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마 가문
에도 막부 성립의 결정적 고비였던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에야 집권자 도쿠가와 가문에 복속한 영주 가문으로, 내내 충성심을 의심받으며 차별을 받았다

죽은 자는 자기가 죽은 것을 어떻게 깨달을까―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자기의 죽음을 슬퍼하고 한탄하는 산 자들의 얼굴을 그늘에서 쳐다보며 깨닫는 걸까?

그렇다면 슬퍼해 주는 사람이 없는 사람은 자기가 죽었다는 사실을 좀처럼 깨닫지 못하는 건 아닐까?

남편 때도 그랬어요. 그이는 꼼짝도 못하고 누워 있는데 저는 배가 고프더라고요. 그래서 밥을 먹었죠. 심지어는 감기 한 번 걸린 적도 없어요.

이번에도 그래요. 오쿠메 씨는 뭐라고 알아들을 수도 없는 헛소리를 하는데 저는 감자 껍질이나 벗기고 있어요. 독충에 물려도 소금만 발라 두면 그다음 날로 싹 나아요. 이상하지 않아요? 네? 이상한 년이죠?

기하치조
초목을 이용해서 천연 염색을 해 누런 바탕에 검정 줄무늬 혹은 격자 무늬가 있는 견직물

짓테
상대를 제압할 때 쓰는 무기로, 대체로 품에 감출 수 있을 만큼 짤막하다

"그런데 미나토 상회에서 자네에게 얼마를 내주던가?"

헤이시로가 물었다.

"부자는 다르구먼. 실컷 써, 실컷 쓰라고. 나도 원 없이 써 볼 테니까."

두 사람은 후부키를 구치소에서 꺼내고 처벌도 에도 추방 정도로 끝내게 하려면 누구한테 얼마를 상납해야 하는지를 상의했다. 이야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차피 제 주머니에서 나온 돈도 아니다. 실컷 써, 실컷 쓰라고.

"지금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았다면 나도 그렇게 살고 싶구나."

"안 될걸요. 계측기가 무거워서 이모부 허리에는 무리예요."

"그래도 음식은 맛있었나 보죠?"

"뭐, 맛이야 좋았겠지. 모르니까 먹은 거지. 안 보이면 모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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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은 산 사람에게 결코 해를 끼치지 않는다."

듣자 하니 구치소 잡부 중에 고헤이지의 어릴 적 친구가 있다고 한다. 사쿠지라는 자인데 지금도 가끔 만나 술을 마신다고 해서 헤이시로를 놀라게 했다.

"세상이 참 묘하게 엮여 있구나."

헤이시로는 감탄하고 말았다. 고헤이지가 얼굴에 잔뜩 주름을 잡으며 웃는다.

"그보담 나리, 우리 사는 이 세상이 그만큼 좁은 거죠."

어지간한 일은 그 좁은 세상이란 틀 안에서 다 해결할 수 있게 마련입죠, 그렇지 않다면 나리와 제가 에도에서 대대로 관리와 주겐으로 일하는 의미가 없지 않겠습니까. 함축적인 말이라 헤이시로는 저도 모르게 고헤이지의 얼굴을 다시 쳐다보았다. 혹시 다른 사람이 들어앉아 있나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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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키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쨌든 세상에는 사람이 측정 못할 것은 없다, 측정을 해야 이 막연한 세상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고 자기가 알고 있는 주변의 작은 지역뿐만 아니라 천하의 모양까지도 상상할 수 있게 되는 거라고요."

―염료 가게에서 파는 쪽보다 더 파란 인재인 줄 아뢰오‘청출어람’이란 성어를 내비치며 유미노스케를 칭찬하고 있다.

어허야 어리얼싸

근심 수심에 애간장이 녹는데

간쿠로야 너는 왜 가악가악 짖느뇨

지키신카게류直心影流.
에도 후기에 전국에서 가장 유행한 검술 유파로서, 죽도와 방구 착용을 가장 먼저 도입했다

"얄밉거나 부럽거나 하는 마음은 세월이 흐른다고 가시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말이냐?"

