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게바라의 길‘

이길은
암흑을 가셔내고
해돋이를 맞는 길

이 길은
가시덤블을 거둬내고,
강강술래 하는 길

우리 함께
걷고 걸으며
넓혀가자 다져가자

-그대의 한 길벗으로부터
한국문명교류연구원장 정수일
2010년7월17일

‘체 게바라의 길‘
이길은
암흑을 가셔내고
해돋이를 맞는 길

이 길은
가시덤블을 거둬내고,
강강술래 하는 길

우리 함께
걷고 걸으며
넓혀가자 다져가자

-그대의 한 길벗으로부터
한국문명교류연구원장 정수일
2010년7월17일 - P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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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역사의 비는 얼마나 오래 내려야 하나

‘나는 왜 하필이면 이런 슬프고 척박한 땅에 태어났을까.’ ‘그런데 왜 문학을 하려 하는가.’ ‘그럼 무엇을 써야 할 것인가.’ 이런 것들이 내 청춘을 바치며 풀려고 했던 화두였다. 그리고 여기 실린 작품들이 그 열매다.

뭐 더 생각할 것 없이 그 옛날처럼 똑같은 고민으로 괴로워하며 밤을 밝히고는 할 것이다. 이 불행한 땅에 슬픈 역사의 비는 변함없이 주룩주룩 내리고 있으니까.

"간첩단 사건에서 3년짜리 징역도 봤어? 제까닥제까닥 사형이고, 재수 좋아야 무기, 천운을 타고나는 경우 15년이야. 3년은 무죄라는 소리야, 무죄. 신문에 났으니까 죄 안 줄 수 없었던 거지. 수양한다 셈치고 그저 죽치라구."

웃는 얼굴은 이성이었고 우는 얼굴은 감정인 것을 그는 느끼고 있었다.

그런 어느 날 중현은 오동도가 맞바라보이는 해변의 바위에 나란히 놓인 어머니의 고무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20년을 비가 내리는 땅, 앞으로도 얼마나 더 오래 비가 내릴지 모르는 땅에서 너와 나는 모두 불행한 사람들이라고 말하나? 너무나 긴 대꾸다. 그저 웃고 말지…….

밥을 받아가지고 돌아서다가 중현은 그 자리에 멍하니 섰다. 조그만 창, 조각난 파란 하늘에 흰구름 끝이 지나가고 있었다.

"푹 쉬씨요. 개똥은 줏어다 놨는디, 걱정시럽소. 이 자석덜언 개헌테꺼정 살괘기를 믹잉께 똥도 틀리잖컸소. 그래도 안 묵는 것보담은 훨썩 낫을 것잉께."

태준은 맥이 풀렸다. 서점동은 틀림없이 개똥물을 만들어올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보는 앞에서 기어이 마시라고 할 것이다. 개똥은 이미 주워다 놓았다잖은가. 서 일병이 야속스러웠다.

"다 낄인 약을 차내불다니. 지리산 호랭이는 뭘 묵고 사는고."

"워디요, 알아서 나쁠 것이야 있간디요."

"성중 사람들맹키로 기피나 했으면 덜이나 원통허겄소. 호적 나이는 인자 시물둘이다요."

"무신 말씸이다요. 농새일에 비할라치면 시장스럽소. 내사 배부릉께 신간 편치만 새끼덜이 워짜고 사는지 원……."

"도대체 뭐냔 말예요?"
설립자의 영애(令愛)이시자 교감인 뚱뚱보는 체구에 걸맞게 고함을 질렀다.

저런 1주일에 50시간의 수업, 예고 없는 시험. 먹을 것 없는 제사에 절이 열두 번이라는 속담은 꼭 이런 경우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여자가 시집을 간다는 것은 친정에서 뿌리를 완전히 뽑아간다는 의미인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시집가는 것을 죽은 사람과 똑같이 취급해 버리는 법적 조처에 서늘함을 느껴야 했다.

