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상대를 죽이는 일이라면 그도 이미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튼튼하고 잘 드는 칼을 산 것이다. 그러나 입을 열어 "죽이자!"고 말하는 것은 여전히 망설여졌다.

"약을 사용한 일시적 도핑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신체를 개조하는 연구였어. 들은 적 없어?"

"예컨대 스테로이드 아기 연구. 자세히 말하자면 임산부에게 스테로이드를 투여해 태아 자체를 개조한다는 거야."

혈액 도핑은 시합이 있기 20일쯤 전에 선수의 몸에서 1,000cc 정도의 혈액을 빼내 냉동 보관했다가 경기 직전에 적혈구만 다시 주입하는 방법이다. 다량의 산소 섭취가 가능해진 근육은 지구력이 30퍼센트나 향상된다. 스웨덴의 스톡홀름 체육연구소에서 개발한 기술이다.

그러나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무기가 아니라 창가에 늘어선 트로피와 상장들이었다.
이런 걸 원했던 게 아닌데. 스스로에게 말했다. 봐! 이런 것들은 아무 쓸모없는 것들이야, 잡동사니일 뿐이지.

그래, 다음에는 이혼 서류를 가지고……. 거울 속 아내와 자기 자신에게 말했다.

"언제부터였을까. 그래. 그 여자, 타란툴라의 존재를 알았을 때부터였을까. 나를 지키기 위해선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 여자를 죽이고 그 죄를 우리 가운데 누군가에게 덮어씌운다.
그것도 여자가 남은 두 사람을 죽인 후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했지. 결과는 기막히게 내 생각대로 됐어."

"조금 전, 센도의 권총을 어쩌다 주웠다고 했지만 그건 거짓말이야. 사실은 그때부터 너희들 셋을 죽일 생각이었어. 아니, 훨씬 오래전부터 내 과거를 아는 사람은 전부 없애고 싶었어."

"그럼…… 센도도."
"맞아. 갑자기 쏘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한편으로는 머릿속에 계산이 있었던 것 같아. 여기서 죽이는 편이 낫지 않을까."

미안해, 라는 소리가 또 희미하게 들렸다.
너는 미쳤어……. 유스케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어쩔 수 없어. 모든 게 약 때문이야.

"근접 거리에 적이 있는데 쏘지 않았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즉 거기에 있던 사람은 히우라에게 적이 아니라 동료가 아니었을까요?"

배신과 복수로 점철된 이 피 튀기는 혈전을 숨죽여 따라가다 보면 인간성과 모성애마저 도구화하는 비정함과, 성공 지상주의에 눈멀어 뒤엉킨 욕망의 실타래를 끝내 풀지 못하는 개인들의 일그러진 초상을 목격하게 된다.

잘 만들어진 이야기는 독자들의 호기심을 팽팽하게 가로챌 뿐 아니라 사회와 인간에 대한 묵직한 성찰까지 선사한다는 것을, 히가시노 게이고는 잊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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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란툴라. 밑에서 보니 훨씬 더 거대하게 보였다.
이제 끝이다……. 다쿠마는 속으로 읊조렸다.
다쿠마가 조금 전까지 들고 있던 총이 여자의 손에서 불을 뿜었다.

경시(警視, 한국 경찰의 경무관, 경찰서장이나 본부 과장 직책을 맡는다)

경부보(警部補, 순사부장 보다 두 직급 위로 한국 경찰의 경위에 해당, 경찰서 계장 직책을 맡는다)

그녀는 지하철 입구가 나오자 자전거를 밖에다 두고 내려갔다.
그 시간에는 이미 지하철 운행이 끊어졌는지 지하도에는 걸어 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고 사람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통로 구석에 신문지를 깔고 웅크리고 자는 남자가 곳곳에 있었다.

몇 초 만에 지하층에 도착했고 문이 열렸다. 쇼코는 막 한 발을 내디뎠다. 그때 갑자기 등줄기에 서늘한 한기가 느껴졌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발을 뺐다.

