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44
「송인」 정지상, 送人 鄭知常

雨歇長堤草色多(우헐장제초색다)
비 갠 긴 둑엔 풀빛이 짙어 가는데

送君南浦動悲歌(송군남포동비가)
남포에서 임 보내며 슬픈 노래 부르네

大同江水何時盡(대동강수하시진)
대동강 물은 어느 때 마르려는지

別淚年年添綠波(별루년년첨록파)
해마다 이별 눈물 푸른 강물에 더해지네


정지상, 출처 네이버

서경정씨의 시조
이칭별칭 호 남호(南湖)
유형 인물
시대 고려
출생-사망 미상 ~ 1135년(인종 13)
성격 관리, 문신
출신지 서경(西京)
성별 남
관련사건 묘청의 난
저서(작품) 신설(新雪), 향연치어(鄕宴致語), 백률사(栢律寺), 서루(西樓)
대표관직(경력) 지제고(知制誥)

☆ 지제고
고려 시대에, 왕의 조서(詔書)나 교서(敎書) 따위의  
글을 기초하여 바치는 일을 맡아보던 벼슬. 내지제고와 외지제고의 구분이 있었는데, 조선 시대에 지제교로 고쳤다.

p.46
김부식과 정지상은 문장으로 동시에 이름을 날린 라이벌로 서로 다투며 사이가 좋지 않았다.  어느날  정지상이 ˝절에는 염불소리 그치고  하늘은 유리처럼 맑다(琳宮梵語罷 天色淨琉璃)˝라는 글을 지었는데,  김부식이 이 글귀를 빼앗고자 했으나 정지상은 주지 않았다. 나중에 정지상은 김부식에게 주살되어 음귀(陰鬼)가 되었다.
김부식이 어느날 봄을 읊은 시를 지어 ˝버들은 천 가닥으로 푸르고 복사꽃은 만 점으로  붉구나(柳色千絲綠 桃花萬點紅)˝라 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정지상 귀신이  김부식의 뺨을 때리며 ˝천 가닥인지 일만 점인지 누가 세어보았느냐? ‘버들은 가닥마다 푸르고 복사꽃은 점점이 붉다(柳色絲絲綠 桃花點點紅)‘라고 해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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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북 허가증을 받기까지
솔직히 말해서 나의 북한답삿길이 이렇게 빨리 열릴 줄은 몰랐다. 내가 북한답사의 희망을 처음 말한 것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첫째 권을내고 어느 시사주간지와 가진 인터뷰에서였으니까, 1993년 6월의 일이다. 이듬해에 둘째 권을 내면서는 아예 서문에 그런 뜻을 밝혀두었다. 다만 그때는 국토박물관의 온전한 답사를 위해서 북한의 문화유산까지 다루어야 한다는 당위성과 희망을 말했을 뿐이지 어떤 전망이나 준비가 따로 있었던 것은 아니다. 또 당시 상황에서는 이런 엄청난 일이 성사되리라고 기대하는 사람도 없었다. - P21

"리용객 여러분을 렬렬히 환영합니다"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가 얼마나 큰 행운이고 얼마나 큰 영광인가 내 칠자인지 팔자인지에 이런 특혜가 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해봤다. 북한 문화유산답사기란 그저 해본 소리였는데 진짜로 내일 평양에들어가게 된 것이다. - P25

고음의 맑은 목소리를 가진 여승무원이 힘찬 평양말씨로 안내방송을 했다.

"JS152 승무원은 리용객 여러분을 렬렬히 환영합니다. 평양까지 비행거리는 1천 킬로미터, 비행시간은 1시간 30분을 예견합니다. 승무원의 방조(도움)가 필요하신 분은 머리 위의 금단추를 눌러주십시오."

그리고 비행기는 활주로를 향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 P27

이내 프로펠러가 굉음을 내며 돌아가더니 우리 비행기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비행기가 수평을 잡고 편안히 날아가자 창밖으로는 황해바다가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렇게 평양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 P28

여승무원의 고향 사랑
12시 비행기인지라 기내에서 점심식사가 나왔다. ‘곽밥(도시락)‘에 간단한 디저트가 곁들여져 있는 것이 여느 비행기 음식과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밥이건 빵이건 기름기가 적고 반찬에는 조미료가 들어 있지 않은것을 단박에 느낄 수 있었다. 윤기와 부티를 즐기는 사람에게는 이 모든게 궁기(窮氣)로 보였을 것이고 천연스러움을 찾는 사람에게는 순진무구로 비쳤을 것이다. 이런 음식의 감각은 북한에 체류하는 열이틀 동안생활문화 곳곳에서 느끼게 된 북한의 보편적인 인상이기도 했다. - P28

