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무선본)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 김영사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찾았다.
사피엔스 이거다.
검색해도 ㄷㄹㄱ 안 나오더만
2015년판 사피엔스 검색 안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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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11년, 1619년. 명의 압박으로 조선은 강홍립을 도원수로 하여 1만8천명의 조선군을 만주로 파병하였다.
1619년 3월 12일 샤르후(심하深河)전투
https://naver.me/xsvPdrL9 (나무위키)
https://naver.me/GAiRoISY (네이버)
https://naver.me/xw2A99oA (위키백과)

淸軍
˝그런데, 조선놈들은 대체 싸울 의사도 없으면서 군사는 왜 파견한 걸까요?˝
淸軍將帥
˝위에서 정치하는 놈들이 明의 눈치를 살피느라 그런 거겠지...˝
淸軍
˝그럼, 여기서 죽은 조선군들은 뭡니까?˝
淸軍將帥
˝...말 그대로 개죽음인거지. 그냥, 죽으라고 보내진거야˝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은 ...? 후예인가?
어찌 심하전투에서 조선군의 죽음을 개죽음이라 막말을 할 수 있는가?
감독은 시나리오작가는 제정신인가?

그리고 죽는건 세명중 두수(고창석) 뿐이다. 조건은 두수가 젤 유리했다. 왜 두수가 죽어야 하는가. 어이 없다

왠지, 광해군의 실리(중립)외교를 비판하는 청군의 마지막 대사.

그럴수밖에 없었던 광해군, 성은 이(李),  휘는 혼(琿),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선조와 공빈 김씨의 둘째 아들이다.
그 뒤 능양군반정으로 광해를 지지하는 대북파는 실각하고, 시류를 읽지 못하고 자신들만을 위한 권력욕과 명분(사실 명분도 없다. 명분이란 승자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에 사로잡힌 서인 노론 정권에 의해 조선은 쑥대밭이 된다.

광해군의 남자 박자흥
https://naver.me/G65P0p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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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는 인간을 과학적인 인식을 추구하고 사물을 기술적으로 이용하는 동물이기 이전에, 세계와 사물을 예술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동물이라고 보았다.

인간은 원래 신화적인 세계에서 살았다. 각 민족은 자신들만의 신화를 갖는다. 이러한 신화는 언어와 마찬가지로 창시자가 누군지 알 수 없는데도 사람들의 삶을 철저하게 규정했다. 사람들은 신화의 가르침에 따라서 신들에게 기도하고 제사를 지냈다.

모든 민족의 언어가 저마다의 세계관을 표현하는 것처럼, 민족의 신화도 세계에 대한 독특한 이해를 드러낸다. 원래 민족은 하나의 신화 공동체였으며, 세계에 대한 동일한 이해를 공유했다.

신화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모든 것은 표정을 갖는 영적인 존재로 나타났다.

그리스도교나 이슬람교는 모든 것이 탄생했다가 죽음으로 끝나고, 모든 것이 끊임없이 갈등하고 투쟁하는 이 세계를 불완전하고 악한 세계라고 단죄했다. 그리고 이런 변화가 다 사라지고 영원한 지복이 넘치는 세계를 천국이라는 이름으로 찬양한다.

그러나 니체는 탄생도 죽음도 변화도 없는 세계는 죽은 세계라고 보았다. 생명은 변화하는 것이고, 생명의 세계에서는 살아 있는 것들이 서로 화합도 하지만 갈등 혹은 투쟁하기도 한다.

근대 이전의 서양인들은 그리스도교에서 삶의 의미와 방향을 찾았지만, 많은 현상이 과학적으로 설명되면서 그리스도교는 영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벼락이 칠 때 사람들은 더 이상 그것에서 신의 분노를 보지 않고 전기적인 현상을 볼 뿐이고, 신에게 기도하기보다는 피뢰침을 달아 벼락을 피하려고 한다.

이러한 사태를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고 표현했다. 신은 죽었다는 말은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무신론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신이 과거에 가졌던 영향력을 더 이상 갖지 못하게 되었다는 시대 진단이다.

음악은 우주적 생명력을 상징하는 디오니소스의 표현이다

『비극의 탄생』에서 니체는 예술을 아폴론적 예술과 디오니소스적 예술로 나눈다.

아폴론적 예술은 건축, 미술, 조각, 서사시처럼 창작자와 감상자에게 사물을 조용히 관조하는 태도를 요구하는 조형예술이다.

