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집트 왕조는 기원전 3,000년 무렵 시작되었으며 흔히 고왕국(2686~2185 BC), 중왕국(2040~c. 18세기 BC), 신왕국(1570~c. 1070 BC)으로 구분된다.

이집트(신왕국)가 힘을 잃고 종이호랑이 신세로 전락하면서 오리엔트 세계에 일대 혼란이 벌어졌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오리엔트 전체를 통일한 것이 바로 아시리아제국이다.

아시리아는 어떻게 당대 최첨단 무기인 철을 손에 넣었을까? 그들은 히타이트의 철기 제조 기술을 계승한 동시에 철광석 산지 아르메니아를 장악해 차츰 힘을 키워나갔다.

아시리아는 기원전 8세기 말 시리아, 페니키아, 바빌론을 차례로 병합하고 이스라엘 왕국을 멸망시켰다. 그리고 마침내 이집트를 정복함으로써 역사상 최초로 메소포타미아에서 이집트에 이르는 광대한 오리엔트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다. 이는 기원전 663년의 일이다.

아케메네스왕조 페르시아의 번영을 가능케 한 ‘왕의 길’이 역설적으로 훗날 알렉산드로스를 끌어들여 패망을 앞당겼다?

아시리아제국은 신바빌로니아(메소포타미아 남부)와 메디아(이란고원 북부에 세워진 왕국) 연합군의 공격으로 멸망했다. 기원전 612년의 일이다.

신바빌로니아를 무너뜨리고 ‘바빌론 유수 (Babylonian Captivity)’로 사로잡혀 포로가 되었던 유대인을 해방한 사람이 바로 키루스 2세였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오래 살았더라도
그가 전쟁으로 지배한 광대한 영토를
질서정연하게 다스리지 못했을 것으로 보는 근원적 이유

마케도니아가 그리스 세계에 속해 있으면서도 그 핵심에 들지 못하고 변방에 머무른 탓에 무사 안일주의에 빠지지 않고 도전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필리포스 2세에서 알렉산드로스 3세로 이어지는 위대한 영웅 군주의 출현으로 잠재력과 에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인더스 문명과 오리엔트의 상업망에서 시작해 아케메네스왕조 페르시아가 공들여 정비한 교역로를 아우르는 장대한 교통망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기원전 323년의 일이다. 이후 그의 거대한 제국은 프톨레마이오스왕조의 이집트, 셀레우코스왕조의 시리아, 안티고노스왕조의 마케도니아 세 나라로 분열되었다.

광대한 영토를 질서정연하게 다스리는 데 필요한 체제와 지식, 경험 등이 당시 마케도니아로 대표되는 그리스에는 결정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다.

오리엔트에서 중앙아시아에 걸친 정치적 통일은 훨씬 후대인 아바스왕조(750~1258) 시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루어졌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만약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그렇게 일찍 눈을 감지 않았더라면
그의 제국은 어떻게 되었을까?

바이킹은 왜 콜럼버스보다 500년 먼저 아메리카대륙에 발을 디디고도 ‘최초 발견자’로 널리 알려지지 못했을까?

바이킹은 유럽뿐 아니라 비잔틴제국, 이슬람 상인과 활발히 교역했고 신대륙에도 발자국을 남긴 항해자, 전 세계를 누빈 유능한 상인이기도 했다.

"무함마드 없이는 샤를마뉴도 없다!"

바이킹의 대항해를 가능하게 한 배는 ‘롱십’이었다. 가늘고 긴 모양의 이 배는 흘수가 낮다는 특징이 있다. 롱십에는 노가 달려 있었을 뿐 아니라 100명 넘는 승조원이 탈 수 있었으며, 원거리 항해에도 활용할 수 있을 만큼 확실한 견고함을 갖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형제는 서로 바싹 붙어서 교회를 향해 씩씩하게 걸었다. 한 사람은 키가 크고 허약하면서도 신념이 강했고, 다른 한 사람은 작지만강인하고 영민했다.

