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무 살까지 이 세 곳의 봄 풍경에 안겨 자라났다. 그것은 나의 정서로 되었고 나의 살과 피로 되어버렸다. 봄 하고 입속으로 중얼거려 볼 때 그것은 마치 봄이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감성화된 개념으로 되어 나의 가슴 속에 설레인다.

그중의 첫 사람은 내 죽은 선처(先妻)요, 또 한 사람은 오랫동안 불행한 한 방에서 나와 같이 살다가 폐를 앓아 세상을 떠난 T라는 우인이다.

나는 때때로 이들의 환영에서 괴로운 채찍을 머리와 등에 느낀다. 그리고 괴로움에서 나의 머리를 구하려고 나는 이들의 환영을 부숴버리려고 안타까워 한다.

T가 내가 있는 방에 처음으로 온 것은 아직도 겨울이 겨우 한고비를 넘어서 추위는 영하 15도를 상하(上下) 하던 때이었다. 그는 관북 명천6) 태생이었으나 오랫동안 국경에 살았고 또 이곳에 오기까지는 원산7) 부두에서 노동을 하였다고 한다.

주로 파쟁(派爭)8)에 관한 역사. 나는 그것을 직접 몸을 가지고 경험한 그로부터 몇 달을 두고 세세히 들었다.

그리고 이것이 모든 것의 화인(禍因)9)이라는 것. 그리고 지금도 자기네들이 무엇이라고 조금만 끄적거리면 그것이 최대의 경계와 조심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옛날의 추잡한 역사의 되풀이가 되기 쉽다는 것. 이리하여 당분간은 이러한 희생(犠牲)이 끊이지 아니하리라는 것-

꽃! 이는 오는 듯 마는 듯 남모르게 찾아오던 봄이 비로소 굳게 닫힌 문을 요란스럽게 두드리는 것과 같은 커다란 충격을 주는 것이었다. 굶주리었던 욕망이 분류(奔流)와 같이 용솟음칠 때처럼 우리는 젊은 가슴을 이 아름다운 꽃 밑에서 안타깝게 애태웠다. 때때로 꽃은 성적 매력까지를 발휘하는 것 같다.

나는 그곳에 있는 동안 그의 소식을 듣지 못하였다. 그러고 내가 보석이 된 뒤 그들의 예심이 종결되었을 때 신문에 난 그의 이름 밑에서 나는 사망이란 두 자를 발견하였다.

《조광》, 1938년 4월호

얼마나 자랐을까 내 고향의 라일락
 승용차의 뚜뚜 소리에 육중한 흰 대문이 좌우로 열리고 조약돌을 깨무는 소리를 내면서 차대(車臺)가 스르르 굴러 들어간다. 그리고 현관 앞에서 신사와 숙녀를 떨어뜨리고 그 앞을 빙 돌아 다시 낮은 고동을 뛰- 한 번 울리고는 까만 차대가 언덕진 정원의 구부러진 길을 커브 하면서 대문 있는 쪽으로 미끄러져 간다.

지금 고향 떠나 40일, 달을 보며 산산한 바람이 볼을 스칠 때 나는 내 가슴속에 이 뜰을 그려 보며 혼자서 생각하여 보는 것이다.

‘뜰에 심고 온 라일락이 지금은 얼마나 컸는가’ 하고.

《조선일보》, 1935년 5월 15일

네가 봄이런가
 나에게는 아침이고 저녁이고 구별이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수면을 잃어버린 지 이미 오래다. 밤마다 뒤숭숭한 몽마의 조롱을 받는 것으로 그날그날의 잠을 때운다.

