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는 1957년에 쓴 자신의 저서 『핵무기와 국제정치Nuclear weapon and foreign policy』에서 제한적인 핵전쟁은 당연히 치러질 수 있으니 미국은 여기에 대비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이런 주장의 절정이 1962년 발간된 『열핵전쟁On thermonuclear war』이라는 핵 전략가 허만 칸Herman Kahn의 책이다.

핵 전략을 잘 짜서 전쟁할 경우에 소련은 거의 궤멸할 정도의 피해를 보지만, 미국은 불과(!) 6000만 명만이 사망할 뿐이기 때문이다.

허만 칸의 주장의 요지는 핵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핵전쟁도 할 만한 전쟁이라고 주장한 허만 칸의 책은 미국 최고의 학술 출판사인 프린스턴대학교 출판부에서 출판되었다.

"적에게 공포심을 안겨주는 예술"

당시 핵전략 중 하나로 상호확증파괴전략 MAD, Mutually Assured Destruction 이라는 것이 있었다. 이 전략은 쉽게 말해 끝장을 보자는 것이으니, 전략의 이름도 그에 걸맞은 ‘매드’였다.

당시에는 이러한 상황을 미국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치킨게임에 비유했다. 치킨게임이란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자동차가 좁은 길에서 서로 달려오다 먼저 핸들을 돌려 돌진하는 차를 피하는 사람이 지는 게임이다.

무서워 핸들을 돌리면 겁쟁이라고 해서 치킨게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런데 당시 미국과 소련의 핵경쟁이 이 비슷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한 상황이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에서 묘사된다. 영화 중반 이후에나 등장하는 스트레인지러브 박사가 공포감을 심어주는 것이야말로 핵전쟁을 억제하는 전략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있다.

인류의 파멸을 가져오는 미친 과학

소련의 최후 병기 둠스데이 머신은 원자폭탄이 터지면 자동으로 작동되도록 만들어놓은 것이다. 그래서 왜 그런 자동화 기능을 만들었는지를 묻는 대통령에게 스트레인지러브 박사는 대답한다. 취소할 수 없는 게 둠스데이 머신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고 역할인 바, 적이 핵미사일 한 개를 발사했는데 우리는 핵미사일 1만 개를 발사한다는 결정은 인간이 내리기에는 너무나 끔찍한 결정이어서 이를 자동화했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 기계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인간이 기계의 결정을 되돌릴 수 없다는 데 있다. 영화에서는 이렇게 상대를 위협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장치들이 서로 간에 상승작용을 이루면서 인류를 파멸로 몰고 간다.

결국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당시 냉전의 두 주체인 미국과 소련에 대한 풍자나 비판을 넘어서 핵무기로 대표되는 현대 과학기술문명과 이를 적절하게 통제할 수 없는 인류에 대한 비판이 아닐 수 없다. 당시까지 진보의 상징이었던 과학과 그것을 이룩한 과학자에 대한 맹신을 통렬하게 비판한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유명한 여성 과학자는 마리 퀴리Marie Curie이다. 1867년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서 태어난 소녀 마리아 스클로도프스카Maria Skłodowska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여성 과학자가 되었다. 그녀는 1903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함으로써 노벨상을 수상한 첫 번째 여성이 됐고, 1911년에 단독 노벨 화학상을 수상함으로써 노벨상을 두 번 수상한 최초의 과학자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게다가 남녀를 통틀어 서로 다른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두 번 수상한 사람은 지금까지도 마리 퀴리가 유일하다.

그녀는 또한 파리 소르본대학교 최초의 여성 교수가 되었고, 1995년에는 프랑스의 국가적 영웅이 안장되는 파리의 팡테옹에 묻히는 첫 번째 여성이 되었다. 그녀의 연구는 방사능 물리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를 열었으며, 이런 업적 때문에 방사능 단위에 퀴리라는 이름이, 화학 원소 퀴륨에 역시 퀴리의 이름이 사용되었다.

과학자는 남성이건 여성이건, 머리(영혼, 이성)만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몸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과학자는 이성과 감정, 그리고 욕망을 가진 인간이다. 너무나 당연하게. 그래서 과학은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결과물이다.