"그게 바로 황인종들의 오해고, 흑인에 대한 우월감입니다. 미안하게도, 백인 여자들은 흑인 하인 앞에서는 속옷을 갈아입지 않아도 황인종 앞에서는 속옷을 갈아입어요. 스피츠 앞에서 아무 거리낌 없이 옷을 갈아입듯이 말입니다. 왜 그런지 압니까? 영혼이 없는 개 앞에서 아무 수치를 느낄 필요가 없는 것처럼 황인종도 영혼이 없다고 취급하는 거죠."

"문준표 후보생 단장님께 용무 있어 왔습니다."

준표뿐만이 아니라 후보생 모두에게 김 중령은 야수 같은 폭군이었다. 군대 이외에는 필요가 없는 사람. 군대라는 것이 있었기에 절대 효용치를 발휘하는 위인으로 통하고 있는 터였다.

사회주의, 그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반공주의가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나쁜 것이었다면 의사인 아버지가 택했을 것인가.

ROTC 학군단 학생들은 ‘반학반군’의 얼치기들로 일반 학생들의 웃음거리고 조롱거리기도 했다.

특히 대학의 낭만을 앞세우는 문과 대학생들의 야유는 노골적이었다. 대학을 군대화하는 데 앞장서는 얼빠진 이기주의자들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학군단 학생들은, 너희들 졸업하고 사병 입대하고 나서 보자고 엄포를 놓고는 했다. 준표는 입에 쓴웃음을 물고 교문을 나섰다.

국가라는 위력 앞에서 피해 당사자들은 잔뜩 주눅이 들어 힘을 모아 항의할 엄두도 못 내고, 세상 사람들은 남의 일에 관심이 없는 것이다.

"문형, 뭐 심각하게 생각할 거 없소. 다 운명이려니 하면 됩니다. 헌데, 이번 일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이나 명심해 두시오."

"거 아주 잘됐소. 난 법댈 나와서도 이 짓인데, 이것도 보기가 좀 흉해서 그렇지 벌이 쏠쏠하고 신간 편한 게 할 만하오. 인생살이 목적이란 게 한마디로 줄이면 명예 권력 돈 아니겠소. 이 세 가지를 다 갖는 인간이 몇이나 되겠소. 난 눈 딱 감고 돈이나 많이 갖기로 작정했소. 결국 큰돈은 권력도 명예도 사는 게 자본주의니까."

그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이빨까지 뿌득뿌득 갈고 있었다. 그건 몸살로 인한 오한 때문인지 그렇지 않은 다른 일 때문인지 그 자신 외에는 아무도 알 사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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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밤사이 참새를 몇 꾸러미씩이나 구워먹었는지 쉴 사이도 없이 잘도 떠들어댔다.

첫째 사회 생활을 하는 남자들만 병에 걸렸고,

둘째 모두가 누구에겐가 협박당하거나 고문당하는 것처럼 공포에 질린 반응을 보이는 것이고,

셋째 잠꼬대는 대략 세 가지로, ‘듣지 못했다, 보지 못했다, 말하지 않았다’였다.

"여봐라, 이 성내에 쓸 만한 환쟁이가 있느냐!"
어느 날 성내를 조망(眺望)하고 있던 성주(城主)가 별안간 물었다.

그는 이 시대의 소시민답게 하나의 보잘것없는 부속품에 지나지 않았다. 증기 터빈의 조그만 나사이거나 자동차의 가느다란 동선에 불과한 자신을 부정하거나 거부할 이유도 방법도 찾을 수 없는 채로 나날을 연명하고 있었다.

도표로 그리면 수평을 이루는 생활. 굳이 비유를 빌린다고 해봤자 시계 불알이나 쳇바퀴를 도는 다람쥐로 대치되는 나날.

노예 제도의 폐지는 시대적 착오였다. 어차피 몸뚱어리는 목숨의 노예였고, 목숨은 먹이의 노예였고, 먹이는 생활의 노예였고, 생활은 제도의 노예였고, 하나의 제도는 또다른 제도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닌가.

이런 노예 사슬에서 풀려나기를 원하는 것은 생존의 포기라는 것쯤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계장에서 과장이 되기 위해 상무의 생일을 기억해야 한다는 기본 상식을 터득하지 못한 쑥맥이었다.

