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역귀신
정용기 감독, 김보라 외 출연 / 이든그루 / 2023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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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님 페퍼보고 봤습니다.
그냥저냥....
이야기는 무서운 이야기가 아니고
너무나 슬프고 슬픈 이야기입니다.
아이들 불법장기매매하고
증거인멸을 위해 우물속에 아이들을 넣고
생매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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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4-01-07 14: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대장정님 저 지금 아인슈페너 마시다가 이 글을 보고 뿜을 뻔 했습니다ㅋㅋㅋㅋ

아앗! 슬픈 이야기였군요?
갑자기 보고싶어집니다

대장정 2024-01-07 15:08   좋아요 2 | URL
아인슈페너가 먼지 몰라 검색해봤습니다ㅠㅠㅠ. 한 맺힌 아이들이 옥수역에...怨鬼로....
 

그렇게 생각하니 고로베에는 마음에 더운 물이 부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더운 물은 때로는 따뜻하고 기분 좋게 만들어 주지만 어떤 때는 너무 뜨거워서 고로베에의 마음에 아프도록 강하게 스며들 때도 있었다. 오유가 슬하를 떠난다고 생각하니 몸의 일부가 잘려 나가는 심정이 들 때가 있는 것이다.

‘경사로구나, 경사.’

시작은 이러했다. 근심 걱정일랑 어디를 뒤져 봐도 없어 보였다.

후카가와 가와나미
기바에 원목이 도착하면 도매상들을 거쳐 제재소에서 제품이 만들어지는데, 이렇게 원목이 제품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운반, 검사 등을 담당한 일꾼이다

‘가이마키솜을 둔 두루마기 형태의 잠옷’

오키치의 유령은 정말 있었을까? 쇼스케는 정말로 오키치를 데리러 간 걸까? 그건 거짓말이었을까? 고로베에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진실을 알게 되는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다시는 쇼스케를 만날 수 없으리라는 것―그것 하나뿐이었다.

백중절 시장
조상의 영혼을 맞아 위로하기 위해 밝히는 등롱을 비롯해 백중절 풍습의 물건들을 파는 시장이 며칠간 임시로 섰다

마치야쿠닌
마치는 자치제로 운영되었는데, 마치야쿠닌은 마치의 대표들로 주택 관리인 등이 맡았으며 마치의 행정을 처리했다

좁은 에도 땅에 그 많은 인구가 모여 살고 있다. 축젯날이나 젯날이 되면 인파로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다. 그런 곳에서 어린아이를 잃어버리면 다시 찾지도 못하고 생이별을 할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그리고 잃어버린 아이를 찾아내려고 하면 에도 땅은 잔인할 정도로 넓은 곳이 된다.

차지인
지주에게 땅을 빌려 자비로 건물을 지은 사람

오캇피키
경찰업무를 맡았던 도신의 비공식 수하로서 범인 체포, 치안 유지 등의 업무를 도왔다

오우메지마
에도 근교 오우메에서 생산된 가는 줄무늬 면직물

"저는요, 그 부모를 찾지 못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벌을 받겠죠, 틀림없이."

이치베에는 잠자코 있었다. 그리고 미아석에 나붙은 많은 공고를 떠올렸다.

거기에 다에와 쓰야의 이름을 적어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기도木戸공동주택에도 목제 출입문 기도를 두었다

다라다라 축제
9월 11일부터 21일까지 에도 시바다이진구 신사에서 십일일 동안 열리는 축제. 기간이 길어서 다라다라[=따분하게 늘어지는] 축제라 불렸는데, 인기 있는 신사여서 참배객이 많아 문전성시를 이루었기 때문에 기간이 길었다. 축제 동안 신사에서는 나쁜 기운을 물리쳐 준다는 생강을 팔았다. 본래 신사 주변은 유명한 생강 산지였다

핫피
직공, 하인, 소방수 등이 걸치는 겉옷으로, 옷고름이 없고 소매통이 넓어 일하기에 편하다

빗물받이통
빗물을 받아 둔 나무통으로, 마치마다 소방용으로 일정 개수를 길가에 비치하는 것이 의무였다

"너 같은 놈은 많아. 소방수가 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 놈들이라면 너 말고도 많다. 그렇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야. 너무 연연하지마라."