사이비과학의오래된 역사
 
세상을 보는 극단의 시선, 이분법

오랜 세월, 여성은 자연의 괴물이었으니

우리는 근대 이후 민주주의의 발전을 목도하면서 차이와 다양성의 가치가 세상의 발전과 민주주의를 낳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알았다. 최근에는 창의성의 원천으로 누구나가 차이와 다양성을 꼽고 있다. 이렇게 차이는 소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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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COSMOS는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미래에도 있을 그 모든 것이다. 코스모스를 靜觀하노라면 깊은 울림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나는 그때마다 등골이 오싹해지고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며 아득히 높은 데서 어렴풋한 기억의 심연으로 떨어지는 듯한, 아주 묘한 느낌에 사로잡히고는 한다. 코스모스를 정관한다는 것이 미지未知 중 미지의 세계와 마주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울림, 그 느낌, 그 감정이야말로 인간이라면 그 누구나 하게 되는 당연한 반응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코스모스에서 - P7

눈부신 지성과 가없는 지식을 가진 그가 아직 살아 있었다면 지구 문명이 최근에 밟아온길을 두고 어떻게 평가했을까? 그리고 지구 문명의 야만성과 우리를둘러싼 무명에 대항해서 또 어떤 운동들을 펼쳤을까? 그리고 그러한 운동들을 통해서 그는 또 얼마나 많은 영혼들에게 열린 마음을 갖게 했을까? 지난 10년 동안 나는 칼을 그리워했다. - P9

인간이 여러 세대에 걸쳐 부지런히 연구를 계속한다면, 지금은 짙은 암흑 속에 감춰져 있는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거기에 빛이 비쳐 그 안에 숨어 있는 진리의 실상이 밖으로 드러나게 될 때가 오고야 말 것이다. - P19

주문의 활용방법 : 싸구려 맥주, 그리고 기름을 함께 잘 섞은 다음, 이 주문을 세 번 외워서 약을 만들어 아픈 이에 바른다. - P21

인류는 코스모스에서 태어났으며인류의 장차 운명도 코스모스와 깊게 관련돼 있다. 인류 진화의 역사에있었던 대사건들뿐 아니라 아주 사소하고 하찮은 일들까지도 따지고 보면 하나같이 우리를 둘러싼 우주의 기원에 그 뿌리가 닿아 있다.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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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학이란?STS(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STS는 과학기술과 사회의 상호작용을 규명하는 학문이다.사회가 과학기술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그 내용과 방향을 어떻게 바꾸는지, 반대로 과학기술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분석한다.과학기술이 제한적인 사고와 감정을 가진 인간에 의해서,특정한 시기의 사회적이고 물질적인 조건 속에서 발전한다는 ‘상식’에서 출발한다. 과학은 인간의 활동이라는 것이 STS의 출발점이다.

기술과학(technoscience)
대개 과학이 기술을 낳는다고 생각하지만, 기술의 발전이 과학의 진보를 가져오기도 한다. 과학과 기술은 하나의 네트워크 속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이런 의미에서 ‘테크노사이언스’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다.

융합(融合)
하나의 분야와 다른 분야의 접목. 융합의 목적은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인데, 이 책에서는 과학과 인문·예술의 융합을 통해 나를 둘러싼 사회적 조건을 극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유토피아(utopia)
‘좋은 곳’이라는 뜻의 ‘eu-topia’, ‘아무 데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는 뜻의 ‘ou-topia’의 합성어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을 뜻한다. 1516년 출간된 토머스 모어의 책 『유토피아』에서 처음 사용된 말이다.

디스토피아(dystopia)
유토피아의 반대말로, 미래의 끔찍한 어떤 사회를 뜻한다. 19세기에 만들어진 말로, 산업혁명 이후 사회적 불평등이 확산되면서 널리 사용되었다.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
인간의 여러 능력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구현한 기술. 인공지능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과 동경은 각종 대중문화 콘텐츠로 나타나는데, 이 책에서는 인공지능이 발전했을 때의 여러 가능성과 문제점 등을 소개한다.

