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결코 대중을 구하려고 하지 않는다.

난 다만 한 개인을 바라볼 뿐이다.

난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껴안을 수 있다.

단지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씩만…….

따라서 당신도 시작하고 나도 시작하는 것이다.

나도 시작하는 것이다.

난 한 사람을 붙잡는다.

만일 내가 그 사람을 붙잡지 않았다면

난 4만 2천 명을 붙잡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노력은 단지 바다에 붓는 한 방울 물과 같다.

만일 내가 그 한 방울의 물을 붓지 않았다면

바다는 그 한 방울만큼 줄어들 것이다.

당신에게도 마찬가지다.

당신 가족에게도,

당신이 다니는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단지 시작하는 것이다.

한 번에 한 사람씩.

마더 테레사

테레사 수녀
Teresa, Anjeze Gonxhe Bojaxhiu

출생 1910. 8. 26. 유고슬라비아
사망 1997. 9. 5.
수상 1979년 노벨 평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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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는 인간의 삶, 그것은 결국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연습’이다.

인간은 기나긴 세월에 걸쳐서 그 무엇인가를 모색하고 시도해서, 더러 성공도 하고, 많이는 실패하면서 또 새롭게 모색하고 시도하고……. 그 끝없는 되풀이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고자 한 ‘연습’이 아닐까 싶다.

그 고단한 반복을 끊임없이 계속하는 것, 그것이 인간 특유의 아름다움인지도 모른다. 그 ‘큰 연습’ 한 가지에 대해 오래 생각해 오다가 이 작품을 엮어냈다.

"진정한 작가란 어느 시대, 어떤 정권하고든 불화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모든 권력이란 오류를 저지르게 되어 있고, 진정한 작가는 그 오류들을 파헤치며 진실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정치성과 전혀 관계없이 진보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으며, 진보성을 띤 정치 세력이 배태하는 오류까지도 밝혀내야 하기 때문에 작가는 끝없는 불화 속에서 외로울 수밖에 없다."

남다르게 질곡 많은 삶에 그만큼 회한이 크기 때문이었다. 그는 스스로 시대의 짐을 지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한 번도 살아보지 않았던 일생을 살다 갔다.

"모르겠소, 처자식들한테 배척당하는 서글프고 한심한 신세에 쏘련마저 저 지경이 됐으니 이젠 어디다가 마음을 기대고 살겠소. 아무 가망이 없어요. 세상이 이 꼴로 변해갈 줄 알았더라면 그때 차라리 떡공이들한테 맞아 죽었어야 하는 건데, 괜히 목숨은 질겨가지고……. "

윤혁은 진저리를 쳤다. ‘떡공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찬 기운이 오싹 등줄기로 뻗쳤던 것이다. 떡공이란 강제 전향을 시키기 위해 동원된 폭력배들이었다. 조폭, 살인범, 강도강간범 등 흉악범들로 짜인 그들은 교도소 안에서 저희들 맘껏 폭력을 휘둘러댔다.

교도관들이 부채질을 해대고 있으니 그들의 기세는 거칠 것이 없었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신성한반공투사야. 그들에게 주어진 명분이었고, 그들이 내세우는  자랑이었다.

"윤 동지는 아직까지도 혁명적 낙관주의를보지하고 있군요. 난 성품이나 품성이 모자라서 그런지 어쩐지 그냥 막막하고 암담할 뿐이오. 빌어먹을 팔자....... 조심해 가시오."

혁명적 낙관주의를 보지하고......, 열기 뜨거웠던 옛 시절의 어투를 듣자 윤혁은 콧등이시큰해지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금세 눈물이 날 것 같은 그런 증상은 육십 고개를 넘기면서부터 생긴 것이었다.

인민들이 굶주림에 허덕이고,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조차 있다니……. 그건 그다지도 믿고 자랑스러워했던 사회주의 조국의 종말 현상이었다. 그는 가슴속에 드높이 쌓아올렸던 의지의 성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리는 굉음을 듣고 있었다.

종교란 인간의 정신을 병들게 하기 때문에 마르크스는 일체의 종교를 인정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내세우는 예수교인들로서는 신을 부정해 버리는 공산주의 무리들은 사탄일 수밖에 없었다. 그 용납할 수 없는 충돌이 박동건 부부가 끝끝내 화합하지 못한 뿌리였다.