‘고양이 두건’
일반 두건보다 머리를 더 많이 가리고 눈만 보이게 한 두건으로, 속에 석면을 넣어 불에 타는 것을 막았다

다루마
오뚝이처럼 생긴 전통 인형을 가리킨다. 구 년 동안 좌선을 한 달마 대사의 모습을 본떴다고 한다

용토수
펌프식으로 물을 뿜어내는 도구로, 1764년에 막부가 각 마치에 나눠 주었다. 물줄기가 가늘고 자주 끊겨서 큰 도움은 되지 못했다

‘분지, 도망치지 마. 한 번 도망치면 평생 도망치며 살게 돼. 나처럼.’

이요조메
나뭇결처럼 보이는 줄무늬 염색 직물

로코차
일본 전통 염료색 명칭으로, 갈색에 가까운 색이다

히지리멘
오글쪼글한 심홍색 직물

유젠 무늬
산수, 꽃 등을 화려한 색채로 나타낸 문양

나가주반
기모노 속에 입는 긴 옷

미즈차야
신사나 사찰의 경내나 인파가 많은 길가에 위치한, 차를 마시며 쉬는 다방 같은 곳

하시리소바
완전히 익지 않은 메밀을 수확해서 만든 국수

피안彼岸
각각 춘분과 추분의 전후 삼 일간을 합한 칠 일간. 이때 죽은 자에게 공물을 바치는 풍습이 있다

지금은 그렇지 않겠지만 삼십 년 전 후유키초 뒷골목 공동주택에서는 외출할 때나 잠잘 때나 문단속 따윈 하지 않았거든. 없어지면 안 되는 물건이란 것을 아무도 갖고 있지 않았으니까.

대흑천 님大黑天
일본의 칠복신 중 하나로 재물운 등을 관장한다

오이세 님
이세 신궁의 별칭

에도 시대 건축물은 기본적으로 목조였으나 상가의 창고는 화재와 파괴를 막기 위해 두툼한 흙벽에 기와 지붕을 얹었고 창문을 매우 작게 냈다. 창고는 대개 운하에 면했으므로 습기와 수해에 대비해 흙벽을 회반죽으로 마감했다.

인신매매상의 배가 난바다에서 노를 저어 가네

어차피 팔릴 몸, 뱃사공님, 멀미 나지 않게 얌전히 저어 주시오

16세기 초의 『한음집(閑吟集)』에 수록된 요곡. 당시 인신매매는 법으로 금지되었으나 공공연하게 이루어졌다

"하치베에 씨가 그러더구나. 어느 가게 창고의 쇠고리에나 점원의 신이 하나 매달려 있다고. 그러니 힘들어도 꾹 참고 일을 계속해 나가다 보면 반드시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신인데도 그렇게 목을 매고 있는 까닭은 점원의 괴로움을 직접 겪어 보기 위해서고, 창고에 있는 까닭은 밑바닥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을 위한 신이니까 창고 말고는 있을 자리가 없어서일 거라고."

‘결국은 훈계였네…….’

목맨 신? 점원의 신?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어.