"북조선의 문화유산을 남한에 소개하려고 왔습니다."
"그렇습니까? 이야! 이거야 정말 좋은 일로 오셨습니다. 그러면 반드시 정방산(正方山) 성불사(成佛寺)에 가보십시오. 성불사는 북조선에서 할아버지절이라고 합니다. 가장 오래된 건물이 있답니다. 성불사에는 또 우물이 셋 있단 말입니다. 남자중 샘물, 여자중 샘물, 아기중 샘물입니다. 그중에서 여자중 샘물이 가장 맛있단 말입니다." - P29

"거기가 제 고향이거든요." - P30

"우리 비행기가 강하를 시작했습니다. 모두 걸상띠를  다시를매어야겠습니다. 우리는 15분 뒤 평양 순안비행장에 도착하겠습니다. 평양의 기온은 20도, 날은 개었습니다." - P30

"지금까지 여러분께서 들으신 음악은 교향악 ‘미제의 숨통을 끊어라‘였습니다." - P32

"그렇지만 교수 선생, 오통로에 맞춰야 합니다."
"오통로라니?"
"거 뭐라고 하나………… 5번에 맞추십시오."
"아, 아, 채널 5! 알았습니다."

이후 서울집에 돌아와서 나는 텔레비전을 켤 때면 KBS는 9통로, MBC는 11 통로라고 바꾸어 부르면서 "여보, 구통로 좀 켜봐요" 하고 말하는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우습고 재미있더니, 이제는 일상용어가 되어 채널이 더 낯설고 거북한 단어가 되어간다. 나는 이런식으로 우리말 생활용어를 인해 동무에게 많이 배워왔다. - P34

다만 딱 한번 호기심에 타봤는데, 벤츠가 좋긴 좋은 차였다. 그런데 그다음날 다시 버스를 타니까 그전까지  아무 불편을 못 느끼던버스 뒷자리가 왜 그렇게 딱딱하고 요동을 치는지 다시 길이 들 때까지는 시간이 한참 걸렸다. 역시 벤츠 같은 차는 타려면 계속 타야지 잠깐 탈것은 못된다는 중요한 사실을 알았다. - P36

"방향적으로 말하여, 유적유물을 학술적으로 조사하고 과학적으로해석할 수 있도록 최선, 최대로 보장하겠습니다." - P37

북측 안창복 단장의 환영인사말이었다.

"우리가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은 해방 50년 만에 처음입니다. 신청은 좀 있었지만 허락은 처음입니다. 아마도 이 사업이 제대로 되면 사람들은 우리가 소리없이 위대한 사업을 했다고 평가해줄 겁니다. 중앙일보사 통일문화연구소는 이 사업에 아주 좋은 종자(種子)를  제시하셨습니다. 문화유산은 민족의 동질성을 확보하는 가장 좋은 계기를마련해줄 것입니다. 방향적으로 말해서, 교수 선생께 부탁드리겠습니다. 부디 민족통일에 도움이 되는 글을 써주십시오. 호상화해가 시작되는 단초가 되는 글을 남겨주십시오. 사실 통일이 별거겠습니까. 이렇게 만나다보면 통일이 자연 되는 것이죠. 교수 선생도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 P38

"방향적으로 말해서, 나는 있는 대로 보고 느낀 대로 쓸 것입니다." - P38

평양의 상징은 대동강 모란봉평양의 첫 답사는 대동문(大同門)에서 시작하여 평양성 유적지를 두루 둘러보는 것으로 잡았다. 그것은 나의 강력한 요구이기도 했다.
역사도시에는 반드시 그 도시를 상징하는 유적이 있는 법이다. 파르테논신전을 보아야 아테네에 온 것 같고 에펠탑을 보기 전에는 빠리에 온것 같지 않음이 그것이다. 그렇게 따져볼 때 평양의 상징은 당연히 모란봉의 평양성유적에 있다. - P40

공주의 공산성(公山城)보다도 공산성에서 바라보는 금강이 아름답고, 부여의 부소산성(扶蘇山城)보다도  낙화암에서 내려다보는 백마강이 애잔하고 아련한  역사의 정취를 느끼게 해주듯 평양의 심장은 대동강이다. 또 평양사람들의 삶과 서정은 남김없이 대동강에 실려왔다. - P41

"용강 선생, 평양이 낳은 상징적인 인물이 누구일까요?"
"상징적 인물? 그거야 ‘위대한 수령님‘ 아닙니까. 만경대 고향집 (김일성 생가)에도 가보실랍니까?" - P42

