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도천 강가까지 손잡고 안내해 달라고는 하지 않을 게다. 누가 삼도천 강가까지 데려다 주지 않으면 미아가 돼서 현세로 되돌아오는 것도 아닐 테니까.

오쓰타는 떡 벌어진 어깨를 과장스럽게 들썩이며 한숨을 쉬었다.

부모란 아무리 현명한 존재라 해도 부모의 입장으로서 그에 상응하는 어둠을 짊어지고 있다. 짊어지지 않는다면 부모가 아니다.

기운이 넘치는 양가의 모습은 천하를 두고 싸운 세키가하라 전투 전날 밤이 이렇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용맹스러웠다고 한다.

경막 鯨幕
장례식에 쓰는 포장막. 흰 천과 검은 천을 한 장씩 번갈아 이어 붙이고, 위아래 가장자리에 검은 천을 둘러서 만든다

얼굴 모양은 사람의 마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아니, 나타내는 경우도 있겠지만 얼굴에 비치는 것이 반드시 전부 진실이라는 보장은 없다.

이나카소바
메밀껍질의 일부를 갈아 넣은 색깔이 거무스름한 메밀국수

어설프게 실력이 좋은 탓에 착실하지 못한 방법으로 돈을 벌며 살아가게 되었을 게다. 그 착실하지 못하게 살아가던 길 어디에선가 착실하지 못한 동료의 손에 죽임을 당한 게 아닐까?

이 녀석이 부른 오우메는 내가 아는, 메롱을 하는 오우메다.

이상하다. 어째서 어른 여자들은 옛날에 소녀였던 시절의 자신들과 똑같은 날카로운 귀와 눈을 지금의 소녀들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걸까.

히네가쓰‘히네루’는 ‘비뚤어지다, 꼬이다’라는 뜻의 동사

어른은 아무리 몸을 망쳐도, 도박을 하거나 나쁜 곳에서 놀거나 도둑질 따위를 해도, 일만 한다면 정말로 나쁜 데까지 떨어지지는 않는 법이래요. 반대로 말하면 정말로 나쁜 길로 빠지는 사람은 모두 게으름뱅이라는 거예요.

오린은 게걸스럽게 밥을 먹었다. 먹다 보니 기운이 돌아왔다. 인간은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밥만 먹을 수 있으면 괜찮다, 아직 헤쳐 나갈 수 있다―는 시치베에의 입버릇이 정말이었다고 실감했다.

어째서 귀신이 보이는 사람과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어째서 같은 사람이라도 어떤 귀신은 보이고, 어떤 귀신은 보이지 않을까.

뭔가가 번쩍 하고 머릿속을 스쳤다. 어쩌면―누구에게는 보이고 누구에게는 보이지 않는다는 데에 그 귀신의 ‘열쇠’가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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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린은 천장을 향해 메롱을 했다.

"메롱, 이다."

소리 내어 말하자 아주 조금 속이 후련해졌다. 옆에서 자고 있던 어머니가 "응?" 하고 대답하며 불쑥 일어났다.

강아지 인형이 있었다면, 밤의 밑바닥이 가장 깊어지는 축삼시오전 두 시부터 두 시 반에 꽤나 재미있는 광경을 보았으리라.

자고 있는 다이치로의 발치에 앉아 있는 회색 옷을 입은 마른 안마사를.

자고 있는 다에의 머리맡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로질러 지나가는 날씬한 여자의 그림자를.

자고 있는 오린 위에 덮어씌우듯이 뚫어져라 잠든 얼굴을 바라보는 작은 여자아이의 모습을.

저 아이는 동글이를 수로에 밀어 떨어뜨릴 생각이다. 위험하다, 위험하다―아아,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눈앞이 새하얘진다. 안개가 끼기 시작한다.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들은 대로 천천히 숨을 쉬려고 했지만 개가 헐떡이며 혀를 내놓을 때처럼 헉헉대고 만다.

기나가시
하오리나 하카마를 입지 않고 기모노만 입은 남성의 약식 복장

개는 몹시 기쁜 듯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펄쩍펄쩍 뛴다.