무너진 건 쏘련이지 주체조국은 난공불락, 승승장구, 영구불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기가 막혀, 전혀 말이 통하지 않아 설득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자신이 북쪽 땅을 떠날 때만 해도 당원들은 인민을 위해 얼마나 희생적이고 헌신적이었던가. 전후복구를 하는 건설현장에서도 당원들은 인민들보다 돌 하나라도 더날랐고, 밥을 먹을 때도 인민들을 다 먹인 다음에 먹지 않았던가. 인민들 또한 몸 사리지 않고 얼마나 열성적으로 일했던가. 당원의 타락이나 인민의 나태란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소련이라고 달랐을리 없다.

북쪽의 그런 아름다운 협동과 조화는 사상의 형제국인 소련과 중공으로부터온 것이기 때문이었다.

요 귀여운 것들이 없었더라면 내 세상살이가 얼마나 팍팍 했을 것인가....... 이 생각과 함께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박동건도 이런 아이들이 있었더라면 그렇게 허망하게 가지는 않았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자신은 이 애들 남매를 사흘거리로 만나며 삶의 새로운 활기를 얻었던 것이 새삼스럽게 고마웠다.

"그래, 그걸 어쩌겠나. 실패한 이념이고, 망한 체제가 되었으니 역사의 비판을 받게 되는건 사필귀정 아닌가. 타당한 비판이라면 달게받아야지. 그게 역사의 엄정성 아니겠나."

어떤 사람은 공산당 일당독재 체제를 비판합니다. 그 일당독재는 부르주아 계급의 발호를 차단하는 데는 일단 성공했는지 모르지만, 제멋대로 독주하는 당에 대한 무비판과 무견제가 당의 절대권력화를 촉진하게 되고, 절대권력은 반드시 부패하고 타락한다는 보편적 진리에 따라 몰락을 자초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바르고 건강한 정치가 되었으려면 최소한 양당제는 했어야 한다는 견해입니다.

어떤 사람은 인간을 ‘도덕적 인간’으로 개조할 수 있다고 믿고 그것을 억지로 실천하려고 한 오류를 비판합니다. 인간은 인간의 정치적 이상에 맞추어 개조할 수 있는 존재이기 이전에 그 어떤 힘으로도 막을 수 없는 본능적 존재이며, 인간의 이기욕이란 식욕과 성욕에 뒤지지 않는 중대한 본능인데 인간을 개조하려는 정치적 욕심은 그 본능을 무시함으로써 인간의 노동 욕구를 파괴했고, 그 비극은 사회 전체의 파멸로 확대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사람은, 당이 인민들의 균등한 행복을 위한다며 당의 일방적인 계획대로 직업을 배치하고, 행동을 통제한 어리석은 자만을 비판했습니다. 인간이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모두가 제 각각 개성이 다르고 능력이 다르고 성품이 다른데, 인간을 마치 기계나 기계 부속품처럼 취급해서 자율성을 박탈하고 창조성을 파괴함으로써 성취욕을 꺾음과 동시에 노동의 질적 저하, 게으른 타성을 만연시켜 결국 몰락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인권은 평등하되 능력은 평등할 수 없는데, 그 간단명료한 사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혼란을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사람은, ‘당은 무오류’라고 한 오류를 저질렀다고 비판했습니다.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은 인류의 긴 역사를 통해서 이미 확실하게 입증된 사실인데, 아무리 두뇌 명석하고 이론 탁월한 사람들이 모여 공산당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당은 무오류’라고 선언한 그 당당함이 바로 인간의 불완전함을 극적으로 입증한 오만이 아닐 수 없고, 그 오만이 저지른 결정적 오류가 ‘당은 무오류’라고 한 단언이고, 그런 당의 절대 신성시 위에서 당은 봉건권력화했으며, 당원들은 그 우산 아래서 반인민적 관료주의에 취해가며 부패와 타락의 길로 치달아갔으니 몰락은 필연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문제 많고 모순 많은 천민성 자본주의라 하더라도 자본주의가 30년 이상 지탱되어 온 사회에서는 사회주의는 절대로 뿌리내릴 수 없다고 한 것입니다. 지금 한국은 그 주장을 아주 잘 실증하고 있는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이성적이기 이전에 본능적 존재야. 그래, 본능적 존재지. 인간을 이성적 존재로, 이성의 힘이 큰 존재로 보려고 한 것이 착각이고……, 큰 오해를 저지른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

북쪽에서 한때 개인적으로 텃밭 농사를 허락한 일이 있었다. 전후 복구와 사회조직의 편성·강화가 겹쳐진 시급한 상황 속에서 식품난을 해소하려는 방책이었다. 그러나 당에서는 한 계절이 지나기 무섭게 텃밭 농사를 폐지시켰다. 왜냐하면 집단농장의 배추보다 개개인의 텃밭에 있는 배추가 훨씬 더 컸기 때문이었다.

