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

화이부동은 조화를 이루되 편당을 짓지 않고, 동이불화는 편당을 지으면서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을 뜻한다. ‘화’와 ‘동’은 다르다는 취지로 말한 안영의 화여동이和與同異 주장은 「자로」에 나오는 공자의 화이부동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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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진나라와 결맹했습니다. 신의를 잃으면 자립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난씨를 받아들여 장차 어디에 쓰려는 것입니까?"

"군주는 힘만 믿고 맹주의 나라를 치고자 하니 만일 성공하지 못하면 나라의 복이지만 덕행도 없으면서 전공을 세우게 되면 반드시 우환이 군주의 몸 위에 떨어질 것이다."

"군주가 세상을 떠났는데 내가 어찌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겠는가? 오직 사직을 지킬 뿐이다. 군주가 사직을 위해 죽으면 따라 죽을 수 있고, 사직을 위해 망명하면 따라서 망명할 수 있다. 그러나 군주가 자신을 위해 죽거나 망명할 경우 그의 총신이 아니라면 누가 감히 같이 죽거나 망명하겠는가? 하물며 신하가 모시던 군주를 시해한 상황에서 내가 어찌 그를 위해 죽거나 망명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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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죽는 것이 대상大喪이고, 형제간에 싸우는 소리가 담장 밖으로 넘어가는 것이 대란大亂입니다. 지금 일거에 대상대란이 일어났는데 이를 틈타 보위에 올라서는 안 됩니다."

당시도 정략결혼이 일반화되어 있었다. 중이가 마침내 회영을 부인으로 맞아들였다. 여기서 ‘진진지의秦晉之誼’라는 성어가 나왔다. 두 나라 군주들이 대대로 혼인 관계를 맺어 우호를 다진 데서 나온 말이다. 그러다 후대에 혼인 및 혈맹의 관계를 맺은 국가 관계를 흔히 ‘진진지의’ 내지 ‘진진지호秦晉之好’로 표현하게 됐다.

중이는 그날로 강도에 입성에 곧바로 보위에 올라 진문공이 되었다. 당시 진문공은 이미 62세에 달해 있었다. 패업을 이루기에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제환공은 바르면서 술수를 부리지 않았으나 진문공은 술수를 부리면서 바르지 않았다."

똑같은 패업인데도 제환공의 패업은 이른바 ‘정패正覇’, 진문공의 패업은 이른바 ‘휼패譎覇’로 나눈 것이다. 훗날 주희는 공자가 정패와 휼패를 나눈 배경과 관련해 이같이 풀이했다.

"제환공은 초나라를 칠 때 대의를 내세워 말하고 속임수를 쓰지 않았다. 그러나 진문공은 위나라를 쳐 초나라를 싸움으로 끌어들이고 음모로써 승리를 취했으니 그 속임이 매우 심했다. 두 사람의 다른 일도 이와 같은 것이 많다. 공자가 이를 언급함으로써 그 숨은 사실을 드러낸 것이다."

"안영은 사람과 더불어 사귀기를 잘하여 사람들이 오래도록 그를 공경했다."

칭송이기는 하나 극찬은 아니다. 안영은 자가 중仲이고, 시호는 평平이다. 시호와 자를 합친 ‘평중’을 이름 ‘영’ 대신 사용해 흔히 ‘안평중晏平仲’으로 불린다.

"우리는 진나라와 결맹했습니다. 신의를 잃으면 자립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난씨를 받아들여 장차 어디에 쓰려는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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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대 말기 일부 변법개혁파가 영어 ‘이코노믹스economics’를 ‘경중학輕重學’으로 번역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일본이 ‘이코노미economy’를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약자인 ‘경제’로 번역하며 메이지유신을 강력 추진한 것과 같은 취지다.

동양에서는 원래 경제를 나라를 다스리고 세상을 구한다는 뜻의 경국제세의 약자로 사용했다.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한다는 뜻의 ‘경세제민’의 약자로 사용한 것은 나중의 일이다. ‘경세제민’ 표현은 수나라 때 왕통王通의 『문중자』 「예악」에 처음으로 나온다.

일본의 유학자를 비롯해 네덜란드 학문을 공부하는 난학자蘭學者 모두 유사한 취지의 경세제민론을 펼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작품이 다자이 슌다이太宰春臺의 『경제록』이다. 그는 이같이 풀이했다.

"무릇 천하와 국가를 다스리는 것을 ‘경제’라고 한다. 세상을 바로잡아 백성을 구제할 의무가 있다는 뜻이다."

미국과 중국이 천하의 패권을 놓고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다투는 21세기 G2시대는 과거의 춘추시대를 방불케 한다. 관중을 효시로 하는 상가의 본령인 정치경제학의 근본 취지를 되살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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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최초로 이론적으로 정립해 제왕학을 만들어 낸 사람이 바로 관중이다. 그가 정립한 제왕학은 기본적으로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전복시키기도 한다는 뜻의 이른바 ‘수가재주水可載舟, 역가복주亦可覆舟’의 이치 위에 구축된 것이다.

"치국의 방법으로 백성에게 이익을 주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

"관중은 제환공을 도와 제후들을 단속하고, 일광천하一匡天下의 업적을 이뤘다. 덕분에 백성들이 지금까지 그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가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머리를 풀고 옷깃을 왼편으로 여미는 오랑캐가 되었을 것이다. 어찌 그를 필부가 작은 절개를 위해 목숨을 끊는 것에 비유할 수 있겠는가."

훗날 순자와 한비자 역시 공자처럼 관중이 패업을 이룬 것을 높이 평가했다. 난세에는 치세와 전혀 다른 이치가 작동한다는 사실을 통찰한 결과다. 그럼에도 맹자만큼은 관중의 패업을 맹렬히 비판했다. 난세에도 오직 덕치를 통해서만 천하를 평정할 수 있다는 확신 탓이다.

"법과 도덕의 관계는 법철학의 케이프혼이다."

법과 도덕의 간극을 끝까지 추적하다 보면 남미 최남단의 곶인 케이프혼을 항해하는 배처럼 이내 좌초할 소지가 크다는 좌절감을 드러낸 것이다. 여기서 나온 것이 바로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다"라는 금언이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이미 수천 년 전에 이에 대한 해법을 찾아낸 바 있다. 『논어』 「위정」에 나오는 공자의 언급이 그것이다.

"정형政刑으로 다스리고자 하면 백성들이 이를 면하려고만 하여 이내 부끄러움을 모르게 된다. 그러나 덕례德禮로 다스리고자 하면 부끄러움을 알고 선한 마음을 갖게 된다."

"예는 서인까지 내려가지 않고, 형은 대부에게 미치지 않는다."

지배층에 대해서는 법치보다 도덕적 수위가 높은 예치의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는 유가의 입장을 요약해 놓은 것이다.

동양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전통은 바로 여기서 나왔다. 『관자』에서는 예치를 ‘예의염치’로 풀이해 놓았다. 위정자가 예치의 세계를 무시한 채 법치의 세계에 함몰돼 법리 공방을 전개할 경우 자칫 순자가 경고한 위도危道 내지 망도亡道로 치달을 소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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