디오니소스적 예술은 서정시, 음악, 춤과 같이 감정에 직접적으로 호소하면서 우리를 뒤흔드는 예술이다.

아폴론적인 것은 조형예술의 아름다움이 비롯되는 근본 원리이며,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비조형예술이 불러일으키는 도취가 비롯되는 근본 원리다.

아폴론적인 것이나 디오니소스적인 것 혹은 그리스 비극처럼 양자를 완전하게 구현할수록 훌륭한 예술이다.

니체는 아폴론적인 것이라는 용어를 태양과 같은 밝음, 이러한 밝음 아래에서 모든 사물이 드러내는 균형, 절도, 질서, 명료한 형태 그리고 국가의 도덕이나 법률, 아름다운 가상假像, 이러한 아름다운 가상을 형성하는 예술적 능력을 상징하는 용어로 사용했다.

인간에게 포도를 재배하고 포도주 만드는 법을 가르쳐준 디오니소스는 술과 도취의 신이다. 디오니소스적인 도취의 상태에서 사람들은 아폴론적인 절도와 질서에 수반되는 모든 금기禁忌에서 벗어나 서로가 하나가 되는 합일을 맛보았다.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각각 남성적인 원리와 여성적인 원리를 가리킨다고도 할 수 있다. 아폴론적인 것은 남성적인 절도와 균형 그리고 엄격함을,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여성적인 조화와 일치 그리고 부드러움을 의미하는 것이다.

고대인들에게도 디오니소스는 강력한 생명력과 풍요와 수확을 상징하는 신이었다. 따라서 디오니소스는 특히 농부들에게 사랑받았다. 도시국가 아테네의 독재자였던 페이시스트라토스는 민중의 환심을 사기 위해, 농부들이 성대하게 벌이던 디오니소스 축제를 아테네의 축제로 만들었다.

음악에 도취할 때 우리는 인간과 세계의 본질을 경험한다

세계의 근거를 맹목적인 욕망으로 보는 쇼펜하우어의 사상은 세계의 창조자를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 선한 신으로 보는 그리스도교 사상과 철저하게 대립한다.

쇼펜하우어는 근원적 일자로서의 세계의지는 끊임없는 욕망으로 인해 결핍감과 불만에 사로잡혀 내적으로 갈등하며 고통스러워한다고 본다. 따라서 세계의지의 표현인 개체들도 충족되지 않는 욕망으로 인해 고통받고 갈등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니체에 따르면 근원적인 일자의 내적인 모순과 불만은 근원적인 일자가 갖는 ‘풍요로움과 충만’에서 비롯된다. 이는 헤라클레스처럼 힘이 터질듯 충만하지만 발산할 곳이 없어서 괴로워하는 자가 겪는 고통과 유사하다. 바로 이것이 쇼펜하우어와 니체 사이의 결정적 차이이며, 둘 사이의 모든 차이는 여기에서 비롯한다.

니체의 철학에서는 인간이 자신의 힘을 마음껏 발산하는 활력 넘치는 삶을 영위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윤리적 이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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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최고 유명. 성심당]
전국 최고

2016년에 사서 아직까지 한자도 안 읽었다
저자는 창원사람이다.
대전사람도 아닌데 왜 이런책을 썼을까?
2016년12월에 찍은 사진(맨밑)
˝전국유명 서점 절찬 판매중˝
광고 현수막, 성심당 케익부띠크 건물에 걸어놓다

성심당에서 정확히 2km 떨어진 곳에서 10년간 기거했었다. 지금은 10km 이격.
오늘 아내님께서 딸님이 주신 성심당 케익쿠폰이 있다며 가자셔 댕겨왔다.
보문산 밑 유명 보리밥집인 반찬식당에서 보리밥 한그릇 먹고 성심당에 가니 주말이라 그런지 줄이 어마어마하다.
먼 빵을 사는데 줄서서 사냐며 가자고 타박을 놨다. 허나 꿈쩍할 아내님이 아니다. 할 수없이 줄서서 케익부띠크로 간다. 그런데, 옆 건물 지하주차장에 뭔지 휠씬 더 긴 줄이 있다. 용기내서 앞에 있는 젊은 처자들에게 물어보니 본점 들어가는 줄이란다. 😭

언제부터 성심당이 이렇게 유명해졌을까?
전엔 근처 살땐 아침 산책하다도 들리고, 아무때고 가서 스파게티며, 소부로빵이며 생각나면 들르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는 곳이 되었다. 나의 추억이 하나 사라지는 듯 하여 아쉽기 그지없다.
아들, 초딩시절 저렴하게 스파게티 먹을수 있어서 좋았는데...
대전서 26년째 살고있다. 유명한게 정말없다. 특히 문화유산은 거의 전무.
고작 있는게 동춘당, 동춘당 송준길의 별당.
국토의 중심이라 살기는 편하다. 덕분에 2000~2007년까지 8년간 서울로 출퇴근도하고.