먹을 것만 주면 어떤 종교 행사든 참가하는 수인들을 ‘떡신자’라고 불렀다.

사회주의의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나라마다 그 지경이 되는 것일까. 사회주의는 애당초 인간 사회를 이끌 수 없는 이념이고 체제였을까. 그 체제가 건재할 수 없는 것은 사회주의의 결함 때문일까. 아니면, 인간의 결함 때문일까. 사회주의의 결함 때문이라면, 그 결함은 도대체 무엇일까.

마르크스주의란 기본적으로 밥 먹는 철학인데도 그것을 실현시키지 못해 결국은 스스로 몰락하고 말았다.

일찍이 혁명 투쟁을 전개하면서 마오쩌둥이 갈파한 말이 있었다. 인민은 물이요, 당원은 물고기다. 그 유명한 말은 북쪽의 전후 복구 상황 속에서 당원들에게 거듭거듭 되풀이해서 강조된 말이었다. 인민 우선, 인민 중시를 각인시키는 그 말은 바로 당원들이 갖춰야 할 기본자세를 뜻했고, 당원들이 곧바르게 가야 할 길을 가리킨 것이었다.

우리의 진보를 이끌어온 어느 학자가 최근에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글을 썼습니다. 바로 그 문제를 다룬 글인데, 아주 설득력이 있고 감동적입니다.

"예,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건전한 보수와 생산적 진보를 조화시켜 좌우의 날개로 균형을 잡는 사회를 만들어가자는 구상입니다."

냉전시대를 통해서 자본주의는 사회주의한테 안 먹히려고 사회복지제도를 얼마나 강화시켜 왔어. 만약 그런 노력 하지 않고 돈 놓고 돈 먹기로 자본가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더라면 사회주의보다 자본주의가 더 먼저 무너져버렸을 거다 그거야.

제가 아이들과 오래 살아보니까 아이들은 인간의 꽃입니다. 그러니 저희 보육원은 인간의 꽃밭입니다. 여생을 웃음꽃 속에서 살고 싶으시면 주저하지 마시고 언제든지 이 꽃밭으로 오십시오.

그동안 끄떡없이 잘 버텨오신 까닭을 이제야 알 것 같아요.

"이런 일이 어때서 그래. 이게 좀 좋아. 내가 청소를 말끔히 해서 귀엽고 예쁜 아이들이 깨끗한 변소를 쓰게 되면 그 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나. 자네 모르지? 예쁜 아이들 똥에서는 쿠린내가 아니라 단내가 나는 거."

‘SL-17’은 브루스 커밍스가 미국의 정보공개법에 따라 비밀이 해제된 문서들을 10년 동안 찾아 헤맨 끝에 입수한 것이다. 이 문서는 미국이 이미 북의 침공을 조종하면서 부산 방어선으로의 후퇴와 인천 상륙작전까지 계획했음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고, 전쟁의 과정과 결과는 이 계획이 별다른 오차 없이 그대로 진행되었음을 증거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이 남북한과 유엔군을 동원하여 한반도의 분단과 그것의 장기화 또는 영속화를 위해 한판의 전쟁놀이를 벌인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하여 분단은 거스를 수 없는 역사적 현실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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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0 원, 동녕부 설치
1274 세자(충렬왕), 제국대장공주와 혼인, 원종 훙거,  충렬왕 즉위1차 일본 원정
1278 김방경 유배
1280 정동행성 설치
1281 2차 일본 원정
1283 원, 일본 정벌 전면 중지
1290 합단의 침입, 원, 동녕부 반환
1291 설도간, 합단 토벌, 홍다구 사망
1300 김방경 사망

몽고정
경남 창원시 마산 합포구에 있는 고려 시대 우물로,  1281년 일본 원정을 앞둔 몽골군이 합포에 진을 치고 군사와 군마의 식수 확보를 위하여 판 것으로 알려져  있다.