오월의 산골짜기
 나의 고향은 저 강원도 산골이다. 춘천 읍에서 한 이십 리가량 산을 끼고 꼬불꼬불 돌아 들어가면 내닫는 조고마한 마을이다. 앞뒤 좌우에 굵직굵직한 산들이 빽 둘러섰고 그 속에 묻힌 아늑한 마을이다. 산에 묻힌 모양이 마치 옴푹한 떡시루 같다 하여 동명을 실레18)라 부른다. 집이라야 대개 쓰러질 듯한 헌 초가요 그나마도 오십 호밖에 못 되는 말하자면 아주 빈약한 촌락이다.

갈 때가 되면 산골에서는 노유(老幼)20)를 막론하고 무슨 명절이나처럼 공연히 기꺼웁다. 왜냐면 갈꾼을 위하여 막걸리며, 고등어, 콩나물, 두부에 이팝21) -- 이렇게 별식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여보게 이리와 한잔하게 --"
"밥이 따스하니 한술 뜨게유 --"
이렇게 옆 사람을 불러서 같이 음식을 나누는 것이 그들의 예의다. 어떤 사람은 아무개 집의 갈 꺾는다 하면 일부러 찾아와 제목을 당당히 보고 가는 이도 있다.

산골의 음악으로 치면 물소리도 빼지는 못하리라. 쫄쫄 내솟는 샘물 소리도 좋고 또는 촐랑촐랑 흘러내리는 시내도 좋다. 그러나 세차게 콸콸 쏠려내리는 큰내를 대하면 정신이 번쩍 난다.

논에 모를 내는 것도 이맘때다. 시골서는 모를 낼 적이면 새로운 희망이 가득하다. 그들은 즐거운 노래를 불러가며 가을의 수확까지 연상하고 한 포기 한 포기의 모를 심어나간다. 농군에게 있어서 모는 그야말로 그들의 자식과 같이 귀중한 물건이다. 모를 내고나면 그들은 그것만으로도 한해의 농사를 다 진 듯싶다.

아낙네들도 일꾼에게 밥을 해내기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그리고 큰 함지에 처담아 이고는 일터에까지 나르지 않으면 안 된다. 아이들은 그 함지 끝에 줄레줄레 따라다니며 묵묵히 제목을 요구한다.

산가의 봄
4월 10일(금요일)
산사에서 겨울을 지내고 동구 밖에 조그만 초가를 산 후, 병에 약한 몸을 쉬게 되었다. 이 초가에 오자마자 넓은 뜰 안에 앵두꽃이 만발하였다. 꽃은 적으나 나무에 다닥다닥 붙고 정열적인 붉은 꽃 -- 그 구슬 같은 적은 꽃이 뭉치가 되어 만발한 정원은 꽃세계를 이루었다. 나는 앵두나무 사이를 거닐며 잃어버린 정열이 그리웠다.

 호미를 가지고 빈터에 콩을 심고 감자 싹을 심었다.

오월의 구상
 여학교 때 자수를 가르치는 선생님 말이, 수를 놓다가 가끔 눈을 들어 파란 잔디밭이나 푸른 나무들을 바라보면 그 푸른 빛이 눈의 피로를 덜어 준다는 것이었다.

푸른 빛이 보안상(保眼上)에 좋아 눈의 피로를 덜어 준다지만, 눈의 피로뿐만이 아니라 내가 생각건대 이것이 우리의 마음의 피로를 덜어 주는 편이 또한 적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속이 상하면 푸른 나무 꼭대기를 바라본다.

복잡한 현실에서 우리는 가끔 눈을 들어 다른 데를 보며 쉴 필요가 있다.

푸른 오월이 밀물처럼 들어온다.
집집의 뜰에, 거리의 로터리에, 이 신록 물이 들게 하라! 그리하여 이 푸른 빛을 보는 시민들의 충혈된 눈을 수정처럼 말게 해주라.

1954년 5월

봄이다 봄이다 소리 높여 노래하자
봄이다 봄이다! 하는 단 한마디 말이 어떻게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가? 봄이다 봄이다! 하고, 자꾸 불러 보면 어째서 가슴까지 몸까지 이렇게 들먹거려질까?

