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비극적 영웅을 깨우다
 
예술은 삶의 고통에서 태어난다

앞서 보았듯 니체는 그리스 예술을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투쟁과 화해의 과정으로 규정한다. 니체는 그리스인들은 다른 민족들보다 훨씬 강한 아폴론적인 성격과 디오니소스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고 본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거인들의 전쟁이 벌어지고 삶은 투쟁과 지배와 복속으로 규정된다는 가혹한 민간철학이 지배했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아폴론적인 아름다운 가상을 만들고 싶어 하는 충동에 지배되는 올림포스 신들의 세계가 생겨난다.

세 번째 단계에서는 올림포스 신들의 절도 있는 장려함을 외부에서 밀려오는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물결이 삼켜버린다.

네 번째 단계에서는 이러한 새로운 힘에 대항하여 아폴론적인 것이 대두하고 부동의 존엄성을 갖는 도리아 예술과 세계관으로 고양된다.

다섯 번째 단계에서는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이 융합되는 극형식의 주신찬가Dithyrambus와 비극이 탄생한다.

스토리와 멜로디가 만나 삶의 본질을 드러내다
니체는 그리스 예술은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결합한 그리스 비극에서 정점에 달한다고 본다.

니체에 따르면 몸짓과 언어는 음악이라는 바다가 일으키는 파도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니체는 "음악 정신에서 비극이 탄생했다"라고 말한다.

니체는 비극을 통해 디오니소스 신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본다.
 
"그대들은 나처럼 존재하라! 현상의 끊임없는 변천 속에서 영원히 창조하고, 인간으로 하여금 생존하도록 강제하며, 현상의 이러한 변천에 영원히 만족하는 근원적인 어머니인 나를!"

니체에게 비극은 어디까지나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것’의 결합이다. ‘디오니소스적인 것’이 음악이라면, ‘아폴론적인 것’은 배우들의 연기와 대사를 통해서 표현되는 서사적인 이야기다. 배우들의 연기와 대사는 음악을 인간의 행위와 말로 표현하는 이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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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무선본)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 김영사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찾았다.
사피엔스 이거다.
검색해도 ㄷㄹㄱ 안 나오더만
2015년판 사피엔스 검색 안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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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11년, 1619년. 명의 압박으로 조선은 강홍립을 도원수로 하여 1만8천명의 조선군을 만주로 파병하였다.
1619년 3월 12일 샤르후(심하深河)전투
https://naver.me/xsvPdrL9 (나무위키)
https://naver.me/GAiRoISY (네이버)
https://naver.me/xw2A99oA (위키백과)

淸軍
˝그런데, 조선놈들은 대체 싸울 의사도 없으면서 군사는 왜 파견한 걸까요?˝
淸軍將帥
˝위에서 정치하는 놈들이 明의 눈치를 살피느라 그런 거겠지...˝
淸軍
˝그럼, 여기서 죽은 조선군들은 뭡니까?˝
淸軍將帥
˝...말 그대로 개죽음인거지. 그냥, 죽으라고 보내진거야˝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은 ...? 후예인가?
어찌 심하전투에서 조선군의 죽음을 개죽음이라 막말을 할 수 있는가?
감독은 시나리오작가는 제정신인가?

그리고 죽는건 세명중 두수(고창석) 뿐이다. 조건은 두수가 젤 유리했다. 왜 두수가 죽어야 하는가. 어이 없다

왠지, 광해군의 실리(중립)외교를 비판하는 청군의 마지막 대사.

그럴수밖에 없었던 광해군, 성은 이(李),  휘는 혼(琿),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선조와 공빈 김씨의 둘째 아들이다.
그 뒤 능양군반정으로 광해를 지지하는 대북파는 실각하고, 시류를 읽지 못하고 자신들만을 위한 권력욕과 명분(사실 명분도 없다. 명분이란 승자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에 사로잡힌 서인 노론 정권에 의해 조선은 쑥대밭이 된다.

광해군의 남자 박자흥
https://naver.me/G65P0p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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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는 인간을 과학적인 인식을 추구하고 사물을 기술적으로 이용하는 동물이기 이전에, 세계와 사물을 예술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동물이라고 보았다.

