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1883 - Georges Seurat - WikiArt.org





이 글은 정말로 알맹이가 있는가, 아니면 그저 힘없이 앉아서 생각하거나 관찰한 바를 묶어놓은 것에 불과한가?

시작이 있는가? 즉, 편안하게 읽어나갈 수 있는 방식으로 시작하는가? 중간이 있는가? 아니면 "안녕하세요"하고 말하자마자 돌아서서 "잘 가세요"하고 말하는 느낌인가?

필자가 글을 마무리한 방식을 설명하라. 편지를 끝낼 때나 작별인사를 할 때나 전화를 끊을 때에 비유해서 이야기하라. 전화를 갑자기 끊었는가? 문 앞을 서성이면서 어떻게 문장을 끝내고 작별인사를 해야 할지 모르는 느낌이었는가? 갑작스레 정답게 굴었는가? 아무도 모르게 슬며시 빠져나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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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이 '내 글'을 읽고 속마음을 알려주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피드백 부분이다. 

La Grande Jatte, 1884 - Georges Seurat - WikiArt.org







"한두 페이지 지나니까 지루하던데요." "사실 당신이 날 성가시게 하고 얕잡아보는 투로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꼈어요." "앞부분보다는 뒤쪽으로 가면서 반박하고 싶어진다는 건 알겠는데 왜인지는 모르겠더군요."

사람들이 피드백을 싫어하거나 피드백에서 배우지 못하는 한 가지 커다란 이유는 무기력하다는 느낌 때문이다. 피드백을 받을 때면 늘 다른 사람에게 힘을 다 넘겨줘버리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젠장, 빙빙 돌리는 건 그쯤 해두고 이제 하고 싶은 말을 하란 말이야. 혹시 있을지 모를 반대 의견을 막는 건 그 정도로 해두라고. 그냥 하고 싶은 말을 써. 계속 방어하는 걸 보고 있으려니 독자로서 네 생각을 편안하게 따라가기가 힘들기만 하고 오히려 화만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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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자연 묘사를 좋아합니다. 비가 내렸다가 무지개가 뜨네요.

사진: UnsplashLukáš Vaňátko


[무지개 5개가 동시에 떴다…NASA “매우 희귀한 현상”]https://cm.asiae.co.kr/article/2018100514351457949 2018년 가을






네흘류도프는 생각에 깊이 빠진 나머지 날씨가 바뀌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태양은 전방에 낮게 드리워진 조각구름 뒤로 숨었고 서쪽 지평선에서는 희끄무레한 먹구름이 저 멀리 들판과 숲에 이미 한바탕 소낙비를 뿌리고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먹구름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촉촉했다. 가끔씩 번개가 구름을 여러 조각으로 난도질했고 천둥소리는 점점 더 자주 기차의 굉음과 뒤섞이기 시작했다. 먹구름은 점점 더 가까워졌다. 바람을 타고 비스듬히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객차 연결부 바닥과 네흘류도프의 외투에 얼룩을 남겼다.

네흘류도프는 뒤로 돌아 객차 연결부의 다른 쪽으로 이동했다. 그는 촉촉하고 신선한 공기와 오래 전부터 비를 기다리고 있던 대지의 곡식 냄새를 들이마시면서 빠르게 지나가는 과수원과 숲, 노랗게 변해가는 호밀밭, 아직 초록빛을 띠는 귀리밭, 검은 이랑 사이로 꽃이 피는 진녹색 감자밭을 바라보았다. 모든 풍경이 광택제를 바른 것처럼 선명했다. 초록은 더 푸르게, 노랑은 더 노랗게, 검정은 더 검게 보였다.

"더 내려라, 더 내려!" 네흘류도프는 복된 비를 맞고 생기를 찾아가는 밭과 과수원, 텃밭들을 보며 기쁨에 넘쳤다.