시치고산
여자아이는 세 살·일곱 살 때, 남자아이는 세 살·다섯 살 때 성장을 축하하는 행사

쓰노다루
축하용으로 건네는 붉은색 나무 술통

끈 포렴
끈으로 만든 포렴은 흔히 선술집의 대명사처럼 통했다

불멸仏滅
음양도에서 흉하다고 보는 날

모모히키
통이 좁아 작업에 편리한 바지

체포된 범인의 범행 행적을 조사하기 위해 범인이 들른 가게의 주인 등을 비롯한 관계자들은 참고인으로서 출두하라는 명을 받는다. 참고인이 부교쇼에 출두할 때는 자기 구역의 책임자와 동행하고 시간도 꼬박 하루를 할애해야 했으므로 경제적 부담과 시간 낭비가 막심했다. 그래서 오캇피키에게 합의한 금액을 건네고 조사를 면제받는 관행이 있었다

구기즈케
잎과 줄기를 제거하지 않은 무 등을 소금에 절인 것

막부 공인 달력이 존재했지만 유명 사찰 등도 저마다 달력을 발행했고 신도들은 일종의 길상물로서 달력을 구입했다. 종파에 따라 날짜별 길흉 해석과 행사 등이 기록되어 있었으므로 달력 내용은 서로 달랐다

신무월神無月
일본에서 음력 시월을 뜻하는 별칭.

이즈모는 현재 시마네 현의 일부. 매년 음력 시월에 일본의 팔백만 신이 인간의 혼인과 운명을 결정짓는 회의를 열기 위해 이즈모 신사에 모이기 때문에 일본 전역에서 신들이 자취를 감춘다는 속설이 있다. 따라서 이즈모에서는 시월을 ‘신이 있는 달(神在月)’이라고 표현한다.

팥에는 액운과 망령을 쫓는 주술적 힘이 있다고 믿었다.

"그놈도 나이를 먹을 테니까요."

오캇피키의 말에 주인은 눈길을 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달력은 인정사정 안 봐주거든요, 오야붕."

"이런, 자네가 이렇게 심각한데 웃어서 미안하네. 하지만 이렇게 맞선 자리에 나온 아가씨처럼 고개만 숙이고 있으면 얘기가 되질 않잖아. 대체 무슨 일인데?"

와비·사비
와비는 투박하고 검소한 정서, 사비는 한적하고 쓸쓸한 정서를 말하며 일본 문화의 전통적인 미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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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초 홍명희 임꺽정
내인생 최고?의 소설
(두번째는 송기숙의 녹두장군 전12권
세번째는...)
하지만 미완이 너무 아쉬운
임꺽정은 두번 읽었다.
20대에 1995년 출간한 3판으로 출간즉시 친구놈이 산 책을 빌려 읽었고
30대에 2008년 출간한 4판2쇄를 사서 읽었다.
이제 50대에 눈은 침침하지만 이북으로 읽어볼까?

홍명희
출생 1888. 5. 23. 충청북도 괴산
사망 1968. 3. 5. 북한
가족 손자 홍석형, 손자 홍석중
데뷔 1928년 조선일보 ‘임꺽정‘ 연재
학력사항. 도쿄대성중학교
경력사항
1967 북한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1958 북한 IOC 위원
1948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북한 내각 부수상
1927 신간회 부회장
벽초, 춘원 육당 조선 3대 천재

벽초는 괴산사람으로 임꺽정과 더불어 괴산의 전설이 되었다(소설에서 임꺽정은 양주 대적, 즉 양주사람이나 지금은 괴산군에서 괴산군민화 했다.)
괴산의 전설은 또 한명있다-나에게
바로 전설의 한화 야구선수 송진우다.

송진우는 괴산태생으로 한국야구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다. 청주 세광고 시절, 전 빙그레 이글스 감독을 했던 동국대 김인식 감독이 송진우 영입을 위해 괴산장에 납신다. 송진우 아범님을 설득하여 동국대에 입단시키고, 송진우 210승 최다승, 3003이닝 최다이닝 등 야구사에 금자탑을 쌓는다.(https://naver.me/FS5nFXVh 나무위키)