시토는 수긍했다. 도핑이라는 말은 알고 있다. 선수가 경기 성적을 높이기 위해 금지된 약물 등을 부정하게 사용하는 것이다. 서울올림픽에서 벤 존슨이 금메달을 박탈당한 일이 가장 유명한데 그와 비슷한 일이 많았고 지금도 위반 선수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금지 목록에 실리지 않은 약물을 사용하면 체크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금지 약물을 검출하기 어려운 약도 있습니다.
약물이 개발되는 속도를 검사 시스템이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특히 당시의 소변검사는 허점이 많았습니다."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본인에게 들은 바로는 그도 원래는 가업인 병원을 계속 이어받으려고 의학도의 길에 들어섰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러는 과정에서 치료가 아니라 인체 개조 쪽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그가 강한 관심을 가진 것이 나치가 행한 것으로 알려진 다양한 인체 실험입니다. 그는 그것에 관한 자료 입수와 관계자 취재를 위해 유럽에 갔습니다."

"벨메켄?"
시토는 가나이와 동시에 말했다.
"불가리아의 오지입니다. 그곳에 스포츠과학을 연구하는 구동독과 불가리아의 공동연구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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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 손가락이 바를 잡았다.

열 번째를 넘기면서부터 그 리듬이 차츰 흐트러졌다. 하지만 여자는 끝내 같은 동작을 열두 번 반복했다.
"좋았어!"

"어둠 속 생활도 이제 곧 끝이야. 너는 빛으로 나간다. 그렇게 세상을 바꾼다. 장애물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아. 내가 어떻게든 해볼 거다. 그것만이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네 애정에 답하는 거니까."

"제군들, 도둑놀이는 끝났네."

이 방에 갇혀 있는 것이 지금까지 그녀의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기다리면 언젠가는 문이 열린다. 그렇게 믿었다. 그가 죽은 지금도 그 점에는 변함이 없었다.

야마나시 현경은 돌연 부산해졌다. 부검 결과로 화재사건이 갑자기 살인사건으로 다뤄지면서 관할 경찰서에 수사본부가 설치되었다.

남자의 이름은 센도 고레노리였다. 나이는 56세, 본적지는 나가노 현 마쓰모토 시.

경부(警部, 한국 경찰의 경감, 경찰서 분서장이나 과장·과장대리직·본부 계장 직책을 맡는다)

순사부장(巡査部長, 한국 경찰의 경장, 경찰서 반장 직책을 맡는다)

순사(巡査, 한국 경찰의 순경)

"여기에 누군가가 갇혀 있었다는 건가요?"

"정말 그래. 하지만 저 동네 사람들은 재미있지만은 않을걸. 권총을 가진 범인이 어슬렁거린다고 생각하면 편안히 잠들 수 없을 거야.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저 근처는 얼씬도 하지 말아야겠어."

"그건 아마…… 센도의 비밀병기일 거야."
"비밀병기? 그게 뭔데?"

여자는 경찰관을 죽이고 ‘우리’를 빠져나온 뒤 조금 떨어진 빈 별장에 숨어들었다. 옷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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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유럽 각국이 산업화로 엄청난 경제 성장을  이루었음에도 신대륙 아메리카로 떠나는 사람이 점점  더 많아진 까닭은?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머나먼 나라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돈을 벌기위해 떠난 엄마. 안타깝게도 일 년도 지나지않아 엄마에게서 소식이 끊어졌다. 열세 살소년 마르코는 반드시 자기 힘으로 엄마를 찾겠다며 삼만리 장대한 여행길에 나섰다.

<엄마 찾아 삼만리>의 원작은 이탈리아 작가 에드몬도 데 아미치스(Edmondo De Amicis)의  동화 『쿠오레 (Cuore)』에 실린 단편 ‘아펜니노산맥에서 안데스산맥까지‘다. 이 책은 1886년에  출간되었는데, 당시는 바야흐로 ‘이민의 시대‘였다.

같은 시기 런던 - 콜카타 간 황마 가격 차이는 35퍼센트에서 4퍼센트로 줄었다. 이렇게 가격 차이가 줄어든 원인은 증기선으로 대량 운송이 가능해지고 운송 시간 또한 단축되면서 운송 비용이 감소했기 때문이었다.

