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내린 빗물 받아 늪이 불었다.
바람은 안 불어도 날씨 싸늘해
이내 몸 신선세계 찾아들었나
생각하니 그림폭을 번져가는 듯
그 누가 삐뚠 바위 먼저 오를까.
아슬한 구름다리 보기조차 두렵네.
온 나라가 이처럼 깨끗하건만
서울아 너만 어이 어지러우냐 - P128

潭潤新添雨
無風也自寒
眞如仙界坐
翻訝畫中看
側石登誰捷
危橋望亦難
一邦斯潔淨
回首歎長安 - P128

옥류동 무대바위 
외금강에서 가장 금강산 다운 산세와 계류를 보여주는  곳이다. 옥류동, 무대바위, 그리고 멀리천화대의 뾰족한 봉우리가 완벽한 회화적 구도를 연출하고 있다.

"교수 선생, 금강산의 날씨는 천가지로 재주 부리고 만가지로 변하니, 이러다가는 구룡폭도 못 봅니다." - P141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나는 이 순간을 멋진 사진으로 남겨야겠다는 마음이 일어 카메라 가방을 열고 망원렌즈를 꺼내 우산 속에서 갈아끼웠다. 그리고 사격수처럼 정조준하여 조리개를 당기는데 아뿔싸! 그사이비봉폭포는 안개 속에 자취를 감추었다. 말로만 듣던 금강산의 풍운조화였다. 그제야 나는 안내원의 말을 잘 들었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엄영실양은 벌써 저 앞으로 나아가 안개가 밀고 올라오기 전에 빨리 구룡폭에오르자고 소리친다. 나는 그제야 카메라가방을 들쳐메고 뛰기 시작했다. - P140

비봉폭포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폭포로 물줄기가 139미터나 된다. 폭포는 역시 물이 많아야 제멋을 풍기기 때문에 여름날의 비봉폭포가 가장 아름답다. 허리춤 아래부터 층층이 꺾인 바위결을 타고 내리기 때문에 마치 봉황의날개 같은 형상을 이룬다. 그래서 이름하여 비봉폭포다. - P141

구룡폭포
연담교에서 구룡폭을 향하여 길을 꺾어들면 오른쪽으로는 거대한 노적가리 모양의 암봉이 기세차게 뻗어올라가고 그 아래로는 김일성 주석이 이름지었다는 ‘주렴(珠簾)폭포‘가 구슬발  같은 물줄기를 내리쏟는다.
그리고 사위에선 마치 대로변 고층아파트에서 들을 수 있는 자동차 소리같은 웅웅거리는 소리가 어딘가에서 들려온다. 산중에 무슨 소음 같은굉음인가. 게다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소리가 더 커지다가 마침내 쿵 쿵 소리로  들리면 그제야 구룡폭포가 쏟아지며 물 찧는 소리인 줄 알고놀라게 된다.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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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에서 유람 온 사람으로서는 참으로 갑갑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런통제는 그 나름의 강점도 있었다. 금강산을 다녀온 사람들이 너나없이어떻게 금강산이 그렇게 깨끗이 보존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이구동성의 표현을 들을 때마다 내가 대답할 수 있는 말은 유람의 낭만과 서정을 맘껏 즐기는 우리와 ‘탐승질서위반‘을 처벌규정으로 만들어관리해온 그네들의 삶의 방식 자체에 너무도 큰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 P63

금강산려관 
금강산에 있는 유일한 관광호텔로 객실이 240여개 있다. 그러나 내가 5박6일을 머무는 동안 이곳에묵어간 손님은 거의 없었다. - P70

내가 금강산에 와서 가장 맛있게 먹은 것은 명태국이었다. 명태의 원산지는 함북 명천으로 본래 함경도 요리의 자랑인데 그 솜씨가 원산을거쳐 강원도 금강산까지 내려왔다. 같은 동해바다에서 사는 명태라도 꼭명천에서 잡힌 것이 맛있는 이유는 서해바다 조기가 법성포 칠산 앞바다에서부터 연평도 사이에서 잡힌 것이 맛있는 것과 같다. 어떤 사람은 신토불이를 인정하지만 같은 서해바다 조기인데 왜 중국 배가 잡은 조기는중국산으로 값이 싸고, 한국 배가 잡은 조기는 비싸냐며 신토불이론을부정하는 것인지 지지하는 것인지 의구심을 표명한다. - P71

