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그녀의 하루는 아침 식사 준비부터 시작된다. 서양식을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스크램블 에그를 만들고 비엔나 소시지를 구운 다음 커피를 끓인다. 결혼 2년 차. 남편을 배웅하고 나서는 청소, 세탁에 돌입한다. 그날도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하루가 될 줄 알았다.
지금으로부터 딱 2년 전 오늘, 남편으로부터 프로포즈를 받았다. 오늘 밤도 무슨 선물을 준비했을 것이다. 따라서아내로서 무언가를 조르거나 재촉하는 그런 흥을 깨는 언행은 필요 없다.
그녀는 대낮부터 남편의 험담을 늘어놓는 주부들과 달리 사랑받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결혼 후에도 대학 시절 미인대회에서 1위를 했던 미모가 전혀 변하지 않았다. 만기 30년짜리 주택담보대출을 이용하기는 했지만 결혼직후 치바현 교외에 있는 단독주택을 구입해 생활에도 문제가 없었다.
법원에 왔을 때 카메라나 마이크를 든 수많은 언론사 관계자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엽기적인 연쇄살인, 신비롭고 화면발 잘 받는 범인…. 매스컴이 몰려든 이유는 이해할 수 있다.
재판장은 잠시 뜸을 들였다. 방청석의 모두가 숨을 죽였다. "그리하여 피고인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가장 앞에 앉아있던 기자 2명이 일어나서 서둘러 법정을 빠져나갔다. 속보를 전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당사자인 아사누마 쇼고는 마지막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아사누마 쇼고.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8명의 여성을 살해하고 체포되어 사형판결을 받아도 전혀이 흔들림이 없다. 인간으로서의 감정이 결여된 것인가
"나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8명의 여자를 죽였다고 말이야. 하지만 그중 한 건은 내가 한 게 아니야."
아사누마 쇼고가 방청석을 향해 다시 외쳤다. "나는 ‘추억의 장소‘에 진범의 시신을 숨겼다. 진범의 시신을 원하면 찾아봐. 자, 시체 찾기의 시작이다!"
‘시체 찾기." 사람들의 댓글을 보니, 아무래도 아사누마 쇼고가 원하는 대로 시체를 찾으려는 사람들이 나타난 모양이었다. 유명해지고 싶어서인지, 단순히 흥미 때문인지, 정의감의 발로인지는 알 수 없었다. ‘우리가 찾아내자‘고 떠드는 젊은이들이나, 발견하면 상금이 있냐고 경찰에 문의하는 사람, ‘추억의 장소‘에 대해추리하여 해설하는 사람 등 제각각이었다. 시체 찾기를 마치 무슨 보물찾기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노조미가 한숨을 쉬며 핸드폰을 핸드백에 집어넣었을 때, 시즈에가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면서 누군가를 고발하면 어떤 식으로든 구실을 만들어 분노를 발산하고 싶은 백수들의 동정을 얻을 수 있다. 더구나 가해자가 국가권력일 경우에는 가해자를 ‘악‘으로 치부해도 죄책감이 없었다. 오히려 거대한 악에 맞서는 ‘정의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독재국가가 아닌 나라에서 국가권력은 마음껏 공격해도 반격할 염려가 없는 상대하기 쉬운 적이다.
인간은 자신이 저지른 죄나 부당한 행위를 감추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착한 사람‘인 척하려고 한다. 세이의 경우고양이를 학대해놓고서 마치 고양이를 구하는 것처럼 하면서까지 동물에게 헌신적으로 사랑을 주는 모습을 연출하려고 했다.
왜 도덕적이고 올바른 주장만 하는 사람 중에는 도리어 죄를 많이 지은 악인이 있는 걸까. 왜 성직자가 어린아이를 성적으로 학대하고, 아동포르노 반대자가 미성년자를 강간하고, 인권을 수호하는 기자나 변호사가 인권을 무시하는 걸까.