그런데 내가 알고 있는 그 평양의 예술인들이 보여준 예술세계는 어떤식으로든 모두 대동강을 노래하고 그린 것이다. 정지상의 대동강 이별노래「벗을 보내며(送友人)」, 조광진의 부벽루 현판글씨, 뿐만 아니라 김관호가 특선한 해질녘」이라는 작품은 대동강변에서 미역감는 여인들을 그린 것이었고, 김동인의 배따라기」는 대동강의 뱃노래다. 그러니 평양하면 더욱 대동강이며, 평양의 첫 답사는 당연히 거기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 P43

버드나무 가로수의 강변 산책로는 정말 운치있었다. 나는 속으로 이래서 평양을 버들류(柳)자를 써서 ‘유경(柳京)‘이라고 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 P44

 그러고는 곧 정지상의 유명한 시 벗을 보내며의 ‘우헐장제초색다‘가 생각났다.

비갠 긴 강둑에는 풀빛 더욱 푸르른데
남포로 님 보내는 노랫가락 구슬퍼라.
대동강물은 어느 때나 마를 것인가
해마다 이별의 눈물만 푸른 물결에 더하네.

雨歇長堤草色多
送君南浦動悲歌
大同江水何時盡
別淚年年添綠波 - P44

김부식과 정지상은 문장으로 동시에 이름을 날린 라이벌로 서로 다투며 사이가 좋지 않았다. 어느날  정지상이 "절에는 염불소리 그치고 하늘은 유리처럼 맑다(琳宮梵語罷 天色淨琉璃)"라는 글을 지었는데,  김부식이 이 글귀를 빼앗고자 했으나 정지상은 주지 않았다. 나중에 정지상은 김부식에게 주살되어 음귀(陰鬼)가 되었다.
김부식이 어느날 봄을 읊은 시를 지어 "버들은 천 가닥으로 푸르고 복사꽃은 만 점으로 붉구나(柳色千絲綠 桃花萬點紅)"라 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정지상 귀신이  김부식의 뺨을 때리며 "천 가닥인지 일만 점인지 누가 세어보았느냐? ‘버들은 가닥마다 푸르고 복사꽃은 점점이붉다(柳色絲絲綠 桃花點點紅)‘라고 해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 - P46

대동문 · 대동문 · 대동문.
대동강 강둑을 걸은 지 5분도 채 안되어 대동문이 보였다. 그리고 바로곁에 연광정(鍊光亭)이 붙어 있었다.  나는 이 두 건물이 이렇게 가까이 있으리라고는 상상을 못했다. 하기사 평양 내성(內城)의 동쪽 대문이  대동문이고 동쪽 장대(將臺)가 연광정이니 붙어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붙어 있을 것이라 추론하는 것과 실제로 붙어 있는 것을 보는 것은체감의 강도가 완전히 달랐다.
대동강변과 모란봉 일대의 많은 유적 가운데 대(臺)는 을밀대, 누(樓)는 부벽루(浮碧樓)가 압권이라면  정(亭)은 연광정, 문(門)은 대동문을 꼽을 것이다. 더욱이 연광정은 관서8경의 하나로 이름을 얻었고, 대동문은평양성의 정문이니 그 명성이 평양의 울타리를 훨씬 넘는다. - P47

부벽루 회상 둘
연광정 다음 답사처는 당연히 강변 위쪽에 있는 부벽루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안내단장 하는 말이 부벽루는 지금 일반인 출입이 안된다는것이다.
나는 순간 "말도 안됩니다!"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용강 선생은 나의뜻밖의 큰 소리에 다소 당황한 빛을 보이며 부벽루가 있는 영명사(明寺)가 한국전쟁 때 불타버린 다음 요양소가 세워졌기 때문이라며 극구 사정을 늘어놓는다. 그러면서 내가 다소 누그러지는 듯하자 은근히 묻는다. - P57

대동강변 모란봉청류벽(淸流壁)에 높직이 올라앉은  부벽루는 고구려때 절 영명사의 부속건물로 세워졌지만 임진왜란 때 불에 타버리고, 다시 누대가 중건된 것은 1614년, 광해군 6년이라고 했으니 건축적으로 역사가 오래된 것이거나 크게 의미를 둘 것은 없다. 그러나 나는 부벽루에서 보고 싶은 것이 두개 있었다. - P58

눌인 조광진의 행위예술
하나는 그 현판글씨다. 평양사람 눌인 조광진의 명작이자 대표작이며가장 큰 대작이다. 조광진은 말이 어눌하여 눌인이라고 했는데, 당대의이름난 명필로 특히 힘차고 기발한 구성의 예서를 잘 써서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는 "압록강 이동(東)에 이만한  명필이 없다"며그의 글씨에 최고의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특히 그는 큰 글씨를 잘 써서부벽루 현판글씨도 한자 크기가 김장김치독하다. - P59

평양성을 끼고 흐르는 강물,
아! 넓기도 하여라.
강 건너 멀리 아득한 벌판 동쪽에는
점 찍은 듯 까맣게 산, 산, 산……… - P64

이 김황원의 시구는 지금 부벽루가 아닌 연광정에 그 원문과 번역문이주련으로 걸려 있어 답사객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있었다.