1296 세자(충선왕), 계국대장공주와 혼인
1297 제국대장공주 훙서
1298 충선왕에게 전위, 충렬왕 복위
1301 탐라총관부 폐지
1307 충선왕, 원 무종 즉위를 도움
1308 충렬왕 흥거 충선왕 복위
1310 충선왕, 세자 감 제거
1313 충숙왕 즉위, 연안군 고 세자 책봉
1314 충선왕, 연경에 만권당 건립
1316 충선왕 왕 자리를 세자 고에게 이양, 충숙왕 복국장공주와 혼인
1320 원 영종, 충선왕 토번으로 유배
1323 충선왕 복권
1325 충선왕 훙거

만권당
충선왕이 연경에 머물며 학문을 탐구했던 만권당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중국 베이징시 위위안탄(玉淵潭) 공원의 모습이다. 충선왕이 토번으로 유배되면서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자기 나라로부터 버림받고 각자도생의 처지에 몰린 이들이 부대를 이뤄 몽골군을 무찌르거나 이역만리에서 성공적으로 살아남는 데서 고려의 강함을 다시금 떠올린다. 그것은 결국 민초들 개개인의 강함이 아닐는지.

제주 남부 해안에서 최근 큰 피해가 되는 현상으로는 갯녹음이란 것이 있다. 이것은 바다 밑이 녹아내린다는 뜻으로 붙은 이름인데, 몇몇 산호에서 관찰되는 석회조류라고 하는 생물들이 갑자기 번창하면서 다른 생물들은 점점 살기 어렵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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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빛과 같이 눈을 어둡게 한다.
반대로 거짓은 아름다운 저녁 노을처럼모든 것을 멋지게 보이게 한다.
-알베르 카뮈

동행한 무당인지퇴마사인지 하는 양반이두 눈을 까뒤집으면서 여기는귀신 천지라고 외치고는줄행랑을 놓았지.

귀신이 카메라에찍힐 때는 말이야...

이 방에 떠도는피라미드 파워가 그렇게 말하고있지!
저 사람을 뽑으라고.

‘밤의 이야기꾼들‘에는 몇 가지 규칙이 있어.

멤버의 신상을 공개하지 않는다.
그 신상에는 얼굴도 포함되지.

서로의 이름을 묻지 않는다.
이야기를 하되 반드시 자신과 관련 있는이야기를  해야 한다.

우르바흐-비테 증후군‘이라는 병이 있다고 한다.
유전질환의 일종인데 칼슘 대사에 이상을 일으켜 편도체를 망가뜨린다.

원숭이의 편도체를 일부러 손상해 놓고 보니  무서워하던 뱀한테도 막 달려들더라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내 상태도 비슷했다.

더 이상 쓸모가 없으니까.

선생님,
저 도플갱어를 봤어요.

도플갱어는 독일어로
‘이중으로 돌아다니는 자‘라는 뜻이다.
도플갱어에 대한 괴담이 있는데,
세상에는 자신과 똑같은 모습의 인간이 셋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들이 마주치게 되면 서로가 서로를 죽이게 된다는 이야기다.

또 다른 나, 혹은 자신과 닮은 모습의 어떤 존재와 마주치는 일은 정신질환의 한 증상이기도 합니다.

그건어쩔 수가 없어.
원하는 얼굴이란 게다 거기서 거기거든.
인터넷에도많이 나오잖아.
의란성 쌍둥이라나 뭐라나.
그게 전부 비슷한 거지.
그러니까 해놓고 보면 쌍둥이처럼 닮는 거고.

하지만 문제는그런 간절한 마음을 품는 게 저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죠.
그래서 늘 싸움이 발생하게 됩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가르쳐줬는데,  파랑새는 다른 새들의 집을 빼앗는대.

제가 이런 존재가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여러분에게 털어놓겠습니다.
제가 어떻게 영원한 웃음을 가지게 되었는지,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도 웃음을 선사했는지...
웃는 여자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을 통해 각인된 폭력의 기억이 저를 옳아맸습니다.

분노보다 두려움이 먼저 찾아왔죠. 그러면서 저는 고양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개를 가지고 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동물을 죽이면서 제 내면에 잠들어 있는 악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스스로도 인정하지 않고 마음속 깊이 감춰둔 그 욕망이 빨간 바바리맨의 살육을 계기로 순식간에 자라나 제  몸을 찢고 밖으로 튀어나왔습니다.

