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탄생
니체의 첫 번째 저술로 니체 나이 불과 28세였던 1872년에 출간되었다. 이 책에는 청년 니체의 천재적인 면모가 유감없이 드러나 있다. 니체는 이 책에서 그리스 비극의 기원과 본질을 탐색하는 방식으로 그리스 예술의 역사, 인간과 세계 그리고 예술의 본질을 탐구한다. 아울러 현대문명의 병폐를 진단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 따라서 패기로 가득 찬 청년 니체가 자신의 예술철학뿐 아니라 독자적인 인간학과 형이상학 그리고 현대문명을 비판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아폴론적 예술
건축, 미술, 조각, 서사시처럼 사물을 조용히 관조하게 하는 조형예술을 가리킨다. ‘아폴론적인 것’은 태양과 같은 밝음, 이러한 밝음 아래서 모든 사물이 드러내는 균형, 절도, 질서, 명료한 형태 그리고 국가의 도덕이나 법률, 아름다운 가상(假像) 및 아름다운 가상을 형성하는 예술적 능력을 상징한다.

디오니소스적 예술
서정시, 음악, 춤과 같이 감정에 직접적으로 호소하면서 우리를 도취에 빠지게 하는 비조형 예술을 가리킨다.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만물이 하나가 되는 황홀경, 건설과 파괴를 거듭하면서 놀이하는 세계의 충일한 생명력을 상징한다.

도취
『비극의 탄생』에서 도취는 개체가 자신의 개체성을 망각하고 세계의지와 하나가 되는 합일의 느낌을 가리킨다면, 후기 니체에서는 힘이 상승하고 고양되는 느낌을 가리킨다. 이러한 도취는 단순히 심리적 상태만이 아니고, 신체 전체가 느끼는 ‘쾌감’의 상태다. 도취를 경험할 때 우리의 혈관과 신경과 근육이 흥분하고 일깨워지면서 심리적인 차원에서는 황홀경을 경험하게 된다.

영원 회귀 사상
니체는 삶에 대한 최고 긍정의 형식으로 영원 회귀 사상을 창안했다. 이것은 그리스도교나 마르크스주의와 같은 목적론적인 세계관과 가장 대립하는 세계관이다. 그리스도교나 마르크스주의는 자연과 인간의 역사가 최후의 심판이나 공산주의와 같은 미래의 궁극적인 목적을 향해서 나아간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니체는 모든 것이 아무런 목적도 의미도 없이 끊임없이 반복된다고 말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고통이나 악도 끊임없이 되돌아온다는 사실은 힘이 약한 자를 절망에 빠뜨리지만, 힘이 강한 자는 그러한 사실을 흔쾌하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렇게 영원 회귀를 흔쾌하게 긍정할 때, 힘이 약한 자에게는 악이나 고통으로 여겨지는 것조차도 숭고한 의미를 갖는다.

개별화의 원리
시간과 공간을 가리킨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모든 것이 시간과 공간을 통해서 구획되어 있다. 동일한 시공간 속에 존재하는 것은 오직 하나뿐이다. 어떤 사람이 나와 동일한 시간과 공간 속에 존재한다면 그 사람은 나와 동일한 사람이다. 이 점에서 시간과 공간은 모든 것을 서로 구별되는 개체들로 나타나게 하는 원리다.

세계의지
시간과 공간 속에서 나타나는 개체들의 배후에 존재하는 통일적인 우주적 생명력을 가리킨다. 개체들은 하나의 통일적인 세계의지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서로 투쟁하고 갈등하면서도 조화를 이룬다.

니힐리즘
삶과 세계에서는 아무런 목적도 의미도 없이, 모든 것이 덧없이 생성되고 소멸할 뿐이라고 보는 사상이다. 이는 결국 허망한 죽음으로 귀착되는 삶에 대한 염세주의와도 연결된다.

니체는 서양철학자 중에서 가장 큰 관심과 애정을 받고 있는 철학자다.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오늘날의 중국에서조차도 니체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고 한다.

니체는 선과 악이라는 대립 구도를 갖는 전통적인 가치관 대신에 강함과 약함이라는 대립 구도를 갖는 새로운 가치관을 내세우고 있다. 니체는 선하고 착한 인간이 아니라 강한 인간이 되라고 외치는 것이다.

자신보다 약하고 불리한 위치에 있는 자들에 군림하는 강함을 니체는 강함이라고 부르지 않고 비겁함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만만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방식으로 우월감을 느끼려고 하는 못난 자들이다.

니체가 특히 경멸하고 경계하는 자들은 첫째로 자신들을 신을 대리하는 선한 자들로 자처하면서 자신들의 교리와 조직에 복종하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진다고 대중을 협박하는 기독교 성직자들이다.

그리고 둘째로 정의와 평등을 내세우지만 사실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들에 대한 대중의 원한과 시기심에 호소하면서 대중을 선동하여 권력을 잡고 새로운 지배 계급으로 군림하는 사회주의자들이다.

