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위로 구겨진 침대 시트 같은 구름이 흘러가는 걸 보고 오후 중반쯤이리라 추측했다. 로비에서 폭풍우에 유의하라는 수위의 인사를 무시하고 밖으로 느릿느릿 걸어나가 도로를 따라 걸었다. 보도 위와 도로 경계에 높이 쌓인 눈더미들 사이로 구불구불 나 있는 길이 사라지고 있었다. 사방이 고요했으나 공기는 사납고 축축했다. 눈이 더 내리면 도시 전체가 파묻힐 것 같았다. 길모퉁이에서 스웨터를 입고 씰룩거리며 걸어가는 포메라니안 한 마리와 그 돌보미 옆을 지나쳤다. 개가 다리를 하나 올리고 판판한 유리처럼 얼어붙은 보도 바닥에 오줌을 누는 모습이 보였고, 뜨거운 것이 치익 하며 얼음을 녹이는 소리가 들렸다. 얼음 안에 뚫린 둥근 공간에서 잠시 김이 오르다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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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조금 보았다. 음대 출신 작가, 저 세계는 어쩌면 대부분 본인을 살리에리라고 여기며 사는 건 아닐지......


이런 대사가 드라마에 나오다니, 새로 시작한 '나의 해방일지'도 엉겁결에 꽂혀 보는 중 - "나를 추앙해요." 어이 없지만 임팩트가 강하다. 여자, "사랑으론 안 돼, 추앙해요." 남자, 자기가 대체 무슨 말을 들은 건가 '추앙'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본다.이 드라마 작가가 화제작 '나의 아저씨'를 썼다고, 그건 여태 못 봤다.

Johannes Brahms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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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ri 2022-04-23 09: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의 해방일지 좋다고 얘기 들어서 주행준비중입니다. 나의 아저씨가 엉엉울며 본 인생드라마였어서요 . 왜그런지 손석구도 김지원도 그작가 드라마에 잘 맞을꺼같습니다.

브람스~는 음 풋풋해서 좋아했어요 .ㅎㅎ
좋아하는 드라마얘기가 나와서 말이 많았습니다.^^

서곡 2022-04-23 09:35   좋아요 1 | URL
브람스는 상심과 좌절이 초반부터 느껴져서 맘이 좀 아프기도 하네요 저는 박해영 작가 작품은 처음인데요 이게 뭐지, 어어 하며 스며들고 있어요. ㅋㅋ 나의아저씨 저도 기회되면 정주행하려고요 주말 잘 보내시길요 ~~~~

singri 2022-04-23 1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울음대 나온 작가였었군요 전개가 세세해서 아 저기도 장난아니구나 했던 기억입니다 음 뭐 스포일러 아닌 스포일러라면 상심과 좌절이 거의 다 입니다ㅎ 박은빈을 좋아해서 팬심으로 죽 본 드라마에요. 피아노 들으니 차분해집니다. 서곡님 페이퍼에 음악이 빠지면 심심. 주말 잘보내세요

서곡 2022-04-23 10:44   좋아요 1 | URL
문화재단 집안 손녀 바이올리니스트로 나온 배우도 참 멋져요 ㅋ 배우들이 연주연습 열심히 해서 작가가 인터뷰에서 대단하다고 칭찬했더라고요 / 조성진이랑 경쟁했던 케이트 리우가 당시 폴란드 현지에서 인기가 좋았대요 단정하지요 네 댓글 감사합니다 건강 잘 챙기세요!
 


영화 '쇼팽의 푸른 노트(1991)'에는 소피 마르소가 연기한, 조르주 상드의 딸 솔랑주가 나온다. 영화에는 쇼팽과 솔랑주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는데, 관계의 실상과 전모는 잘 모르겠지만, 검색해보니 솔랑주가 아빠처럼 쇼팽에게 의지했다는 내용은 보인다. 쇼팽 역은 실제 폴란드 출신 피아니스트가 맡았다.


병약한 쇼팽은 상드에게 보낸 편지(1844)에 이렇게 쓴다. "당신의 이 사람은 그 어느 때보다 더 늙은 것 같소. 많이, 극도로, 믿기지 않을 만큼 늙은 것 같소."  쇼팽은 1810년에 태어나 1849년에 별세, 마흔 안 된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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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o Tolstoy, 1895 - Felix Vallotton - WikiArt.org


[네이버 지식백과] 1880년 이후의 톨스토이 (러시아 문학사, 2008. 08. 25., D. P. 미르스키, 이항재)




검사보는 비스듬히 몸을 일으키며 재판장은 보지도 않고 말했다. 그 어조는 낭독 요청이 자신의 권리이고 자신은 그 권리를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을뿐더러 만약 거절한다면 상소라도 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무성한 턱수염과 선량해 보이는 처진 눈의 배석판사는 위염 때문에 피로감이 몰려오는지 재판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시간만 지연시킬 뿐입니다. 길들지 않은 새 빗자루는 잘 쓸리지도 않고 시간만 허비한다더니, 원." 금테 안경을 쓴 배석판사는 아내와 자기 삶에 대한 회의에 빠져 아무 말 없이 멍하니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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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난 변하기 위해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어." 그녀가 말했다. "너는 자는 것 말고 삶에서 원하는 게 대체 뭐니?"나는 그녀의 냉소를 무시하기로 했다.

나는 방어적으로 말했다. "잠시 쉬고 있는 거야. 지금은 내 휴식과 이완의 해거든."

그래서 내가 종일 잠만 자기 시작했을 때, 자기 바람대로 내가 무능한 게으름뱅이로 전락하는 모습을 보며 꽤 흡족해했던 것 같다. 나는 리바와 경쟁할 마음이 없었지만, 따지고 보면 그녀가 괘씸했고 그래서 우리는 언쟁을 했다.

어느 밤에 나는 폴라로이드로 그녀를 찍어 거실의 거울 틀에 사진을 끼워두었다. 리바는 그것을 정겨운 행동으로 여겼지만 실은 나중에 약기운에 취해 전화하고 싶더라도 함께 있으면 별로 재미없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위해 찍은 사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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