명색은 "백성의 고통을 알고자 지방을 순행하는 것"이었지만 속내용은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그중 가장 큰 목적은 그가 평생 고생한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해 온정리온천에 가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가는 길에 금강산도 구경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 P75

한편 이에 따른 부차적인 목적은 대단히 정치적인 것으로 사대부 신하들에게 왕권을 과시하기 위함도 있었다. 그는 조카를 죽이고 왕이 된만큼 쿠데타 독재자들이 갖고 있는 불안과 횡포를 버릴 수 없었다. 그래서자신의 위용으로 왕권의 정통성을 수시로 확인시킬 필요가 있었으니, 행차 도중 많은 신하들이 본보기로 걸려 곤욕과 수모를 당하여 기가 꺾였다. 또다른 목적은 불교의 중흥을 몸소 실천함에 있었다. 그는 행차 도중여러 방식으로 불교를 지원했다. 세조는 이런 제반의 개인적·정치적 목적을 품고 온정리온천을 향하여 금강산으로 떠났던 것이다. - P75

오랜 세월을 같이 있어도
기억 속에 없는 이 있고
잠깐 만나도 잠깐 만나도
심장 속에 남는 이 있네.
아, 아! 그런 사람,
나는 귀중해, - P87

아, 아름다워라, 금강송이여
외금강 탐승의 양대 코스, 만물상과 구룡폭 어느 쪽을 먼저 가든 우리가 금강산 초입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놀라움과 기쁨은 아름다운 솔밭이다. - P91

금강송(金剛松), 흔히 금강산 미인송으로 칭송되는  이 소나무는 이제까지 우리가 보아온 소나무와 너무도 다른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하늘을찌를 듯 곧게 뻗어올라간 줄기는 붉은 기를 머금은 채 짙은 나뭇빛을 발한다. 곁가지도 없이 족히 20미터를 치솟은 미인송은 하늘가에서만 연둣빛 솔잎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을 뿐이다. 한여름 습기를 잔뜩 머금어 붉은 줄기에 윤기가 흐를 때면 늘씬한 각선미를 자랑하는 미인이 알몸으로부끄럼을 빛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그 고고한 귀티엔 한 점 속기(俗氣)도 없으니 청신하다고는 할지언정  요염하다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 P91

이것은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와 전통의 문제인 것이다. 아무 까닭 없이 산길을 따라 금강산 바위와 계곡의 수려함과 기이함만 바라보고다니는 것과 산과 더불어 역사의 자취를 느끼며 탐승하는 것은 엄청난감동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 P102

금강산 관광을 다녀온 사람들 가슴에 무엇인가 허전하게 느껴지는 것은 탐승길에 그런 문화유산이 없기 때문이다. 빈터일망정 신계사에 들르는 일도 없고, 이 세상을 바로잡고 아름답게 가꾸려고 애썼던 인간의 이야기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 P102

"어디서 오셨는고?"
"유점사에서 왔습니다."
"그래, 유점사에서 여기까지는 몇 걸음에 왔는고?"
"예?"
"유점사에서 여기까지 몇 걸음에 왔냐고 물었네." - P104

"아, 예・・・・・・ 바로 이렇게 왔습니다."
그러고는 효봉은 방을 한 바퀴 삥 돌아 앉았다. 느닷없는 질문에 서슴없는 행동으로 답한 것이다. 이에 석두스님은 흡족해하며 이렇게 말했다.
"어쭈, 제법이다. 그대는 오늘부터 내 웬수로다." - P105

"잘들 놀았군, 금강산 귀뚜라미들!" - P107

오선암 유감
해방 전, 금강산 탐승에서 옥류동·구룡연(九龍淵) 코스는 신계사를 기점으로 해서 오선암(五仙巖)까지를 등산의 초입으로 삼았다. 신계사에서신계천을 따라 송림을 헤치며 걷다보면 ‘배소고개‘라는 낮은 언덕을 넘게 되는데, 언덕마루에서 신계천을 내려다보면 마치 배 모양 같은 큰 못이 있어 이를 배소, 선담(潭)이라고 했다. - P109

글발의 내력은 그렇게 이루어진 것이지만 ‘지원‘이라는 말 자체의 내력은 그보다 더 옛날로 올라간다. 이 말은 삼국지(三國志)』에 나오는 제갈량(諸葛亮)이 자신의  서재에 써서 걸어놓은 글에서 따온 것이다. 그 원문은 "담박명지(澹泊明志) 영정치원(寧靜致遠)"이다.  "맑은 마음으로 뜻을 밝히고, 편안하고 고요한 자세로 원대함을 이룬다." - P118