아무리 고개를 넘고 내를 건너도 조선 땅이고 조선 사람밖에 없는 줄 알았다.
박완서

‘일본이 농촌경제에 기술 발전을 일으켜 중국을 구제할 것이다. 일본이 아시아의 빈곤을 종식하고 번성하게 할 것이다. 일본이 서구 제국주의의 파괴적인 손아귀에서 아시아를 보호할 것이다. 일본의 진정하고 용감무쌍한 동맹국인 독일만이서구의 해악과 싸우고 있다.‘

"백 목사님이 잡혀갔어요." 나이가 제일 많은 여자가 소리쳤다.
"유 목사님이랑 후도요. 그분들을 도와주셔야 해요…………
"뭐라고요?"

"엄마가 모자수 안 꼬집고 가만히 데리고 있으면 맛있는 거 준댔어요. 애들은 안에 못 들어간대요." 노아가 차분히 말했다. "근데 이제배고파요. 여기 진짜 오래오래 있었어요."

조선인들이 스스로를 구할 수 있을까? 결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각자 살 방도를 궁리해야 한다는 것이 조선인들이 마음속에 품은 생각이었다. 가족을 지켜라. 자기 배를 채워라. 정신 바짝 차리고, 지도자들을 믿지 마라. 조선의 민족주의자들이 나라를 되찾지 못한다면, 아이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쳐 출세하게 해라. 적응해라. 지극히간단하지 않은가? 조선 독립을 위해 싸우는 애국자들이나 일본 편에선 재수 없는 조선 놈들이 있는가 하면, 이곳에서나 또 다른 곳에서그저 먹고살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 수많은 동포가 있었다.

하지만 엄마와 큰어머니, 가장 좋아하는 큰아버지한테도 숨기는 큰 비밀은 노아가 더 이상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아무 잘못도 하지않은 온화하고 다정한 아버지가 감옥에 가게 두었다. 아버지가 하나님은 아이들의 기도를 아주 꼼꼼하게 듣는다고 말했는데도, 하나님은 2년 동안 노아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노아가 말할수 없는 가장 큰 비밀이 있었다. 일본인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노아의 꿈은 이카이노를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것이었다.

"내 삶은 하찮았어요." 이삭이 고통과 피곤이 가득한 선자의 눈을읽으려고 노력하며 말했다. 자신을 기다려줘서, 가족을 돌봐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선자에게 알려야 했다. 자신이 식구를 부양하지 못할때 선자가 일을 하고 돈을 벌었다고 생각하니 낯을 들 수 없이 부끄웠다.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부지런한 사람이 돼야 해. 모든 사람에게연민을 가져라. 네 적까지도. 이해하겠니, 노아야? 인간은 불공정할지 몰라도, 주님은 공정하시단다. 너도 알게 될거야. 알게 될 거야."
진이 다 빠진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노아가 이삭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제발 하나님, 제발. 아빠를 낫게 해주세요. 한 번만 더  부탁드릴게요. 제발.‘ 노아가 두눈을 꼭 감았다.

"하지만 우리가 나라를 위해 뭔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외세에 나라가 갈라지고 있는데…………."

이념에 빠진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잊게 돼. 그리고 높은 자리에 있는 지도자들은 그 이념에 지나치게 심취한 사람을 이용하지.

경희가 낙심한 남자를 버리고 떠난다면, 자신이 지극한 애정을 쏟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 아닐 것이었다.

경희 생각을 지울 수 있으리라는 한수의 생각은 틀렸다. 오히려 지금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그녀를 원하고 있었다. 오늘 밤 달콤한 맛을 보고 나니 이제 그 맛을 한없이 한가득 느끼고 싶었다. 그 쾌락에몸을 깊이 담그고 싶었다.

창호는 자위를 하고 나서 안경을 쓴 채로 잠들었다.

"우리 조선인이요. 우리는 서로 다투고 있어요. 하나같이 자기가더 똑똑하다고 생각하죠. 누가 지도자가 되든 자기 권력을 지키려고격렬하게 싸울 거예요." 창호는 한수가 자기한테 한 말을 그대로 따라했다. 특히 인간의 가장 추악한 면을 보는 일이라면 한수가 늘 옳아서였다. 이런 면에서 한수는 항상 정확했다.