자신이 행복하다고 유난히 어필하는 인간이 사실은 불행하거나 외로운 것처럼, 자신이 저지른 죄가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인간일수록 비슷한 행위를 소리 높여 비판하는 법이다. 세상 사람들은 설마 그렇게 주장하는 인간이그런 죄를 지을 줄은 꿈에도 모를 테니까.
그렇기에 노조미의 선배 형사들은 종종 범죄행위나 부도덕한 행위를 규탄하는 인간을 제일 먼저 의심하라고 교육했다. 마약이나 폭력, 포르노를 이상할 정도로 비판하는 사람을 잘 지켜보면 진짜 실체가 드러나기도 한다. 이런 경우 여론은 ‘그토록 범죄 행위를 비판했던 사람이 왜?‘라든지, ‘미라 도굴꾼이 왜 미라가 되었는가?"라며 이해하지 못하지만, 선후관계는 오히려 그 반대이다. 이미 그런 범죄를 저지른 인간이 죄책감에서 눈을 돌리기 위해 ‘올바른 일‘을 한 것처럼 꾸민 것뿐이다.
"동물병원에 데려가야 한다고 비판했던 댓글이 작성되면 세이는 지극히 감정적으로 반응했습니다. 당시의 저는세이가 화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도 세이의 위험성이 드러난 것이었죠." 노조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착한 사람은 자신의 ‘선행‘에 반론을 제기하는 것만으로 화내거나 공격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필사적으로 착한 사람을 연기하고 있었기에 자신의 ‘선한 마음‘이 부정당하게 되면 본성, 즉 자신의 악한 본 모습이 들킬지도모른다는 불안과 공포로 인해 자신에게 반론하는 인간을 공격하고 없애버리려고 하는 것이다.
"어쨌든 그런 소동이 있고 나서 세이는 채널을 삭제했습니다. 세이의 채널은 남의 죄를 고발하는 영상이 많았기에더 비판이 심했거든요. 그제야 저는 세이로부터 해방된 것 같았습니다. 저는 유튜버도 그만두고 계정도 삭제한 다음제대로 학교를 다시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학교에 가지 않으면 여름날의 시체 찾기가 계속 떠오를 것 같았습니다…."
"과거로부터 해방되었다면서 왜 ‘우는 아이의 숲‘을 인터넷에 올린 거죠?" "얼마 전, ‘아사누마 쇼고‘라는 연쇄살인범이 체포됐다는 뉴스를 TV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체포된 범인의 얼굴 사진을 보고 저는 심장이 멈출 뻔했습니다. 그 사람은 분명 ‘세이‘였기 때문입니다. 대학에 와서 친구를 사귀고 공부하면서 평범하게 살고 있던 저는 그로 인해 다시 과거로 돌아갔습니다." 후쿠모토 소타는 두려움을 억누르듯 자신의 팔을 어루만졌다. 알고 보니, ‘세이‘란 이름은 ‘아사누마 쇼고‘가 유튜버로서 활동하는 이름이었던 것이다.
세이는 만화나 소설, 드라마 등 선정적인 표현이 조금이라도 포함되어 있는 창작물과의 접촉을 어머니로부터 금지당해 몰래 읽는 것을 들켰을 때는 ‘저속!‘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체벌을 당했다. 이성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도 금지당했고, 흰 원피스를 입은 동급생과 같이 있었다는 것을 들켰을 때는 ‘남자를 유혹한 옷차림의 여자‘로서 그녀도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제대로 된 윤리 의식과 젠더 의식을 교육하지 않으면 남자는 성범죄자가 된다.‘ 그것이 세이 어머니의 주장이었다. 그녀는 아들이 선정적인 것과 전혀 접촉하지 못하게끔 통제했다.
"아이에 대한 그런 세뇌 교육은 육체적인 학대처럼 쉽게 눈치챌 수가 없어요. 아이에게 어떤 죄의식이나 저주를심어주어 건전한 성장이나 발육을 저해하는 방법이죠." "처음에 저는 세이가 고결하고 멋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에 반해 저는 얼마나 저속한가, 하고 열등감을 느꼈죠...."
