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율을 일으키는 또 하나의 물건은 에밀리가 혼자 황야를 쏘다닐 때 가지고 다녔다는 작은 참나무 걸상이다. 그녀는 그 위에 앉아서 글을 쓰거나 아니면 글쓰기보다 더 나은 무엇인가를 생각했을 것이다.

-알라딘 eBook <집 안의 천사 죽이기> (버지니아 울프) 중에서

에밀리가 자기 불도그를 이곳에 몰아넣고 두들겨 팼다는 것이다.

-알라딘 eBook <집 안의 천사 죽이기> (버지니아 울프) 중에서

브론테가에서는 불마스티프 종의 큰 개를키웠는데, 어느 날 그 개가 침대보 위에서낮잠을 자려 하자, 나이 든 하녀의 호소를들은 에밀리가 개를 계단 밑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반항하는 성난 개를 주먹으로 흠씬두들겨 팼다는 일화가 남아 있다. 그 이후개는 에밀리를 무척 따랐다고 한다.

줄지은 이름들이 짧은 간격을 두고 차례로 세상을 떠났음을 보여 준다. 어머니 마리아, 딸 마리아, 엘리자베스, 브랜웰, 에밀리, 앤, 샬럿,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들 모두보다 더 오래 살았던 늙은 아버지. 에밀리는 겨우 서른 살에 죽었고, 샬럿도 그보다 아홉 살밖에 더 먹지 못했다.

-알라딘 eBook <집 안의 천사 죽이기> (버지니아 울프) 중에서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10 이것이 그들의 이름 아래쪽에 새겨진 구절이니, 그럴 만도 하다. 싸움이 아무리 험했다 하더라도, 에밀리는, 그리고 누구보다도 샬럿은, 그 싸움에서 승리했으니 말이다.

-알라딘 eBook <집 안의 천사 죽이기> (버지니아 울프) 중에서

<우리는 우리가 미치는 영향을 중시해야 해요. 우리 삶에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 경험으로 알잖아요. 그러니 우리도 분명 다른 사람들에게 같은 영향을 미치리라는 걸 기억해야만 하지요.>

-알라딘 eBook <집 안의 천사 죽이기> (버지니아 울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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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역사는 남성들로 이어진 역사이지 여성들의 역사가 아니다. 우리는 남성 선조들에 대해서는 항상 이러저러한 사실들, 특별한 점들을 알고 있다. 그들은 군인이었거나 선원이었으며, 공직을 수행했거나 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우리의 어머니, 할머니, 증조할머니 들에 대해서는 무엇이 남아 있는가? 막연히 전해져 오는 이야기뿐이다. 누구는 아름다웠고, 누구는 빨강머리였으며, 누구는 여왕의 키스를 받았다는 등의 이야기 말이다. 우리가 그녀들에 대해 알 수 있는 사실이라고는 이름과 결혼 날짜, 낳은 자식 수가 고작이다.

여성들의 목소리 사이에 이처럼 이상한 침묵이 끼어드는 데는 물론 법과 관습의 책임이 클 것이다. 여성이 ─ 15세기에 그랬듯이 ─ 부모가 택한 남자와 결혼하지 않는다고 매 맞고 내동댕이쳐지기 일쑤였던 때에는, 정신적 분위기가 예술 작품의 생산에 적합하지 않았다. 여성이 ─ 스튜어트 시대6에 그랬듯이 ─ 자기 의사와는 무관하게 <법과 관습이 정하는바> 아내의 주인으로 군림하게 될 남자와 결혼해야 했던 때에는, 글쓰기를 위한 격려는커녕 시간조차 없었을 것이다.

-알라딘 eBook <집 안의 천사 죽이기> (버지니아 울프) 중에서

그러므로 19세기 초 영국에서 비범한 소설들이 쏟아져 나왔다는 것은 법과 관습과 풍속에서 무수한 작은 변화가 일어났음을 말해 준다. 19세기 여성은 약간의 여가와 교육을 누렸다. 중류층과 상류층 여성이 자기 의사로 남편을 택하는 것은 더 이상 예외적인 일이 아니었다. 네 명의 위대한 여성 작가들 ─ 제인 오스틴, 에밀리 브론테, 샬럿 브론테, 조지 엘리엇 ─ 중에서 아무도 자식을 낳지 않았고, 두 명은 아예 결혼하지 않았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사실이다.