그 대신 그는 엉뚱한 일에 스스로를 모반하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문제는 그가 그런 자신을 발견하며 철없이 즐거워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런 모반이 노예화의 거부라고 해석했고, 거기에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며 넘치게 만족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기도 했다.

20년 가까운 세월은 결코 짧지 않았다. 그 정력적이던 옛 스승은 반신불수의 누더기 영감이 되어 있었고 옛 제자는 스승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후 도스토예프스키는 먼지만 뒤집어쓴 채 무식한 한국 젊은 놈을 욕해대며 방구석에 처박혀 지내야 했다.

"뭐라구요? 당신이 하는 짓이 무슨 곰쓸개라도 되는 줄 알아요? 만병 통치는 무슨 놈에 만병 통치."

"외삼촌은 기운이 장사야. 팔뚝에 알통이 얼마나 크다고. 거짓뿌렁이야, 거짓뿌렁. 외삼촌이 죽긴 왜 죽어."

결코 짧을 수 없는 스물여섯의 행렬은 스멀거리는 침묵을 분비하며 말끔히 청소된 복도로 이어지고 있었다. 사람수에 비해 복도는 너무나 조용했다. 모두 긴장한 나머지 걸음걸이에 방음의 스폰지를 깔기 때문이리라.

자축연은 자축연답게 계면쩍은 자찬의 미사여구의 홍수와 그에 맞춰 의무적인 박수가 범람하는 속에서 진행되었다.

아침부터 햇살은 무수한 바늘 끝으로 내리꽂히고 있었다. 더위는 바람 업은 안개처럼 서서히 꿈틀거리며 피어올랐다. 출근길에 쫓기는 발길들이 부산하게 그 속을 헤치고 있었다.

"야, 이 개애새끼야, 너 개눈깔 해박았어?"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 이 다섯 자씩의 네 가지 말을 뻔질나게 잘하는 위인일수록 정작 그 속은 반대라는 가당찮은 고정 관념을 길종은 가지고 있었다.

"예수도 배꼽이 있다는 걸 알아둬. 그도 평범한 인간이었단 말야. 다만 용기가 뛰어난 매력 넘치는 사내였지. 미남이었고 말야. 만약 언니나 내가 그 시대에 태어나서 예수한테 프로포즈를 했다면 예수는 단연 날 택했을 거야. 생김새는 그만두고라도 언니처럼 그렇게 무분별하게 치근치근 매달리는 여잘 좋아했을 리가 없잖아. 예수는 자기의 말을 깨닫는 센스 있는 여잘 좋아하지 해결을 강요하는 무디고 미련스런 여잘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두라고."

언니는 불쌍하게도 이 세상의 모든 장사라는 것이 거짓말 콘테스트라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지 못한 것이다.

볼품은 별로 없으면서 아는 것만 억세게 많은 간호사 원경희─환자에게도 의사에게도 과히 달갑잖은 존재가 될 것 같았다.

황 검사(檢事), 그 자식 생각할수록 얄밉다. 얄미울 뿐만 아니라 괘씸하다. 그리고 아니꼽다. 하지만 막상 딱지고 보면 얄미울 것도 괘씸할 것도 아니꼬울 것도 없다.

야 임마, 짜아식, 요런 맹추─얼마나 애용했고 친숙해진 말들이던가. 끝없는 우정의 상징으로, 변질되지 않는 신의의 대명사로 만남의 첫마디를 장식했던 말들이다.

아내는 끝내 사랑스러운 아들 영규에게 그리도 소원이던 일제나 미제 분유를 먹여보지 못했다.

"필요한 비용은 염려 말고 일을 좀 해줘야 되겠다."
힘겹게 한 그의 말에,
"내가 자네 돈을 받고 그런 일을 할 것 같았으면 여태까지 전셋집에 살고 있겠나?"
황 검사의 거침없는 대꾸였다.

술에 만취당하는 즐거움을 책 사는 것으로 대신하고, 서재 갖기를 말없는 소원으로 간직한 엔지니어였다.

