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2월에 출간된 최윤의 소설집 『열세가지 이름의 꽃향기』에 수록된 단편 「파편자전: 사물이 영향을 미치는 몇 가지 방식」에는 ‘톰보우 연필‘이란소제목을 단 짧은 챕터가 있다. 나는 약 일곱 페이지분량의 그 글을 여러 번 읽으면서 2000년대를 맞았다. 연필 애호가라면 싫어하기가 더 힘든 톰보우 연필보다 최윤이 쓴 그 글이 조금 더 좋았고, 한국 작가가 쓴 연필 관련 산문 중 가장 빨리 마음을 뺏겼다. 도입부의 "연필은 어딘가에서 어디로 가는 다리다" 라는 문장부터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