긴 성벽 한쪽 면에는 늠실늠실 강물이요,
넓은 벌 동쪽 끝으로는 띄엄띄엄 산들일세.

長城一面溶溶水
大野東頭點點山 - P65

모란봉공원 소묘
떠오르부벽루에 갈 수 없는 나의 아쉬움을 달래려는지 안내단장은 내 어깨를잡으며 길을 이끈다.
"교수 선생, 이거 좀 서운하긴 하겠지만 이제 을밀대 올라가보면부벽루도 보이고 부벽루 아래 릉라도(綾羅島)와 김황원이 말한 점점점도 더 멀리 보입니다. 기운 내기요!" - P66

견고한 고구려 성문, 칠성문
또 어느만큼 오르니 왼쪽으로 자그마한 문루(門樓)가  우리를 맞이한다. 칠성문(七星門)이란다.  칠성이라면 북두칠성에서 유래한 것일 테니북문이 틀림없는데, 북문 중에서도 평양 내성의 북문이다.
고구려 때 쌓은 평양성은 자그마치 네겹으로 둘려 있어 내성 · 외성(外城)·중성(中城)·북성(北城)으로 되어  있다. - P67

배따라기」의 김동인이라는 작가상
「배따라기」의 마지막 부분에 형이 아우의 배따라기 소리를 듣고 모란봉을 뛰어다니며 찾아보는 얘기가 나온다. 을밀대 쪽인 것 같아 그쪽으로 달려갔다가 또 기자묘 쪽으로 달려가보곤 한다. 그렇다면 그때 형이 서성이던 곳이 바로 여기쯤 될 터다. 즉 나는 지금 소설 「배따라기」의무대에 서 있는 것이다. - P70

어렸을 때 동인은 울음을 한번 터뜨리면 좀처럼 그치지 않았다고한다. 또 울 때는 발버둥을 치는 까닭에 가족들은 혹시나 어린것의 발꿈치에 가시라도 박히면 어쩌나 하여 비단요를 깔아놓아주어 그 위에 앉아 발버둥치며 울게 하였다고 한다. (・・・)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그의 오만하다는 성미가 무엇에서부터 비롯하였는지를 알 수 있을것이다. - P71

알다시피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 1892~1950)는  도덕과 계몽을 내세웠고 김동인이 얘기한 것은 패륜과 불륜이었다. 그런데 도덕을 얘기한춘원은 결과적으로 도덕적 패륜에 빠졌고 김동인은 지금도 내 가슴에 살아있는 정신으로 남아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춘원이 말한 것은 계몽이라기보다 관념이었고, 김동인이 얘기한 것은 패륜이 아니라 현실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 P71

을밀대 성가퀴에 기대서서
칠성문에서 을밀대까지는 길이 곧게 뻗어 있다. 군사적으로는 망루지만 평시에는 정자로 쓰였단다. 6세기 중엽, 고구려 평양성을 쌓을 때 을지문덕(乙支文德)의  아들인 을밀장군이 쌓은 데에서 그 이름이 유래한다고 들었는데, 여기 와서 보니 을밀선녀가 이곳 경치에 반해 하늘에서 자주 내려와 놀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는 설과 웃미르터, 즉 웃밀이언덕이라는 이름을 이두식으로 표기한 것이라는 설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 P73

을밀대 정자
  고구려 때 쌓은 을밀대 축대는 평양성의 견고함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유적이다. 그 정자는 평양8경의 하나로, 사방으로 그림 같은 경치가 한눈에 들어온다고 해서 사정이라는 이름을 얻기도 했다. - P73

대동강 모란봉 사방의 아련한 풍광들이 이렇게 다 여기로 모여든다.
아, 알겠다! 그래서 을밀대의 옛 이름이 승경(勝景)을  모았다는 뜻으로 취승대(聚勝臺)라고도 했고,  사방이 탁 트였다고 해서 사허정(四虛亭)이라고도 한  것이구나. - P74

이 그림의 사진을 기자는 갖고 있지만 벌거벗은 여인을 그린 것인고로 게재치 못함을 양해 바람. - P76

날이 어두워지고 황혼에 땅거미가 내려앉을 때에도 그들의 모습은 내눈에서 사라지지 않았으니, 그것은 꿈에나 그리던 나의 소망이 그렇게나타난 것인가, 아니면 정녕 온몸으로 사무치게 그리워하였던 대동강이남녘에서 온 반가운 객(客)에게 보내는 뜨거운 환영(歡迎)의  환영(幻影)이었는가!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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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율을 일으키는 또 하나의 물건은 에밀리가 혼자 황야를 쏘다닐 때 가지고 다녔다는 작은 참나무 걸상이다. 그녀는 그 위에 앉아서 글을 쓰거나 아니면 글쓰기보다 더 나은 무엇인가를 생각했을 것이다.