나는 남편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남편은 숨이 막힐 지경으로 날 꼬옥 끌어안았다. 조여드는 압박 속에서 나는 남편이 아직도 젊다는 것을, 나에겐 박달나무 같은 남편의 억센 어깨가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그동안 흐물거리던 내가 다시 단단해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남편의 목을 끌어안았다.

나는 오늘 돈을 벌었어요. 무지무지하게 많은 돈이에요. 얼마냐구요? 3, 3천 원이라구요. 수염이 긴 임금님이 그려진 빠다라시 5백 원짜리 여섯 장을 내가 벌었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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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순이는 다시 두 손을 부챗살처럼 쫙 펴고 손가락을 꼽아나갔다. 계산은 틀림이 없었다. 매달 하루도 거르는 일 없이 28일 만에 있었으니까, 오늘로 나흘이 지난 것이다. 두 달째의 일이다.

"너나 뒈져라, 병신아. 이런 꼴 면할 때까지 난 악착같이 살아야겠다."

"신 다악소, 구두 다악소."
건성으로 외치다가 또 몸을 으스스 떨었다.
길수는 배가 고프다. 그리고 춥다. 배가 고프니까 추운 것인지 추우니까 배가 고픈 것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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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깐헌 것이 어찌 그리 판에 박은 서울내기 그대로다냐. 싸납고 뺀들뺀들허고 시건방진 것이. 복천 영감은 그만 돌아서버릴까 했다. 그러나 기왕 내친걸음이었다.

저것 참말로 똑똑허네웨. 누가 콜라 묵을지 몰라서 그러간디, 저 쥐방울만헌 것이. 싸가지 웂기넌…….

그런데 복천 영감을 못 견디게 하는 것은 모든 서울 사람들이 하나같이 지니고 있는 그 몰인정이요, 매정함이었다.

언제나 차갑고 싸늘하고 냉정해서 삭막하기 엄동설한 같은 인심에 부딪힐 때마다 속이 뒤집히는 울분 같은 것을 누를 길이 없었다. 그뿐 아니라 약삭빠르기 다람쥐 같고, 뻔뻔스럽기 쇠가죽 같은 낯짝인가 하면, 능청떨기는 백여우요, 억척스럽기는 땅벌 같은 종자들을 대하면서 자기는 어쩔 수 없는 촌놈이라는 탄식밖에 나오는 게 없었다.

없이 살아도 늘 푸짐하고, 배가 고픈 대로 따뜻하고, 별달리 도와주는 것이 없어도 믿음직스럽던 고향의 인심은 그리움 저편의 머나먼 이야기였다.

서울 냄새가 진동할수록 마누라가 못 견디게 그리워지고, 고향의 그 정겨운 모습모습이 불현듯 코앞에 다가드는 것이다. 그건 괴로움이었다. 이기기 어려운 괴로움이었다.

"누나, 이걸 마시면 정말 카아 소리가 저절로 나올까?"
"인제 마셔보면 알 거 아니니."
아이들이 돌아오는 소리에 복천 영감은 눈 가장자리를 손등으로 문지르고는 자리를 고쳐앉아 꽁초에 불을 붙였다.

복천 영감이 혀끝이 떨어져 나가는 게 아닌가 싶게 세게 혀를 차댔다.

공연시 목구녕이 포도청이란 말이 생겨나고, 먹성 좋은 한 입이 호랭이 아가리보담 더 무섭다는 말이 있을 것잉가. 산다는 것이 다 그런 것이제.

산동네 사람들은 가난한 것만이 아니었다.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살 길을 찾아 단봇짐을 싸들고 시골서 올라온 촌뜨기들이었다.

"맥 웂이 가난허게 살간디. 부자가 될라먼 물 한 그럭에라도 눈에 불을 켜야 허는 것이여. 근디 그리 야박시럽고 모지락시럽게 해갖고 부자가 되먼 워쩌자는 것이여 금메 사람이먼 사람짓얼 허고 살아야 사람이제."

"헹, 무신 놈에 시상이 바가지꺼정 푸라스틱인지 나이롱인지로 변해뿔고 지랄이여. 물맛 싹 떨어지게."

