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기억은 좋은 것인가?
컴퓨터가 인간 뇌의 학습과 기억 원리를 완벽히 구현하면 아마도 인간과 비슷해지는 게 아니라 인간보다 더 완벽한 학습과 기억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세월이 흐르면 기억을 잘하지 못하는 게 정상이지만, 컴퓨터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모든 것을 아주 또렷이 사진처럼 기억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라는 유명한 심리학자가 했던 말을 잊지 말자. "잊어버리는 것은 기억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능력이며, 벌어진 모든 일을 기억하는 것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과 같을 수 있다."

뇌는 우리에게 완전한 기억을 제공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화기억은 리메이크된다
뇌인지과학적 연구를 통해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뇌는 다시 기억을 꺼내는 과정에서 앞의 그림 속 깨진 접시의 빈 곳을 그럴듯하게 메꾸는 전략을 취함으로써 마치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즉 없는 정보를 현재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유추inference’해낸다. 뇌의 신경망은 이처럼 ‘빈 곳 채워 넣기’를 너무도 자연스럽게 하므로 우리는 거의 이를 느끼지 못한다.

해마가 이처럼 불완전한 일화기억을 인출하면서 불완전한 부분을 다시 완전하게 복원하는 것을 기억의 ‘재구성reconstruction’이라고 부른다.

즉, 우리의 기억은 사진처럼 찍은 상태 그대로 다시 꺼내 보는 것이 아니라 꺼낼 때 다시 퍼즐처럼 짜 맞춰서 재구성해야만 의미가 있는 그런 정보이다.

우리의 뇌는 조금씩 조금씩 매번 다르게 보이는 자극이 자신의 기억 속 정보와 얼마나 다른지 끊임없이 비교하고, 그 결과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으면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물체나 장소에 대한 정보와 동일시하는 전략을 취한다. 이러한 정보처리 방식을 일반화generalization라고 한다.

뇌의 작동 원리를 완전히 알아낸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영화에서처럼 누군가의 기억과 경험을 조작하는 위험한 일이 생길까? 혹은 이미 신경망이 손상된 사람들이나 PTSD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다시 행복해질까? 그리고 지금의 인공지능은 비로소 우리 뇌와 비슷해질 수 있을까?

우리나라와 같이 교육열이 높은 곳에서 예를 들어 ‘수능이 얼마 안 남았죠. 물리Ⅱ를 한 달 만에 완성하고 싶으십니까? 기억을 심어드립니다.’ 이런 광고가 TV에 등장한다고 생각해보면 상상하기 쉬울 것 같다.

"The idea behind digital computers may be explained by saying that these machines are intended to carry out any operations which could be done by a human computer."34 이 말을 번역해보면 이렇다. "디지털 컴퓨터라는 아이디어를 쉽게 설명하자면, 인간이 하는 모든 사고를 똑같이 할 수 있는 기계를 말하는 것이다."

하사비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If we want computers to discover new knowledge, then we must give them the ability to truly learn for themselves(컴퓨터가 우리를 위해 새로운 지식을 발견해주기를 원한다면 컴퓨터가 정말로 스스로 학습할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경험에 비춰볼 때 이렇게 소통이 되지 않는 사람들은 몇 가지 유형이 있다.

첫 번째는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나서 듣게 될 상대방의 반응을 지나치게 걱정하는 유형이다.

두 번째 유형은 자폐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사회생활을 성공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학습과 기억 및 그 결과물을 활용하는 인지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사회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사람은 과연 인간답게 생존하고 있는가에 대한 철학적 물음에 직면하게 된다.

공감, 마음이론과 같은 타인에 대한 이해, 소통 등의 중요성은 사회생활의 필요성이 없이 개별적인 인지 기능만이 강조되며 개발되고 있는 지금의 인공지능보다 사람의 뇌가 발휘하는 자연지능이 얼마나 뛰어난지 새삼 깨닫게 해준다.

뇌는 매우 오래전에 단순한 세포에서 매우 복잡한 장기로 진화했는데, 진화의 과정에서 방향을 결정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어떻게 하면 생존 확률을 높일 수 있을 것인가’이다.

절차적 학습과 기억 시스템을 사용하는 것처럼 잦은 빈도로 해마를 비롯한 내측측두엽의 영역들을 사용한다면 기억의 노화를 늦출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친구들도 많이 만나고 열심히 학습하고 기억하는 일을 나이가 들더라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뇌를 계속 쓰는 것이 학습과 기억의 노화를 더디게 하는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학습해야 할 정보는 종류가 다양하므로 우리 뇌에는 종류별로 학습 및 기억을 관장하는 시스템이 따로 있다. 뇌세포들은 서로 긴밀하게 정보를 주고받으며 학습하고 기억하는 기능적 네트워크 혹은 신경망을 이루는데, 이 신경망의 위치와 기능 역시 학습의 종류에 따라 다르다.

이세돌을 이겼던 알파고 역시 엄청난 에너지와 자원을 쓰면서 이세돌을 상대했다. 컴퓨터는 이세돌처럼 바둑을 두러 집에서 대국장으로 이동할 필요도 없고 대국이 끝나고 집에 갈 필요도 없다. 이동할 필요도 없고 잠을 잘 필요도 없고 오로지 바둑이라는 게임만을 위해 그 엄청난 자원을 쓴 알파고를 상대로 1.5킬로그램 정도의 무게를 가진 인간의 뇌 하나가 홀로 그토록 선전했다는 것 자체를 오히려 경이롭게 여겨야 한다.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라는 프랑스 작가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홍차와 마들렌 과자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사건은 바로 일화기억의 전형적인 인출 형태 중 하나이다.