봄이다 봄이다! 활개를 힘껏 펴고 소리 높여 노래하라. 그리하여 기운을 키우라. 생명을 키우라.

봄철에 가장 사랑하는 꽃
나는 이런 꽃을 사랑합니다.
이렇게 사랑하며 좋아합니다.

곱게 피는 꽃이면 모두 좋지만, 봄에 피는 꽃 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은 히아신스와 복사꽃입니다.

흙내 나는 꽃, 시골집 울타리를 생각게 하는 꽃, 순실한 시골 소녀같이 사랑스러운 복사꽃! 나는 이 사랑스러운 꽃이 이 봄에도 어서 피어 주기를 지금부터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린이》, 1926년 4월호

봄은 어느 곳에
벌써부터 신문에는 봄(春)자가 푸득푸득 눈이 뜨인다. 꽃송이가 통통히 불어 오른 온실 화초의 사진까지 박아내서 아직도 겨울 속에 칩거해 있는 인간들에게 인공적으로 봄의 의식(意識)을 주사하려 한다.

그러나 다시금 돌아오지 못할 그 시절임으로써 빛깔 없이 보낸 지난날이 더욱 그립고 켜졌던 그 시간이 야속하게도 짧았기 때문에 싸늘한 잿무더기에다가 다시 한번 불을 피워 보고 싶은 것이다.

자연은 늙지 않고 내만 늙을 것, 내 늙은 뒤, 마음의 여유를 얻어 오월을 찾으면 그때는 오월은 아름다운 계절이며 푸른 하늘에 떠 있는 애드벌룬, 신록 속에 널려있는 아늑한 프롬나드(promenade)가 즐거울 것인지 이는 누구나 보증할 수 없으리라 생각하니 원통하기 짝 없다.

《문장》, 1940년 5월

봄과 여자와
 봄
 웃는 여인
 노곤한 센티멘탈

꽃이 무엇에 놀라기나 한 듯이 한꺼번에 와짝 핀다.

름에서 물결치는 치마폭에서 봄의 정(精)이 남실거린다. 비로소 봄을 안 처녀의 볼은 갓 핀 복사꽃잎이다.

봄과 외투와
 외투를 입고 다니자니 터분하고 벗어놓고 다니자니 허전한 게 섭섭하다.

외투 요량을 하고 내의를 얇게 입고 나온 것이 한이다. 그러나 그 대신 그놈 1원으로 뱃속에 알코올을 부어서 열을 올리었다. 그 덕에 봄나물도 금년에는 꽤 일찍이 맛을 본 셈이다.《혜성》, 1931년 4월호

봄의 현미경적 검사
-조춘(早春)의 가두(街頭)에서
 봄이면 전원이라야 하지 도시의 아스팔트 위에 서서 춘색(春色)을 찾는다는 것은 여간만 옹색스런 노릇이 아니다. 무릇 생활이 바쁘고 땅이 새뤄 봄의 봄다움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은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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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의
˝긴 봄날의 소품˝을 읽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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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솔
나는 언제부터인가 솔을 좋아한다. 아마 썩 어려서부터인가 짐작된다. 봄만 되면 지금도 가끔 떠오르는 것은 내가 여섯 살인가 되어 어머니와 같이 뒷산 솔밭에 올라 누렇게 황금빛 나는 솔가래기를 긁던 것이다. 때인즉 봄이었던가 싶으다. 온 산에 송림이 울창하였고 흐뭇한 냄새를 피우는 솔가래기가 발이 빠질 지경쯤 푹 쌓여 있었다. 솔은 전년 겨울 난 잎을 이 봄에 죄다 떨구기 때문이다.

거기서 우리 모녀는 부스럭부스럭 솔가래기를 긁어모았다.

