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집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에 실린 작가 제인 볼스(부커상 수상자 리디아 데이비스가 택한)에 관해 찾다가 발견한 장편소설 '아이 러브 딕'에 제인 볼스가 수차례 언급된다. 그리고 멘츄와 보부아르, 윌케.


노벨평화상 수상자 리고베르타 멘츄 https://www.khan.co.kr/politics/politics-general/article/202106080600005

Jane Bowles (1917–1973), American writer and playwright (출처: 위키피디어)


Hannah Wilke Collection & Archive http://www.hannahwilke.com/





닳아 해진 언덕들과 떨고 있는 나무들이 어쩐지 슬프네요. 제인 볼스의 이야기 <매사추세츠로 가다>에서처럼. 이런 풍경에 감정이 휘몰아치는 까닭은 바로 대단치 않기 때문이에요. 내가 미처 대비하지 못한 감정의 푸가를 끌어내기에. 사막은 그만의 감정으로 우릴 압도하지만 이런 풍경이 자아내는 감정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죠.

나는 오후 내내 버스에서 과테말라 반란군 지도자인 리고베르타 멘추의 자서전을 읽고 제인 볼스에 대해 생각했거든요. 두 종류의 다른 고통, 다른 각성.

제인 볼스는 남편이자 더 ‘나은’ 작가인 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 진실성의 문제를 언급했어요.

1947년 8월

사랑하는 버플

깊이 들어갈수록... 진지한 사람들이라고 여기는 작가들을 마주할 때면 더 고립감을 느껴... 시몬 드 보부아르의 "새로운 영웅들"이란 글을 동봉할게... (중략) 줄곧 내 머릿속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생각인데, 지금처럼 글을 쓰면서 그들의 사고방식을 따라가는 건 너무 힘든 일이야. 당신은 이런 문제를 겪을 필요가 없겠지. 당신은 늘 진정으로 고립된 사람이니 무엇을 쓰든 진실이 되고 좋은 글이 되지만 내 경우엔 그렇지 않아...당신의 글은 당신 자신과 진정으로 연결되고 그 사람을 바깥세상이 늘 알아볼 수 있으니 당신은 바로 인정을 받지... 내 경우엔 누가 알겠어? 나처럼 진지하게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사람이 끊임없이 자신의 진실성을 의심해야 한다는 건 참기 힘든 일이야...

제인 볼스의 편지는 당신과의 일보다 나를 더 화나고 슬프게 한답니다. 그녀는 아주 똑똑했고 자신의 어렵고 모순적인 삶에 대해 기꺼이 솔직하게 말하려고 했으니까요. 그리고 그걸 제대로 했으니까요. 그렇다고 해도 예술가 한나 윌케와 마찬가지로 그녀는 살아생전에 자신에게 동조해주는 사람을 좀처럼 찾지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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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이 초파일이자 어버이날이었다. 한강 작가의 '아기 부처'에 관한 아래 논문으로부터 일부 여기 옮긴다.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불성을 지니고 있다(一體衆生, 悉有佛性)는 인간의 끝없는 변화 가능성을 믿는 어머니는 과거를 뉘우치며 수행하는 선오후수(先悟後修)하는 인물이다.

 

어머니는 심즉불(心卽佛)을 믿고 수신(修身)하고 있고, ‘나’는 꿈에 진흙으로 아기 부처를 빚어내고 있다. 그것이 흉측한 이미지의 부처라 하더라도 마음에 부처가 이미 자리하고 있음을 의미하므로 두 인물이 불성(佛性)을 믿고 있다는 점에서도 동일하다.

 

현재의 어머니의 발화는 인용 부호로 처리되고 있는데 반해, 과거의 어머니의 말에는 인용 부호가 생략되어 있다. 그것은 ‘나’와 ‘어머니’의 경계를 지워버림으로써 어머니의 말은 서술자인 ‘나’에게 귀속되어 ‘나’의 말이 된다. ‘눈물로 세상을 버티려고 하지 마라’는 어머니의 말이면서 스스로를 통박(痛 駁)하며 촉구하는 자신의 말이다.

 

한 인물임을 말해주는 장치로써 일체동근(一體同 根)임을 의미한다. 단지 어머니의 수신(修身)에 자극이 되어 불현듯 깨달음에 이른 것이 아니다. 어머니의 수행이 곧 ‘나’의 수행이 되어 일상의 지속적인 수련의 결과로 변화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날카롭고 차가운 금속성의 이미지로 가득한 세계는 부처가 든 ‘연꽃 봉오리’를 피어나게 하려는 수행으로 생명력이 있는 식물의 세계로 변한다. 마음의 겨울을 견디는 동안 상처에 내성이 생기면서 비로소 봄을 맞게 된다. 그곳은 “어린 싹 같은 연푸른빛이 생생하게 차올라 있는” 곳이며, ‘철조망을 너머 날아가는 푸른 산까치’처럼 인식의 경계 를 넘어서게 된다.]출처: 관(觀) 수행으로 본 한강의 「아기 부처」2015 방민화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978573

사진: UnsplashY.H. Zh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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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452861&ref=A 2022년 4월 30일 뉴스 (윤심덕 미공개음반 발견)김일엽의 '청춘을 불사르고'에 나오는 내용인데 김일엽은 어릴 때 윤심덕과 같은 동네에 살았나 보다. 일엽은 심덕이 등교하는 모습이 너무 부럽다. 나이는 일엽이 한 살 위다. 