저는 아이들의 입을 찢을 때마다 생각합니다.
나는 왜 변하게 되었을까, 하고요.
누가 저를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누가 제 마음에 분노의 기름을 붓고 불을 질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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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타너스의 정식 한국어 명칭은 양버즘나무다. 버즘나무 무리의 나무 중에서 서양, 그러니까 유럽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버즘나무에서 버즘이란 피부병의 일종인 버짐을 말한다. 플라타너스의 나무통 겉면에 껍질 벗겨진 듯한 모습이 잘 나타나기 때문에 버즘(버짐의 방언)이라는 이름이 지어진 것이다.

플라타너스가 가로수로 유용했던 이유는 매우 빨리 자라는 데다가 나뭇잎이 넓어서 그늘을 잘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플라타너스라는 말 자체에 무엇인가가 넓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게다가 플라타너스는 더러운 곳에서도 잘 자라는 특징이 있어서, 공해와 오염이 심한 도시에서도 쑥쑥 큰다는 장점이 있다. 도시에서 빠르게 멋진 가로수들을 키우는 데는 플라타너스가 무척 쓸모가 많다.

탄산의 쏘는 맛을 잘 표현할 수 없었던 조선 시대 사람들은 "물이 맵다"고 했는데, 초정이라는 말부터가 우물에서 산초 같은 매운맛이 난다는 의미다. 지금은 그 이야기를 알리기 위해서인지, 조선 시대 임금이 머물던 건물인 행궁 형태의 한옥을 탄산수가 나오는 지역 근처에 새로 지어 놓고 홍보하는 곳이 있다.

우리가 탄산수라고 하는 물에는 화학에서 말하는 정확한 탄산 성분은 별로 없다. 탄산수는 그냥 이산화탄소가 많이 들어 있어서 보글거리는 느낌이 나는 것뿐이다. 다만 그렇게 이산화탄소가 많이 든 물에는 자연히 탄산 성분이 조금 생기기 때문에 탄산수라는 이름을 쓴다고 보면 된다.

2018년 무렵의 기사를 보면, 보이지 않는 지하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는지 초정 탄산수의 이산화탄소 함량은 요즘 점차 떨어져 가고 있다고 한다.

거의 모든 일에는 화학적인 해답이 있다. 대체로 사람들이 사회에서 귀중하다고 생각하는 일은 화학에 의해 결정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사람이 밥을 먹기 위해 농사를 짓는다면, 식물을 잘 길러서 그 안에 탄수화물·단백질·지방 같은, 사람의 몸에 영양분으로 활용되는 화학 물질이 많이 생겨나도록 해야 한다. 만약 그런 화학 물질이 적으면, 그것을 "쭉정이가 되었다" "웃자랐다" "흉년이 들었다"고 이야기한다.

마음이나 감정의 문제도 결국은 화학의 문제다. 사람이 건강하게 산다는 것은 몸에서 꼭 일어나야 할 다양한 화학 반응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순조로이 잘 일어난다는 뜻이다.

사람의 몸이나 마음마저 화학 물질과 화학 반응의 결과로 설명할 수 있다고 해서, 거기에 아무런 신비함이 없다거나 화학만 알면 나머지는 알 필요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이 모든 것이 화학의 결과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수록, 세상은 더 신비하고 더 흥미진진해진다.

대전은 화학과 얼마나 관계있는 도시일까? 대전에는 나라에서 만든 한국화학연구원이라는 커다란 연구소도 있고 각 대학의 화학과를 비롯해 화학 연구를 열심히 하는 연구 기관이 많다. 그런 연구 기관들의 기술을 이용해서 새로 창업하는 회사들이 꾸준히 생겨나는 것을 보면 화학과 관련된 첨단 기술 산업도 어느 정도는 가능성을 가진 지역이다.

꿀을 먹고 나서 "이제 이 당분을 분해한 뒤에 재합성해서 지방으로 만드는 반응을 일으켜야 하니, 당분 분해 효소를 배 속에서 좀 더 내뿜어야 하겠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는 프로메테우스가 사람에게 불을 알려 주는 장면을 중요하게 묘사한다. 사람이 불을 갖는 순간을 두고, 여느 동물과는 다른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엄청난 힘을 얻는 순간이자 지혜에 눈뜨게 되는 결정적인 발전의 시점으로 묘사하곤 한다.

