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딕 × 호러 × 제주 로컬은 재미있다
빗물 외 지음 / 빚은책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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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세상의 이면을 보는 호러 작가 7인 × 그들이 사랑하는 섬 제주도
아름다운 섬과 섬에 깃든 그림자, 그 환상과 현실을 조율해 낸 7편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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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의 진보 세력은 검찰과 언론 한두 곳을 진영 속에 묻은 채 정조준하고 있다. 만약 윤석열 검찰총장이 물러나기라도 하면 진보 세력의 할 일은 거의 끝날 듯한 놀라운 시절 아닌가.

거리낌 없는 타락의 정치

4·15 총선이 3주도 남지 않은 오늘, "모든 국민은 자기 수준의 정부를 가진다"던 19세기 유럽의 반동적 보수주의자의 말이 뇌리를 때린다.

가령 100퍼센트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실시하는 독일에서 의석수를 늘리기 위해 위성 정당이라는 꼼수나 변칙 행위를 벌이는 정당이 있다면 곧바로 유권자들로부터 배척될 것이다. 그들의 정치의식이 그런 반칙 행위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번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 그리고 그들의 위성 정당들을 심판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초라하고 낮은 정치의식의 소유자임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

위성 정당은 염치없는 정치가 연출한 막장 드라마다. 하지만 민주 시민에겐 정치 혐오와 냉소에 빠질 권리가 없다. 정치적 동물로서 우리는 분노를 적극적 참여로 표출해야 한다. 이번 총선에서 두 거대 정당과 위성 정당을 제외한 정당과 후보에게 표를 주자. 그 득표수는 한국 사회 구성원들이 얼마나 성숙한 정치의식을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정확한 가늠자가 될 것이다.

인간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다하지 못하기 때문에 신이 되지 못하는 한편, 하면 안 될 일을 멈추지 않을 때 괴물이 된다. 간디는 "신은 모든 사람의 필요를 충족시켜주지만, 단 한 사람의 탐욕도 만족시킬 수 없다"고 했다.

‘조중동’ 독자들이 대부분 편익을 위해 신문을 구독한다면, <한겨레>나 <경향신문> 독자는 논조에 공감하기 위해 구독한다. 진보 신문의 어려움이 이 점에서 비롯된다. 논조에 100퍼센트 공감할 수 없는 일인데 독자들이 그걸 원하기 때문이다. <한겨레> 창간 주주들 중에도 절독한 사람이 적지 않다.

나는 개인적으로 학습을 게을리하여 실력이 부족하면서도 지적 우월감과 윤리적 우월감으로 무장한 ‘민주 건달’이 되지 않을 것을 자경문의 하나로 삼고 있다.

‘사회적 기포’는 예상했던 대로 금세 잦아들었다. 변혁적 국면은 기성 정치로, 정치는 통치와 행정으로 수렴되었다.

정치는 통치와 행정으로 수렴되었고, 촛불로 뜨거웠던 광장은 다시 시장에 자리를 내주었으며, 시민은 소비자로 되돌아왔다.

물론 상상에 멈춰선 안 된다. 참여하고 행동해야 한다. 광신자나 사익 추구 세력 또는 극단주의자보다 더 열성적으로.

2월 7일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트럼프 행정부가) 일본이나 독일보다 안보의 약점을 더 많이 안고 있는 한국을 상대로 ‘살계경후(殺鷄儆猴, 닭을 죽여 원숭이한테 겁을 준다)’를 시도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과 마찬가지로 강대국 사이의 갈등도 약자의 희생이라는 대가를 치르고 정리되는 게 국제 현실이다.

그의 ‘분명하지 않음’은 결선투표제가 요구되는 또 하나의 이유다. "나는 차선으로라도 유권자 과반수의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국민에게 했던 공약을 지켜야 한다"고 조금은 더 당당히 말할 수 있을 테니까.

"모든 국민은 자기 수준의 정부를 가진다."

알렉시 드 토크빌의 말로 잘못 알려져 있지만, 그보다 조금 일찍 프랑스에서 태어난 반혁명주의자 조제프 드 메스트르(Jo­­seph de Maistre)의 말이다.

우리에게 이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의 현대 정치사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왜곡과 반동의 굴절을 겪어야 했다. 87년 6월 항쟁이, 속된 표현으로 ‘죽 쒀서 개에게 준’ 꼴이 되어버린 가장 큰 이유는 결선투표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기득권 집단은 광신자 집단 버금가게 열성적이다. 현재의 기득권을 유지하거나 키우려고 할 때는 뻔뻔스러움과 억지를 부린다면, 기득권을 조금이라도 빼앗길 우려가 있을 때는 거기에 악착스러움까지 보태는 경향이 있다.