초지능(superintelligent) 기계
똑똑한 사람들의 지적 능력을 훨씬 초월하는 기계. 초지능 기계가 인간보다 더 뛰어난 기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기계의 진화로 지능의 폭발이 가능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프라이버시(privacy)
개인의 사생활을 보장받을 권리. 19세기 산업화 이후 생긴 개념으로, 오늘날에는 자신의 정보를 스스로 공개하는 등 프라이버시가 자연스럽게 그 의미를 잃어가는 것이 아니냐는 논쟁적인 주장이 펼쳐지고 있다.

유전자가위(CRISPR)
유전자에서 원하는 부분을 잘라내는 기술. 이 기술을 통해 병을 유발하는 특정 유전자를 자르면 병을 예방할 수 있다. 이 기술이 광범위하게 쓰일 경우, 그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윤리적 비판이 일고 있다.

우생학(eugenics)
진화가 인간에게도 적용되며 생존에 적합한 인간은 살아남고 그렇지 않은 인간은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이 자연의 순리라는 견해이다. 1920년대 미국의 이민 제한법, 2차 세계대전의 홀로코스트 등이 이것을 기반으로 시행됐던 나쁜 정책들이다.

사이보그(cyborg)
컴퓨터, 기계, 약물 등을 통해 활동 능력이 극대화된 인간. 수학자 노버트 위너가 주창한 사이버네틱스와 유기체를 의미하는 오거니즘의 합성어이다. 사이보그에 대한 인간의 관심은 오래되었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에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두 문화는 1959년에 영국의 작가이자 화학자였던 찰스 스노Charles Snow가 케임브리지대학교 강연에서 처음 한 말이다.

진입장벽을 낮추고 두 문화 사이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서 과학자들은 과학자들 나름대로, 인문학자들은 인문학자들 나름대로 자신의 학문 분야를 쉽게 서술한 대중서를 출판한다.

가치(윤리나 종교)의 이름으로 사실(과학)을 재단하려고 해서도 안 되고, 사실의 이름으로 가치를 말해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

미친 과학자,
슈퍼우먼 과학자, 오만한 과학자

대중문화와 과학의 크로스

우리에게 각인된 과학자의 이미지는 어떤 모습인가.통상 괴짜이거나 지독한 몰입형 인물로 그려지지만 애초 대중문화 속에서 과학자는  희한한 미치광이로 등장하기도 했다. 아무도  몰랐던 과학자의 이미지, 왜곡된 참 모습을 찾아보자.

과학자의 이미지,미쳤거나 괴짜거나
 
괴물이 아닌 과학자, 프랑켄슈타인

사실상 고전이라는 것이 익히 그렇듯 실제로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사람은 극히 드물다. 이는 대다수의 사람이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이름을 소설에 나오는 괴물의 이름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프랑켄슈타인은 그들이 생각하는 괴물 이름이 아니다. 정확히는 괴물을 만든 과학자의 이름이다.

괴물은 그냥 이름 없는 괴물이고 그 괴물을 만든 과학자가 프랑켄슈타인이다.

『프랑켄슈타인』은 영국의 여성 작가 메리 셸리Mary Shelley가 쓴 소설이다.

새로운 시대의 ‘프로메테우스’로서의 과학자
권두화 오른편에 놀란 표정으로 문을 열고 도망가는 인물이 주인공 프랑켄슈타인 박사이다. 그리고 왼쪽에 나동그라져 있는 존재가 바로 프랑켄슈타인이 만든 괴이한 피조물이다.

새로운 지식을 발견한 대가로 고통을 당하는 프로메테우스와 프랑켄슈타인의 이미지는 이후 과학자의 전형적인 이미지 중 하나가 되었다.

메리 셸리는 당시 과학자들이 많이 하던 실험에서 소설의 아이디어 하나를 빌려왔다. 앞서 언급한 이탈리아의 과학자 루이지 갈바니Luigi Galvani의 죽은 개구리 다리 실험이 그것이다. 갈바니는 죽은 개구리 다리를 잘라 전극을 이었을 때 그 다리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대고 펄쩍 뛰기도 하는 것을 발견했고, 이로부터 생명체를 유지하게 하는 것은 전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잘 보이지 않고 드러나지 않을 뿐 생명체의 몸에는 전기가 흐르고 있는데, 죽어서 전기가 다 빠진 상태의 개구리 다리에 전기를 공급해주니까 다시 움직인다는 것이 그가 실험을 해석한 방식이었다.