"중학생이었다면 아직 사춘기였을 테니까요. 하지만 오히려 그런 것을 완전히 기피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어떤 면에서는 불건전하다고 할 수도 있겠죠. 뭐든지 적당히 흥미를 가지고, 적절히 보고 배우지 않으면 중도(中道)를 알지못해 어디서 멈춰야 할지 모르기 때문일 겁니다."
여성을 표적으로 삼는 엽기살인범의 과거를 더듬어 가다보면 결벽증인 부모에 의해 선정적인 것을 전부 악으로여기고 금지당해서 오히려 여성관이 일그러졌다는 이야기를 가끔 듣게 된다. 성적인 매력을 지닌 여성을 단죄하기위해 덮치거나, 선정적인 것을 피하다 보니 오히려 과도하게 여성을 미화하여 망상과 현실의 차이에 실망하고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어머니와 비슷한 여성이나 어머니가 혐오했던 성적인 매력을 지닌 여성을 표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아사누마 쇼고의 과거를 듣고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미국을 뒤흔들었던 연쇄 살인마 에드워드 게인이었다. 에드워드 게인의 어머니도 성행위에 혐오감을 가지고 있었다. 남편을 조롱하고 성행위는 자식을 낳기 위해 억지로 했다. 희망하던 여자아이는 태어나지 않았고, 두 번의 임신이 전부 남자아이였기에 상당히 실망했다고 한다. 선정적인 것을 혐오하는 어머니는 남자의 성기를 악의 상징으로 생각해서 남자아이에게 자신의 성기에 침을 뱉도록 강요했다. 어머니의 일그러진 교육으로 인해 에드워드 게인은 자신의 ‘남성성‘을 부끄럽게 여기게 되었다. 선정적인 것에 면역이 없어서 상스런 농담을 듣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빨개져 도망치기 일쑤였다.
이윽고 가족이 전부 사망한 후, 에드워드 게인은 점차 시체나 식인욕구에 광적인 집착을 보이게 되었다. 그는 무덤에서 어머니와 비슷한 중년 여성의 시체를 파내어 해체하고, 그 피부로 조끼를 만들어 입고, 인육으로 양말을 만들었다. 두개골로 그릇을 만들고 입술로는 자외선 차단제를 만들었다. ‘남자라는 성‘을 혐오하도록 교육받은 결과, 자신의 성기를 잘라낼 정도였다. 그 대신 여성의 시체를 해체하는 것에 성적 만족감을 느끼게 되었다. 시체의 유방으로 만든 조끼를 입으며 밤마다 농장을 배회했던 것도 ‘남성성‘을 부정하도록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체포된 에드워드 게인의 집에서는 옷이나 식기, 가구로 가공된 15명의 여성 시체가 발견되었다. 시체 손괴뿐만 아니라 살인까지 저지른 에드워드 게인은 결국 재판에서 정신장애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77세의 일기로 사망할 때까지 정신병원에서 지냈다.
에드워드 게인은 ‘양들의 침묵‘이나 ‘사이코‘ 같은 저명한 작품 속에서 살인범의 모티브가 되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후쿠모토 소타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만화나 라이트노벨에서 인생의 소중한 것을 배웠다고는 말하기 힘들어도 그러한 것들이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도구는 된다고요." 노조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말을 재촉했다. "세이는 만화나 라이트노벨을 금지당해 반 친구들과 전혀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을 겁니다. 요즘에 웹툰을 보지않는 아이는 손에 꼽을 정도잖아요? 공통된 화제가 없으면 대화에 낄 수도 없으니까 세이는 만화나 애니메이션, 라이트노벨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을 어떤 시선으로 쳐다보았을까요. ‘윤리 의식‘이 없는 인간이라고 무시했거나, 냉소적으로 바라보았을 거예요. 결국 인간관계를 구축하는 기회를 제대로 얻지 못하고 성장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후쿠모토 소타의 분석이 맞았는지 틀렸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아사누마 쇼고와 같은 세대를 산 사람들의 시각은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학교생활을 하면서 누구나 소외되지 않기 위해 노력했을 테니까. 후쿠모토 소타가 나직이 말했다. "... 이것이 제가 체험한 내용 전부입니다."
