원칙의 변화를 좋아한다. 그래서 하나의 정부를 선출한 뒤에는 그날부터 항상 정부의 반대편에 선다.

오늘 그들은 거부권을 갖길 원한다. 심지어는 영구적인 국민회의를 가진 아주 직접적인 자치정부를 원한다.

그러나 나는 원래 이 책에서 지금까지 묘사한 젤트빌라의 특성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곳에서 일어난 몇 가지 소소한 일, 그러나 어느 정도 예외는 있겠지만 바로 젤트빌라에서만 일어날 수 있었던 일들에 대해 쓰려고 하는 것이다.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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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4-05-13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간 녹색의 하인리히 추가
 


요즘 하는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속 환영받지 못하는 십대 커플을 보며 (임신 문제는 별개로) 로미오와 줄리엣이 생각났는데 그러다가 이 책에 손이 닿아 '마을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기 시작했다. 고트프리트 켈러의 연작소설집 '젤트빌라 사람들'의 일부라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켈러 [Gottfried Keller]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1856년 1월 켈러는 「마을의 로미오와 줄리엣」(Romeo und Julia auf dem Dorfe) 등 주옥같은 이야기 다섯 편을 실은 연작소설집 『젤트빌라 사람들』(Die Leute von Seldwyla)을 출간했다. 가상의 산간도시 젤트빌라에 사는 사람들이 엮어내는 이 이야기는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켈러는 오랜 뒤 1873년에서 1874년 동안 몇 편의 이야기를 더 집필해 젤트빌라 소설집 개정판을 출간했다.

『젤트빌라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조국 스위스에 대한 작가의 애정과 염려가 동시에 녹아 있다. 켈러는 따뜻한 이해와 동시에 반어적인 비판안을 가지고 인간적 삶의 다채로움, 나아가 그 속물주의와 비극성을 정교하고도 진지하게 묘사했다. (역자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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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cine21.com/movie/info/?movie_id=10634 이 영화를 조던 필 감독의 겟 아웃과 비교해서 보면 흥미롭다. 


영화 '스켈리톤 키'에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 '스트레인지 프루트'가 연상되는, 나무에 흑인을 매달고 불을 지르는 장면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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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홉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이 제목과 주요 모티브를 제공하고 그 외의 많은 디테일이 쌓여 촘촘하게 쓰였다. 류보선의 작품해설 '식별 불가능한 세계의 발견과 그 의미'로부터 옮긴다.


다음 링크는 하성란의 이 단편으로 만든 라디오드라마로서 마지막에는 작가와 전화연결도 한다. https://archive.org/details/podcast_jongyeong-radio-dogseosil_0412il-gaereul-derigo-danineun_1000339838799


Lady with the Dog, 1903 - Konstantin Somov - WikiArt.org



겉으로 드러나는 하성란의 소설의 특이점은 여럿이다. 현재형 문체(초기의 경우), 현미경적 묘사, 말하지 않기 혹은 집요한 보여주기, 이름없는 인간들과 이름이 선명한 사물들, 도플갱어 모티브 혹은 분신 모티브, 동명이인 모티브, 그리고 최근에는 맛에 대한 히스테리적 집착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 P412


하성란의 소설은 특이하게도 서사화에서 인간의 감옥 혹은 죽음을 발견한다. 한 사람의 삶이 과거에 있었던 몇 개의 사건을 중심으로 서사화되는 순간, 그 순간 그 개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사람과 나누어 가질 수 없는 그만의 비교 불가능하고 대체불가능한 고유성의 흔적들은 모두 사라진다고 믿는다. 서사화란 곧 상징 질서에 집어삼켜지는 과정에 불과하며 그것이 이루어지는 순간 그 개인은 대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순종하는 신체로 전락한다. 그런 까닭에 하성란의 소설은 서사화될 수 없는 것들에 집착하는 한편 서사화되면서 사라진 희미한 그림자들, 맛들, 아우라들을 복원하고자 혼신의 힘을 다한다. - P412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은 나레이션이 없는 흑백화면을 보는 듯하다. 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역시 이제까지의 하성란 소설이 그러하듯 인간의 개별성 모두를 집어삼키는 상징 질서와의 처절한 쟁투가 있다.

정작 중요한 것이 덜 말해진 느낌을 준다. 우리에게 익숙한 소설의 문법에 기대어보자면, 적어도 무언가가 하나둘은 더 있어야 한다. - P413


아주 쉽게 사랑이라 획정하여 제도의 틀 안에 포획시키거나 역시 쉽게 획정하여 누군가에게 결정적인 불행을 안기려고도 하지 않는다. 다만 이 식별 불가능하고 결정 불가능한 상태를 자신의 감정의 출발점으로 삼아 그 식별 불가능하고 결정 불가능한 그것에 그녀 자신을 맡겨두려 한다. - P414


하성란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은 하성란의 소설이다. 그런 까닭에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은 말할 바를 분명하게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에 말하고자 하는 바가 없는 것은 아니다. 꼼꼼히 읽어보면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은 어떤 담론이나 이야기에 당연히 배제될 수밖에 없는 각 개인들의 마음의 무늬 혹은 마음의 섬세한 파장들을 집요하게 묘사한다. 그리고 그를 통해 이곳에 사는 우리들은 결코 순종하는 신체들이 아님을 증명하고자 한다. (류보선) - P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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