우리 뇌에 다양한 기억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아냈을까? 그 진정한 출발점은 해마 연구였다. 해마는 우리가 매일매일 평생 겪는 일을 차곡차곡 기록하고 저장한다. 사건을 기억하고, 길을 기억하고, 이러한 기억을 토대로 의사결정에도 관여한다. 해마의 작동 원리를 과학적으로 이해하면 뇌의 학습과 기억의 미스터리가 풀릴 것이며, 뇌 지능의 정수를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학습(learning)
생명체가 알지 못하던 것을 알게 되는 일을 말한다. 특수한 무언가를 배워서 시험을 치르는 것은 뇌의 학습 시스템 측면에서 보면 아주 작은 부분이다. 갓난아기나 동물의 새끼가 태어나 죽을 때까지, 뇌가 생존을 위해 쉬지 않고 수행해야 하는 기본적인 인지 기능이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우리의 뇌는 매 순간 학습한다.

절차적 기억(procedural memory)
어떤 과제를 해결하거나 행동을 수행하는 데 요구되는 일련의 지식이나 기능에 대한 기억을 의미한다. 절차적 기억은 자주 사용함에 따라 의식적인 노력 없이 자동적으로 접근하여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자전거를 타거나 악기를 연주하거나 운전하는 등의 행동을 포함한다. 오로지 행동을 통해서만 내가 해당 기억을 갖고 있음을 보일 수 있다.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행동하도록 만드는 아주 중요한 기억이다.

서술적 기억(declarative memory)
사실과 사건에 관련된 기억으로, 절차적 기억과 달리 학습되어 저장된 기억의 내용을 언어를 사용해서 의식적으로 남에게 말해줄 수 있다. 일화기억, 재인, 회상 등은 모두 서술적 기억의 예로, 특히 일화기억은 서술적 기억 시스템의 핵심이다.

일화기억(episodic memory)
개인의 경험, 즉 자전적 사건에 대한 기억으로 사건이 일어난 시간, 장소, 상황 등의 맥락을 포함한다. 우리의 일상생활에 대한 기억을 저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개인이 살아온 역사를 저장하고 있는 소중한 기억이기도 하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자동적으로 학습하고 이를 기억으로 저장한 뒤, 훗날 기억 속에서 특정 사건이 일어난 시점부터 벌어진 일을 순차적으로 말할 수 있게 한다.

해마(hippocampus)
일반인들이 많이 들어본 알츠하이머성 치매라는 뇌질환이 생기면 뇌의 해마가 다른 뇌 영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먼저 손상을 입는다. 해마 연구는 우리 뇌의 서로 다른 영역이 다른 종류의 학습과 기억에 관여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줌으로써 현대 뇌인지과학의 출발점을 제공했다.

뉴런(neuron)
뇌세포는 다른 장기의 세포들과 모양도 다르고 기능도 달라서 뇌세포라고 부르지 않고 뉴런이라고 부른다. 뇌는 기본적으로 뉴런이라는 세포로 구성되어 있고, 특정 뇌 영역이 담당하는 기능에 따라 다양한 모양의 뉴런이 존재한다. 뉴런들이 서로 연결되어 이루는 네트워크를 신경회로 혹은 신경망이라고 부른다.

시냅스(synapse)
뉴런과 뉴런이 서로 연결되는 부위에는 화학적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시냅스라는 공간이 있다. 뉴런들은 시냅스에서 여러 가지 신경전달물질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주고받으며 서로 소통한다. 그리고 소통한 방식과 소통한 내용의 중요도에 따라 그 소통은 기억되기도 하고 잊히기도 한다. 시냅스의 강도가 기억되는 것이다. 학습이 일어나는 최소 단위이기도 하다. 학습은 뉴런들 사이의 소통이 시냅스를 통해 일어나면서 그 시냅스의 흥분된 상태가 지속되어야만 뇌에 ‘새겨지는’ 것이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
뇌가 특정 기억을 과하게 간직하고 있어도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데 때로는 큰 방해가 된다. 극도의 공포와 불안을 동반했던 일화기억은 세월이 지나도 잊히지 않고, 그 사건과 비슷한 일만 봐도 다시 등에서 식은땀이 나고 몸이 움직이지 않는 반응이 나올 정도로 뇌가 과민반응을 보일 수 있다.

"생명체는 ‘생명‘이 붙어 있는 한 학습한다.
그리고 기억한다. 당연히 목적은 생존이다.‘

뇌가 어떻게 학습하는지 연구하는 뇌인지과학자의 입장에서 본 학습의 개념은 매우 간단하다. 학습은 생명체가 알지 못하던 것을 알게 되는 일을 말한다.

생명체는 ‘생명’이 붙어 있는 한 학습한다. 그리고, 이를 기억한다. 당연히 목적은 죽지 않고 생존하는 것이다.
"알지 못하던 것을 알게 된다." 너무도 단순한 이 정의에 뇌의 신비와 생존의 신비가 숨어 있다.

뇌에게 학습은 선택이 아니라 필연적 숙명이다. 왜 그럴까? 뇌가 학습을 멈추는 순간 어떤 일이 일어날까? 단순하게는 세상 속에 계속 존재하기 위해, 더 나아가 세상에 더 잘 적응하고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뇌는 끊임없이 학습하고 기억한다.

자연계에서 포식자와 피식자의 뇌는 서로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경쟁하고, 경쟁에서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비슷한 경쟁에 대한 경험적 학습이 얼마나 되어 있는가이다. 우리 인간의 사회생활도 아마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