배만 고프면 어머니 곁으로 달려가서 못 견디게 졸라대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딱하여서 나를 어르고 달래다 못해서 나의 뺨을 찰싹 때리면, 나는 죽는 듯이 울었고 어머니는 하는 수 없이 나를 업으시고 소나무에 기대어서 한참씩이나 우두커니 섰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솔은 본래부터 그 근성이 결백하여서 시커먼 진흙땅을 피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기에 간도에서는 한 그루의 솔을 대할 수가 없지 않은가 한다. 언제 보아도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은 준령에 까맣게 무리를 지었고 하늘의 영기를 혼자 맛보고 있으며 또한 눈빛같이 흰 사장을 끼고 이쁘게 몸매를 가지지 않았나.

솔은 장미처럼 요염한 꽃을 피울 줄도 모르며 화려한 향취를 뿌려 오고가는 뭇 나비들을 부를 줄도 모른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못하며 그만큼 그는 적적한 편이라 할 것이다.

봄을 맞는 우리집 창문
여기는 아직도 백설(白雪)이 분분(粉粉)하여 봄의 기분이란 용이히 맛볼 수가 없다. 그러나 모질게 몰아치는 그 바람에는 어지럽게 떨어지는 그 눈송이에도 여인의 바쁜 숨결 같은 것을 내 볼 위에 흐뭇이 느끼게 됨은 봄이 오는 자취가 아닐까.

‘이리 온, 내 쌀 한 줌 줄게.’
내 입에서는 부지중에 이런 말이 나오려고 옴씰옴씰한다. 새들은 내 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지에서 가지에로 오르내리며 재재거리고 있다.

그 갸웃거리는 조그만 목에는 누가 저리도 희고 부드러운 목도리는 해주었을까. 어느 산기슭에서 포근히 잠들었을 때 그 위로 살살 감돌던 안개란 놈이 그들의 따뜻한 목에 감긴 게지.

나는 문득 창문을 보았다.
"한 푼 줍쇼."
어린 거지가 창문 밖에 서서 나를 보고 머리를 수굿거린다. 그 보기 싫게 조은 머리며 때가 끼인 얼굴, 남루한 옷 주제, 나는 무의식 간에 얼굴을 찡그렸다.

그리고 어서 속히 쫓기 위하여 지갑에서 돈 한 푼을 꺼내 내쳐 주었다.

 "고맙습니다."

진달래
꽃을 여자에게 비한다면, 진달래는 이미 춘정을 잊은 스무고개는 훨씬 넘어선 여인 같으면서도 또 정숙하여 보입니다. 그리고 확호한 인생관이 유행이라는 데는 눈도 뜰 줄 모르는, 그리하여 속세의 풍정과는 높이 담을 쌓은 점잖음이 속속들이 깃들여 있어 보입니다.

봄이면 그리운 진달래입니다. 해마다 한식절(寒食節)이면 선조의 선영(先瑩)으로 성묘를 가서 그 산속에 핀 진달래꽃을 따 먹어 보며 노닐던 어린 날의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진실로 한 잔 술에다가 진달래 꽃잎을 마음껏 따 넣어 실컷 마셔 보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마음속을 새빨갛게 물들여 진달래 마음이 되어 보고 싶습니다.

봄이면 생각나는 이
 어젯밤부터 오늘 아침에 걸쳐 많은 눈이 내렸다. 벌써 입춘까지 지났으니 지금을 겨울이랄 수는 없고 봄을 위하여 글쓰기고 이번이 두 번 차이니 지금은 영락없는 봄이요 나의 마음도 벌써 봄을 안은 지 오래다. 그러므로 밖에는 흰 눈이 퍼붓고 있건만 책상에 마주 앉아 ‘봄이면 생각나는 곳 혹은 사람’을 기록하고 있는데 아무런 감정의 저어(齟齬)4)도 느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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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했다.
읽는데 너무 오래 걸렸다.
3.31.~5.10. ㅠㅠㅠ 한달하고도 11일
제인 오스틴. 노생거 사원

