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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라만상을 열치다 - 한시에 담은 二十四절기의 마음
김풍기 지음 / 푸르메 / 2006년 10월
평점 :
품절
p279~280
새봄을 눈앞에 두고 나 자신의
한해 살림살이를 돌아본다.
나는 과연 헛되이 세월을 보내지는 않았는가.
절기의 순환과 함께
나의 몸은 잘 변화하였는가.
그에 따라 내 마음 역시 바뀌었는가.
이런저런 상념에 겨울밤이 깊어간다.
글 읽던 당년에는 경륜에 뜻을 두어
해 저물어도 도리어 안회의 가난을 달가워했지.
부귀는 다툼 있어 손대기 어려웠지만
자연은 금하는 이 없어 몸편안히 할 수 있었다. 나물 뜯고 낚시해서 충분히 배채웠고 달과 바람 읊조리어 정신을 펴기에 넉넉했다.
배움이 의심 않는 데에 이르면 쾌활해짐을 아나니
헛되이 백년인생 되는 건 면하게 했네.
讀書當日志經綸 歲暮還甘安氏貧
富貴有爭難下手 林泉無禁可安身
採山釣水堪充腹 詠月吟風足暢神
學到不疑知快活 免敎虛作百年人
서경덕, <마음속 생각을 쓰다>, <화담집花潭集> 권1
서경덕은 조선 전기 선비로 평생 벼슬을 하지 않고 독서에 마음을 쏟았던 인물이다. 천하를 다스릴 뜻을 품고 열심히 글을 읽던 당시에는 가난을 달갑게 여겼다. 안회는 공자가 가장 총애하던 제자요 성인의 경지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으나 집의 쌀독이 자주 빌 정도로 가난했다. 가난을 편안히 여기면서 도를 즐기는 이른바 ‘안빈낙도 安貧樂道‘ 고사의 주인공이다. 서경덕 역시 가난한 생활이지만 열심히 책을 읽으면서 그 가난을 달갑게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