대청댐은 14억 9,000만 톤의 물을 저장하는 거대한 댐으로, 이 용량은 소양호·충주호에 이어 전국 3위에 해당한다. 이 많은 물을 가두기 위해 높이 72미터, 길이 495미터의 거대한 콘크리트 벽을 쌓아 두었다. 그 모습을 보면 10만 년 전 불을 피우는 기술을 개발한 이후로 이렇게까지 사람의 기술이 크게 발달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현대의 음식으로 대전에서 유명한 것은 빵과 국수다. 둘 다 밀가루 음식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발달해 온 과정은 사뭇 다르다. 요즘은 유명한 한 빵집이 그 무엇보다도 대전의 뚜렷한 상징처럼 자리 잡은 느낌이다. 기차역에 자리한 이 빵집의 분점에 가 보면 "대전에 왔다 가는데, 그래도 이 빵은 기념으로 사 가야지" "유명한 대전의 맛이라고 하니 가족에게도 맛을 보여 주어야지"라면서 모여든 사람들이 언제나 줄을 서서 빵을 사고 있다.

빵이 워낙 유명해졌기에 조금 가려져서 그렇지, 지금도 대전에는 맛있는 칼국수 가게가 여러 군데 있고, 대전 시민들은 그 맛을 친근하게 생각한다.

대전의 국수가 발전한 것은 아무래도 철도 교통의 발달과 함께 살펴보아야 할 듯하다. 애초에 대전이라는 도시가 탄생한 이유부터가 철도 때문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대전역의 가락국수가 칼국수 이상으로 대전하면 바로 떠올릴 만한 음식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다른 지역에서 일정을 마치고 대전역으로 기차를 타고 돌아오면 큼직한 노래비가 나를 맞아 주었다. 대전역 광장에는 <대전 블루스>라는 옛 노래 가사를 새겨 놓은 커다란 바위로 만든 노래비가 있었다. 1956년에 나온 이 노래는 깊은 밤 0시 50분, 밤 기차를 타고 헤어져야 하는 연인을 소재로 삼았다.

작사를 맡았던 사람이 실제 어느 밤, 대전역에서 헤어지는 남녀를 보고 문득 온갖 생각이 머리에서 떠올라 만든 가사라는 이야기도 많이 퍼져 있다. 노래 제목에 대전이 들어가기도 해서 대전 시민들에게 꽤 알려진 노래이기도 한데, 나도 그 시절에는 어째 이 노래가 대전의 삶을 상징하는 것 같아서 역을 지나칠 때마다 한 번씩 눈여겨본 기억이 난다.

원래 블루스 음악은 미국의 가난한 흑인 음악가들이 삶의 슬픔을 해학적으로 승화한 노래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한다. 제목에도 우울하다는 뜻의 블루blue라는 말이 들어가 있다. 초기에는 기타나 하모니카를 들고 다니며 즉흥 연주로 노래하는 음악가들에 의해 연주되었는데, 시카고 등지의 대도시에 이런 음악가들이 유입되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리고 1940년대 이후 기술 발전으로 앰프, 전기 악기들이 등장하고 음악을 여러 사람에게 큰 소리로 잘 들려줄 수 있게 되면서 블루스는 본격적으로 성장했다.

지금은 해운대를 중심으로 개발된 신시가지도 부산에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고, 교통의 중심지인 서면 일대라든가 자갈치 시장이 있는 남포동 주변도 번화가다. 그러나 조선 시대 이전까지 부산에서 가장 사람이 많았던 중심지는 동래 인근이라고 보아야 한다. 지금도 부산의 동래에서는 조선 시대 읍성의 흔적이나 조선 시대의 학교인 향교 등등 조선 시대 도회지의 남은 모습을 조금이나마 찾아볼 수 있다.

절영도는 영도의 옛 이름이다. 절영도라는 말을 풀이하면 그림자가 끊어진다는 의미인데, 널리 퍼진 이야기로는 절영도에서 기르던 말이 너무나 빠른 속력으로 달려서 자기 그림자에서 떨어져 나올 정도로 달릴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림자에서 말이 떨어질 정도라면 빛이 그림자를 만드는 속도보다 빨라야 하니, 말이 빛보다 빠른 속력이라는 의미이다.