인간은 원래 신화적인 세계에서 살았다. 각 민족은 자신들만의 신화를 갖는다. 이러한 신화는 언어와 마찬가지로 창시자가 누군지 알 수 없는데도 사람들의 삶을 철저하게 규정했다. 사람들은 신화의 가르침에 따라서 신들에게 기도하고 제사를 지냈다.

모든 민족의 언어가 저마다의 세계관을 표현하는 것처럼, 민족의 신화도 세계에 대한 독특한 이해를 드러낸다. 원래 민족은 하나의 신화 공동체였으며, 세계에 대한 동일한 이해를 공유했다.

신화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모든 것은 표정을 갖는 영적인 존재로 나타났다.

그리스도교나 이슬람교는 모든 것이 탄생했다가 죽음으로 끝나고, 모든 것이 끊임없이 갈등하고 투쟁하는 이 세계를 불완전하고 악한 세계라고 단죄했다. 그리고 이런 변화가 다 사라지고 영원한 지복이 넘치는 세계를 천국이라는 이름으로 찬양한다.

그러나 니체는 탄생도 죽음도 변화도 없는 세계는 죽은 세계라고 보았다. 생명은 변화하는 것이고, 생명의 세계에서는 살아 있는 것들이 서로 화합도 하지만 갈등 혹은 투쟁하기도 한다.

근대 이전의 서양인들은 그리스도교에서 삶의 의미와 방향을 찾았지만, 많은 현상이 과학적으로 설명되면서 그리스도교는 영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벼락이 칠 때 사람들은 더 이상 그것에서 신의 분노를 보지 않고 전기적인 현상을 볼 뿐이고, 신에게 기도하기보다는 피뢰침을 달아 벼락을 피하려고 한다.

이러한 사태를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고 표현했다. 신은 죽었다는 말은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무신론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신이 과거에 가졌던 영향력을 더 이상 갖지 못하게 되었다는 시대 진단이다.

음악은 우주적 생명력을 상징하는 디오니소스의 표현이다

『비극의 탄생』에서 니체는 예술을 아폴론적 예술과 디오니소스적 예술로 나눈다.

아폴론적 예술은 건축, 미술, 조각, 서사시처럼 창작자와 감상자에게 사물을 조용히 관조하는 태도를 요구하는 조형예술이다.

디오니소스적 예술은 서정시, 음악, 춤과 같이 감정에 직접적으로 호소하면서 우리를 뒤흔드는 예술이다.

아폴론적인 것은 조형예술의 아름다움이 비롯되는 근본 원리이며,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비조형예술이 불러일으키는 도취가 비롯되는 근본 원리다.

아폴론적인 것이나 디오니소스적인 것 혹은 그리스 비극처럼 양자를 완전하게 구현할수록 훌륭한 예술이다.

니체는 아폴론적인 것이라는 용어를 태양과 같은 밝음, 이러한 밝음 아래에서 모든 사물이 드러내는 균형, 절도, 질서, 명료한 형태 그리고 국가의 도덕이나 법률, 아름다운 가상假像, 이러한 아름다운 가상을 형성하는 예술적 능력을 상징하는 용어로 사용했다.

인간에게 포도를 재배하고 포도주 만드는 법을 가르쳐준 디오니소스는 술과 도취의 신이다. 디오니소스적인 도취의 상태에서 사람들은 아폴론적인 절도와 질서에 수반되는 모든 금기禁忌에서 벗어나 서로가 하나가 되는 합일을 맛보았다.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각각 남성적인 원리와 여성적인 원리를 가리킨다고도 할 수 있다. 아폴론적인 것은 남성적인 절도와 균형 그리고 엄격함을,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여성적인 조화와 일치 그리고 부드러움을 의미하는 것이다.

고대인들에게도 디오니소스는 강력한 생명력과 풍요와 수확을 상징하는 신이었다. 따라서 디오니소스는 특히 농부들에게 사랑받았다. 도시국가 아테네의 독재자였던 페이시스트라토스는 민중의 환심을 사기 위해, 농부들이 성대하게 벌이던 디오니소스 축제를 아테네의 축제로 만들었다.

음악에 도취할 때 우리는 인간과 세계의 본질을 경험한다

세계의 근거를 맹목적인 욕망으로 보는 쇼펜하우어의 사상은 세계의 창조자를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 선한 신으로 보는 그리스도교 사상과 철저하게 대립한다.