꼭 할머니 둘이 말다툼을 하는데 마을사람들이 상대방의 못된 점을할머니들 귀에 대고 계속 속삭이면서 부추기고 있는 것 같아요. 할머니들이 화해하고 싶다면 다른 모든 사람들 말은 무시하고 두 사람이 한때 친구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는데."

김창호는 계속 사랑의 고통을 겪게 될 터였다.

이삭이 천국을 설명하려고 했을 때, 선자가 마음속으로  그린 천국의 모습은 고향이었다. 투명하고 빛나는 아름다움 그자체였다. 고향 땅의 달과 별에대한 기억도 이곳의 차가운 달과 별하고는 사뭇 다른 것 같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침내 하숙인들이 고집을 꺾고 작업복을 빨아달라고 했다. 본인들도 더 이상 참기 힘들 정도로 냄새가 심했다. 복희와 너희 자매와선자는 네 개나 되는 커다란 빨랫감 보따리를 가지고 바닷가 빨래터로 갔다.

사실이었다. 하숙인들은 많이 배운 양반들을 늘 비웃었지만, 이삭은 좋아했다. 선자는 아직 이삭을 남편으로 여기기가 어려웠다.

복희가 동생의 팔뚝을 철썩 때렸다. "미쳤다. 그런 사내는 절대 너랑 혼인 안 한데이. 고 멍청한 생각 좀 머리에서 지워뿌라."

"그 남자를 만나면 안 된데이. 저 남자가∙∙∙∙∙∙∙" 양진이 이삭을 가리켰다. "저 남자가 니 목숨을 구했데이. 니 아이를 구했다꼬. 넌 이제 저 남자 집안 사람이데이. 나는 니를 다시 볼 자격이 없다. 엄마가 된다는 게 어떤 건지 아나? 너는 곧 엄마가 될 기다. 혼인해도 니곁을 떠나지 않아도 되는 아들내미를 낳으면 좋겠데이."

"니 남편이랑 있는 데가 니 집이다." 양진이 말했다. 훈이와 혼인할 때 아버지가 양진에게 해준 말이었다. 아버지는 다시는 집에 오지 말라고 말했지만, 양진은 차마 이말을 자식에게 할 수 없었다.
"니 남편이랑 아이를 위해서 화목한 가정을 꾸리래이. 그게 니가 할일이다. 식구를 고생시키면 안 된데이."

"여기는 돼지하고 조선인만 살 수 있는 곳이야." 요셉이 웃으며 말했다. "집 같지는 않지?"
"그러네. 하지만 우린 잘 지낼 거야." 이삭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우리 때문에 불편하게 해서 미안해."

가진 것이 돌멩이와쓰디쓴 고난뿐이라도 얼마든지 맛있는 국을 끓여낼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인들이 그들에 대해 제멋대로 생각하겠지만, 살아남아서 성공하면 그런 것은 아무 상관 없었다.

요셉이 동생에게 경고했다. "정치나 노동조합, 혹은 다른 어리석은 짓에 얽히지 마. 몸을 사리고 묵묵히 일만 해. 독립운동이나 사회주의를 알리는 전단 같은 건 줍지도 받지도 말고. 그런 걸 가지고 있다가 경찰에 걸리면 체포돼서 감옥에 갇힐 거야. 한두 번 본 일이 아니야."

양쪽을 오가는 밀정들이 있어. 시문학회에도 밀정이 있고, 교회에도있어. 결국에는 독립운동가들 모두 한 나무에 매달려 있는 거야. 그리고 잘 익은 과일을 따듯이 제거하는 거지. 너한테 자백서에 서명하라고 강요할 거야. 알아들었어?" 요셉이 걷는 속도를 늦췄다.

"착하게 굴겠다고 약속할게. 형 말잘듣겠다고 약속해. 너무 걱정하지 마. 그러다가 머리가 허옇게 세겠어. 아니면 그나마 남은 머리도 다 빠지거나."