"와따, 나는 대나무로 맹근 소쿠리고 조리가 진짜배기로 정답고, 고런 것들이 푸라스틱에 밀려 급작시럽게 없어져가는 것을 봄스로 고향이 없어져부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허는 소리제라."

열 효자보다 한 악처가 낫다는 말이 나이 들어갈수록 지당한 말로 느껴지고, 그럴수록 먼저 가버린 마누라가 야속하고 못 견디게 그리워지고는 했다.

아무려나 강 영감이 그런 호의를 베푸는 것은 같은 나이 또래에다, 고향이 같은 전라도이기 때문이었다.

엄동설한같이 차갑기만 한 서울 인심 속에서 그래도 살아갈 맛을 영 잃지 않는 것은 그런 일이라도 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아무리 돈벌이가 좋다 해도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였다. 사기그릇과 계집은 내돌리면 금이 가는 법이었다.

"금메 말이요. 영기 이름을 듣기는 들었는디……."
마누라도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와따 이 사람아, 워째 똑똑헌 귀신만도 못헌 소리럴 혀."

"나보담은 우리 아부지가 훨썩 잘허시는디, 우리 아부지가 쩌그 저 와 기신께로 우리 아부지헌티 한 자락 시키는 것이 좋겄는디, 워쩔깨라우?"

"아부지, 고것이 아니랑께라. 미국서 퍼붓어대는 원조민지 원조쌀인지 그 니기미 씨펄 것이 태풍맹키로 여름 한철로 끝나는 것이 아니랑께요."

남자 나이 마흔다섯이란 낮근력으로나, 밤근력으로나 이미 기울어진 해였다.

그 전 정치인들은 저희들끼리 치고 박고 쌈박질하느라고 세월을 다 보냈는데, 정작 싸움밖에 모르는 줄 알았던 군인들이 눈치 빠르게 민심을 꿰뚫고 나섰던 것이다.

"와따, 나겉은 촌놈이 고런 것을 워찌 땅짐이나 허겄소. 그리 눈치 쌌음사 이도령 제치고 과거 급제럴 혔겄소."

그러다가 비만 한차례 지나고 나면 언제 물싸움을 했던가 싶게 서로서로 예전의 그 수국꽃 닮은 풍성한 웃음을 주고받았던 것이다.

어서 가리라 했다. 기필코 가리라 했다. 가서 그 땅에 다시 괭이질을 하여 씨를 뿌리리라 했다. 밀린 빚을 다 갚고, 훔쳐낸 소값도 톡톡히 치르리라 했다.

긍께로 예로보텀 머시라고 일렀소. 죄는 진대로 가고, 덕은 딲은대로 가는 것잉께 인심 잃고 살덜 말고, 척지고도 살지 말라고 안 혔읍디여.

근디 예나 이제나 부자덜언 워째서 그 쉬운 말도 못 알아듣는가 몰라. 허기사 더
말허먼 뭘혀. 바다는 메꿔도 사람 욕심은 못 메꾼다고 혔응께.

다 천년만년 살지 알고 그놈에 욕심 채우니라고 말싸심헌 것이 탈이제. 아이고, 그 징헌 놈에 욕심!

"긍께 말이오. 척지고 산 부자덜이 시상 뒤집어지고 엎어질 때마동 숭헌 꼴 그리 당허는 디도 정신덜 못 채리고 또 척지고, 또 웬수지고 허는 것 보면 사람 미련허기가 돼지 찜쪄묵을 판이요. 참말로 그놈에 욕심이란 것이 징허고 징헌 물건이단 말이오."

허기넌 사람 사는 한평생이 이러나저러나 빙신은 빙신인디. 그려도 배부른 빙신이 낫고 권세 있는 빙신이 난 법잉께. 고만 울어라, 고만. 이 애비넌 암시랑 안 혀, 이러나저러나 다 빙신으로 한평생 살다 가는 것잉께로.

두 자식의 손을 양쪽 손에 나눠 잡고 이렇게 중얼거리듯 하고 있는 복천 영감의 수척한 볼에는 계속 눈물이 흐르고 있었고, 눈물로 흐린 시야에는 마누라의 얼굴과 큰아들의 얼굴과 푸르른 들녘이 뒤범벅이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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