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데라가 역설하듯,
“소설의 유일한 존재 이유가 소설만이 발견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라면,
『워더링 하이츠』는 ‘유령의 집’을 현실로 열어 놓으면서 그 임무를 수행한다.
에밀리 브론테의 『워더링 하이츠』 - 폭풍의 언덕을 넘어서 - 유명숙(서울대 영문과 교수)
2. 『워더링 하이츠』 ― ‘유령의 집’으로의 초대
에밀리 브론테의 처녀작이자 마지막 작품이 된 『워더링 하이츠』를 번역하면서 내린 가장 큰 결정은 이 소설의 제목으로 몇십 년간 통용된 ‘폭풍의 언덕’을 버리기로 한 것이다. Wuthering Heights를 직역하면 ‘바람이 휘몰아치는 언덕’이므로 ‘폭풍의 언덕’이 딱히 틀린 번역은 아니다. 하지만 소설에서 워더링 하이츠는 집의 이름이다.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 전망이 좋은 집을 ‘하이츠’로 명명하는 것은 한국의 건축 업자들도 하는 일이거니와, 사람이나 집의 이름이 제목일 때는 고유명사로 번역하는 것이 원칙이다. ‘워더링’이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독자들에게도 낯선 단어라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사실 소설 도입부에 “높은 언덕에 자리 잡고 있어서 폭풍우가 몰아치면 대기의 소요에 그대로 노출됨을 이르는” 요크셔 지방 사투리로 ‘워더링’의 사전적 정의가 제시되기도 한다. 1차 서술자 록우드가 손님인지 불청객인지 애매한 신분으로 워더링 하이츠에 들어가 계속 상황을 잘못 읽어 내듯, 독자도 제목조차 생소한 『워더링 하이츠』를 펼쳐 들고 워더링 하이츠라는 집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워더링 하이츠 | 에밀리 브론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