˝오만과 편견˝은 재밌죠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는 😱 더욱더 재밌다. 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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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5-05-10 15: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인 오스틴의 막강한 팬덤을 넘어 ˝지루하도다˝에 공감하신 분이 생각보다 많군요. ^^

대장정 2025-05-10 16:58   좋아요 1 | URL
1부 읽다가 딱 12번 독서중단 선언하려했구요. 그나마, 장군의 오해로 노생거사원에 초대된 캐서린이 고딕소설에 심취한 망상으로 벌어진 일들, 장군으로 부터 노생거 사원에서 쫒겨나고 다시 그 아들과 빰빠라..좀 나았습니다. ㅎ

바람돌이 2025-05-10 19: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노생거사원의 지루함을 거쳐 오만과 편견이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ㅎㅎ 거장도 처음부터 거장인건 아니었다 뭐 이런 교훈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ㅎㅎ

대장정 2025-05-10 19:25   좋아요 1 | URL
ㅎㅎ 그말이 정답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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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기분 이해해. 강요하지 않을게. 우리가 멀리 떨어져 있어도 너의 다정한 마음씨를 믿어." 이렇게 말하는 슬픈 표정을 보자 캐서린의 자존심이 한순간 무너졌고 바로 대답이 나왔다. "오, 엘레노어, 꼭 편지할게."

틸니 양은 말을 꺼내기가 좀 거북했지만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조바심이 났다. 캐서린이 집을 떠난 지 한참 지났기 때문에 돌아갈 비용을 감당할 돈이 부족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주 자상하게 비용을 보태 주겠다고 제안했는데, 예상이 그대로 적중했다.

캐서린은 그때까지 돈 문제를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 지갑을 뒤져 보고서야 친구의 친절한 배려가 아니었다면 집에 도착할 돈 한 푼 없이 여기서 쫓겨나는 꼴이었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 사람은 만약 그랬을 때 그녀가 겪었을 곤란함에 황망해하며, 말없이 남은 시간을 기다렸다.

"여기 없는 그 친구와 나눈 다정한 기억"을 남겨 두고 떠난다고 알아듣게 말해 주었다. 그렇게 그의 이름을 돌려서 말하고 나니 오히려 감정을 억누를 길이 없었다. 안간힘을 다해 손수건에 얼굴을 묻으며 쏜살같이 복도를 가로질러 달려 나가 마차에 올라탔고, 눈 깜짝할 사이에 집에서 멀어져 갔다.

거기서 보낸 날은 그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날들 중 하루였다. 바로 거기서, 바로 그날, 장군은 헨리와 그녀를 엮어서 말했고 말로도 표정으로도 분명히 그들의 결혼을 소망한다는 확신을 주었다. 그렇다. 바로 열흘 전에 자신을 향한 특정한 배려에 우쭐했었다. 너무 대놓고 언급하는 바람에 민망하게 만들더니! 그러나 지금, 도대체 무슨 일을 했다고 또는 하지 않았다고 이렇게 달라진 대접을 당하는 걸까?

재주 많은 작가라면 여주인공이 모험을 마치고 고향 마을로 돌아올 때 성공적으로 명성을 회복하고 백작 부인의 품위를 지키며 몇 대의 쌍두 사륜마차에 귀족 친척들을 줄줄이 태우고 세 명의 하녀를 따로 사륜마차에 태워 뒤따르게 하는 내용을 신나게 써 내려갈지도 모른다. 모든 결론이 다 그렇고, 작가는 그렇게 관대하게 영광을 베풀고 즐긴다. 그러나 내 이야기는 퍽 다르다. 여주인공을 고독과 불명예에 빠져 집에 돌아오게 만들었으니까. 달콤하고 우쭐한 기분을 시시콜콜 묘사하긴 글렀다. 전세 마차를 탄 여주인공만으로도 산통 다 깨진 셈이니, 거기에 위엄이나 감정을 불어넣으려 해 봤자 소용없으리라. 그렇다면, 이제부터 마부가 일요일에 교회에 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뚫고 신속하게 마을을 통과해 그녀를 후딱 마차에서 내려 주는 것으로 하자.