"이모부 말씀이 맞다면 형들이나 저나 건강할 동안은 계속 그런 마음을 품고 살겠지요."

시라타마
찹쌀 경단에 각종 과실이나 채소, 꿀 따위를 곁들여서 시원하게 먹는 간식

"제 얼굴을 처음 본 여자들은 대개 넋을 놓고 쳐다보거든요. 하지만 가끔 그렇지 않은 여자가 있어요. 그런 여자한테는 따로 좋아하는 남자가 있는 거예요. 마음속에 사랑하는 사람 얼굴만 떠올리고 있으니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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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쿠는 헤이시로보다 나이도 많고 그를 어려워하는 기미도 거의 없어 늘 그에게 거침없이 말하는 부인인데, 그 오토쿠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타고난 거침없는 태도로 불쑥, 이봐요, 나리, 나리 아버님이 그렇게 여자를 밝혔다면서요? 나리도 한번쯤 몰래 첩이나 만들까 생각한 적 있죠? 하고 물었다.

이것이 사태의 발단이었다.

원래 이 부부는 매사 원망이 많다. 요즘 매상이 시원치 않은 것도 그 탓이다. 툭하면 불평을 늘어놓는 생선 가게 주인은 툭하면 화를 내는 쌀가게 주인 못지않게 상대하기 거북한 자들이다.

"혹시 논다니 출신 아닌가? 왜, 여우처럼 눈꼬리가 째진 여자."

그 늙은이 머릿속은 주판알로 가득 차 있어. 걸으면 차르륵차르륵 소리가 날 정도야. 게다가 고베 나가야 세입자들은 오쿠메를 미워하는 일이라면 철통처럼 단결하는 것 같더군. 나가야라는 데는 그런 점이 있어. 미운털 박힌 자가 하나쯤 있어야 나머지 사람들이 잘 뭉치지.

"이번엔 놀라는 소리가 아닙니다요. 우시고메에서 우헤 씨가 왔어요."

오쿠메는 예쁜 용모는 아니다. 몸매도 뼈가 불거졌다. 이렇게 가까이서 가만히 보니 머리칼도 가늘어지고 숱도 줄어드는지 쪽진 머리도 작은 편이다. 온전치 못한 생활이 그녀를 나이보다 늙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고베 씨는 저한테 방세를 받은 적이 없어요. 그 대신 저도 고베 씨한테 돈을 받지 않았거든요."

"벌써 십 년 전부터 죽 그래 왔는걸요."

"그런데 한 일 년쯤 전부터 고베 씨가 전혀 고개를 들지 못해서요…… 그거 말예요. 그래서 영 거래를 할 수 없게 되었거든요. 얼마 동안 상태를 지켜봤지만 역시 더 이상은 힘들겠더라고요."

"저런."

"뎃핀 나가야가 좋겠다고 한 것도 고베 씨였어요. 왜 있잖아요, 관리인이 새파랗게 젊은. 저보다도 어려 보이지 않아요? 고베 씨가 정색을 하고 저한테 말하더라고요. 그 사키치라면 오래갈 거라고."

"저, 이사해도 괜찮은 거죠?"

오쿠메는 비로소 살피는 듯한 표정으로 헤이시로를 쳐다보았다. 교태를 부리는 행동이 아니라, 제가 잘못하는 걸까요, 나리? 하고 진지하게 묻고 있다.

"간단해요. 그러니까, 제가 나리에게 홀딱 반했다고 했거든요."

"뭣이?"

"이 몸이 오래전부터 이즈쓰 나리한테 홀딱 반했다고요. 하지만 나리는 저한테 눈길 한번 주지 않아요. 왜 그런가 했더니 나리가 오토쿠 씨를 마음에 두고 있기 때문이란 걸 알게 된 거죠."

"뭐가 어째?"

"그래서 너무 샘나고 심술이 나서 오토쿠 씨를 괴롭히기로 작정하고, 세상을 떠난 댁의 남편과 동침한 적이 있다고 거짓말을 했던 거다, 그렇게 말해 줬죠."