"부끄러움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귀국 전에 "우리는 왜 역사를 공부해야 하나?"라는 내 물음에 대한 프랑스 역사 교수의 거침없는 대답이었다.

이 절제는 세 방향에서 작용한다. 내면의 성찰에서 비롯되는 자기 절제, 상호 견제와 비판에 의해 작용하는 절제, 그리고 민중의 비판력으로부터 작용하는 절제가 그것이다.

사람들이 기존의 생각을 고집하기 때문에 설득하기 어렵고, 그래서 모두 설득하기를 포기한다면, 세상의 변화를 어떻게 이끌어낼 수 있을까. 의미 있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다시금 되새기자. 우리가 가는 길이 어려운 게 아니라 어려운 길이므로 우리가 가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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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함에 대하여.
이렇게 좋은 책을 홍세화님께서 돌아가신 후 읽게 되다니 이 또한 미안(죄송)할 따름이다.

“내 안에는 살아남은 자의 미안함이 있다”

홍세화(洪世和, 1947년 12월 10일~2024년 4월 18일)
서울대학교 금속공학과 입학 후 자퇴,
다시 재수하여 외교학과에 입학, 졸업
1979년 무역회사 상사원으로 프랑스 파리 주재시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 사건으로 귀국하지 못하고 프랑스로 망명. 후일, 그는 망명생활의 술회를 기술한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로 유명해졌고(나 또한 1995년 이 책을 감명깊게 읽고 그를 알게되었고, 남민전 사건의 또 다른 유형의 피해자임을 알게 되었다), 이 책에서 그는 똘레랑스(관용?)라는 프랑스 문화를 소개하였다.

2002년 귀국. 언론인, 작가로 활동, 진보신당 대표 역임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
1. 사형-신향식(1982년 형 집행, 전남 고흥 출생, 서울대), 이재문(대구, 고문 후유증으로 서대문 형무소에서 1981년 사망)
2. 무기징역-안재구(수학교수, 사형 언도받았으나, 세계 수학교수들의 노력으로 무기징역으로 감형) 등 5명
3. 징역15년 김남주...... 등 다수
4. 징역5년 이재오...... 등 다수

MB 정부 실세이며, 친이계 좌장인 이재오도 남민전 사건으로 징역 5년.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극과 극을 오갈 수 있을지 놀라울 따름이다.

오! 놀라워라 그댈 향한 내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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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에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라는 구절이 있다. 중국의 각급 학교에 붙어 있다는 글귀로,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는 뜻이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다! 바로 우리 모습 아닌가! ‘배움’과 ‘생각하기’는 어우러져야 한다.

"노력은 실력이 아니라 계층이다!"

앞으로 ‘명문대 졸업장’, ‘좋은 일자리’, ‘비싼 주택’ 소유와 더불어 세습에 따른 계층화는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지배계급의 재생산은 일정 부분 문화자본의 전달에 종속되는데, 문화자본은 병합된 자본이라는 고유성을 가지며, 따라서 십중팔구 타고나는 것"(피에르 부르디외)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이제 계층 상승의 길은 막히고, 양극화는 심해지는 가운데 지난날의 낙수효과도 사라졌다. 대물림되는 이 땅의 가난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신자유주의가 발호하면서 너덜너덜해졌다지만, 그래도 남아 있는 유럽의 사민주의 정책의 잔해가 한국 현실 정치에 기대할 수 있는 최대치인가.

두 전쟁 모두 미국이 개입했는데, 한국전쟁이 ‘승자 없는 전쟁’으로 분단 상태를 지속시켰다면 베트남은 통일되었다는 차이가 있다. 이 차이는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호찌민이라는 걸출한 지도자, 베트남 역사에 면면히 흐르는 항쟁 정신, 이념의 차이를 눅여준 마을 공동체 의식 등을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베트남에는 밀림이 있는 대신 한반도에는 혹독한 겨울이 있다는 자연 조건의 차이가 가장 중요했을지도 모르겠다.

베트남 참전 최고의 수혜자는 박정희였다. 베트남이 통일된 날인 1975년 4월 30일보다 3주 앞서, 한국에서는 인혁당 재건위 관련자 여덟 분이 처형당했다.

그렇게 일반 민중이 개와 돼지처럼 배만 채우면 되던 시절, 높으신 분들의 심성 안에는 추위와 배고픔이라는 비참함에 대해 서양에는 기독교의 ‘긍휼’, 동양에는 공맹사상의 ‘측은지심’이라는 것이 있었다. 지체 높은 분들 스스로는 추위와 배고픔을 겪지 않았어도 공감 능력은 갖고 있었던 것이다.