니체가 생각하는 진정으로 강한 자들은 자신보다 동등하거나 이왕이면 자신보다 더 강한 자들과 겨루려는 자들이고, 자신들의 적이 훌륭한 적수라면 기꺼이 존경을 표할 줄 아는 자들이다.

또한 그들은 무엇보다도 자신에 대해서 엄격한 자들이고, 고난이나 고통을 자신의 성장과 발전의 계기로 삼을 수 있는 자들이다. 니체 자신의 말을 빌리면 그들은 "우리를 죽이지 않는 것은 우리를 강하게 만든다"라고 말하는 자들이다.

진정으로 강한 자들은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경쟁과 고통 그리고 고난이 사라지지 않는 이 세계를 그대로 긍정하면서 이 세계에서 춤추듯 유희하면서 살아가는 자들이다.

진정으로 강한 자들은 기독교가 그리는 천국이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말하는 공산주의 사회처럼 경쟁이나 고통 그리고 고난이 사라진 세계를 꿈꾸지 않는다.

그들은 이러한 세계는 허약하고 지친 자들이 만들어낸 신기루에 불과하다고 본다.

니체는 우리가 디오니소스의 충만한 생명력과 하나 될 것을 요구한다. 춤추는 신인 디오니소스처럼 그 모든 고통과 고난에도 이 세계를 긍정하면서 유희하듯이 살라는 것이다. 그리고 니체는 예술이야말로 우리 내면에 잠재한 충만한 생명력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보았다.

가장 불행한 존재인 인간과 『비극의 탄생』

요컨대 니체의 『비극의 탄생』은 예술의 본질을 탐구하는 예술철학이면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철학적 인간학이며, 세계 전체의 기원과 구조에 대해 탐구하는 형이상학이기도 하다.

누구보다 삶을 사랑했던 철학자의 불멸의 고전

왜 삶은 고통과 갈등으로 가득 차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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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행복의 의미를 주관적인 심리적 안녕감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곧 우리는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 동일한 가중치를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설령 긍정적인 감정 경험과 부정적인 감정 경험이 동일하더라도 내가 긍정적인 감정 경험을 더 의미 있게 생각하고 거기에 더 큰 가중치를 부여한다면 나는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결국 의미를 어디에서 찾느냐가 행복의 중요한 요인이 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슬픔, 분노, 공격처럼 개인의 생존과 관련된 정서를 기본 정서라고 한다면, 수치심, 죄책감, 선망, 자부심, 오만은 사회적ㆍ도덕적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요구되는 사회 정서라 한다.

이 정서들은 자기개념, 즉 나 자신에 대한 이해와 자존감을 기반으로 경험하는 정서이며, 대인관계 형성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런 정서를 자의식 정서self-conscious emotions라고 한다.

자의식 정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자기평가 정서self-evaluative emotions고, 다른 하나는 사회비교 정서social comparison emotions다.

죄책감과 수치심
죄책감guilt은 언제 발생할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죄책감은 보통 나의 어떤 행동이 누군가에게 손해를 입혔거나 상처를 주었을 때 생긴다. 또는 자기 자신이 설정하거나 사회가 설정한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을 때도 죄책감을 갖게 된다.

자부심을 표현하는 것은 일종의 명성prestige을 추구하는 긍정적인 마음을 바탕으로 한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오만을 표현하는 것은 일종의 지배dominance의 마음으로, 타인을 상대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욕구가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행복은 매우 주관적인 경험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그 의미를 정의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개인이 자신의 정서를 이해하고, 생활 속에서 긍정적인 정서 경험을 갖는 것이 곧 행복이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일상생활 속에서 행복한 순간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개인이 행복을 느끼는 이유를 분석해보면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선천적인 낙천성이 50퍼센트, 그 사람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같은 배경이 10퍼센트, 그리고 일상생활의 즐거움이 40퍼센트를 차지한다고 한다. 이 수치가 의미하는 것은 일상생활에서의 즐거움이 행복을 경험하는 데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이다.

개인의 인생 스토리를 담은 삶의 캔버스가 내 앞에 있다. 캔버스에 그려진 많은 사람들과 사건들, 이것이 나의 인생사다. 그런데 이 캔버스에 담긴 사람들의 얼굴에 표정이 없다면, 그리고 다양한 사건들이 회색으로만 칠해져 있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정서는 인생 캔버스에 활력을 넣어주는 요소다. 아무리 많은 시간을 살아냈다 할지라도 그 안에 때로는 슬픔을 주고, 때로는 웃음을 주는 사람과 일들이 없다면 그 캔버스는 무의미한 한 장의 종이에 불과하지 않을까?

감정에 주목할 때 우리 삶은 음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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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표현 행동 조절regulation of expressive behavior 전략이다.

둘째는 생리적 각성 조절regulation of physiological arousal 전략이다.

셋째는 경험 조절regulation of experiences 전략이다.

이것은 곧 에이브러햄 매슬로Abraham Harold Maslow의 욕구위계이론에 비추어 이야기할 수 있다. 에이브러햄 매슬로는 인간의 욕구는 생리적 욕구와 안전의 욕구, 사회적 소속과 인정의 욕구, 자기존중감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로 위계화되어 있다고 한다.