그래도 줄이 빨리빨리 빠진다. 이것저것 케익을 담았다. 허, 10만원이 훌쩍넘는다.
아들 놈 선생 롤케잌 하나씩 사주자신다.
계산줄에 섰다. 딸이 준 쿠폰을 아내가 내밀었다.
˝DCC점에서 5월달에 사용했는데요˝
ㅠㅠ ㅠ 😢 😭 😢 ㅠㅠ 😭
˝어, 그럴리가요. 이상하다. 쓴적이 없는데˝
˝케익하나 빼주세요˝
야, 마눌님아 정신좀 차리고 삽시다.
쿠폰만 아녔어도 줄 따윈 서지 않았을텐데
괜히 줄서서 이게 무시기여
암튼 간만에 성심당 케익을 먹어본다.

추억의 성심당이여 영원하라!

창업주는 古임길순 님이다.
혹? 우리 임씨인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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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4-11-24 09: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성심당에서 비슷한 거리 살아요. 저렇게 줄서서 사는 곳 된 이후로는 안 가본 것 같아요.
저도 시간 있을땐 대전 보다 공주나 청주로 가는데 그나마 가까은 곳에 가볼곳 많은 지역들 있는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답니다^^

대장정 2024-11-24 09:19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반갑습니다. 이제 점점 더 나이 먹으면 더욱 못갈거 같아요ㅎㅎ. 어제도 거의 어린애들만 줄서 있어요.
 

비극의 탄생
니체의 첫 번째 저술로 니체 나이 불과 28세였던 1872년에 출간되었다. 이 책에는 청년 니체의 천재적인 면모가 유감없이 드러나 있다. 니체는 이 책에서 그리스 비극의 기원과 본질을 탐색하는 방식으로 그리스 예술의 역사, 인간과 세계 그리고 예술의 본질을 탐구한다. 아울러 현대문명의 병폐를 진단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 따라서 패기로 가득 찬 청년 니체가 자신의 예술철학뿐 아니라 독자적인 인간학과 형이상학 그리고 현대문명을 비판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아폴론적 예술
건축, 미술, 조각, 서사시처럼 사물을 조용히 관조하게 하는 조형예술을 가리킨다. ‘아폴론적인 것’은 태양과 같은 밝음, 이러한 밝음 아래서 모든 사물이 드러내는 균형, 절도, 질서, 명료한 형태 그리고 국가의 도덕이나 법률, 아름다운 가상(假像) 및 아름다운 가상을 형성하는 예술적 능력을 상징한다.

디오니소스적 예술
서정시, 음악, 춤과 같이 감정에 직접적으로 호소하면서 우리를 도취에 빠지게 하는 비조형 예술을 가리킨다.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만물이 하나가 되는 황홀경, 건설과 파괴를 거듭하면서 놀이하는 세계의 충일한 생명력을 상징한다.

도취
『비극의 탄생』에서 도취는 개체가 자신의 개체성을 망각하고 세계의지와 하나가 되는 합일의 느낌을 가리킨다면, 후기 니체에서는 힘이 상승하고 고양되는 느낌을 가리킨다. 이러한 도취는 단순히 심리적 상태만이 아니고, 신체 전체가 느끼는 ‘쾌감’의 상태다. 도취를 경험할 때 우리의 혈관과 신경과 근육이 흥분하고 일깨워지면서 심리적인 차원에서는 황홀경을 경험하게 된다.

영원 회귀 사상
니체는 삶에 대한 최고 긍정의 형식으로 영원 회귀 사상을 창안했다. 이것은 그리스도교나 마르크스주의와 같은 목적론적인 세계관과 가장 대립하는 세계관이다. 그리스도교나 마르크스주의는 자연과 인간의 역사가 최후의 심판이나 공산주의와 같은 미래의 궁극적인 목적을 향해서 나아간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니체는 모든 것이 아무런 목적도 의미도 없이 끊임없이 반복된다고 말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고통이나 악도 끊임없이 되돌아온다는 사실은 힘이 약한 자를 절망에 빠뜨리지만, 힘이 강한 자는 그러한 사실을 흔쾌하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렇게 영원 회귀를 흔쾌하게 긍정할 때, 힘이 약한 자에게는 악이나 고통으로 여겨지는 것조차도 숭고한 의미를 갖는다.