괴산군은 불세출의 인물 홍명희 선생을 활용하여 ˝임꺽정로˝라는 도로명을 지어내고 청석골 화적패들이 떼로 모여 밥을 지어 몇일을 먹어도 남을 만큼의 많은 밥을 지을수 있는 커다란 가마솥을 만들고 청석골 형님들이 다 사라지고 없는 지금 이 솥을 어떻게 해야할지 골머리를 썩고 있다한다
(충청북도 괴산군이 군(君) 예산과 주민성금 5억 원을 넘게 들여 2005년 7월에 완성했다. 둘레 17.85m, 높이 2.2m, 지름 5.88m, 무게 43.5t의 초대형 가마솥으로, 괴산읍 동부리 (東部里) 청결고추유통센터에 있다. 솥뚜껑에는 승천하는 용, 거북이, 무궁화 등이 양각되어 있다. 군민 4만 명의 밥을 한번에 지을 수 있는 솥이라고 하지만 실행하지는 못했고, 찰옥수수 1만 개를 찌는 데에 그쳤다. ‘세계 최대 가마솥’으로 기네스북 등재를 신청했으나 호주의 질그릇이 더 크다 하여 기네스북 등재 추진을 포기했다.-두산백과)

임꺽정은 이교리(이장곤)의 귀양살이로 시작한다.

홍명희의 임꺽정은 4판을 찍어내면서 박재동 화백의 맛깔나는 그림을 추가하여 소설을 읽는 재미를 한층 더해준다. 그리고 이 책은 오날날 잘 쓰지 않고 대중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어휘가 많다. 그래서 4판부터는 오른쪽, 왼쪽페이지 여백에 단어 해설을 추가하여 국어사전을 찾는 수고를 덜게하였다. 사계절출판사 편집진에 감사드린다.

청석골 7두령
임꺽정 38세 양주백정, 칼과 힘 청석골 두령,
이봉학 38세 현감, 별장 출신 뛰어난 활솜씨,
박유복 37세 유복자 댓가지 창의 대가,
배돌석 37세 투석부대 대정 출신 돌팔매질, 황천왕동 34세 백두산 출신, 축지법의 대가,
곽오주 27세 머슴출신 쇠도리깨질 곽쥐온다,
길막봉 21세 소금장수 출신, 힘이 장사다.

그외 모사꾼 서림, 청석골 원주인 오개도치

이들이 펼치는 길위의 이야기

봉단편1, 피장편1, 양반편1, 의형제편3, 화적편4, 총 10권

이장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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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가면 오늘 저녁은 간만에 내가 뭐든 만들어 볼게요."

로주
쇼군 밑에서 정사를 감독한 직책

마치부교
시중의 행정과 사법 작용을 맡은 직책

조닌町人
도시에 살며 활동하는 상인과 직인 계층을 가리킨다. 무사와 농민과 구별된다

고케닌
만 석 이하를 받은 쇼군 직속 무사로, 쇼군을 직접 알현할 수는 없었다

우치카케
신분 높은 여성이 겉옷으로 걸치는 옷이었으나 에도 시대 후기부터 혼례복으로도 입었다

그런데 사키치에게 그 ‘만에 하나’가 일어났던 것이다.

하오리
짧은 겉옷

듣기로는 두어 냥짜리 일감이었다는데, 처벌이 혹독해서 한 달간 쇠고랑을 찬 데다(양손에 무쇠 수정을 채워 자택에 근신케 하는 형벌) 작업에 쓰는 연장을 전부 압수당했다고 한다.

가령 수용소(에도 앞바다에 있던 이시카와지마 섬에 설치된 수용소로, 수감자들은 이곳에서 노동을 했다)에 갇혀서 오래도록 오미요를 보살필 수 없게 된다면

"나는 요즘 실시되는 정책에 반대하네." 노인은 천천히 말했다. "사치를 없애려는 정책이라지만 공연히 사람들만 괴롭힐 뿐이지. 무사들은 소속 번藩의 쪼들리는 재정 때문에 궁핍하게 살고 있어서 상인이나 자네처럼 일한 만큼 소득을 거두며 살아가는 자들을 아주 미워하고 있네. 무사는 사흘을 굶어도 이쑤시개를 물고 다니지만, 무사도 배가 고프면 서럽고 옷이 얇으면 추위를 느끼지. 안 그래?"