혼자서 무엇을 할 때 느끼는 정서와 여럿이 함께할 때 공유하는 정서는 그의 강도가 전혀 다르다. 정서는 개인을 넘어 집단이 함께 공유하는 특성을 갖고 있으며 이것이 곧 정서의 사회적 공유다. 우리는 그런 공유 정서를 통해 집단에 대한 정체감과 소속감을 갖는다. 사회적 존재인 인간이 공동체 생활을 제대로 하기 위해 타인과 나의 정서를 공유하는 능력을 진화시킨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공동의 목표를 갖고 일할 때 집단 내에 공유 정서가 존재하느냐의 여부는 사회적 생존을 위한 필수 요소이기 때문이다.

감정에는 퍼져 나가는 힘이 있다
 
개인을 넘어 함께 공유하는 정서

우리가 혼자서 무엇을 할 때 느끼는 정서와 여럿이 함께할 때 공유하는 정서는 그 강도가 전혀 다르다. 그리고 그런 공유 정서를 통해 집단에 정체감과 소속감을 갖게 된다.

정서에는 이렇게 개인을 넘어 함께 공유하는 특성이 있는데, 이것을 정서의 사회적 공유라고 한다. 사회적 존재인 인간이 공동체 생활을 제대로 하기 위해 타인과 나의 정서를 공유하는 능력을 진화시킨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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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정서 조절을 하는 첫 번째 이유는 심리적 불쾌감에서 벗어나고 싶어서다. 특히 좌절감, 모욕감 등과 같은 부정적인 정서를 느꼈을 때 그런 감정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어떻게든 긍정적인 정서로 전환하길 원한다. 즉 심리적 불쾌감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동기가 작동하는 것이다.

우리가 정서를 조절하려는 두 번째 이유는 내가 해야 할 일을 더 잘하고 싶어서다. 어떤 일을 잘해내기 위해 자신의 정서를 조금 더 나은 상태로 변화시키고자 노력하게 되는데, 이것을 도구적 동기instrumental motivation라고 한다.

정서를 조절하려는 세 번째 이유는 타인과의 관계를 망치지 않기 위해서다.

정서를 조절하려는 네 번째 이유는 타인의 평가를 의식해서다. 이것을 우리는 인상관리 동기impression management라고 한다. 사실 우리 사회의 문화나 분위기는 자신의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행동을 일반적이라고 보지 않는다.

반응 초점 정서 조절
두 번째는 반응 초점response-focused 정서 조절 방식이다. 특정한 일로 정서 경험이 발생한 후 해당 정서의 표현적, 생리적, 심리적 반응을 수정하여 정서를 조절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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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정서를 이해하는 것은 물론이고 타인의 정서를 이해하고 그 상황에 맞게 자신의 정서를 표현하는 것이 사회적 생존 측면에서 중요하다.

보상의 미소, 친화의 미소, 지배의 미소, 이 세 가지 기능에 따라 우리의 얼굴 표정은 각기 다르게 나타난다.

보상의 미소를 지을 경우에는 양쪽 입꼬리가 모두 올라간다. 그래서 상대방이 자기를 칭찬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친화의 미소를 지을 때는 입을 다문 채 한쪽 입꼬리만 올라가는 경우가 많다. 무언가 의도적인 메시지가 표정에 그대로 담겨 전달된다.

지배의 미소는 약간 거만한 듯한 웃음이라고 볼 수 있다. 얼굴 한쪽이 강조되는 미소가 만들어진다. 얼굴에 나타난 미소의 모양을 보면서 우리는 서로 다른 정서를 경험하게 되고, 이후 내가 느낀 정서에 따라 그에 맞는 행동을 하게 된다.

보상의 미소를 보면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게 되고, 친화의 미소를 대하면 친근한 행동을, 지배의 미소를 대하면 불쾌한 마음을 전달하는 행동을 자신의 정서 경험에 맞게 취할 수 있는 것이다.

정서의 집단 기능
정서는 개인의 행동뿐 아니라 집단을 형성하고, 또 집단의 행동을 유발하는 데에도 매우 중요하게 기능한다.

이성(생각)과 감정(정서)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성과 감정 모두 개인의 삶과 정체성을 규정하는 중요한 심리적 요소이자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감정을 통해 우리는 삶의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아쉬움을 경험하며,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긍정적으로 맺기 위해 노력하고, 집단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된다. 정서는 우리의 경험을 단순한 무채색이 아닌 유채색으로 채워주는 삶의 다양성이다.

정서 지능은 자신과 타인의 정서 상태를 이해하고 보다 나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정서를 조절하는 능력이다. 정서 상태를 잘 이해하고 그 상태에서 무엇이 바람직한 행동이며 대안이 될 수 있는지를 생각하면서 자신의 정서를 조절하면 사회적 상황에서 직면하는 타인과의 관계, 업무 추진 능력 등을 한층 향상시킬 수 있다. 자기의 감정을 잘 조절하는 것 역시 하나의 지적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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