『레미제라블』을 쓴 빅토르 위고의 "온정, 시혜에 관해 사람들은 받는 쪽이 아닌 주는 쪽에서만 생각한다"는 말이나, 『주홍글씨』를 쓴 너새니얼 호손의 "온정과 오만은 쌍둥이"라는 말이 시사하듯, 온정과 시혜를 필요로 하는 사회보다는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회가 더 나은 사회라는 것은 분명하다.

남의 온정과 시혜가 필요한 상황, 그것 자체가 이미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된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당당하게 요구하자. 인간답게 살 권리를. 어느 때보다도 "리얼리스트가 되자. 하지만 가슴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던 누군가의 말이 가슴에 다가오지 않는가. 이번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대회에는 한국의 예술가와 활동가가 참여해 콘서트, 퍼포먼스, 캠페인 등을 펼치는 ‘기본소득 주간’ 행사도 함께 열린다. 불가능한 꿈을 꾸는 리얼리스트의 많은 참여가 있기 바란다.

"다음 혁명에는 바지를"

"나는 공산주의에 찬성이오. 사회주의도 찬성이오. 그리고 자본주의도 찬성이오. 왜냐하면, 나는 기회주의자이므로." 프랑스 가수 자크 뒤트롱의 노래 <기회주의자>는 이렇게 시작한다.

뒤트롱의 노래 <기회주의자>는 이렇게 끝난다. "저고리를 너무 뒤집어 입어서 이젠 양쪽이 모두 해어졌다오. 다음 혁명에는 바지를 뒤집어 입을 거요." (혁명을 기대하기 어렵기에) 한국의 기회주의자는 바지를 뒤집어 입을 일은 없겠지만….

오늘날 박 정권과 박 정권을 떠받치는 수구 세력이 일본의 식민 체제 아래에서 조선 민중이 겪어야 했던 고통에 공감한다면, 해방 이후 대한민국에서 국가의 이름으로 저지른 학살과 고문 행위에 대해서는 왜 그리 둔감할까. 아니, 둔감하다는 말은 가당치 않다. 그들이 바로 학살과 고문, 간첩 조작 등 국가 폭력 행위의 주체였거나 거기서 싹튼 세력이기 때문이다.

실상 아베 신조에게는 가소롭게 비칠지 모른다. 자국민을 학살하고 고문한 자들이 식민지 조선과 조선 사람을 유린했다고 일본을 손가락질할 수 있나? 더구나 일본의 식민 체제에 빌붙어 사적 안위와 영달을 추구했던 자들이?

샤를 드골의 발언 "과거를 잊지 않은 채 함께 미래를 바라보기로 했다"

프랑스에서 망명도생을 결심하기 전에 가장 두려웠던 것은 장기간의 징역살이보다 그에 앞서 치러야 할 고문에 대한 공포였다.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고 2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도 ‘박 정권’이라는 말에 섬뜩 놀라고 꿈속인 듯이 허우적대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 또한 나의 성정 탓이겠다.

장발장은행은 되도록 빨리 문을 닫아야 한다. 그러자면 범법 행위자에 대한 벌금액을 소득과 재산에 연동하여 부자에겐 많이, 가난한 사람에겐 적게 받아내야 한다. 즉 현행 총액벌금제를 일수벌금제로 바꿔야 한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다 쫓아내고, 돈 바꿔주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성서에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리리라’ 했는데 너희는 이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라고 말씀하셨다.

6월 항쟁 당시 경찰에 쫓겨 명동성당에 몸을 피한 청년 학생들을 체포하려는 정권에 김수환 추기경이 했던 말은 지금도 감동으로 다가온다. "성당 안으로 경찰이 들어오면 맨 앞에 내가 있을 것이고 그 뒤에 신부들과 수녀들이 있을 것이오. 우리들을 다 넘어뜨린 후에야 학생들이 있을 것이오."

지난여름 한국을 방문했을 때 가장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도 가장 낮은 자리를 찾았던 프란치스코 교종은 이렇게 말했다. "조직의 안위에만 치중하는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는 말과 행동을 통해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개입해야 하며, 필요하다면 신발에 거리의 진흙을 묻힐 수도 있어야 한다. 나는 교회가 좀 더 깨지고 상처 입고 더러워지기를 원한다." 사회의 변두리는 사제가 피할 곳이 아니라 찾아가야 할 곳임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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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가 노예 해방의 세기, 20세기가 보통선거권과 여성 참정권의 세기였다면, 21세기는 성소수자들의 해방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땅에 만연한 무지와 편견, 차별과 배제에 시달리는 성소수자에게 동시대인으로서 미안함이 앞서기 때문이다. 또한 ‘한 사람이라도 자유롭지 못한 사회는 자유로운 사회가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선한 사람의 무관심이 악을 키운다"는 18세기 영국의 보수주의 정치가 에드먼드 버크의 말을 내 가슴에 새기고 있기 때문이다.