어머니는 남편이 무엇을 기대하는지 설명했다. 임신 중에 부부관계를 해도 된다고 말했다. ‘남편을 기쁘게 할 수 있는 것을 하래이 남자들한테는 잠자리가 필요한 법이다.‘

"부모님은 제 봉급에서 보낸 돈이라고 생각하세요. 하지만 제봉급으로는 집세와 생활비도 간신히 내요. 동생은 학교에 가야 하고요. 어머니가 저한테 책임지고 동생이 학교를 마치게 하라고 하셨어요. 동생은 공부를 그만두고 일을 하겠다고 자꾸 우기는데, 멀리 보면 어리석은 결정이에요. 그렇게 되면 우린 언제까지고 변함없이 이런 지독한 일만 하게 될 거예요. 일본어를 읽고 쓸 줄 모르면요."

"주님께서 항상 부족함 없이 채워주셨습니다, 목사님." 후가 말했다.
"맞다, 아들아. 잘 말했다."

선자는 경희 언니라고 불렀고, 둘이서 하루를 보내는 것이 좋았다. 두 달이라는 짧은 시간에 두 사람 사이의 정이 두터워졌다. 행복을 크게 기대하지도 요구하지도 않던 두 여자에게 이런 우정은 뜻밖의 선물이었다. 경희는 이제 종일 혼자 집에 있지 않아도 됐고, 요셉은 하숙집 딸을 아내로 데려온 이삭에게 고마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날 연구를 통해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인더스 문명 사이에 활발한 교역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증거는 여러 가지가 있다. 예를 들면 고대 인더스 지역에서 제조된 라피스라줄리(청금석)가 메소포타미아 유적에서 발견되고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인더스식 인장(印章)이 발굴되었다.

투탕카멘 왕의 마스크에 박힌 보석 라피스라줄리가

인더스 문명에서 수입한 것이었다고?

학자들은 이집트에서 동쪽으로 뻗어 나간 고대 문명 세계를 ‘고대 오리엔트 세계’라고 부른다. 고대 오리엔트 세계에서는 인더스강 유역까지 미치는 범위에서 인간의 이동이 역동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육로와 해로로 이동할 수 있는 길과 교역로가 연결되어 있었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문명을 통일하여
오리엔트 세계를 지배한 ‘철’의 왕국 아시리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케도니아왕국의 확장 과정을 살펴보면 이 나라가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더스 등 고대 문명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었음이 눈에 들어온다. 이 세 고대 문명은 오랜 기간 서로 활발히 교류하며 하나의 거대한 교역권을 형성했다. 이 교역권, 통상로의 존재야말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대원정 비밀을 푸는 중요한 열쇠가 될 만하다.

마케도니아가 그리스와 페르시아제국을 제패할 수 있었던 비결은
‘점’을 확보하는 방식의 지배가 아닌 ‘면’을 확보하는 방식의 지배 덕분이었다?

필리포스 2세는 카이로네이아 전투(338 BC)에서 테베와 아테네 연합군을 무찌르고 그리스 세계의 지배자 위치에 올랐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거대 통일국가가 형성되지 못한 채 1,000여 개의 크고 작은 폴리스가 분립했으며, 각각의 도시를 거점으로 지중해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했다. 말하자면 폴리스의 통치 체제는 ‘점’을 확보하는 방식에 가까웠다.

반면 필리포스 2세가 다스리던 마케도니아는 폴리스와 완전히 다른 형태의 통치 체제를 구축했다. 마케도니아의 지배 체제는 ‘면’을 확보하는 방식이었다.

즉 정복한 지역에서 농지를 확장하고 대규모 상비군을 조직해 지배 영역을 더욱 넓혀가는 방식을 취했다. 마케도니아가 실행한 방식은 ‘영역 국가’로서의 지배였다.

페르시아 전쟁 후 페르시아는 그리스 폴리스에 군자금 등을 지원하며 폴리스 사이의 갈등과 반목을 조장하고 부추겼다. 실제로 이 작전이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어 그리스에서는 폴리스 간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즉, 거대 제국 페르시아의 개입이야말로 그리스 세계가 쇠퇴한 주요 요인의 하나였던 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