몰란드 부인이 말했다. "슬퍼하고 있을 거다. 다른 건 상관없다. 캐서린이 집에 무사히 왔으니 됐고, 우리야 틸니 장군 없이도 잘만 사니까."

"네가 그렇게 돌아올 줄 몰랐다만 차라리 잘됐다. 이제 다 지난 일이고, 손해 본 것도 없다. 젊었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잖니. 내 딸 캐서린, 원래 딱한 말썽꾸러기 아이였지. 이제는 마차도 그렇게 많이 타 보고 했으니까 철들었을 거다. 그런 일에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는 모습을 보여 주렴."

"그렇다면 틸니 장군 때문에 속 끓이는 모양인데 너도 참 단순하구나. 십중팔구 다시 만날 거다. 그런 사소한 일로 속 끓이지 마라." 잠시 멈춘 다음 이렇게 말했다. "캐서린, 우리 집이 노생거만큼 으리으리하지 않다고 해서 속상해하지 마라. 그렇다면 네 여행은 정말로 나빴던 것이란다. 사람은 어디에 머물든 만족할 줄 알아야 하는데, 특히나 집에 있을 때가 그렇다. 늘 사는 곳이잖니. 아침 식탁에서 노생거에서 먹었던 프랑스 빵 얘기를 들어 주긴 힘들구나."

그녀의 죄는 오로지 그녀가 그가 기대했던 것만큼 부자가 아니라는 데에 있었다. 그녀의 재산을 오해하고 바쓰에서부터 그녀와 친분을 쌓으려 했고 노생거에서 친해지려고 했으며 그녀를 며느리로 맞을 계획이었다. 오해였음을 깨닫자 그녀에 대한 분노와 그녀의 가족에 대한 혐오가 적절치 않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를 내쫓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오해를 부추긴 건 존 쏘오프였다. 장군은 어느 날 저녁 아들이 극장에서 몰란드 양에게 상당히 관심을 가지는 걸 보고 우연히 쏘오프에게 그녀의 이름 이상으로 아는 게 있는지 물었다. 쏘오프는 틸니 장군 정도 되는 사람이 말을 걸어 주자 우쭐해져서 신나게 떠들었다. 그는 몰란드와 이자벨라가 오늘내일이면 약혼할 거라고 기대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도 캐서린과 결혼하려고 꽤나 마음을 먹고 있던 상태였기 때문에 캐서린의 집안을 자신의 허영과 탐욕이 부추긴 기대치보다도 더 부유하게 묘사해 버렸다.

말할 때 우쭐한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배나 부풀려 얘기하고 몰란드 씨의 성직에 딸린 재산을 멋대로 배로 올려 생각하고 그의 개인 재산을 세 배나 부풀리고 부유한 숙모도 있다고 하고 자녀의 수는 절반으로 깎아 말하면서 그 집안 전체가 장군의 눈에 대단해 보이도록 떠벌렸다.

각별히 장군의 호기심의 대상이자 자신의 관심 대상인 캐서린에 대해서는 내세울 걸 더 만들었는데, 앨런 씨의 장원에다가 그녀의 아버지가 물려줄 만 파운드 내지는 만오천 파운드가 더해질 거라고 했다. 앨런 씨와 친밀하니까 한몫 물려받을 거라고 그는 진지하게 믿었다. 그녀를 거의 공인된 풀러튼의 상속녀라고 말해 버린 건 자연스런 귀결이었다.