번藩
제후인 다이묘가 다스리는 영지 혹은 그 통치 기구

그러니 나는 절대로 단속하러 다니는 자가 아니다, 그 점은 안심하라고 노인은 사키치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부교쇼
부교가 공무를 보는 곳

"작업이 끝나면 오지 이나리 신사에 참배하러 가자"라고 사키치는 약속했다. "하쓰우마 축제는 끝나 버렸지만 일곱 폭포를 보러 가자고. 힘들게 걸을 필요 없어. 가마를 타고 가자. 신사에 도착하면 참배하는 동안 내가 업어 주면 되니까. 그곳에서 맛난 것도 실컷 사 먹고 살이 쪄서 돌아오는 거야."

오미요의 말은 사실이었다. 노인은 화를 내지 않았다. 훌륭한 물건을 만들었다고 지극한 말로 사키치의 실력을 칭송할 뿐이었다.

"자기 이름에 자부심을 갖는 것은 훌륭한 거야."

사키치의 고양된 마음에 덩달아 흔들렸는지 노인도 아직 성한 한쪽 눈알을 반짝이며 말했다.

"어떤 것에도 굴하지 않는 줏대라는 것이 누구에게나 있는 법이지. 이런 세상에 당당하게 자기 이름을 남기겠다니, 비록 조닌이지만 우러러볼 만한 태도 아닌가."

"이런 어리석은 금지령은 언젠가 사라져 버릴 테니까요." 사키치도 말했다.

"제 작품은 남을 겁니다."

요미우리
거리를 돌아다니며 사건·사고 소식을 인쇄한 종이인 가와라방을 선전하고 판매한 이

에도 시대에는 정해진 규칙 하에 복수할 수 있는 제도가 있었다. 그런 규칙 가운데 하나는 관청에 신고해서 복수 허가증을 받는 것이었다. 조력자가 동행하여 돕는 것도 인정되었다

이봐, 오미요. 사키치는 마음속으로 말을 건넸다. 내가 붙잡혀 있는 동안 당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 복수는 대체 누가 해 주는 거지?

도망칠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렇게 작은 가게라서 매상이라야 저희 내외가 그럭저럭 먹고살 만큼밖에 안 됩니다요. 아주 힘드네요. 다다미와 마누라는 새것일수록 좋다던데 저한테는 꿈같은 얘기지요

오콘(お紺)은 감색이라는 뜻

오시마의 진흙 염색
가고시마 현의 오시마에는 다정큼나무 껍질을 삶은 즙에 비단을 담근 뒤 철분이 많은 진흙을 묻히는 독특한 염색법이 있다

콘, 콘, 하고 불러서 그런지(‘콘콘’은 여우 울음소리의 의성어로 쓰인다) 여우처럼 눈꼬리가 올라갔어요. 돈 계산을 좋아해서 그런지 이름과 얼굴이 장부 숫자 맞듯이 딱딱 맞는 여자랍니다. 나중에 얼굴 좀 보세요. 다만 웃으시면 곤란합니다요.

고급차일수록 뜨겁지 않은 온수로 천천히 내려서 마시고 저렴한 차일수록 뜨거운 물로 내린다

기야만
다이아몬드를 뜻하는 네덜란드어 ‘디아망트(diamant)’에서 유래한 말. 유리를 뜻한다

사쓰마기리코
에도 시대 후기에 사쓰마 번에서 외국 기술을 참고하여 만든 유리 공예품

기타마에부네
혼슈 서쪽 연안 지방들과 오사카 간의 항로를 오간 대형 화물선으로, 운송만이 아니라 상품 무역도 행하여 막대한 이익을 올렸다

남만동남아시아, 혹은 그곳에 식민지를 둔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아, 더 솔직히 말하자면 부부가 그냥 쿨쿨 잘 때는 얌전히 있었답니다. 그런데 몸을 섞으려고 하면 갑자기 확 켜지는 거예요. 게다가 평범한 등불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밝게, 대낮이 된 것처럼 밝게 켜진다고 하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요.