이 글귀는 이후 큰 뜻을 품은 사람, 비장한 각오를 한 사람들에게는 항시 마음에 새기는 글로 기억되어 안중근(安重根) 의사가 뤼순감옥에서쓴 글씨도 있고, 백범(白凡) 김구(金九) 선생이 쓴 글씨도 남아 있다.  한때 비디오가게에 가면 빌릴 수 있었던 삼국지 40부작 중 ‘삼고초려(三顧草廬)‘편을 보면 제갈량의 서재에  이 글씨가  씌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글의 정확성을 위하여 이 글의 원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P118

맑은 마음이 아니면 뜻을 밝힐 수 없고
마음이 편하고 고요하지 않으면 원대함을 이룰 수 없다.
非澹泊 無以明志 非寧靜 無以致遠 - P118

우리는 그만 상팔담으로 가자고 했다. 상팔담은 금강산 탐승의 절정으로 교과서에 나오는 전설 「나무꾼과 선녀의 고향이다. 구룡폭에서 상팔담을 내려다보는 구룡대(九龍臺)까지 800미터, 철사다리 14개에 370계단을  올라야 한다. - P120

금강문을 나서며 눈을 들다가는 문득 ‘에쿠‘ 소리를 질렀습니다. 석두(石竇) 하나를 지내 나온 것일 뿐이어는  광경이 어찌 이다지도 틀렸으리까? 얼른 말하면 문밖까지의 그것은 꺼풀 금강산임을 깨닫고 놀라는 줄 모르고 놀란 것입니다. 금시에 좋아져도 무척 더 좋아졌습니다.
아주 평범한 글 같지만 이렇게 서슴없이 "에쿠" 소리를 문장 속에 쓸수 있는 것이 역시 대가의 솜씨인 것이다. 그는 삼일포 봉래대(蓬萊臺)에올라서는 그 경관이  너무 시원해서 "이히 소리를 질렀다"고 천연덕스럽게  쓰기도 했다.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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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세상일은 대중이 없고 사람 일은 맘같이 안되는 법인 줄 익히 알고 있지만 내가 이렇게 금강산 답사기만으로 ‘나의 북한 문화유산답사기 두번째 권을 펴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본래 이 책은 앞권에 이어 지난 1998년 7월에 있었던 보름간의 나의 두번째 방북답사기로 엮어낼 계획이었다. 그 내용은 이미 중앙일보』 1998년 8월 15일자부터 1999년 2월 27일자까지 총 28회에 걸쳐 연재되었다. 그러나 이 글을 다듬고 보완하는 과정에서 나는 금강산 답사기를 새로 집필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 P10

천하의 금강산도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법칙에서는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금강산에 대한 예비지식이 없는 분들은 지금 우리에게 열린금강산 탐승길이 금강산의 22개 명승구역 중 3, 4코스에 불과하고, 옛사람들의 금강산 탐승 자취는 아직 공개되지 않은 내금강 만폭동(萬瀑洞)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그것은 그분들을 위해서도 금강산의 명예를 위해서도 안타까운 일이었다. - P11

그러나 예부터 금강산은 "서부진(書不盡畵不得)"이라고 해서 "글로써 다할 수 없고  그림으로도 얻을 수 없다"고 했으니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로 나는 적이 안심도 된다. - P11

금강산을 통하여 우리들의 가슴속에 국토에 대한 자랑과사랑을 더욱 드높이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리고 나처럼 금강을 예찬하는 사람이 많이 나왔으면 정말 좋겠다. - P13

금강산은 ‘조선심(朝鮮心)‘의 상징
꿈에나 가본다는 것조차 꿈같이 생각되던 금강산에 우리가 정말로 가고 있다. 이런 것을 일러 꿈같은 현실이라고 하는 것인가.
분단 50년간 막혀 있던 금강산이 우리에게 이렇게 갑자기 열릴 것이라고 예상했던 사람이 몇이나 될까? 또 이런 방식으로 남북이 협력 교류하면서 북녘 땅의 일부분이 남한사람의 일상 속으로 돌아올 수 있으리라상상이라도 했던 사람이 과연 있기나 할까? 모든 것이 얼마전만 해도 꿈도 꾸지 못한 꿈같은 현실인 것이다. - P19