법안 통과 직후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2019년 5월 17일 대만에서 사랑이 이겼다. 진정한 평등을 위한 큰 걸음을 내디뎠고 대만을 좀 더 좋은 나라로 만들었다."

북한에 대한 공포 마케팅을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해온 한국의 극우 세력은 공포의 대상을 이민자, 난민 등 외부자로 확장하여 혐오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이질적 내부자인 성소수자로 확장하여 "피땀 흘려 세운 나라, 동성애로 무너진다"는 공포의 구호를 낳는다. 이런 모습은 개신교의 확장성에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착한 방관자는 비겁한 위선자

"광주 사람은 소수민족인가, 이교도인가?"

1980년 5월의 일주일 동안, 프랑스 공영 티브이의 저녁 8시 뉴스는 광주 민주항쟁을 연일 톱으로 보도했다

뉴스를 접한 프랑스인의 반응 중 하나가 "광주 사람은 소수민족인가, 이교도인가?"였다. 그들의 눈에는 몽둥이로 두들겨 맞고, 두 손을 뒤로 묶여 굴비처럼 엮이고, 팬티 바람으로 트럭에 끌려가고, 마구 쏜 총에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 일반 시민일 수 없었다. 그보다는 한나 아렌트가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자들"로 칭한 ‘파리아(pariah)’에 가까운 존재였다.

특히 혐오는, 전두환 무리가 그렇듯이, 탄압은 물론 살육까지 마다하지 않는 세력에게 양심의 짐을 없애준다.

9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아베 정권을 비롯하여 일본의 극우 세력이 과거를 부정하고, ‘위안부’ 문제에 사죄할 뜻이 없는 것도 ‘혐한(嫌韓) 감정’으로 양심의 짐을 벗어던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혐오의 정치가 정치에 대한 혐오감을 불러일으켜서 시민들을 정치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결과적으로 혐오스러운 정치인이 정치를 계속 독점하게 하는 부수적 효과를 가져온다는 점을 놓쳐선 안 된다.

혐오는 가진 자, 힘센 자, 다수파가 없는 자, 약한 자, 소수파에 대한 차별, 억압, 지배를 관철시키는 감정기제로서 한쪽 방향으로만 작용한다.

"정치는 본디 고귀한 것이다. 보이지 않는 사회적 연대의 실현을 기본 소명으로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강조하건대, 혐오 옆의 ‘착한 방관자’는 ‘비겁한 위선자’일 뿐이다. 많은 정치인들 사이에서 정치 지도자가 아쉽다.

오, 위대한 영이여! 내가 상대방의 모카신을 신고 1마일을 걷기 전에는 상대방을 판단하지 않도록 지켜주소서

우리는 우리 각자의 눈으로 사물과 현상을 본다. 예멘 출신 난민을 향한 혐오감정은 그들에게 투사된 우리 자신의 모습인 것이다. 거기에 담겨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한편에는 ‘지디피(GDP) 인종주의’가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언제나 소수자이고 약자인 그들에게 잠시 편견과 혐오감정을 내려놓고 눈길 한번 주면 안 될까. 인간은 감성을 가진 사회적 동물이기에, 사소한 냉대와 불친절을 당해도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느낌을 갖는 반면, 한순간의 눈길 교환만으로도 상대방이 겪은 삶의 층위를 느끼고, 그 깊이와 폭에 대한 공감, 아니 공감까지는 아니더라도 신뢰를 느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의 과거를 오늘날 보여주고 있는 당신들, 부디 꿋꿋하게 살아내시길…. 비록 소수지만, 제주도에서 "타자를 존중하고 타자와 윤리적 관계를 맺어야 ‘나’라는 존재의 유한성을 극복할 수 있다"는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말을 실천하고 계신 분들이 고맙기 그지없다.

다수와 소수의 관계가 서로 ‘다른’ 관계가 아닌 바름과 틀림, 정상과 비정상의 관계로 치환될 때, 다수는 다수에 속하는 것만으로도 바르고 정상인 자리에 서게 되고, 소수는 소수에 속하는 것만으로도 틀리고 비정상인 자리에 계속 머물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는 본디 소란스러운 것이라서 사회적 갈등이 공론의 장에서 표출·토론되고 조정되며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더욱이 차별을 금지하는 것은 인권과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 아닌가.

확증편향에서 벗어나기. 그것은 나부터 ‘회의하는 자아’가 되는 것 말고는 달리 도리가 없다. 그런 전제 아래 어렵더라도 이웃을 설득하는 수밖에. 학교와 교실에서 생각하는 교육이 펼쳐지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회의하면서 전진하자!" 멕시코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의 구호였다. 개인도 사회도 운동도 회의하지 않으면 변화하기 어려우며 변화하지 않으면 전진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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