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최초로 이론적으로 정립해 제왕학을 만들어 낸 사람이 바로 관중이다. 그가 정립한 제왕학은 기본적으로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전복시키기도 한다는 뜻의 이른바 ‘수가재주水可載舟, 역가복주亦可覆舟’의 이치 위에 구축된 것이다.
"치국의 방법으로 백성에게 이익을 주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
"관중은 제환공을 도와 제후들을 단속하고, 일광천하一匡天下의 업적을 이뤘다. 덕분에 백성들이 지금까지 그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가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머리를 풀고 옷깃을 왼편으로 여미는 오랑캐가 되었을 것이다. 어찌 그를 필부가 작은 절개를 위해 목숨을 끊는 것에 비유할 수 있겠는가."
훗날 순자와 한비자 역시 공자처럼 관중이 패업을 이룬 것을 높이 평가했다. 난세에는 치세와 전혀 다른 이치가 작동한다는 사실을 통찰한 결과다. 그럼에도 맹자만큼은 관중의 패업을 맹렬히 비판했다. 난세에도 오직 덕치를 통해서만 천하를 평정할 수 있다는 확신 탓이다.
"법과 도덕의 관계는 법철학의 케이프혼이다."
법과 도덕의 간극을 끝까지 추적하다 보면 남미 최남단의 곶인 케이프혼을 항해하는 배처럼 이내 좌초할 소지가 크다는 좌절감을 드러낸 것이다. 여기서 나온 것이 바로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다"라는 금언이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이미 수천 년 전에 이에 대한 해법을 찾아낸 바 있다. 『논어』 「위정」에 나오는 공자의 언급이 그것이다.
"정형政刑으로 다스리고자 하면 백성들이 이를 면하려고만 하여 이내 부끄러움을 모르게 된다. 그러나 덕례德禮로 다스리고자 하면 부끄러움을 알고 선한 마음을 갖게 된다."
"예는 서인까지 내려가지 않고, 형은 대부에게 미치지 않는다."
지배층에 대해서는 법치보다 도덕적 수위가 높은 예치의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는 유가의 입장을 요약해 놓은 것이다.
동양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전통은 바로 여기서 나왔다. 『관자』에서는 예치를 ‘예의염치’로 풀이해 놓았다. 위정자가 예치의 세계를 무시한 채 법치의 세계에 함몰돼 법리 공방을 전개할 경우 자칫 순자가 경고한 위도危道 내지 망도亡道로 치달을 소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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