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행 앞에서는 500여 명의 남녀 노동자들이 경찰과 경비원들의거친 몽둥이질 앞에서 어찌할 줄을 모르고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고 있었다. 전태일은 10분쯤 지나 회원들 옆에 나타났다. 그는 가장 친한 친구 김개남을 끌어당겨 급히 옆골목으로 갔다.「너 성냥 있지? 불 좀 켜봐.」전태일의 말에 김개남은 무심코 성냥을 켰다. 다음 순간 전태일이 다가서는가 싶더니 옷에 불이 확 붙었다.「아니, 태일아!」김개남은 눈이 뒤집혀 소리쳤다.순식간에 온몸이 불길에 휩싸인 전태일은 큰길로 뛰쳐나가고 있었다.「근로기준법을준수하라!」불길 속에서 전태일이 외쳐댔다.「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노동자들을 향해 뛰는 불길이 외쳤다.「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아!」더 거세게 휘돌고 너울거리는 불길 속에서 울부짖는 목소리가 갈라지고 있었다.전태일은 불길과 싸우며 무슨 구호를 또 외쳤다. 그러나 입에서는 말대신 허연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또 외쳤다. 역시 허연 연기만 한 줄기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는 불길과 함께 쓰러졌다. - P43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생을 두고 맹세한 내가, 그 많은 시간과 공상 속에서,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아니될 나약한 생명체들.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너희들은 내 마음의 고향이로다……. - P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