부산의 갈매기가 많은 곳에서 새우깡을 높이 던지면 갈매기들이 모여들어 새우깡이 떨어지기도 전에 낚아채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을 때도 있다. 새우깡을 생산하는 회사의 공장이 부산 사상구에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

갈매기의 신체는 사람과 다르다. 갈매기는 부리 근처에 소금물을 걸러 내는 기관이 있다. 먼바다 위를 날다가 목이 마를 때 바닷물을 마셔도 소금을 빼낼 수가 있다. 습기는 빨아들이고 소금기는 더 짠 소금물로 농축해서 콧물 내지는 눈물로 뿜어낸다. 말하자면 갈매기는 살아남기 위해 눈물을 삼키고, 눈물을 흘리며, 그 눈물의 힘으로 바다를 극복할 수 있는 새다.

괭이갈매기란 울음소리를 듣다 보면 간혹 고양이 소리처럼 들릴 때가 있다고 해서, 고양이 갈매기라는 뜻으로 붙은 이름이다.

해운대의 이 백화점은 규모가 세계의 모든 백화점 중에서 최대라고 광고하는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2010년 1월 29일 자 『중앙일보』 보도를 보면 그 규모가 어찌나 거대한지 전기 요금만 매달 5억 7,300만 원씩 내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

이런저런 여행을 했다고 돌아보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아쉽기도 하고 마음이 허하기도 해서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러자 친구는 "안도에서 한숨을 쉬니, 안도의 한숨 아니겠는가"라고 했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으니, 이제부터 인생 사는 것은 별걱정 할 필요가 없지 않겠냐는 농담도 덧붙였다.

화학 공장, 가스관, 송유관 점검에 자주 사용하는 장비로 인텔리전트 피그intelligent pig라는 것이 있다. 직역하면 똑똑한 돼지라는 뜻인데, 파이프 속으로 집어넣는 동그란 기계 장비를 말한다. 옛날 영어권에서 파이프를 점검하는 일을 피깅pigging이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그 때문에 파이프를 점검하는 기계를 마침 돼지라는 뜻의 피그pig라고 부르게 된 듯싶다.

여자만은 여수 근처의 바다를 일컫는 말이다. 여수 인근에 바다가 육지 쪽으로 쑥 들어간 지형이 있는데, 이곳을 여수에서는 여자만이라고 하고 순천에서는 순천만이라고 한다. 여수에서 여자만이라는 말을 쓰는 까닭은 이 바다에 여자도라는 섬이 있기 때문이다. 여자도 역시, 여성의 섬이라는 뜻은 아니다. 말장난에 불과하긴 하지만, 여자도에 여자보건진료소라는 기관이 있는데 이름과 달리 여성만 갈 수 있는 곳은 아니고 남성도 갈 수 있는 보건진료소다.

불교 승려 출신이자 노비의 자손으로 취급되었던 궁예는 가장 혁명가에 가까운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궁예는 스스로 종교의 권위자라고 자부했던 적이 있는 만큼, 가장 혁신적인 사상을 내세운 사람이다.

궁예와 왕건의 상대였던 견훤은 또 다른 배경을 갖고 있다. 그는 천재적인 군사적 재능으로 나라를 세우고 임금이 된 사람이다. 『삼국사기』에는 견훤이 젊은 시절 "창을 베고 잠을 잤다"라고 되어 있다. 그만큼 부하들과 함께 험한 전쟁터의 가장 위험한 곳을 직접 누볐다고 볼 수 있다.

공작의 깃털 무늬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화려하며 다채로운 동시에 오묘하다. 하나의 생물이 어떻게 저절로 이렇게 복잡하면서도 다채로운 색깔을 가질 수 있는지 괴상하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얼룩소·얼룩말이나 호랑이도 무늬가 있기는 하지만 고작 두 가지 색깔이 적당히 교차하는 수준으로, 공작의 현란한 무늬와 비할 바는 아니다.

공작의 깃털은 구조색(structual color)이라는 방식으로 색을 낸다. 구조색이란 같은 색깔을 띤 물질이라도 미세하게 가공해서 어떤 모양으로 깎아 놓느냐에 따라 멀리서 보면 다른 색으로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재미있게도 현대 대한민국의 속초에서는 함경도 지역에서 건너온 사람들로부터 시작된 순대가 맛있다고 알려져 있다. 3,000년 전 청동 도끼로 이어졌던 함경도와 속초의 관계가 21세기에는 순대에서 발견된다는 느낌이다.