알고 보니 이 사방등은 어느 하타모토만 석 이하를 받은 무사로, 쇼군을 알현할 수 있었다의 측실―쉬운 말로 첩이지요―이 특별히 만들게 해서 사용하던 것이라고 합니다.

어디에 가겠다고 정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바람을 쐬고 싶었다. 다행히 아가씨 혼자 돌아다녀도 오노부라면 위험할 일이 없었다.

그 덩치 큰 여자를.

그 박색을.

애교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여자를.

그 사나운 여자를.

"기야의 장남이 무슨 원령에라도 씌었나?"

이 말은 고정 거래처로서 기야에 드나드는 쌀집 주인이 한 말이다.

기묘한 의문,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는 남아 있지만, 기야의 새댁으로 살아가는 오노부의 생활은 걱정했던 것보다 한결 편하고 보람찼다. 본래 열심히 일하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 아니어서 더욱 수월했다.

단자쿠
시 따위를 적어 넣는 가늘고 긴 종이로, 칠석 때 여기에 소원을 적어 조릿대에 매다는 풍습이 있다

물거울
물을 채워 거울로 삼는 나무통. 칠석 밤에 내놓은 물거울에 견우성과 직녀성이 비칠 때 나무통을 살짝 흔들면 두 별이 가까워지는 것처럼 보인다. 이때 견우와 직녀가 상봉하기를 기원하면서 소원을 빌기도 한다

결국은 오쿠메도 미모만 밝히는 세상에서 밀려난 사람이었다. 오쿠메는 시치베에에게 외면당하자 깊은 상처를 입고 한동안 슬피 울면서 살았다고 한다.

만약 그렇게 되면 말려 줄 사람 하나 없다. 격이 맞지 않는 만남은 결별의 씨앗. 집안의 격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쓸데없는 질투나 분쟁의 씨앗이 되는 외모의 격도 포함되는 거라고 오노부는 생각했다.

히나 인형
3월 3일에 행하는 여자아이의 건강을 기원하는 행사 때 장식하는 인형

그리고 오노부는 뜰에 석등을 세우고 그 밑에 깨끗하게 닦은 청동 거울을 묻어서 오쿠메의 저주를 풀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느냐고?

실은 별일 없었다. 오노부는 이혼당하지 않았고 지금도 시게타로와 금실 좋게 살고 있다. 오스즈와 오린은 명랑함을 되찾았고, 오스즈는 곧 어느 하타모토의 간절한 청혼을 받고 시집을 가기로 정해졌다. 두 시누이 모두 오노부와 늘 사이가 돈독하다. 여전히 정답다.

거울 닦는 사람을 불러 아름답게 닦아낸 청동 거울을 들여다보며 오노부는 잠깐 이런 생각을 한다. 자, 여기를 봐. 나, 점점 예뻐지는 것 같지 않아?

누타아에
오징어, 대합, 참치 등의 신선한 해산물과 파, 미역, 땅두릅 따위를 초된장으로 버무린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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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미가타上方
교토·오사카와 그 인근 지역을 말한다

구다리자케下り酒
‘위에서 내려온 술’이란 뜻으로, 가미가타에서 주조되어 에도로 운송된 술

이타미 땅
오사카 인근의 효고 현에 위치

기바(木場목재 창고가 몰려 있던 지역)의 짐꾼이 폭이 한 뼘밖에 안 되는 각재 위를 겅중겅중 뛰어다니며 목재를 나르는 것처럼 절묘한 기술과 밝은 눈, 주변 동향을 정확히 가늠하는 민감한 저울 같은 감각이 필요하다.

가미가타의 술은 배를 통해 에도에 수송되었는데, 그해 처음 주조된 술을 누가 먼저 에도에 수송하느냐에 선원의 명예가 달려 선원 간의 경쟁이 치열했고 이름난 볼거리였다.