아사누마 쇼고가 ‘시체 찾기‘라는 게임 같은 말을 꺼낸 것은 집에서 발견된 만화나 게임, 영화의 영향이 아니었다. 분명 고등학생 때의 ‘추억‘을 잊지 못했던 것이다.
과거가 현재를 만든다. 삶은 그런 것이다. 단편적으로 현재만을 살아가는 인간은 없다. 전부 인과관계가 있다. 본인이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지 지금의 선택에는 과거에 행해온 선택들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어머니의 교육이 아사누마 쇼고를 일그러뜨리고 살인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시체에 집착한 한여름의 시체찾기. 그곳은 그에게 강렬한 추억의 장소인 걸까. 아니, 어쩌면 증오스런 존재를 영원히 묻어버릴 수 있는 장소일지도. 그렇기에 그는 자신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3인조 중 한 명을 죽이고 그 시신을 같은 장소에 묻어버렸다.
그 여름에 소타는 세이를 만나 그 일그러진 인간성에 공포를 느꼈다. 세이가 자란 가정 환경을 듣고 그것이 살인의 원인이 되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실제로 지난날 만났던 여형사도 악명 높은 다른 엽기살인범의 생애와의 공통점을 이야기하며, 세이가 그렇게 된 이유를 납득한 것 같았다.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 ‘편견과 단점.‘ 결국 인간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범죄자에 대해 ‘알기 쉬운 원인‘을 찾으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소타는 사람들마음속에 있는 편견이 전부 까발려진 기분이 들었다.
그럴듯한 이유라면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로 본질이고 진실인 걸까. 범죄자들의 범행동기를 알기 위해 전문가는 범죄자들이 이전까지 살아온 삶을 조사한다. 그들의 취미를 조사하고그들의 인간관계도 조사한다. 거기서 원인을 찾으려고 한다. 그 이유는 달리 범죄자들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세이는 그것을 역이용한 게 아닐까. 스스로 어머니의 ‘무균 교육‘이 엽기살인의 원인이라고 말하면서 책임을 어머니에게 전가한 것이다. 마치 만화나게임의 영향으로 죄를 저질렀다고 가볍게 대답하는 것처럼.
그의 말에 신빙성은 있는 것일까? 본인이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 그것이 본질이나 진실의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자기 이외의 무엇인가에게 죄를 떠넘기려고 한다.
‘나는 너를 동생처럼 생각해.‘ 니시얀의 마지막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그가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었다는 사실이 새삼 느껴졌다. 지금은 알 수 있다. 니시얀이 불성실한 영상을 찍지 말라며 주의를 준 것은 거짓된 모습으로 고민하는 자신처럼되지 말라는 자학적인 조언이었던 것이다. 정말로 소타를 생각해서 해준 말이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자신을 위로해준 여형사의 말을 니시얀에게도 전하고 싶었다. ‘어릴 때 겁쟁이였다는 것을 처벌할 법은 세상에 없습니다.‘ 니시얀도 그 말에 위로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저야말로 감사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다행입니다." 소타는 여러 생각을 하며 요양 시설을 나왔다. ‘한 인간의 과거는 자신이 짊어지고 살아가야 할 짐이다.‘ 니시얀뿐만이 아니다. 세이도 소타도 마찬가지이다. 모두가 과거와 현재를 짊어지고 살아간다. 그 과거가 법에 의해 심판할 수 없는 과거라 할지라도.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자문해야 한다. 소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저지른 과거는 과연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인가.‘ 올해 여름도 끝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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