-알라딘 eBook <집 안의 천사 죽이기> (버지니아 울프) 중에서

에밀리가 자기 불도그를 이곳에 몰아넣고 두들겨 팼다는 것이다.

-알라딘 eBook <집 안의 천사 죽이기> (버지니아 울프) 중에서

브론테가에서는 불마스티프 종의 큰 개를키웠는데, 어느 날 그 개가 침대보 위에서낮잠을 자려 하자, 나이 든 하녀의 호소를들은 에밀리가 개를 계단 밑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반항하는 성난 개를 주먹으로 흠씬두들겨 팼다는 일화가 남아 있다. 그 이후개는 에밀리를 무척 따랐다고 한다.

줄지은 이름들이 짧은 간격을 두고 차례로 세상을 떠났음을 보여 준다. 어머니 마리아, 딸 마리아, 엘리자베스, 브랜웰, 에밀리, 앤, 샬럿,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들 모두보다 더 오래 살았던 늙은 아버지. 에밀리는 겨우 서른 살에 죽었고, 샬럿도 그보다 아홉 살밖에 더 먹지 못했다.

-알라딘 eBook <집 안의 천사 죽이기> (버지니아 울프) 중에서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10 이것이 그들의 이름 아래쪽에 새겨진 구절이니, 그럴 만도 하다. 싸움이 아무리 험했다 하더라도, 에밀리는, 그리고 누구보다도 샬럿은, 그 싸움에서 승리했으니 말이다.

-알라딘 eBook <집 안의 천사 죽이기> (버지니아 울프) 중에서

<우리는 우리가 미치는 영향을 중시해야 해요. 우리 삶에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 경험으로 알잖아요. 그러니 우리도 분명 다른 사람들에게 같은 영향을 미치리라는 걸 기억해야만 하지요.>

-알라딘 eBook <집 안의 천사 죽이기> (버지니아 울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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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역사는 남성들로 이어진 역사이지 여성들의 역사가 아니다. 우리는 남성 선조들에 대해서는 항상 이러저러한 사실들, 특별한 점들을 알고 있다. 그들은 군인이었거나 선원이었으며, 공직을 수행했거나 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우리의 어머니, 할머니, 증조할머니 들에 대해서는 무엇이 남아 있는가? 막연히 전해져 오는 이야기뿐이다. 누구는 아름다웠고, 누구는 빨강머리였으며, 누구는 여왕의 키스를 받았다는 등의 이야기 말이다. 우리가 그녀들에 대해 알 수 있는 사실이라고는 이름과 결혼 날짜, 낳은 자식 수가 고작이다.

여성들의 목소리 사이에 이처럼 이상한 침묵이 끼어드는 데는 물론 법과 관습의 책임이 클 것이다. 여성이 ─ 15세기에 그랬듯이 ─ 부모가 택한 남자와 결혼하지 않는다고 매 맞고 내동댕이쳐지기 일쑤였던 때에는, 정신적 분위기가 예술 작품의 생산에 적합하지 않았다. 여성이 ─ 스튜어트 시대6에 그랬듯이 ─ 자기 의사와는 무관하게 <법과 관습이 정하는바> 아내의 주인으로 군림하게 될 남자와 결혼해야 했던 때에는, 글쓰기를 위한 격려는커녕 시간조차 없었을 것이다.

-알라딘 eBook <집 안의 천사 죽이기> (버지니아 울프) 중에서

그러므로 19세기 초 영국에서 비범한 소설들이 쏟아져 나왔다는 것은 법과 관습과 풍속에서 무수한 작은 변화가 일어났음을 말해 준다. 19세기 여성은 약간의 여가와 교육을 누렸다. 중류층과 상류층 여성이 자기 의사로 남편을 택하는 것은 더 이상 예외적인 일이 아니었다. 네 명의 위대한 여성 작가들 ─ 제인 오스틴, 에밀리 브론테, 샬럿 브론테, 조지 엘리엇 ─ 중에서 아무도 자식을 낳지 않았고, 두 명은 아예 결혼하지 않았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사실이다.