우구이스떡
팥소가 들어 있고 겉에는 청대두 가루를 뿌린 떡. 녹색이라서 우구이스(휘파람새)라는 이름이 붙었다. 봄을 기념해서 만드는 떡

콩 부부 이야기로는, 하치스케가 흥분해서 이야기한 내용에 따르면, 항아리에 사심을 가둔 다음 그것들을 이 세상에서 깨끗하게 없애 주십시오, 하고 비는 것이 그 신앙의 핵심이라고 한다. 사심을 가두려면 마음속에 있는 비뚤어진 소망을 종이에 써서 항아리 속에 넣어 두면 된다. 그리고 열흘간 정해진 주문을 외며 열심히 항아리에 절을 하면, 참 신기하기도 하지, 항아리 속에 흰 종이만 남고 애초에 적었던 글자는 깨끗이 사라진다. 이것을 사심이 사라졌다고 본다는 것이다.

무사는 연간 3회에 걸쳐 봉록을 받았는데, 당시 쌀값을 기준으로 셈하여 돈으로 받았다. 하급 무사는 고작 쌀 서른 섬 값으로 생활을 꾸리고 주변을 관리해야 했으므로 매우 곤궁해서 부인이 부업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인분 후치
매월 지급되는 일종의 직무 수당. 한 사람의 하루 식비를 기준으로 한 달분을 지급한다. 이 인분 후치를 받을 경우 무사는 의무적으로 주겐 한 명을 고용해야 했다

에도 각 지역별로 해당 지역 주민들이 소방대를 조직하는데, 화재를 진압한 소방대에 많은 포상이 주어지므로 화재 현장에 어느 소방대 깃발을 먼저 꽂느냐를 두고 소방대 간의 공명 다툼이 매우 심했다.

후다사시
상급 무사를 대신하여 녹미 수령 작업을 대행해 주고 수수료를 받는 한편, 봉록을 담보로 잡고 상급 무사들에게 돈을 빌려 주는 업자

기겐야쿠
범죄 조사와 소송을 담당하는 관리로, 부교쇼에서도 핵심적인 직책. 주로 경험 많은 요리키가 맡는다

첫물 가다랑어
첫물 가다랑어는 에도 사람들에게 특별히 귀한 대접을 받았는데 ‘처자식을 전당포에 잡혀서라도 사 먹어라’라고 할 만큼 인기가 높아 터무니없이 비싼 값에 팔렸다

오오쿠
에도 성 내 쇼군의 부인과 측실 및 궁녀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쇼군을 제외한 남자는 출입이 금지되는 구역

요시와라
에도 외곽에 막부의 공인 아래 설치된 유곽

오이란
요시와라에서 등급이 높은 기녀. 화대가 매우 높다

미나토야의 소이치로 소지로 형제와 미스즈의 입장에서 보면, 이쪽은 얼굴도 이름도 모르지만 저쪽에서는 일방적으로 이쪽을 알고 있는 배다른 형제자매들이 에도 전역에 수두룩하게 있는 셈이니, 반가울 턱이 없다.

그러나 오토쿠는 너무 무거웠다. 헤이시로는 오토쿠를 받아 냈다기보다 오토쿠 밑에 깔리고 말았다. 뭐, 결과적으로는 오토쿠가 머리를 짓찧지 않도록 고여 준 셈이긴 하다.

급히 달려온 사키치는 현장을 재빨리 둘러보고, 일단 오토쿠 씨를 방으로 옮깁시다, 하고 말했다. 세 사람이 힘을 모으면 쉽게 옮길 수 있을 겁니다.

헤이시로와 고헤이지는 알겠다고 대답하고 각자 오토쿠의 몸을 붙들었다. 그러고는 자, 이영차, 하며 힘을 모았다.

그 순간 헤이시로의 허리에서 우둑, 하는 소리가 났다.

의관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급하게 달려온 선생은, 나리는 오토쿠를 살펴본 뒤에 봐 드릴 테니 그때까지 그대로 누워서 마음 놓고 신음 소리나 내시라며 호쾌하게 웃었다. 고헤이지까지 덩달아 웃었다.