억세게 퍼붓던 비는 이내 그쳤다. 먹구름 일부는 비가 되어 떨어졌지만 나머지는 재빨리 지나가버렸다. 축축하게 젖은 대지 위에 마지막으로 가는 빗방울들이 흩뿌려지고 있었다. 다시 태양이 나타나자 만물이 반짝반짝 빛을 발했다. 동쪽에는 보라색이 도드라진 중간 크기의 무지개가 지평선 위로 피어 올랐다. 선명하게 솟아오른 무지개의 한쪽 끝이 희미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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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나무 By Lokal_Profil


산사나무 Hawthorn , 山査木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41XXXXX00025


데이비드 호크니가 그린 산사나무 https://www.thedavidhockneyfoundation.org/artwork/2475




호크니의 기념비적인 그림은 길가의 흔한 존재를 확대하고 가시나무의 오랜 힘을 해방시켜 이 흔하디 흔한 나무를 그 누가 짐작했던 것보다 천 배는 더 사랑스럽고 더 위험한 존재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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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멧돼지 꿈을 꾼 참가자가 이번엔 흑돼지 꿈을 꾸고 왔다.

프레이르 By Jacques Reich - 퍼블릭 도메인, 위키미디어 커먼즈







지난번에는 멧돼지 꿈을 꿨는데, 오늘은 흑돼지 꿈을 꿨어요. 처음에는 굵은 돼지 열한 마리가 산에서 내려왔는데, 그다음에는 최근에 태어난 새끼 돼지 다섯 마리가 내려왔어요. 굵은 돼지들은 전부 산으로 다시 올라가버렸고요. 근데 살펴보니까 새끼 돼지가 여섯 마리가 되어 있더라고요. 어미가 새끼를 또 낳았나 보다 했지요. 제가 예전에 양돈을 했어요. 그래서 돼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요. 새끼 낳는 것도 많이 봤고요.

근데 어미 돼지가 다가와서는 새끼 돼지를 덜컥 삼키더라고요. 씹어 먹는 게 아니라 통째로 삼켜서 자기 배에 담는 거예요. 또다른 새끼 돼지 한 마리가 얼쩡얼쩡 어미 입 주위에서 놀고 있는데, 이걸 어미 돼지가 삼켜버릴까봐 불안하더군요. 그래서 막대기로 어미 돼지의 머리와 목을 쳤어요. 근데 도망을 안 가길래 다시 나무 망치로 때렸어요. 펑 소리가 날 정도로요. 어미 돼지가 놀라서 저를 쳐다보는데, 저에게 달려들 것 같더군요. 제가 시선을 떼니까 막 저에게 달려왔어요.

- 그래서 도망갔지요.

- 도망은 가지던가요?

- 잘 도망갔어요. 돼지가 흙먼지를 날리면서 시골 돌담을 끼고 달려오더라고요. 저는 길로 막 뛰어가다가 이웃집 대문을 열고 들어가서 그때까지 돼지가 쫓아오면 나무에 올라가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어요. 돼지는 나무를 못 타니까요. 그런데 돼지가 안 따라오더군요. 그러고서 꿈에서 깼어요.

*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프레이르는 신의 손에조차 길들여질 것 같지 않은 멧돼지를 거느리고 다닌다. 이 멧돼지의 이름은 굴린부르스티로, 황금 갈기를 휘날리며 하늘과 물속을 날아다닌다.

이전 꿈과 비교해보면, 멧돼지에서 집돼지로 바뀐 게 먼저 눈에 들어오네요. 꿈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돼지 시리즈예요. (중략) 멧돼지에 비해 집돼지는 내가 감당하기 훨씬 수월한 짐승이에요. 내가 양돈을 해본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겠지요. 돼지는 옛날 옛적에 자연에 살던 짐승이었어요. 서서히 인간이 길을 들여서 집에서 사육이 가능해졌지요. 이 꿈이 재미있는 대목이 바로 이 지점인데, 인류 역사에서 이루어낸 일을 개인의 꿈에서 되풀이하고 있어요. 내면 작업을 통해 인간의 야성적 본능을 다룰 때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야생 그대로일 때의 엄청난 파괴력을 마주하고 싸울 힘을 기르면서 점차 이를 감당해내는 법을 배워가요. 이 변화가 양측에서 동시에 이루어지는데, 돼지에게서는 점차 야성이 빠져나가는 반면 나는 돼지를 상대할 줄 아는 점점 강한 사람이 되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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