-알라딘 eBook <집 안의 천사 죽이기> (버지니아 울프) 중에서

소설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성이 쓰기에 가장 쉬운 것이다. 그 이유를 찾기도 어렵지 않다. 소설은 집중을 가장 덜 요구하는 예술 형식이다. 소설은 희곡이나 시보다 훨씬 쉽게 들었다 놓을 수 있다. 조지 엘리엇은 작품을 쓰다 말고 아버지를 간호했다. 샬럿 브론테는 글 쓰던 펜을 내려놓고 감자 싹을 도려냈다. 여성은 공용의 거실에서 사람들에 둘러싸여 살았던 만큼, 인물을 관찰하고 성격을 분석하는 데 눈이 뜨였다. 그녀가 받은 훈련은 시인이 아니라 소설가가 되기에 적합한 것이었다.

-알라딘 eBook <집 안의 천사 죽이기> (버지니아 울프) 중에서

톨스토이에게서 그가 군인으로서 전쟁에 대해 아는 것, 부유한 청년으로서 교육을 받고 온갖 경험을 할 수 있었던 덕분에 인생과 사회에 대해 아는 것을 제거한다면, 『전쟁과 평화』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초라해질 것이다.

-알라딘 eBook <집 안의 천사 죽이기> (버지니아 울프) 중에서

반면,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 『빌레트Villette』, 『미들마치Middlemarch』등은 중산층의 거실에서 겪을 수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경험을 유보당한 여성들이 썼다. 전쟁이나 항해나 정치나 사업에 대한 어떤 직접적 경험도 그녀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들의 정서적인 삶조차도 법과 관습으로 엄격히 규제되었다.

-알라딘 eBook <집 안의 천사 죽이기> (버지니아 울프) 중에서

하지만 그것은 결국 목적을 위한 수단일 뿐이며, 목적에 도달하려면 여성은 반대를 무릅쓸 용기와 자신에게 진실하려는 결의를 지녀야 한다. 왜냐하면 소설이란 수천 가지 다른 것, 인간적, 자연적, 신적인 온갖 것에 대한 진술이며, 그것들을 서로서로 연결시키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모든 훌륭한 소설에서는 이런 상이한 요소들이 작가의 비전에 힘입어 제자리를 잡고 있다. 하지만 또한 그것들은 또 다른 질서, 즉 인습이 부과하는 질서를 따르고 있다. 그런데 그런 인습의 심판관은 남성들이고, 그들이 인생의 가치 체계를 수립해 왔으니, 소설 또한 크게는 인생에 기초해 있는 만큼 소설에서도 이런 가치들이 만연하게 된다.


-알라딘 eBook <집 안의 천사 죽이기> (버지니아 울프) 중에서

여성의 삶에서 비개인적인 것의 증가는 시적 정신을 고무하게 될 것인데, 여성 소설이 여전히 가장 취약한 것은 바로 시(詩)적인 면에서이다. 여성들은 비개인적인 것을 향해 나아갈수록 사실들에 덜 함몰되고, 자신들의 관찰에 들어오는 세세한 사항들을 정확하게 기록하는 데만 만족하지 않게 될 것이다. 여성들은 개인적이고 정치적인 관계를 넘어 시인이 풀고자 하는 좀 더 폭넓은 문제를, 우리의 운명이나 인생의 의미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알라딘 eBook <집 안의 천사 죽이기> (버지니아 울프) 중에서

예언하건대, 여성은 장차 소설은 덜 쓰되 더 훌륭한 소설을 쓸 것이고, 소설뿐 아니라 시와 비평과 역사를 쓸 것이다. 하지만 물론 이것도, 여성이 자신에게 그토록 오랫동안 거부되었던 것, 즉 여가와 돈과 자기만의 방을 갖게 되는 황금시대, 저 전설적인 시대를 바라보며 하는 말이다.

-알라딘 eBook <집 안의 천사 죽이기> (버지니아 울프) 중에서

<내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명성>이라고 뉴캐슬 공작 부인 마거릿 캐번디시2는 썼다. 그리고 그 소원은 그녀가 살아 있는 동안에 이루어졌다. 현란한 옷차림, 유별난 습관, 새침한 행동거지, 거침없는 말씨 등으로 그녀는 생전에 위대한 사람들의 조롱과 유식한 사람들의 갈채를 받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알라딘 eBook <집 안의 천사 죽이기> (버지니아 울프) 중에서

<위대한 학자들은 (책은 잘 쓸지 모르지만) 편지를 그리 잘 쓰지는 않아요. 내 생각에 모든 편지는 말하는 것처럼 편안하고 자연스러워야 할 것 같아요.>

-알라딘 eBook <집 안의 천사 죽이기> (버지니아 울프) 중에서

만일 제인 오스틴이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어머니를 패지 못하도록 층계참에 누워 보았더라면,
11 그녀의 영혼도 폭정에 대한 반항심으로 불타올라 그녀가 쓰는 모든 소설은 정의를 부르짖는 외마디 외침으로 소진되었을지도 모른다.