후지미자케
‘후지산을 본 술’이란 뜻. 가미가타를 출발한 ‘구다리자케’ 수송선이 에도에 도착하기 전 후지산을 보며 항해했다는 데서 붙은 이름으로, ‘구다리자케’를 멋스럽게 이르는 말

"물론 나도 끔찍한 사태가 벌어지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는 하는데……."

도베에가 개운치 않게 말끝을 흐리며 깡마른 팔로 팔짱을 꼈다.

"실은 어제 불난 자리를 정리하다가 이상한 걸 찾았는데."

도베에는 따라오라고 손짓한 뒤 우물가 앞쪽에 있는, 장작을 비롯한 땔감을 쌓아 둔 뒤뜰로 갔다. 장작 더미 옆에 몸을 웅크리더니 품에서 종이에 싼 가늘고 긴 물건을 꺼냈다.

금줄이었다.

"마님이 불길하니까 신사에 가져가 소각을 부탁하라고 하셨지만."

빔지
종이를 꼬아 만든 끈

오토요는 도베에를 이 세상에 주판으로 정리하지 못할 일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보고 있었다. 그래서 뜻밖이었다. 어머, 지배인님에게 이런 면도 있네. 귀신을 무서워하는 꼬마처럼 이야기하다니.

도시오토코
가령 소띠 남자가 소의 해를 맞이한 경우를 말한다. 그런 남자는 신의 가호를 더 잘 받는다고 믿어서, 새해 행사나 공양물 구입, 새해 정한수 길어 오는 일 따위를 맡았다

"그래서 어제 오후에 사 왔지. 그러고는 바로 장식했어. 그믐날에 공양할 수는 없으니까"
새해에 각 가정을 방문하는 신령은 섣달그믐 새벽에 찾아온다고 해서 늦어도 섣달 28일까지는 공양물을 바쳤다.

도비
토목건축 공사, 상하수도 공사 등에 종사하는 기술자

"가깝게는 스나무라 근방에서도 만들고, 멀게는 사와라 쪽에서도 떼 옵니다. 겨울에는 어느 에도 근교 농촌에서나 다 이런 부업을 하니까."

둘은 이타미야에 돌아온 뒤 이번에는 가게 점원들의 이야기를 일일이 들어 보기로 했다. 함께 금줄을 친 자들, 금줄 칠 때 그 자리에 없었던 자들, 금줄 치기 전에 금줄이나 공양물이 방에 놓여 있는 모습을 본 자들.

기도반木戸番
서민들이 사는 구역의 단위인 마치(町) 입구마다 기도라는 나무 문이 설치되었고 밤 열시경에는 기도를 닫아 야간 통행을 차단했다. 기도반은 기도 주변의 조그만 오두막에 기거하면서 기도와 통행을 관리했다

"더 자세히 말하면, 간밤의 화재 소동과 신단에 장식한 금줄 속에 숨겨져 있던 머리카락―그거 때문이니?"

오카쓰는 그 말을 듣자 봇물이 터진 듯 더욱 심하게 울기 시작했다. 아, 맞구나, 하고 생각하며 오토요와 도베에는 얼굴을 마주 보았다.

미즈노미
경작지가 없으므로 조세 의무가 없고 촌락 내 아무런 발언권도 없는 빈농 집

그런 의문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오카쓰는 시신을 태우기 전에 아버지 몰래 어머니의 머리카락을 잘라 빔지에 숨겨서 가지고 다녔다. 목깃 속에 넣어 꿰매어 두었으므로 어머니의 머리카락은 오카쓰에게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금줄을 보았을 때, 생각했어요. 이 속에 머리카락을 숨겨 두면 신단에 장식되고 여러 사람에게 절도 받을 거라고. 등불도 밝혀 줄 것이고 비쭈기나무(예로부터 신성한 나무로 알려져 신사나 신단에 장식했다)도 장식해 줄 것이고 떡도 공양받을 수 있고."

"그건 말이야, 네 어머니란다. 어머니의 혼이 그 머리카락을 태운 거야."