[네이버 지식백과] 윤심덕 [尹心悳] (한국근현대사사전, 2005. 9. 10., 한국사사전편찬회)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20015&cid=62048&categoryId=62048





다홍 저고리에 까만 치마를 입고, 해죽해죽하며 우리집 앞을 지나 학교로 걸어가는 윤심덕이를 볼 때마다 나는 너무나 부러워서 멀거니 바라보느라고 정신이 완전히 팔려버리던 먼 옛날의 일이, 생각할 때마다 떠오른다.

나는 심덕이가 자유롭게 학교 가는 것이 너무나 부러워서 엄마가 홀앗이로 젖먹이 내 동생을 내게 업히기 위해, 당신도 나를 하루 바삐 학교에 입학시키려고 벼르면서도 이 핑계, 저 핑계로 자꾸 미루는 데 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때 내 나이는 만 아홉 살. 어떻게 하루 바삐 학교에 입학하게 될까 궁리하는 것이 나의 일과였다. 궁리궁리 끝에 나는 생전 처음 엉뚱하고 대담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이 업은 채 심덕의 뒤를 따라가서 간청한 결과, 심덕의 청으로 입학하게 되는 꾀를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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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오직 내 한 몸이 되자." 

Youth, 1915 - Kuzma Petrov-Vodkin - WikiArt.org






인생은 어렸을 때부터 나에게는 잔학하였다. 소녀 시대에 부모를 잃고 형제를 영별한 나는 철모르게 청춘 시대를 맞아 개성의 눈뜰 새도 없이 나한테 아버지뻘이나 되는 이와 이해 없는 결혼을 하였다. 그러다가 내가 차차 개성의 눈을 뜨고 인생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 때에, 나는 단연히 이때 애인도 돈도 없이 앞뒤를 돌아보지 않고 단지 대담한 일만 하였다.

그러나 요행히 세상에 버림을 바치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처세책에 활달치 못하고 경험이 적은 나는 그동안 많은 고심을 하였다.

그러나 나는 또 한 번 다시 선언한다. 내 몸은 일체불안, 일체의 속정에서 뛰어났음을 처세책에 졸렬한 나는 간혹 근신하는 태도를 취치 않고 여기저기 많이 출석하며, 또는 찾아오는 손님을 무제한으로 인사한 까닭으로 세상에서 공연한 오해를 샀다. 그러나 나는 지금 와서 확실히 깨달았다. 나는 오직 내 한 몸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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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Álvaro de la Paz Franco






오늘날 어떤 마법사들은 찻잎이나 잔 밑바닥에 남은 커피 찌꺼기에서 운명을 알아내며, 나무들, 비, 잉크 얼룩 혹은 계란의 흰자위에서 운명을 읽어내는 마법사들도 있다. 또 단순히 손금이나 유리 구슬로 점을 치는 마법사들도 있다. 마구쉬는 그가 거처하는 숯 창고 앞에 위치한, 사람이 살지 않는 건물에서 운명을 읽어낸다. 이웃한 건물에 달려 있는 여섯 개의 커다란 창과 열두 개의 작은 창들은 그에게 카드 장이나 매한가지다.

"창문에 너의 운명이 나타나는 즉시 누군가가 그 운명을 대신 살도록 하는 게 더 현명한 처사야. 나중에 너의 운명이 너를 찾아 헤매게 해서는 안 돼. 운명은 인육의 맛을 아는 호랑이처럼 주인을 노리거든." 마구쉬는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이렇게 덧붙였다. "아마도 언젠가는 창문에서 너의 운명과 관련된 영상이 모두 사라지게 될 거야."

"내가 죽게 되는 거야?" 나는 조바심을 내며 물었다."꼭 그런 건 아니야. 넌 운명 없이도 살 수 있어." 마구쉬가 대답했다."하지만 개들조차 운명이 있잖아." 내가 항변했다." 개들은 운명을 피할 수 없어. 순종적이니까."

마구쉬의 운명은 언제나 나를 매혹시키고 나의 운명은(아무리 보잘것없어도) 그를 매혹시킨다. 하지만 결국 우리 두 사람에게 유일한 소망이 있다면 그건 우리의 운명이 보잘것없어 보이는 한 계속해서 그 집 창문을 바라보며 우리의 운명을 남들에게 선사하는 것이다. - 마구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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