개별화의 원리
시간과 공간을 가리킨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모든 것이 시간과 공간을 통해서 구획되어 있다. 동일한 시공간 속에 존재하는 것은 오직 하나뿐이다. 어떤 사람이 나와 동일한 시간과 공간 속에 존재한다면 그 사람은 나와 동일한 사람이다. 이 점에서 시간과 공간은 모든 것을 서로 구별되는 개체들로 나타나게 하는 원리다.

세계의지
시간과 공간 속에서 나타나는 개체들의 배후에 존재하는 통일적인 우주적 생명력을 가리킨다. 개체들은 하나의 통일적인 세계의지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서로 투쟁하고 갈등하면서도 조화를 이룬다.

니힐리즘
삶과 세계에서는 아무런 목적도 의미도 없이, 모든 것이 덧없이 생성되고 소멸할 뿐이라고 보는 사상이다. 이는 결국 허망한 죽음으로 귀착되는 삶에 대한 염세주의와도 연결된다.

니체는 서양철학자 중에서 가장 큰 관심과 애정을 받고 있는 철학자다.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오늘날의 중국에서조차도 니체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고 한다.

니체는 선과 악이라는 대립 구도를 갖는 전통적인 가치관 대신에 강함과 약함이라는 대립 구도를 갖는 새로운 가치관을 내세우고 있다. 니체는 선하고 착한 인간이 아니라 강한 인간이 되라고 외치는 것이다.

자신보다 약하고 불리한 위치에 있는 자들에 군림하는 강함을 니체는 강함이라고 부르지 않고 비겁함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만만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방식으로 우월감을 느끼려고 하는 못난 자들이다.

니체가 특히 경멸하고 경계하는 자들은 첫째로 자신들을 신을 대리하는 선한 자들로 자처하면서 자신들의 교리와 조직에 복종하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진다고 대중을 협박하는 기독교 성직자들이다.

그리고 둘째로 정의와 평등을 내세우지만 사실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들에 대한 대중의 원한과 시기심에 호소하면서 대중을 선동하여 권력을 잡고 새로운 지배 계급으로 군림하는 사회주의자들이다.

니체가 생각하는 진정으로 강한 자들은 자신보다 동등하거나 이왕이면 자신보다 더 강한 자들과 겨루려는 자들이고, 자신들의 적이 훌륭한 적수라면 기꺼이 존경을 표할 줄 아는 자들이다.

또한 그들은 무엇보다도 자신에 대해서 엄격한 자들이고, 고난이나 고통을 자신의 성장과 발전의 계기로 삼을 수 있는 자들이다. 니체 자신의 말을 빌리면 그들은 "우리를 죽이지 않는 것은 우리를 강하게 만든다"라고 말하는 자들이다.

진정으로 강한 자들은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경쟁과 고통 그리고 고난이 사라지지 않는 이 세계를 그대로 긍정하면서 이 세계에서 춤추듯 유희하면서 살아가는 자들이다.

진정으로 강한 자들은 기독교가 그리는 천국이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말하는 공산주의 사회처럼 경쟁이나 고통 그리고 고난이 사라진 세계를 꿈꾸지 않는다.

그들은 이러한 세계는 허약하고 지친 자들이 만들어낸 신기루에 불과하다고 본다.

니체는 우리가 디오니소스의 충만한 생명력과 하나 될 것을 요구한다. 춤추는 신인 디오니소스처럼 그 모든 고통과 고난에도 이 세계를 긍정하면서 유희하듯이 살라는 것이다. 그리고 니체는 예술이야말로 우리 내면에 잠재한 충만한 생명력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보았다.

가장 불행한 존재인 인간과 『비극의 탄생』

요컨대 니체의 『비극의 탄생』은 예술의 본질을 탐구하는 예술철학이면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철학적 인간학이며, 세계 전체의 기원과 구조에 대해 탐구하는 형이상학이기도 하다.

누구보다 삶을 사랑했던 철학자의 불멸의 고전

왜 삶은 고통과 갈등으로 가득 차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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