캐서린은 이 모든 것을 하나도 모르고 있었고 장군의 자녀들도 마찬가지였다. 헨리와 엘레노어는 그녀가 아버지의 각별한 관심을 받을 만한 이유가 무엇인지 모른 채 그저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시작해서 지속적으로 보여 주는 관심에 놀랐다. 최근에 그녀를 잡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라고 거의 명령을 내리는 등, 몇 가지 힌트가 있어서 헨리는 아버지가 이 결합을 유리한 혼사로 여긴다고 확신했지만, 마지막으로 노생거에서 모든 설명을 들을 때까지는 아버지가 잘못된 계산에 빠져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정보가 모두 거짓이었다는 것을 장군은 처음에 정보를 알려 준 바로 그 사람, 쏘오프로부터 들었다. 런던에서 우연히 만난 쏘오프는 처음과 정확하게 반대되는 감정에 싸여 있었는데, 캐서린의 청혼 거절에 기분이 나쁜 데다 최근 몰란드와 이자벨라를 화해시키려고 애썼다가 실패하자 더 기분이 나빠져서 그 둘이 영원히 갈라섰다고 믿고서 쓸모없어진 우정쯤이야 치워 버린 채 예전에 몰란드 집안에 대해 좋게 말했던 모든 것을 반대로 뒤집어 토해 놨다.

사실상 가난한 집안이다, 그렇게 바글바글한 집도 드물다, 최근에 특별히 더 알아보니 결코 동네에서 존경받는 집안이 아니다, 그들의 재산으로 누릴 수 없는 생활 수준에 욕심을 낸다, 부자와 결혼해서 한몫 보려 한다, 건방지고 허풍스럽고 꿍꿍이가 많은 족속이다, 등등.

그의 분노가 헨리를 경악하게 했지만 위협할 수 없었던 것은 헨리가 자신의 목적에 흔들림이 없었고 그것이 옳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헨리는 이것이 몰란드 양에 대한 사랑만큼이나 명예가 걸린 문제임을 직감했고, 그가 얻으려고 하는 그녀의 마음이 정말 자기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지금껏 보여 줬던 암묵적인 동의를 비겁하게 철회하고 말도 안 되는 분노에 휩싸여 과거를 뒤집으려는 걸 보면서도 신의가 흔들리지 않았고 신의에서 나온 결단을 밀고 나갈 수 있었다.

그는 캐서린을 쫓아낼 명분으로 만들어 낸 약속인 히어포드 방문에 동행하지 않으려고 끈질기게 버텼고, 그녀에게 청혼하려는 의도를 똑같이 끈질기게 선언했다. 장군은 불같이 화를 냈고 그들은 험악하게 다투면서 헤어졌다. 헨리는 길고 고독한 시간을 보내야 진정될 것 같은 어지러운 마음을 안고 즉시 우드스턴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 날 오후에 풀러튼으로 출발했던 것이다.

그들의 이른 결혼을 성사시킨 수단이 무엇인지 그것만 궁금할 따름이다. 도대체 어떤 상황이 발생하여 장군의 마음을 움직였단 말인가? 여름에 장군의 딸이 재산이 많고 명망 있는 남자와 결혼하는 바람에 그 효과를 톡톡히 본 것인데, 장군은 가문의 영광에 엄청 기분이 좋아져서 엘레노어가 헨리를 용서해 달라고 부탁하자 그만 "하고 싶은 대로 하라지!"라고 허락해 버린 것이다.

『노생거 사원』이 ‘시대를 타는’ 소설이라면, 거기에 책의 존재가 빠질 수 없다. 이 시대는 책의 시대였다. 18세기에 인쇄 문화가 폭발함에 따라 문학과 비문학을 가로질러 다양한 종류의 읽을거리가 쏟아졌다. 사람들은 책을 읽었고 그것에 대해 많이 말했다. 비유하자면, 우리가 스마트폰을 하나의 기계가 아니라 우리 손끝에 붙은 신체의 일부로까지 여길 수 있는 것처럼, 오스틴의 시대에는 책이 그런 위상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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