상품, 노동과 더불어 국경과 바다를 넘어 활발하게  이동한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자본이다. 영국으로 대표되는 유럽의 몇몇 국가와 미국이라는 소위 ‘잘나가는 국가‘는 해외, 특히 가난한 나라에 거액을 투자했다. 같은 액수를 투자했을 때 가난한 나라에서큰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스페인의 지배를 받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줄줄이 독립하게 된 요인 중 하나는 주요 통상 상대가 영국으로 바뀌면서 종주국과의 경제적 유대가 약해졌기 때문이라고 추정할 수있다. 여기에서도 역사를 바꾼 건 해운, 즉증기선의 힘이었다.

‘헤게모니 (Hegemonie)‘라는 말을 흔히 들어봤을 것이다. 헤게모니는 주로 ‘패권‘으로 번역되는데 ‘압도적인 지위와 힘으로 주변을지배하는 권력‘을 의미한다.

경제사의 관점에서는 그 답을 ‘수수료‘라고본다.

사람보다 물건보다 빠르게

왜 전신을 영국 헤게모니의 중심축이라고하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세계 무역 결제가 전신을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19세기 말에 들어서면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 사이에 불과 1.8일이면 정보를 전달할 수있게 되었다. 즉 정보가 인간과 상품의 아동(물류)보다 훨씬 빨리 전달되게 된 셈이다.

세계 전신망의 중심에 런던이 있었다. 이는 국제 거래  결제가 대부분 런던에서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결국 결제 시스템을 장악한 자가 상업의 규칙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세기 말에 금본위제가 국제적 표준으로 확립되었는데, 그 시작은 1816년 단행한 영국의 화폐법이었다. 영국의 기준을 세계가 받아들인  것이다. 바로 이것이 헤게모니 국가가 가진 막강한 권력이다.

일대일로 정책은 단순히 말하면 중국이 중,
심이 되어 유라시아대륙을 통합하려는 시도다.

재미있게도 이 정책을 세계사 속에 대입해보면 15세기 초 명나라 환관 정화가 갔던 대원정 경로를 거의 그대로 따르고 있다<지도23>. 또 17세기 아르메니아 상인이 구축한상업 네트워크와도 겹친다<지도 24>.

정화와 아르메니아 상인이 오간 바닷길이나 내륙을 연결한 실크로드는 기본적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상인들이 자발적으로 형성한길로,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개척한 길이 아니다.

일대일로 정책은 군사적 목표를 설정하지않았다. 일대일로 정책은 크게 에너지, 안전, 시장이라는 세 가지  항목으로 분류된다. 다양한 운송로와 항만 시설이 무역을 촉진하고 안전을 개선해 시장을 확장하려는 시도다.

‘자국 우선주의‘의 한계에 부닥친 중국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직접 일하지 않아도 돈이 저절로  들어오는 구조를 만든 사람이 부자가 될 수 있다.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하면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그것이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본주의 속성을 국가에 대입한 것이 바로 헤게모니 국가다.

중국의 목표는 모든 것을 중국이 통제하는중화 시스템으로 보인다. 이 시스템은 중국인의 사고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어 쉽게바꿀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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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읽는 세계사 - 세계사 중심을 관통하는 13가지 질문과 통찰력 있는 답변
다마키 도시아키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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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떠오른 사람은 전두광이었다.
3ㅇ교육대

영국 해군은 ‘강제 징집(press gang)’이라는 상당히 험한 징집 제도를 시행했다. 전쟁이 터지면 승조원을 강제로 징집한 것인데, 쉽게 말해 길에 지나다니는 장정을 붙잡아 배에 태우는 식으로 군인을 보충한 것이다. 이렇게 끌려온 사람 중에는 부랑자가 많이 포함되어 있어 전쟁이 나면 실업자가 줄고 범죄율이 떨어진다는 보고가 있을 정도였다.


한 권으로 읽는 세계사 : 세계사 중심을 관통하는 13가지 질문과 통찰력 있는 답변
| 다마키 도시아키 저/서수지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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