-알라딘 eBook <집 안의 천사 죽이기> (버지니아 울프) 중에서

그녀는 분만 중에 죽었다. 자신의 삶에 대해 그토록 강렬한 감각을 지니고 있었던, 더없이 비참한 가운데서도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 나 자신을 잃는다는 것을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아니, 내가 존재하기를 그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고 외쳤던 그녀가 36세의 나이에 죽었다. 하지만 그녀는 원을 풀었다. 그녀가 땅에 묻힌 후 130년 동안 수백만의 사람들이 죽었고 잊혀 갔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녀의 편지들을 읽으며 그녀의 주장에 귀 기울인다.

-알라딘 eBook <집 안의 천사 죽이기> (버지니아 울프) 중에서

그녀는 마흔여덟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면서, 아버지처럼, 말없음표로 가득 찬 빈 종이를, 그리고 이 두 줄의 시를 남겼다.

아버지, 어떤 아마란스 꽃도 제 이마를 장식하지 못할 거예요.
지금 아버지 무덤가에 피어 있는 것으로 족하니까요.

-알라딘 eBook <집 안의 천사 죽이기> (버지니아 울프) 중에서

『폭풍의 언덕』은 『제인 에어』보다 한층 더 이해하기 어려운 책인 것이, 에밀리가 샬럿보다 더 위대한 시인이기 때문이다. 샬럿은 자기 글에서 웅변적이고 장려하고 열렬한 어조로 <나는 사랑한다>, <나는 미워한다>, <나는 괴로워한다>고 말했다.

-알라딘 eBook <집 안의 천사 죽이기> (버지니아 울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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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건가. 아빠이면서 아빠가 아니다. 남편이면서 남편이 아니다. 게다가 발기조차안 된다. 즉 남자이면서 남자도 아니다.
한심해서 마음이 파르르 떨렸다.

"현장 일을 오래하다 보면 괜히 승진할 거 없다는 생각이 들지." 나카오가 말했다. "승진이라고 해봤자 기껏해야 팀장이잖아. 거기서 더 올라가면 잔업 수당도 없어지고 업무는 갑작스럽게 홱 바뀌고, 좋을 게 하나도 없는 거같아."
"응, 맞는 말이야." 헤이스케는 솔직히 말했다.
"근데 그건 어쩔 수 없어." 나카오는 종이컵 안을 빤히 들여다보며 말했다. "회사라는 게 인생 게임이더라고. 회사에서 승진한다는 건 인간이 나이 드는 것과 똑같아. 승진하고 싶지 않다는 건 나이 들고 싶지 않다는 거야."
"그런가"

"누구든 언제까지나 어린애로 살고 싶지. 그냥 바보인 척하고 싶은 거야. 하지만 주위에서 그걸 인정해주지 않더라고. 너는 이제 아빠니까 정신 똑바로 차려, 너는 이제 할아버지니까 점잖아져, 라는 식이야. 아니요, 나는 그냥 한 남자일 뿐이올시다, 라고 해봤자 아무도 봐주지를 않아. 아이가 생기면 아빠고, 손자가 생기면 할아버지야.
그 사실에서는 도망칠 수가 없어. 그렇다면 오로지 나는 어떤 아빠가 될 것인가, 어떤 할아버지가 될 것인가를 생각해보는 수밖에 없는 거 아니겠어?"
내가 이런 소리를 하는 것도 주제넘지만, 이라고 나카오는 덧붙였다.
"나카오 씨, 항상 그런 걸 생각해?"
"에이, 설마. 언뜻 생각나서 해본 말이야. 장남으로서."
"장남?"
"응, 팀장은 장남, 계장은 아버지, 과장은 할아버지야. 그보다 윗자리는ㆍㆍㆍㆍㆍㆍ 뭔지 잘 모르겠으니까 그냥 죽은 사람이라고 할까?" 나카오가 비어버린 종이컵을 쓰레기통에획던지며 말했다.

"세계가 달라." 별수 없이 헤이스케는 말했다. "나와 우리 딸이 사는 세계와 네가 있는 세계는 완전히 다르단 말이야. 그래서 사귄다고 해도 잘될 수가 없어."

"그이가 나한테 그랬어요. 지금 후미야에게 필요한 것은 아버지다. 엄마 형편이 어렵다는데 아버지인 내가 어떻게든 해줘야 할 거 아니냐………. 그래도 당신이 친아버지도 아닌데, 라고 했더니, 그러면 후미야 입장에서 더 행복한 건 어느 쪽이냐고 묻더라고요."