그런데 연구 자체는 성공적이었지만, 그 결과는 결코 그가 바라던 것이 아니었다. 아니, 참담했다. 박사 나름대로는 인간의 멋진 부분들을 조합해 만든 창조물이 결과적으로 대단히 괴기한 형상으로 등장한 것이다.

결국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자신의 피조물을 버리고 도망간다. 그리고 괴물은 혼자 돌아다니다 한 시골 농가에 들어가 숨어 지내면서 사람들이 사는 방법과 말을 배운 후 자신을 창조한 아버지 프랑켄슈타인을 찾아 나선다. 박사와 괴물은 눈이 덮인 산에서 한 번 조우하게 되는데, 그때 괴물은 박사에게 묻는다. 왜 자신을 만들었고 그리고 왜 버렸느냐고.

박사는 괴물의 요청을 거절하고, 이에 화가 난 괴물은 급기야 박사의 친구와 이제 막 결혼한 박사의 신부를 또 죽이고 도망간다. 박사는 괴물을 쫓아가고, 결국 얼음으로 뒤덮인 북극에서 둘이 같이 죽는 것으로 소설의 마지막이 장식된다.

그런데 그렇게 얻은 지식이 책임감 있게 사용되지 못하고 통제가 안 되었다는 것이 이 작품이 전하는 중요한 메시지라 할 수 있다. 자신의 피조물을 버리고 도망간다든지, 짝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승낙했다가는 다시 파기하는 등 지식(과학)을 만들어낸 사람이 그 결과에 대해 온전히 책임지지 못하고 우유부단하며 책임 회피에 급급해 자신과 주변을 파멸시키기에 이른 것이다.

첫 번째가 아주 사악한 연금술사evil alchemist이다. 그리고 두 번째가 영웅의 이미지hero, 세 번째가 어리석은 과학자의 이미지foolish scientist이며, 네 번째가 비인간적인 연구자inhuman researcher, 다섯 번째가 모험가scientist as adventurer, 여섯 번째가 미친, 나쁜, 위험한 과학자mad, bad, dangerous scientist, 일곱 번째가 무기력한 과학자helpless scientist이다.

과학자들이 연구를 한다. → 혁신적 결과를 내놓는다. → 그 혁신적 결과가 과학자의 통제 범위를 벗어나 사회에 해악을 미친다. → 궁극적으로 연구 결과는 연구자 자신에게 복수의 칼이 되어 되돌아온다.
 
이 패턴은 『프랑켄슈타인』의 스토리와 정확히 일치한다.

내게 이 영화에 대한 평을 하라고 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이것은 냉전과 핵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뛰어넘어 기술과 인간의 본성의 관계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하는 영화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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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뵤시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까지 유행한, 그림을 곁들인 이야기책

"제가 딱 한 번 화가 나서 꾸며 낸 이야기가 얼마 전에 독이 되어 돌아온 겁니다."

"그 얘기는, 그러니까……."

그제야 고헤에도 아하, 하며 짐작했다. 감춰 둔 자식이 생겼다는 이야기와 연결되나?

"아빠, 제가 바로 그 생이별을 한 딸이에요, 이러더군요."

"자기 말로는 게이샤 출신이라던데, 가끔 들리는 샤미센 소리나 노랫소리는, 원 세상에, 그런 엉터리가 없어요. 그냥 몸 파는 여자예요."

고헤에는 굳게 닫힌 오유키네 문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역시 사람 입이 화근이지, 라고 생각했다. 요스케가 화가 나서 생각난 대로 떠든 이야기가 어디를 어떻게 돌았는지 이 여자 귀에까지 들어가 이런 사달이 난 것이다.