손님들은 더 이상 아무도 미카와야라고 부르지 않고 통 모양의 자루에 잡곡을 팔아 주는 가게―쓰쓰야 일본어로 ‘쓰쓰’는 ‘통’이라는 뜻라고 부르게 되었다.

선대 주인의 고희를 축하하는 오늘 연회의 가장 중요한 요리는 그러한 쓰쓰야의 유래를 그대로 본따 만든 통 모양의 조림이었다.

쓰쿠네
어육을 다지고 달걀과 녹말을 섞어 경단처럼 둥글게 빚어서 기름에 튀긴 요리

꼭꼭 씹어서 먹으렴, 씹으면 씹을수록 거북처럼 오래 살게 된다는 시치베에의 입버릇을 떠올리면서 부지런히 씹었지만, 자신이 밥을 씹는 소리가 들리자 처량해져서 점점 후루룩 먹게 되고 말았다.

뭐, 귀신이 된 이상은 세상살이에 골머리를 앓지 않아도 되니 당연한지도 모르겠다만.

우리는 모두 이 근처에서 죽었어. 게다가 이곳은 옛날에는 묘지였고.

"이것 참, 여자아이는 어렵군" 하고 절실하게 말했다. "눈물은 무엇보다도 강한 무기란 말이야, 응."

"겐 공도 오늘 밤에는 더 이상 나올 수 없어. 우리가 현세에 나오려면 나름대로 힘을 써야 하거든. 너희가 강에 뛰어들어 헤엄칠 때 같은 거지. 아무리 수영을 잘해도 살아 있는 인간이 하루종일 헤엄칠 수는 없지? 그거랑 마찬가지란다."

이야기가 처음 한 바퀴를 돌았을 때는 그날 일어난 신기한 일이 팔 할 정도 전해졌고 두 바퀴째에는 거기에 꼬리와 지느러미가 붙고, 세 바퀴째에는 그 꼬리가 전혀 다른 물고기의 꼬리가 되어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할 수도 없잖아요!"

"그러니까 역으로 이용하란 말이다."

후네야가 유령 소동으로 고민하는 동안에만 그러라는 거야. 말하자면 억척스러워지라는 소리다. 무슨 일이 있어도 좋은 방향으로 이용해 주마 하는 근성이 없으면, 요릿집 같은 사치스런 장사는 해 나갈 수가 없어.

"왠지 엉성한데……."

"그게 좋아. 애초에 엉성한 이야기니까."

"어떻게 하면 삼도천을 잘 건널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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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쓰타 아주머니의 버릇이다. 언제나 자신이 묻고 자신이 대답해 버린다.

―다에의 부탁을 내가 왜 들어주지 않는지, 너는 알지?

―네, 압니다.

그래도 오쓰타가 붙어 있으면 다에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어엿한 안주인은 될 수 없을 게야.

오쓰타 아주머니는 언제나 기운이 넘치고 아침에도 잘 일어나며 밥을 많이 먹고 힘이 몹시 세다.

다카다야에 있었을 때 시치베에 할아버지는 술에 취하면 웃으면서, 우연히 오쓰타와 씨름꾼이 팔씨름을 했는데 세 번 중에 두 번을 이겼다는 얘기를 하곤 했다.

엄마, 아줌마, 아까 이상한 꿈을 꿨어요. 모르는 여자아이가 나한테 메롱을 했어요.

삼도천 강가에서 모닥불을 피운다는 이야기는 시치베에 할아버지도 한 적이 없었는데.

"너 같은 경우가 가끔 있단다. 죽을 뻔해서―혼이 몸에서 빠져나와 이 근처까지 둥실둥실 오고 마는 거야. 신기한 일이지."

"오린 너도 이렇게 몸을 잘 덥혀 두렴. 몸 구석구석까지 따뜻해지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 있을 테니까."

왠지 갑자기 허둥거리던 할아버지가 크게 손을 흔들었다. 엉덩이를 뭉개다시피 하며 모닥불에서 조금 떨어진다.

불꽃이 흔들거리고 점점 색깔이 선명해지면서, 한편으로는 가장자리가 흐릿해져 가고 몸은 따끈따끈―머리는 흔들흔들―시야가 흐려지고―.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었더니 다쿠안 씨는 웃으면서 향기가 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오린은 몹시 감탄해서 다쿠안 씨를 존경하게 되었다.