나는 무엇이, 무엇이 이런 민족사적 대전환을 가능케 하였는가를 곰곰이 생각해본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자본의 논리에서 시작되었다. 북한은북한대로 남한은 남한대로 금강산을 남쪽에 개방하여 얻어낼 직접, 간접의 경제적 이득에서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아니었다. 그것을 가능케 한 충분조건은 금강산의 전설적인 아름다움이었다. 금강산이 아니라면 이 프로젝트는 애당초 발상조차 나올 수 없었던 것이다. - P20

금강산! 그것은 한민족으로 태어난 자의 가슴속에 거의 유전적으로 전래된 동경의 대상이다. 금강산의 아름다움이란 그저 미답(未踏)의 세계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민족의 역사와 함께 조상들의 끊임없는 순례와예찬이 거듭되면서 마침내는 생래적으로 간직하게 된 한민족의 가장 큰사랑이고 자랑인 것이다. - P21

그러다 금강산에 대한 동경심을 더욱 키운 것은 정비석(鄭飛石, 1911~91)의 산정무한(山情無限)에서였다.  대학입시 국어시험 공부를 위해 반강제로 읽히던 이 낭만의 기행문은 아주 어려운 한자들로 수험생들을 어지간히 골탕먹였지만 딱딱한 교과서체 문장에 지쳐 있던 젊은이들에게청신한 바람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 P23

미문(漢文)은 독자로 하여금 그 글이 노래한  대상을 더욱 사랑스럽게느끼게 만드는 미덕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 글에서 내 기억에 강하게 남은구절은 이상하게도 금강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것보다도 그 아름다움을보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말한 것이니, 역시 금강에 대한 그리움이란 볼수 없는 대상에 대한 동경 때문인지도 모른다 - P23

정선의 금강전도 
종이에 수묵담채, 130.7×94.1cm, 1734년(53세), 삼성미술관 Leeun 소장, 마치 헬리콥터를타고 항공촬영하듯 금강산 1만2천봉을 한 화폭에 포착한 이 그림은 그림이 사진보다 더 감동적인 예술일 수 있음을웅변으로 말해준다. - P24

결국 진경산수는 국토에 대한사랑 없이는 나올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고 겸재와 단원의 금강산 그림은 "아! 아름다워라, 조국 강산이여!"라는 조국애의 다른 표현이라는 사실도 알았다. 그래서 조선후기금강산 그림들이 보여준 사실주의는 곧 ‘민족적 사실주의‘였다고 말할수 있는 것이다. - P26

일찍이 송나라 시인이 노래하기를 원컨대 고려국에 태어나 한번만이라도 금강산을 보았으면‘이라고 했답니다.

그것이 금강예찬의 백미라는 그 유명한 ‘원생고려국(願生高麗國) 일견금강산(一見金剛山)‘이다. 여기서 일견(一見)이  『조선왕조실록』에는 친견(親見, 직접  보았으면)이라고 씌어 있었는데, 훗날 어느 문사가 이렇게멋지게 바꾸어놓은 것이며, 이 문구를 소동파(蘇東坡)의 글로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 P28

1926년 당시 스웨덴의 황태자인 구스타프(Gustav VI Adolf, 1882~1973)가 신혼여행으로 일본을 거쳐 한국에 왔을 때 고고학에 관심이 많은 그는 경주의 서봉총(瑞鳳塚) 발굴에  참여하여 왕관을 직접 꺼내는 영광과 행운을 얻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금강산의 비경을 탐승하고는 감격하여 "하나님이 천지창조를 하신 엿새 중 마지막 하루는 오직 금강산을 만드는 데 보냈을 것 같다"고 찬미했다. 이를 능가하는 찬사가 또 있을까? - P29

"얘, 얘, 이제까지 우리가 본 산은 그저 돌덩이 흙덩이였더라. 너도여름에 늬 신랑하고 가봐라." - P36

"금강산의 아름다움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다." - P36

금강산은 통일산, 동해항은 통일항
금강산 관광선의 역사적 첫 출항을 기다리는 동해시 곳곳에는 "금강산은 통일산, 동해항은 통일"이라는 표어가 붙어 있었다. 그리고 현대금강호의 첫 출항은 북녘 하늘, 북녘 땅에 갈 수 있는 날만을 기다려온 ‘실향민의 배‘였다.  50년 만의 금강행이란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분단으로 인해 넘어갈 수 없던 땅에 내딛는 첫걸음이라는 엄청난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으며, 그것을 몸으로 실감케 하는 것은 실향민의 마음이었다.
첫 출항의 승객을 보면 실제로 취재, 글, 그림, 사업정보차 온 승객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실향민이었고, 모든 이의 관심 또한 금강산 못지않게실향민들에게 있었다. - P37