그래서 긴은 하루에 정확히 두 번 사다리 삐걱거리는 소리를 들어 왔다. 아침에는 ‘자, 또 하루가 시작됐네’, 밤에는 ‘어서 와, 이제 푹 자야지’라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 소리가 지금은 ‘긴, 이제 너도 하녀 일에서 헤어났구나’라는 소리처럼 들렸다.

이백십일
‘이백십일’은 입춘으로부터 이백십일째 날을 가리킨다. 대개 9월 1일이며, 태풍이 온다는 속설이 있어 농가에서 꺼리는 액일이었다

그러니 긴 씨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저는 통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 보통 깊은 원한이 아니었나 봐요…….

눈 아래 거리를 향해 긴은 새하얀 종이 눈보라를 찬바람에 실어 계속 날렸다.

하지만 여자 혼자 몸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어린 자식을 돌보고 자기 먹을 것을 줄이며 쉬지 않고 계속 일을 하니 어디든 고장이 나게 마련이었다. 오이치에게는 그것이 눈병으로 나타났다.

마침내 살림은 궁지에 몰렸고, 긴이 여섯 살 나던 해 겨울, 며칠 뒤면 그믐이 찾아오는 십이월, 새하얀 눈이 지붕에 쌓인 날, 오이치는 두 자식을 데리고 동반 자살을 꾀했다.

어찌 잊을까. 엄마와 오빠가 죽던 그날 이렇게 새하얀 눈보라가 몰아쳤다. 그래서 언젠가는 나도 이렇게 이즈쓰야 지붕에서 그런 눈보라를 흩날리게 하겠다고 생각했다.

오이치의 동생, 그러니까 긴의 이모가, 어차피 우리도 가난뱅이고 자식들만 수북하니 한둘쯤 늘어나도 고생하기는 매한가지라며 흔쾌히 거두어 주지 않았으면 아마 긴도 엄마, 오빠를 뒤따라야 했을 것이다.

두 자식까지 길동무하려고 한 까닭은 아마 남겨 두면 이즈쓰야가 빚값으로 둘 다 어딘가에 팔아 버릴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거다―이모는 그렇게 말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왜 나만 살아남았을까.’

엄마와 오빠의 한을 풀라는 것이 아닐까. 그 일을 하라고 신께서 나를 남겨 두신 거다. 긴은 그렇게 생각하며 세월을 보냈다.

어서 원수를 갚고 아빠, 엄마, 오빠가 있는 곳에 가서 편안하게 사는 거다―긴은 그렇게 생각했다.

긴은 왜 세상에 고리대라는 장사가 있을까, 하고 몇 번이나 진지하게 생각했다. 왜 신은 이런 장사를 내버려두시는 걸까.

처음에는 긴이 무엇을 뿌리는지 몰랐다. 하지만 팔랑팔랑 춤추며 하얗게 떨어지는 종잇조각을 주워 모은 사람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알아차리고 말했다.

"이봐, 이거 차용증이잖아. 차용증을 잘게 잘라 뿌리고 있네."

긴은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이 일을 하려고 살아온 거라고 생각한다. 이제야 엄마와 식구들 곁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길 건너 그릇가게 주인은 말한다.

"그 아가씨, 웃고 있더군요……."

마침내 기울기 시작한 햇살이 긴의 눈가를, 수척한 뺨을, 행복하게 웃고 있는 그 얼굴을 희미한 붉은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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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역귀신
정용기 감독, 김보라 외 출연 / 이든그루 / 2023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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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님 페퍼보고 봤습니다.
그냥저냥....
이야기는 무서운 이야기가 아니고
너무나 슬프고 슬픈 이야기입니다.
아이들 불법장기매매하고
증거인멸을 위해 우물속에 아이들을 넣고
생매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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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4-01-07 14: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대장정님 저 지금 아인슈페너 마시다가 이 글을 보고 뿜을 뻔 했습니다ㅋㅋㅋㅋ

아앗! 슬픈 이야기였군요?
갑자기 보고싶어집니다

대장정 2024-01-07 15:08   좋아요 2 | URL
아인슈페너가 먼지 몰라 검색해봤습니다ㅠㅠㅠ. 한 맺힌 아이들이 옥수역에...怨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