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이나 바닷가에 가려고 부엌 문턱을 넘기 전에 선자는 광을 낸냄비 뚜껑에 자신을 비춰 보고 그날 아침에 단단하게 땋은 머리를매만졌다. 선자는 예쁘게 꾸미는 법을 몰랐고 고한수처럼 대단한 남자는 물론이고 여느 남자의 마음에 드는 법도 몰랐다. 그래서 매무새라도 깨끗하고 단정히 하려고 애썼다.
선자는 한수의 이야기와 경험에 빠져들었다. 한수의 경험은 먼 곳에서 온 어부들이나 노동자들이 들려준 모험보다 훨씬 특별했다. 게다가 선자와 한수의 관계에는 새롭고 강렬한 무엇인가가 있었고 이는 선자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한수를 만나기 전에는 자기 생활에 대해 이야기할 사람이 없었다.
두 사람은 석 달 동안 같은 방식으로 만났고 함께 있는 것이 점점편해졌다. 가을이 오자 바닷바람이 상쾌하고 쌀쌀해졌지만 선자는추운 줄도 몰랐다.
"우린 버섯을 무더기로 찾을 거야. 틀림없어."
두 사람이 친구라는 것은 아무도 몰랐다. 남자와 여자는 친구 사이가 될 수 없었고, 그렇다고 정인 사이인 것도 아니었다. 한수는 혼인 이야기를 한 번도내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런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입은 것이나 가진 것은 사람의 마음과 성격이랑 아무 관계가 없다고 했다. 선자가 숨을 깊이 들이마시니 신선한 숲속 공기와 어우러진 한수의 냄새가 났다.
원래 일본으로 향하기 전에 부산 교회에 있는 목사를 만나러 갈생각이었는데 그릴 기회가 없었다. 거기 들렀다가 병을 옮길까 봐겁나서 연락하지 않았다. 이삭의 다리는 전처럼 후들거리지 않았다.
조선이 총독부의 무단 통치를 받은지 벌써 20년이 넘었으나 끝이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포기한 것 같았다.
"어느 집안에나 있을 만한 일이에요." "그 애가 앞으로 우째 될지 모르겠심더. 신세를 망쳤어예. 이전에도 혼인하기 힘들었는데 이제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관장하시지만 우리는 그분의 이유를 이해하지 못해요. 이따금 저도 그분이 행하시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아요. 좌절감을 느끼죠." 양진이 어깨를 으쓱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삭은 자신이 좋아하는 성경 구절을 암송했지만 양진이 아무 감동도 받지 못했음을 알아차렸다. 양진과 선자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그분을 사랑할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우리가 아무도 따르지 않기를 바랐심더. 예수님도, 부처님도, 황제도, 조선 지도자까지도예."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관장하시지만 우리는 그분의 이유를 이해하지 못해요. 이따금 저도 그분이 행하시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아요. 좌절감을 느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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