경북대 불문과 임진수 교수는 생각을  달리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어쩌면 사회주의체제가 낳은 문화현상인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고대 그리스의 유머라는 것을 보면 아테네가 아니라 오히려 스파르타에서 많이 나왔답니다. 질서가 꽉 짜여 있을수록 카타르시스를 위한 농담과 유머가 발달하는 법이니까요." - P45

"어머니, 저희가 왔습니다. 지금 살아계십니까, 돌아가셨습니까? 살아계시면 살아계신 대로 돌아가셨으면 돌아가신 대로 절 받으십시오." - P51

"어머니, 저 갑니다. 어머니, 이제는 오고 싶으면 또 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명년 봄엔 손주도 데리고 오겠습니다."
그러고는 하늘이 꺼져라 "어머니를 부르며 내 발아래로 주저앉았다. 그것은 내가 현대금강호에서 마지막으로 들은 ‘어머니‘ 소리였으며또 첫날 복도에서 들은 어머니 소리와 같은 것이었다. - P52

그러니까 이칠순 실향노인들이 50년 만에 어려서 뛰놀던 빈 고향에돌아와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는 오직 ‘어머니‘ 한마디뿐이었다.
나는 할머니를 부축하여 모시고 갑판을 돌아 선실로 들어왔다. 이윽고장전항밤바다에는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었다. - P52

동해시는 묵호와 북평
옛말에 "금강산 가듯 한다"는 속담이 있다. 벼르고 벼르면서 정작 시행하지 못하는 모습을 이르는 말이다. 그 속담조차 분단 50년간 우리의 뇌리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었는데 모르면 몰라도 지금 ‘금강산 가득‘ 좀처럼 금강산에 가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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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마지막권이다

19권
1. 국내편 9권 1, 2, 3, 6, 7, 8, 9, 10, 산사순례+(감귤에디션)
2. 북한편 2권 4, 5
2. 일본편 5권 4권+1
3. 중국편 3권

국내편 1,2,3 권은 초판, 개정판 둘다 소장중

93년부터 읽기 시작했으니 딱 30년됐다.
부지런히 읽으려 했으나 4,5,8,9,10권은 출간시 바로 읽지못하고 이제야 읽었다.
북한 5권을 마지막으로 장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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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0-11 12: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저는 저 시리즈 국내편 8권까지 읽고, 북한편 읽었어요.
그 후에는 관심이 왠지 좀 적어져서 안읽었는데, 대장정님 글 보니 나머지도 막 읽고 싶은 욕구가 솟구치네요.
19권의 대장정 마지막 목표지점에 도달하심을 축하드립니다. ^^

대장정 2022-10-11 15:27   좋아요 2 | URL
ㅎㅎ 감사합니다. 출간시 바로 못 읽고 나중에 읽으려니 잘 안 잡히더라구요. 이번에 맘먹고 읽었습니다. 서울편 3,4 기다리고 있습니다.

mini74 2022-10-11 12: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 대장정님 진짜 대장정이네요 *^^* 👍

대장정 2022-10-11 15:26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마지막권 읽으려니 뿌듯하기도하고 섭섭하기도 합니다^^.

프레이야 2022-10-11 13: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9편 이렇게 다 모으니 진짜 많네요.
실크로드편이랑 감귤에디션을 사야겠어요
대장정을 이루셨네요! 👏

대장정 2022-10-11 15:27   좋아요 2 | URL
감귤에디션은 안사려 했는데... 사야될거 같아요ㅎㅎ. 감사합니다.

scott 2022-10-11 13: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대장정님 이제 이책속에서 만났던 그곳을 찾아 대장정의 여정을 시좍🤗

대장정 2022-10-11 15:33   좋아요 2 | URL
한때 열심히 따라다녔습니다.ㅎㅎ 못가본데 찾아서 한번 떠나볼까요.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2-10-12 23: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 👍 👍
진정 대장정입니다.

대장정 2022-10-12 23:52   좋아요 0 | URL
30년을 읽었으니 아닌게 아니라 진짜 大長征이네요.ㅎㅎ 감사합니다.^^
 

과거가 현재를 만든다.
삶은 그런 것이다.
단편적으로 현재만을 살아가는 인간은 없다. 
전부 인과관계가 있다. 
본인이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지 지금의 선택에는 과거에 행해온 선택들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ebook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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