시치베에는 이렇게 불평을 늘어놓았다. 가쿠스케와 다이치로 사이를 알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심술궂은 농담이다. 다이치로는 웃으며 흘려 넘기고, 쓰쓰야 일가를 위해 최상의 요리를 내놓는 것이 후네야의 출발에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요릿집은 숙수의 실력으로 경영한다. 숙수가 바로 요릿집의 꽃이며 중심이다. 하지만 꽃도 중심도 손님에게 알려지지 않고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시치베에의 마음도 알지만 다이치로는 후네야가 에도 전체에 널리 알려지는 날이 올 때까지는, 아니, 그런 때가 빨리 오도록 하기 위해 더더욱, 지금은 여태까지 쌓아 온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때 부엌 입구 근처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누군가가 서 있다. 그림자만 보이고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머리를 올린 모양으로는 여자 같다. 순간적으로 어머니인가 생각했다.

그때 눈앞에서 누군가 박수를 딱 친 것처럼 퍼뜩 놀라며 떠올렸다. 그렇다, 메롱을 하던 아이. 어디에 사는지 알 수 없는 여자아이. 그 아이가 아닐까?

"흥―이다" 하고 큰 목소리가 났다.

오린은 놀라서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메롱이다!"

도코노마
다다미방에서 정면 상좌에 바닥을 한 층 높게 만들어 족자나 꽃병 등을 장식하는 곳

그때 오린의 머릿속에도 촛불이 켜졌다. 귀신?

"아줌마, 여기 귀신이 나와요?" 오린은 오쓰타의 가슴에 달려들듯이 물었다. "여기, 귀신이 있는 집이에요? 아줌마도 귀신을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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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옆에 새로 생긴 요릿집에는 다섯명의 귀신이 살고있다.

"처녀의 사령이라……. 나도 처음 듣는다.
그래서 그 처녀는 어떻게 되었느냐?"

―오카모토 기도
「쓰노쿠니야」, 『한시치 체포장*』

*『 한시치 체포장 半七捕物帳』 : 오카모토 기도의 연작 시대 소설.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쓴 추리 소설로, 일본 시대 소설·탐정 소설 초창기의 걸작

할아버지는 밥을 찻물에 말아 먹었다. 시치베에는 밥을 세 그릇이나 먹었고 세 그릇째에는 차가 아직 우려지지 않아 그냥 뜨거운 물에 말아서 먹었다.

―일을 하면 밥은 먹을 수 있어. 세상은 그렇게 되어 있거든.

시치베에는 그 시절 이야기를 할 때, 그를 붙잡아서 새 인생을 살게 해 준 할아버지의 이름을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냥 ‘할아버지’라고만 부른다. 사실을 말하면 시치베에라는 이름도 할아버지가 지어 준 것으로, 그때까지 그에게 이름 따윈 없었다고 한다.

"시치베에‘시치’는 일본어로 숫자 칠을 뜻한다

―나는 너라는 옷을 깨끗하게 빨기는 했지만 다시 지어 줄 수는 없어. 그래서 저 주인한테 맡긴 거다. 고맙게 생각해.

"지금 생각해 보면 꽤나 난폭하게 다시 지어 준 거지."

시치베에는 웃으며 당시의 일을 되돌아본다.

"하지만 덕분에 요리를 배울 수 있었어."

―네게는 그만한 실력이 있기 때문이지.

딸린 자식이 있었지만 이미 고용살이를 나가 있던 아이는 시치베에가 오사키를 아내로 맞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고용살이 하던 곳에서 주인의 눈에 들어 사위가 되었고 곧 아이를 얻었다. 다시 말해서 시치베에는 아내를 얻었나 싶었더니 할아버지가 된 셈이다.

"나도 옛날에 누군가가 내 손을 잡아 준 덕분에 인생이 바뀌었어. 이번에는 내가 은혜를 갚을 차례지."

시치베에는 그렇게 말하며 오갈 데 없는 아이나 부모도 감당하지 못하는 엇나간 아이를 종종 데려다가 다카다야에서 키웠다.