쇼펜하우어는 근원적 일자로서의 세계의지는 끊임없는 욕망으로 인해 결핍감과 불만에 사로잡혀 내적으로 갈등하며 고통스러워한다고 본다. 따라서 세계의지의 표현인 개체들도 충족되지 않는 욕망으로 인해 고통받고 갈등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니체에 따르면 근원적인 일자의 내적인 모순과 불만은 근원적인 일자가 갖는 ‘풍요로움과 충만’에서 비롯된다. 이는 헤라클레스처럼 힘이 터질듯 충만하지만 발산할 곳이 없어서 괴로워하는 자가 겪는 고통과 유사하다. 바로 이것이 쇼펜하우어와 니체 사이의 결정적 차이이며, 둘 사이의 모든 차이는 여기에서 비롯한다.

니체의 철학에서는 인간이 자신의 힘을 마음껏 발산하는 활력 넘치는 삶을 영위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윤리적 이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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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최고 유명. 성심당]
전국 최고

2016년에 사서 아직까지 한자도 안 읽었다
저자는 창원사람이다.
대전사람도 아닌데 왜 이런책을 썼을까?
2016년12월에 찍은 사진(맨밑)
˝전국유명 서점 절찬 판매중˝
광고 현수막, 성심당 케익부띠크 건물에 걸어놓다

성심당에서 정확히 2km 떨어진 곳에서 10년간 기거했었다. 지금은 10km 이격.
오늘 아내님께서 딸님이 주신 성심당 케익쿠폰이 있다며 가자셔 댕겨왔다.
보문산 밑 유명 보리밥집인 반찬식당에서 보리밥 한그릇 먹고 성심당에 가니 주말이라 그런지 줄이 어마어마하다.
먼 빵을 사는데 줄서서 사냐며 가자고 타박을 놨다. 허나 꿈쩍할 아내님이 아니다. 할 수없이 줄서서 케익부띠크로 간다. 그런데, 옆 건물 지하주차장에 뭔지 휠씬 더 긴 줄이 있다. 용기내서 앞에 있는 젊은 처자들에게 물어보니 본점 들어가는 줄이란다. 😭

언제부터 성심당이 이렇게 유명해졌을까?
전엔 근처 살땐 아침 산책하다도 들리고, 아무때고 가서 스파게티며, 소부로빵이며 생각나면 들르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는 곳이 되었다. 나의 추억이 하나 사라지는 듯 하여 아쉽기 그지없다.
아들, 초딩시절 저렴하게 스파게티 먹을수 있어서 좋았는데...
대전서 26년째 살고있다. 유명한게 정말없다. 특히 문화유산은 거의 전무.
고작 있는게 동춘당, 동춘당 송준길의 별당.
국토의 중심이라 살기는 편하다. 덕분에 2000~2007년까지 8년간 서울로 출퇴근도하고.

그래도 줄이 빨리빨리 빠진다. 이것저것 케익을 담았다. 허, 10만원이 훌쩍넘는다.
아들 놈 선생 롤케잌 하나씩 사주자신다.
계산줄에 섰다. 딸이 준 쿠폰을 아내가 내밀었다.
˝DCC점에서 5월달에 사용했는데요˝
ㅠㅠ ㅠ 😢 😭 😢 ㅠㅠ 😭
˝어, 그럴리가요. 이상하다. 쓴적이 없는데˝
˝케익하나 빼주세요˝
야, 마눌님아 정신좀 차리고 삽시다.
쿠폰만 아녔어도 줄 따윈 서지 않았을텐데
괜히 줄서서 이게 무시기여
암튼 간만에 성심당 케익을 먹어본다.

추억의 성심당이여 영원하라!

창업주는 古임길순 님이다.
혹? 우리 임씨인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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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4-11-24 09: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성심당에서 비슷한 거리 살아요. 저렇게 줄서서 사는 곳 된 이후로는 안 가본 것 같아요.
저도 시간 있을땐 대전 보다 공주나 청주로 가는데 그나마 가까은 곳에 가볼곳 많은 지역들 있는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답니다^^

대장정 2024-11-24 09:19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반갑습니다. 이제 점점 더 나이 먹으면 더욱 못갈거 같아요ㅎㅎ. 어제도 거의 어린애들만 줄서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