설악산 공룡능선에 삐죽삐죽하게 솟은 거대하고 넓적한 바위들의 모습이 스테고사우루스의 등 위에 솟아오른 넓적한 뼈와 닮았다고 해서 공룡능선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스테고사우루스의 가장 큰 특징인 이 삐죽하게 솟은 뼈들이 도대체 무슨 역할을 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는 아직도 학자들 사이에서는 완전히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다.

유럽의 프랑스·스위스 국경 지역에 쥐라산맥이라는 산맥이 있는데, 이 산맥에서 쥐라기 시대에 만들어진 지형이 보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마침 스테고사우루스는 바로 이 쥐라기 시대에 살던 공룡이다.

쓰임새가 많고 먹는 사람이 많다 보니, 한국에는 명태를 일컫는 여러 가지 별명도 많다. 얼린 것을 동태, 말린 것을 북어, 추운 곳에서 바닷바람을 맞아 가며 특정한 방식에 따라 말린 것을 황태라고 하거니와, 갓 잡은 것을 선태, 얼리지 않은 것을 생태, 반 정도 말린 것을 코다리, 소금에 절이면 간태, 배를 갈라 말리면 짝태, 날씨가 따뜻해 물러지면 찐태, 하얗게 마르면 백태, 검게 마르면 먹태, 한 번에 마르면 깡태, 새끼는 노가리, 끝물 막판에 잡으면 막물태 등의 이름으로 부른다. 그 밖에도 우두태, 파태, 낙태, 애태, 대태, 춘태, 추태, 일태, 이태, 서태, 오태, 망태, 조태 등 별별 다양한 호칭이 있다.

연락이 갑자기 오래 끊기는 친구를 보고 "잠수 탄다"는 말을 쓸 때가 있는데, 자주 잠수 타는 친구에게 명태라는 별명을 붙여 준다면 깊은 바다에서 사는 명태의 습성과 어울릴 거라는 생각도 잠깐 해 본다.

같은 운향과 식물이지만 긴 세월 동안 어떻게 진화하느냐에 따라 어떤 것은 맵고 아린 맛으로 인기를 끄는 산초와 초피가 되었고, 어떤 것은 새콤달콤한 귤이 되어, 마라탕 국물과 감귤주스만큼이나 다른 결과에 도달했다.

제주 남부 해안에서 최근 큰 피해가 되는 현상으로는 갯녹음이란 것이 있다. 이것은 바다 밑이 녹아내린다는 뜻으로 붙은 이름인데, 몇몇 산호에서 관찰되는 석회조류라고 하는 생물들이 갑자기 번창하면서 다른 생물들은 점점 살기 어렵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한국의 산 대부분이 지금처럼 나무가 많아진 것은 광복 이후 한국인들이 수십 년 동안 애써 나무를 심고 힘들여 가꾸었기 때문이다. 그냥 전통 시대로 돌아가기만 하면 오히려 그 숲은 파괴되어 버린다. 나무를 잘 심고, 잘 가꾸는 것을 목표로 힘들여 관리하고,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켜 좋은 방법을 알아내고자 노력했기에 지금의 풍경이 된 것이다.

처용이 활동하던 때는 헌강왕 시대인데, 헌강왕은 경문왕의 아들이므로 시기적으로는 가까운 편이다. 그렇다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시대에도 이런 먼 나라들과 신라 간에 교류가 활발했을 가능성은 있다.

울산의 옛 이름은 학성이다. 아마 울산에 사람이 많이 모여들어 꽤 큰 동네가 되면서부터 학성이라는 이름은 있었던 것 같다. 지금도 울산에는 학성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지명이 있고, 학교·건물·가게의 이름에도 학성이 들어가는 것이 꽤 많다. 학성이라는 말은 학, 즉 두루미의 성이라는 뜻이다.

처용의 시대보다 한참 앞선 시대에는 바다로 떠났다가 가족을 그리워하는 인물의 대표로 치술신모가 여러 사람에게 알려진 편이었다. 치술신모는 박제상의 부인으로 남편이 동쪽 바다로 떠났다가 돌아오지 못하자, 남편을 그리워하며 망부석이 되었다는 설화의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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