오린은 튼튼한 아이였다. 아기 때도 배앓이 한번 한 적이 없고 큰오빠가 넘지 못했던 홍역의 벽도 탈 없이 넘어 다섯 살 여섯 살 나이를 먹어 갔다. 오린의 건강하고 밝은 목소리는 끊어져 가던 다이치로와 다에의 유대를 이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전보다 끈끈하게 만들어 주었다.

오린이라면 괜찮으리라.

그러나 그것도 결국 확신이 아니라 바람에 불과할 뿐이었다. 열두 살이 되던 해 봄, 서둘러 지는 벚꽃의 꽃잎이 첫눈처럼 마당을 하얗게 물들일 무렵, 오린은 고열로 쓰러졌다.

의외로 새 가게를 열기에 어울리는 장소를 찾기가 어려웠다.

고부신
봉록 삼천 석 미만의 하타모토와 고케닌 중 직책이 없는 자들

하타모토
쇼군가 직속 가신으로 쇼군의 알현이 가능한 무사

이 가게는 꼭 배 같네요. 오리나 가마우지와 함께 수로 위에 둥실둥실 떠 있는 것 같아요.

그렇군, 배라. 어울리지 않는가. 앞으로 우리 가족을 태우고 노를 저어 나갈 배다. 가게 이름도 후네야‘후네’는 일본어로 ‘배’라는 뜻라고 하면 되겠다.

‘대체 어떤 병인지, 저도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 안됐지만 따뜻하게 해 주고 물을 주면서 지켜보는 수밖에 없겠지요…….’

마음속의 물음에 대답하듯 그림자가 한층 더 깊이 몸을 숙이고 오린의 눈앞에 얼굴을 내밀었다. 오린은 그것을 정면에서 보았다.

작은 여자아이였다. 오린보다 더 작다. 게다가 그 아이는―.

메롱을 하고 있었다.

메롱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눈을 비비고 봐도 역시 그 아이가 오린 위를 덮치다시피 얼굴을 내밀고 메롱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일본에서는 눈동자를 위로 하고 손가락으로 아래 눈꺼풀을 끌어내려 빨간 속살을 보이며 메롱을 한다

"이미 만났다니―그럼 그 사람들도 모두 무사님이랑 똑같은 귀신인가요?"

"그래. 새삼 놀랄 것도 없겠지."

"모두 귀신?"

"미안하구나." 무사가 또 목덜미를 벅벅 긁었다. "그 외에도 더 있는데."

"더요? 다 합쳐서 몇 명이나 있는데요?"

"나까지 해서 다섯 명."

"다섯 명이나 이 집에 원한을 갖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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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조 아이오이초 히토쓰바시 옆에 있는 다카다야는 주인 시치베에가 부엌칼 한 자루로 일으켜 크게 키워 온 식당이다.

이 식당은 일명 ‘마카나이 가게’, ‘도름집’이라고도 불리는, 소위 말하는 도시락 가게다. 🍱

사람의 생활에서 식사는 빼놓을 수 없고, 높으신 무사님도 배는 고픈 법이라 이것은 꽤 큰 장사였다.

우선 상대가 삼백 제후라도 대부분이 돈에 쪼들리고 있어서 깎을 수 있는 것이라면 발가락 끝의 가죽까지 깎을 기세로 아등바등 생활하는 집뿐이었다.

복작거리는 장사 경쟁자들을 피해 출입 도시락 가게의 자리를 움켜쥐려면 때로는 이문을 포기하고라도 싸고 맛있는 도시락을 배달해야 한다.

처음부터 상대가 정해져 있는 장사이기 때문에 오른쪽에는 의리가 있고 왼쪽에는 겸손이 있으며 위에는 조심스러움이 있고 아래에는 연줄이 있는 식이어서, 무엇이 어찌 되었든 일만 잘하고 요란하게 팔아 치우기만 한다고 해서 크게 번성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특히 신참이 파고들기는 어렵다.

튀김 포장마차의 주인은 얼핏 보기에 간장에 조린 것 같은 안색의 할아버지였는데 어째서인지 시치베에를 쫓아오는 다리가 위타천韋陀天처럼 빨라서 ‘앗’ 하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뒷덜미를 잡혀 덥석 끌어올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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