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noza wyklêty (Excommunicated Spinoza), 1907 By Samuel Hirszenberg / Public domain


[류동민의 내 인생의 책] ④ 에티카 | 바뤼흐 스피노자 https://v.daum.net/v/20170503230750193





여느 철학자들과 달리 그는 자신의 학설을 믿었을 뿐만 아니라 실천했다. 내가 아는 한, 그는 아주 격분했을 때조차 윤리학에서 비난하던 흥분과 분노에 휘둘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논쟁할 때에도 점잖고 합리적으로 참여했으며 상대방을 비난하지 않고 설득하기 위해 정성을 쏟았다.

"우리는 우주적 자연의 일부이고, 우주적 자연의 질서에 따르게 마련이다. 우리가 이것을 명석하고 판명하게 이해하면, 지성intelligence으로 정의되는 타고난 본성의 일부, 달리 말해 우리 자신의 더 나은 부분은 우리에게 닥친 일을 자신만만하게 묵묵히 따를 테고, 묵묵히 따르는 가운데 지속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어떤 인간이 훨씬 큰 전체에 마지못해 따르는 일부라면, 그는 예속되어 있다. 하지만 그가 지성으로 이해함으로써 유일한 현실 전체the sole reality of the whole를 파악했다면 그는 자유롭다. 이러한 학설이 함축한 내용은 『윤리학』의 마지막 권에서 밝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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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철학하는 시간] 스피노자 : 자연에 취하다  - 불교신문 https://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212736

암스테르담의 스피노자 동상 By Txllxt TxllxT / Creative Commons Attribution-Share Alike 4.0 스피노자는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났다.


2024 tourist people, sitting by the bronze statue sculpture of Spinoza at the square Waterlooplein, Amsterdam city. By Fons Heijnsbroek / Creative Commons Zero, Public Domain Dedication






우리는 확실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과거의 참사보다, 어쩌면 피할 수도 있는 미래의 불행에 관심을 더 많이 갖는 것이 옳다. 스피노자의 결정론은 이러한 논증에 대해 해답을 내놓는다. 우리는 무지 탓에 미래가 변경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어날 일은 일어날 테고, 미래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변경되지 않도록 고정되기 마련이다. 바로 그것이 희망과 공포가 비난받는 이유다. 희망과 공포는 둘 다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견해에 의존하며, 지혜가 없어서 생겨난다.

스피노자의 사고방식은 공포의 전횡에서 인간을 해방시키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자유로운 인간은 죽음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며, 죽음이 아니라 삶에 대한 명상을 통해 지혜를 얻는다." 스피노자는 이러한 지침을 삶 속에서 그대로 실천했다. 그는 죽음을 맞는 날에도 끝까지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고 『파이돈』의 소크라테스와 마찬가지로 흥분하지 않았으며, 여느 날처럼 흥미로운 문제에 골몰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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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독서 중인 러셀 서양철학사에서 작년에 읽은 스피노자 편을 다시 펼친다.

Spinoza, 2016 - Alexander Roitburd - WikiArt.org


[네이버 지식백과] 스피노자 - 다락방의 합리론자 (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 2017.02.17., 안광복)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407013&cid=47343&categoryId=47343





그는 데카르트와 당대 과학자들로부터 유물론과 결정론에 근거한 물리학을 수용하는데, 이러한 체계 안에서 경외심과 선the Good에 헌신하는 삶의 여지를 찾으려고 모색했다. 스피노자의 시도는 장엄해서,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조차 감탄한다.

스피노자는 결코 논쟁을 즐기는 편은 아니었지만, 너무 정직해서 당대 사람들이 충격을 받을 만한 자신의 견해를 숨기지 못했다. 그러므로 스피노자가 가르치는 일을 혐오한 것은 전혀 놀랍지 않다.

형이상학과 마찬가지로 윤리학에서도 모든 것이 증명되었을 수 있으므로 증명 절차를 만들어 내는 일이 불가결했다는 주장은 스피노자의 체계를 구성한 본질이었다.

스피노자는 이타심에 호소하지 않으며, 어떤 의미로 자기 이익 추구, 특히 자기보존이라는 본능이 인간의 모든 행동을 지배한다고 주장한다.

각기 다른 사람의 정념은 갈등을 일으킬 수도 있지만, 이성에 복종하며 사는 사람들은 화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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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타 아르헤리치, 부에노스 아이레스 2015 By Ministerio de Cultura de la Nación


마주르카 - Daum 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07m0872a




마르타 아르헤리치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그녀는 이미 8년 전에 국제적으로 알아주는 두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유럽에서 순회 연주도 했으며 발표한 음반은 만장일치로 호평을 받았다. 그럼에도 정작 그녀는 심한 슬럼프에 빠져서 자신감과 의욕을 다 잃었다. 우울증 수준의, 그야말로 실존적인 위기였다.

1965년 3월 13일에 마르타 아르헤리치는 쇼팽 콩쿠르의 역사에 일곱 번째 우승자로 이름을 올렸다.

남아메리카 출신 피아니스트가 이렇게 큰 상과 격찬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당연히 특별한 자부심을 느꼈다.

마르타 아르헤리치는 폴란드 라디오 방송사가 주는 마주르카 최고연주상도 함께 받았다. - 11. 바르샤바: 1965년 쇼팽 콩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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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쇼팽을 들은 김에 전에 읽은 '마르타 아르헤리치'를 다시 본다. 마르타는 1965년 쇼팽콩쿠르 우승자이다.

마르타 아르헤리치(1965)





"마르타 아르헤리치는 왜 그렇게 빨리 치는가?"라는 질문에 쇼팽 연주의 대가 블라도 페를뮈테르Vlado Perlemuter는 늘 이렇게 대답한다. "마르타는 그렇게 할 수 있으니까요."

쇼팽은 연주자를 독점하려는 작곡가인데 마르타는 이런 유형의 인간관계를 아주 질색했다. 그러면서도 쇼팽에게 끌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루어질 수 없는 내 사랑이지요."

그렇지만 마르타는 독주회에 쇼팽 작품이 하나만 들어 있어도 독보적인 소리가 나온다는 것을, 객석에서 즉각 행복에 겨운 신음이 터져나온다는 것을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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