"친아버지가 내가 아닌 게 더 행복한가. 아니면 아버지는 나라는 것으로 해두는 게 더 행복한가. 그 둘 중에 어느 쪽이냐는 거예요. 내가 한참 생각해보다가 그야 당신이 아버지인 게 더 좋다고 대답했어요. 그랬더니 그이가말하더군요. 거봐, 그렇잖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앞으로도 나는 후미야의 아버지로 남기로 했다. 후미야가 힘든 상황이라면 아버지로서 그 고비를 넘도록 도와주고 싶다…………. 예전에는 후미야가 내 핏줄이 아니라는 말

나오코………….
당신, 아직 사라지지 않은 거야? 단지 사라진 척했던 것뿐이야?
헤이스케는 처음으로 모나미가 나왔을 때의 일을 떠올렸다. 그 전날, 헤이스케는 한 가지 결심을 했었다. 그녀를 모나미로만 대하고 나는 오로지 아빠가되자고 결심했었다. "모나미"라고 부르는 것으로 그런 자신의 의지를 표했었다.
그런 의지를 마주하고 나오코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남편이 어떤 각오를 했는지 깨닫고 분명 그녀도 한 가지 결단을 내렸던 게 아닐까.
모나미가 살아 돌아온 것처럼 하고, 앞으로 계속 모나미로 살아가자, 라고,
하지만 그건 갑작스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한 가지 방법을 선택했다. 그것이 나오코를 조금씩 지워간다는 것이었다.
9년 동안…………. 그녀가 연기를 계속해온 햇수다. 그것을 그녀는 죽을 때까지 이어갈 마음인 것이다.

야마시타 공원에서의 일이 생각났다. 그날은 나오코가 사라진 날이 아니라 그녀가 나오코로서 사는 것을 완전히 포기했던 날이었던 게 아닐까. 모나미로서 눈을 뜬 뒤에 큰 소리로 엉엉 울었던 것은 자기 자신을 내버린 슬픔의 눈물이었던 게 아닐까.
나오코, 당신은 아직 살아 있는 건가………….

"와아, 예쁘다! 예쁘다는 말밖에 달리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어." 그리고 헤이스케를 보았다. "그렇죠, 아버님?"
"그딴 건 30년 전부터 알고 있었어." 헤이스케는 말했다. "그보다 후미야, 잠깐 이리 와봐."
"네, 무슨 일이신지."
후미야를 다른 대기실로 데려갔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헤이스케는 이제 곧 모나미와 결혼할 놈의 얼굴을 보았다. 바짝 긴장한 얼굴이다.
"내가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네, 말씀만 하십쇼."
"별로 어려운 거 아니야. 흔히들 얘기하잖아. 신부아버지가 신랑에게 꼭 하고 싶다는 거. 그걸 나도 하게 해줬으면 하는데."
"예? 그게 뭔데요?"
"이거야." 헤이스케는 주먹을 후미야 앞에 내밀었다. "좀 맞아줘."
"예?" 후미야의 몸이 흠칫 뒤로 젖혀졌다. "지, 지금 여기서요?"
"안 되겠나?"
"아, 아뇨, 이것 참, 어떻게 하지, 지금 사진도 찍어야 하는데." 후미야는 머리를 긁적이더니 이윽고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저렇게 아름다운따님을 데려가는데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요. 한 대, 기꺼이 맞겠습니다."

"아니, 두 대야."
"두 대요?"
"한 대는 딸을 빼앗긴 몫이고, 또 한 대는………… 다른 한 사람의 몫이야."
"다른 한 사람……...."
"뭐든 됐어. 눈 꽉 감으라고."
헤이스케는 주먹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하지만 그 주먹을 휘두르기도 전에 눈물보가 터져버렸다. 그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얼굴을 가리고 목이쉬도록 꺼억꺼억 울었다.

《비밀》을 쓰기까지 나는 장편을 1년 넘게 출간하지 못했다. 당연히 서평가들은 한동안 나를 다뤄주지 않았다. 하지만 《비밀》은 오랜만에 내는 장편소설이고 내용도 내용인지라 서평가들이 언급해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라는 내 나름대로의 계산이 있었다. 실제로 여기저기서상당히 이 작품을 얘기해주었다. 결과적으로 많은 독자들에게 받아들여져서 나에게는 자타 공히 인정하는 터닝 포인트 작품이 되었다. 방향을 전환해서 인간의 마음을 써보자, 라고 내내 고심했던 것이 <비밀>에서 결실을 맺었다. 솔직히 다행이다. 라고 생각했다. ‘
-<야성시대> 2006년 Vol.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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