보통은 고헤이지를 심부름 보내고 아내가 곁을 지킬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편이 낫다. 아내는 그 점까지 다 읽고 있다. 아내란 참 대단하고 무서운 존재라고 헤이시로는 생각했다.

오캇피키라는 이름은 도신이나 요리키의 업무를 곁에서 끌어 주며 돕는 자라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래서 이 ‘오카’는 의미를 보자면 ‘오카메하치모쿠남들이 두는 바둑을 옆에서 보면 여덟 수를 내다본다라는 말로, 제삼자가 정세를 더 객관적으로 본다는 뜻’나 ‘오카보레타인의 연인에게 반하는 것’의 오카곁, 옆이라는 뜻와 같은 뜻이다.

예를 들면 에코인 모시치미야베 미유키의 에도 시대물 시리즈에 탐정역으로 등장하는 인물 모시치. 에도의 사찰 에코인 뒤에 살아 흔히 ‘에코인 모시치’라 불린다 같은 훌륭한 품성을 갖춘 자도 있지만, 아무래도 그는 예외적인 존재다.

"그렇지? 원망과 증오가 똥통에 쌓여서 썩으면 코를 찌르는 악취가 나겠지?"

"다행이네요. 남자는 허리를 다치면 세워야 할 때 못 세우잖아요."

"네년이 만날 그렇게 허튼소리나 하니까 오토쿠한테 미운털이 박혔지."

칼은 쇠퇴해도 주판은 쇠퇴할 일이 없는 것이 세상 이치니 앞으로는 의외로 그쪽 분야의 관리가 더 큰 공명을 세울지 모른다고 헤이시로는 코털을 뽑으며 감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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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경칩驚蟄
술렁거리는 봄,
겨울잠을 깨우다

개구리에 대한 추억 - P36

개구리에 대한 추억 
요즘이야 사정이 달라졌지만, 우리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에는기나긴 겨울방학을 지내는 방법이 그리 다양하지 못했다. 눈이 오면 눈사람이나 만들고 눈싸움을 한다. 비료부대 한 장 들고 뒷산언덕 위로 올라가 눈썰매를 타거나, 오후 햇살이 포근한 느낌이 들라치면 썰매를 들고 얼어붙은 강가로 나간다. 이도저도 아니면 동네 공터에 모여 담벼락에 옹기종기 기대서서 해바라기를 한다. - P36

사실 어린 아이들이 그늘진 겨울 골짜기를 쏘다녀봐야 잡을 수있는 개구리는 고작해야 몇 마리밖에 되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땀도 나지만 손발이 추위를 이기지 못할 즈음이면 아이들은 바람막이가 될 만한 바위 아래 햇살 잘 드는 곳을 골라 자리를 잡는다. 마른 나뭇가지를 끌어모아 모닥불을 피우고 개구리를 구워 먹는다.재가 잔뜩 묻은 개구리 뒷다리를 들고 재잘거리다 보면 겨울 반나절이 금방이다. - P37

당시만 해도 생명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할주변머리도 없었고 또 그럴만한 사회적 분위기도 아니었다. 그냥물고기를 잡아 매운탕을 끓여먹듯 개구리를 잡아 구워 먹었던 것이다. 그런 끔찍한 짓을 했노라고 비난한다면 변명할 마음은 없다.
정말 죄스러울 뿐이지만, 강변하자면, 그것은 가난한 동네에서 겨울을 나는 아이들에게는 최고의 겨울 별식이었다. - P38

개구리 몸짓 하나에 온 우주가 깨어난다! - P38

지혜로운 생각을 많이 드러내는데, 그중 세 가지 신통한 일을적은 것이 ‘지기삼사‘ 이다. 앞으로 일어날 조짐을 미리 알아서 대비했던 세 가지 사례라는 뜻의 이 일화 모음은 어린 시절 동화책속에 자주 등장하는 바람에 비교적 널리 알려진 것들이다. - P39

비 지나자 부평초 모여들고
개구리 소리는 사방 이웃에 가득하다.
해당화는 진실로 한바탕 꿈
매실은 새로운 맛 들려는 때,
지팡이 세우고 한가로이 남새 북돋고
그네에는 노는 사람 뵈질 않는다.
은근한 목작약만이
홀로 남은 봄을 보내는구나.