"어머니는 뭐든 조금이라도 남으면 그것 때문에 어여쁜 너에게 병이 옮을지 모른다고 걱정해서 시신을 남김없이 불에 태워 달라고 하셨다지? 하지만 너는 머리카락을 잘라서 네가 입은 옷 속에 숨겼어. 어머니는 그걸 정말 기뻐하셨을까? 생각해 봐, 오카쓰."

"어머니는 네 옷 목깃 속에서 얼마나 애를 태우셨을까. 어서 태워야 할 텐데, 하시면서. 하지만 딸을 다치게 하실 수는 없었겠지. 옷 목깃 속에 있는 동안은 불에 타실 수 없었겠지."

"그러니까 오카쓰, 그 머리카락은 역시 불에 태워 드리자꾸나. 내일 뒤뜰에서 지배인님이랑 나랑 너랑 함께 사람들 몰래 태우자. 염불을 외면서 태워 드리자. 염불은 내가 가르쳐 줄 테니까."

방을 나가려고 할 때 도베에가 혼자 뭐라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하여간 생각은 깊다니까……"라고 말한 것처럼 들렸지만 오토요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렇게 마무리를 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오토요의 코에 그을린 듯한 냄새가 들러붙어 가시질 않았다. 머리카락에서도 타는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어도 그 냄새는 없어지지 않았다.

마치 연기가 따라다니는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다른 이에게 물어보면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다고 했다.

하코젠그릇을 담아 두는 상자로, 일인용 밥상으로 쓰기도 한다

"오카쓰는 내가 잘 보살필 테니까요. 맡겨 주세요. 내 숨이 붙어 있는 동안은 그 아이를 확실히 보살펴 줄 겁니다."

내가 이타미야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과 같은 것일까. 나는 여기에서 삶의 보람을 찾으며 살아와서 만약 이타미야를 떠난다면 너무나 괴로울 것이다. 그것과 같은 것일까.

쉴 새 없이 일만 하고 한눈팔지 않고 살아오느라 결국 자식을 가질 기회도 없었던 오토요는 생각했다. 오카쓰 어머니 심정을 내가 알 수 있을까.

이나리 신사의 하쓰우마 축제
711년 음력 이월 첫 오일(午日)에 농업의 신이 이나리 산에 강림했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축일. 일본 전역의 수많은 이나리 신사에서 풍작, 사업 번성 등을 비는 의식이 행해진다.

고우가이머리카락을 모아 올리는 데 쓰는 비녀 같은 막대기. 머리에 꽂아 장식하기도 한다

한번은 병을 잘 고친다고 소문난 의원을 찾아 네즈까지 오미요를 데려간 적이 있다. 그 치료비를 마련하느라 당시 사키치는 오미요 모르게 하루 걸러 밥을 굶었다. 그 탓에 의원을 찾아갔을 때는 둘 다 병자로 비치고 말았다.

사키치는 낙담했다. 얼마나 평판이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밥을 굶어서 수척한 것인지 병 때문에 밥을 못 먹어서 수척해진 것인지도 분간하지 못하는 의원이라면 모처럼 고생해서 아내를 데려온 보람이 없지 않은가…….

난방의
나가사키 데지마 섬에 배치된 네덜란드 의사가 전파한 서양 의학으로 진료했던 의원

한텐
기장이 짧은 겉옷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많이 입었다

돈이 간절했다. 돈만 있으면 이 에도 땅에서는 어떤 생활도 가능하다. 공동주택일지라도 볕이 제일 잘 드는 쪽방으로 옮길 수 있다. 오미요에게 하루 두 번 흰쌀밥이나 부드러운 죽을 먹일 수도 있다. 계란이나 닭고기, 이제 다가올 철에는 삼치도 좋다. 참돔 회를 사 주면 어떨까. 제철 요리나 맏물은 행운을 가져다줄 뿐 아니라 정말로 영양분이 좋아서 몸에 좋다고 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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