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다 가진 듯 책을 바라보는 은기와는 달리 그때부터 은기 가족에게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손안의 책은 순식간에 매고 있던 서류 가방 속으로 사라졌다. 노인은 가게 안의 일은 전혀 모른 채 여전히 뒷정리에 여념이 없었다. 죄책감보다는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은기는 출입문 앞에서 한차례 심호흡을 한 뒤 천천히 문을 밀었다. 출입문을 나서는 순간 노인과 눈이 마주쳤다.
혀를 차며 돌아서는 한주를 보며 은기는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사실 은기의 이야기는 절반이 거짓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내에게 진실을 말할 순 없었다.
"자기야, 모르는 소리 하지 마. 이건 책테크야 책테크. 내가 구한 ‘사드’ 컬렉션이 얼마에 팔릴 것 같아? 부르는 게 값인 거야. 돈 벌어왔다고 칭찬을 해줘야지." 은기는 자랑스레 어깨를 으쓱 올렸다. "에휴, 나는 모르겠다. 얼른 저녁 먹고 애나 재워."
"이건 기적이야, 기적!" 한주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참 나. 그 돈으로 치킨을 사왔어 봐. 당신 딸이 맛있게 뜯어나 먹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