雨過浮萍合
蛙聲滿四隣
海棠眞一夢
梅子欲嘗新
拄杖閑挑菜
鞦韆不見人
慇懃木芍藥
獨自殿餘春
소식, <비가 갠 뒤 걸어서 사망정 아래에 이르렀다雨睛後步至四望亭下> - P40

오래된 연못이여, 개구리 뛰어드는 물소리.
古池や蛙飛び込む水の音
ㅣ마쯔오 바쇼松尾芭蕉, 전이정 옮김 - P41

안개 노을 차지하니 마음 절로 한가롭고띠풀집은 푸르고 험한 봉우리에 높이 걸렸다.
배고프면 먹고 나른하면 잠잘 뿐 다른 일 없는데
봄날 산새의 울음 한 소리에 온산에 꽃이 가득하다. - P42

占斷烟霞心自閑
茅茨高架碧孱顔
飢飡倦睡無餘事 
春鳥一聲花滿山
유방선柳方善,<수암의 시권에秀菴卷子>,《기아箕雅》권2 - P43

새 봄을 노래할 준비를 한다. 경칩이란 원래 개구리뿐만 아니라 땅속의 벌레들이 봄기운에 놀라서 깨어난다는 뜻을 가진 말이다. 다만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개구리였기 때문에아마 그렇게 관용적으로 사용하게 된 것 같다. - P44

초등학교 시절, 국적 불명의 동화책에서 개구리 왕자를 읽은 적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이 개구리의 이미지를 좋게 만들어주지는않았다. 우리가 살던 동네에서는 본 적이 없지만, 뒷날 민속학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한창 책을 읽던 대학 시절에 개구리 알을 먹는풍습에 대해 읽은 적이 있다. 조사에 의하면 전라도 지역에서 행해진 것으로 보이는 이 풍습은, 경칩 무렵이면 마을 사람들이 몰려다니면서 웅덩이나 못가에 있는 개구리 알을 건져서 먹는 것이었다.
‘경칩 먹기‘ 내지는 ‘용알 먹기‘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풍습은허리병이나 보정에 좋다는 속설이 있기는 했지만, 내 생각에는아마도 농사에 방해가 되는 수많은 개구리떼들을 효과적으로 줄여보자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그렇게 해서 얼마만큼의 개구리를 줄이겠는가마는, 적어도 상징적인 행위쯤은 되지 않았을까 싶다. - P44

초목은 이미 싹을 틔워
절기는 하마 경칩을 지났다.
농가엔 농사일 준비하느라
젊은이들 밭에 나가 있구나.

草木已萌動
節序驚蟄後
農家修稼事
少壯在田畝

허목許穆, <경칩 지난 뒤驚蟄後作>,  <기언記言>권57 - P46

늘어지는 닭소리에 몽실몽실 퍼지는 햇살
경칩 이미 지나자 겨울잠 자던 벌레 날아다닌다.
봄 추위가 아무리 제멋대로라지만
얼음 꽁꽁 얼려 항아리 깰 만한 힘 어디 있으랴.

嫋嫋鷄聲靄靄暉 
已過驚蟄蟄蟲飛
春寒縱道無常候
豈有堅氷破瓮威

유만공柳晩恭, 《세시풍요歲時風謠》 중에서 - P46

지난 주 내린 눈이 아직 녹지 않은 아파트 응달에도 제법 푸릇한풀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힘이 없어 보이지만 저렇게 삐죽 내미는 고갯짓에 매서운 겨울이 밀려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수런거리면서 봄은 대문 앞에 이르러 우리를 부른다. 우리의 몸과 마음도겨울잠에서 깨어난다. 이제 겨울옷을 벗고 창문을 열어 봄을 맞이할 때다.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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