-알라딘 eBook <집 안의 천사 죽이기> (버지니아 울프) 중에서

소설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성이 쓰기에 가장 쉬운 것이다. 그 이유를 찾기도 어렵지 않다. 소설은 집중을 가장 덜 요구하는 예술 형식이다. 소설은 희곡이나 시보다 훨씬 쉽게 들었다 놓을 수 있다. 조지 엘리엇은 작품을 쓰다 말고 아버지를 간호했다. 샬럿 브론테는 글 쓰던 펜을 내려놓고 감자 싹을 도려냈다. 여성은 공용의 거실에서 사람들에 둘러싸여 살았던 만큼, 인물을 관찰하고 성격을 분석하는 데 눈이 뜨였다. 그녀가 받은 훈련은 시인이 아니라 소설가가 되기에 적합한 것이었다.

-알라딘 eBook <집 안의 천사 죽이기> (버지니아 울프) 중에서

톨스토이에게서 그가 군인으로서 전쟁에 대해 아는 것, 부유한 청년으로서 교육을 받고 온갖 경험을 할 수 있었던 덕분에 인생과 사회에 대해 아는 것을 제거한다면, 『전쟁과 평화』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초라해질 것이다.

-알라딘 eBook <집 안의 천사 죽이기> (버지니아 울프) 중에서

반면,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 『빌레트Villette』, 『미들마치Middlemarch』등은 중산층의 거실에서 겪을 수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경험을 유보당한 여성들이 썼다. 전쟁이나 항해나 정치나 사업에 대한 어떤 직접적 경험도 그녀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들의 정서적인 삶조차도 법과 관습으로 엄격히 규제되었다.

-알라딘 eBook <집 안의 천사 죽이기> (버지니아 울프) 중에서

하지만 그것은 결국 목적을 위한 수단일 뿐이며, 목적에 도달하려면 여성은 반대를 무릅쓸 용기와 자신에게 진실하려는 결의를 지녀야 한다. 왜냐하면 소설이란 수천 가지 다른 것, 인간적, 자연적, 신적인 온갖 것에 대한 진술이며, 그것들을 서로서로 연결시키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모든 훌륭한 소설에서는 이런 상이한 요소들이 작가의 비전에 힘입어 제자리를 잡고 있다. 하지만 또한 그것들은 또 다른 질서, 즉 인습이 부과하는 질서를 따르고 있다. 그런데 그런 인습의 심판관은 남성들이고, 그들이 인생의 가치 체계를 수립해 왔으니, 소설 또한 크게는 인생에 기초해 있는 만큼 소설에서도 이런 가치들이 만연하게 된다.


-알라딘 eBook <집 안의 천사 죽이기> (버지니아 울프) 중에서

여성의 삶에서 비개인적인 것의 증가는 시적 정신을 고무하게 될 것인데, 여성 소설이 여전히 가장 취약한 것은 바로 시(詩)적인 면에서이다. 여성들은 비개인적인 것을 향해 나아갈수록 사실들에 덜 함몰되고, 자신들의 관찰에 들어오는 세세한 사항들을 정확하게 기록하는 데만 만족하지 않게 될 것이다. 여성들은 개인적이고 정치적인 관계를 넘어 시인이 풀고자 하는 좀 더 폭넓은 문제를, 우리의 운명이나 인생의 의미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알라딘 eBook <집 안의 천사 죽이기> (버지니아 울프) 중에서

예언하건대, 여성은 장차 소설은 덜 쓰되 더 훌륭한 소설을 쓸 것이고, 소설뿐 아니라 시와 비평과 역사를 쓸 것이다. 하지만 물론 이것도, 여성이 자신에게 그토록 오랫동안 거부되었던 것, 즉 여가와 돈과 자기만의 방을 갖게 되는 황금시대, 저 전설적인 시대를 바라보며 하는 말이다.

-알라딘 eBook <집 안의 천사 죽이기> (버지니아 울프) 중에서

<내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명성>이라고 뉴캐슬 공작 부인 마거릿 캐번디시2는 썼다. 그리고 그 소원은 그녀가 살아 있는 동안에 이루어졌다. 현란한 옷차림, 유별난 습관, 새침한 행동거지, 거침없는 말씨 등으로 그녀는 생전에 위대한 사람들의 조롱과 유식한 사람들의 갈채를 받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알라딘 eBook <집 안의 천사 죽이기> (버지니아 울프) 중에서

<위대한 학자들은 (책은 잘 쓸지 모르지만) 편지를 그리 잘 쓰지는 않아요. 내 생각에 모든 편지는 말하는 것처럼 편안하고 자연스러워야 할 것 같아요.>

-알라딘 eBook <집 안의 천사 죽이기> (버지니아 울프) 중에서

만일 제인 오스틴이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어머니를 패지 못하도록 층계참에 누워 보았더라면,
11 그녀의 영혼도 폭정에 대한 반항심으로 불타올라 그녀가 쓰는 모든 소설은 정의를 부르짖는 외마디 외침으로 소진되었을지도 모른다.

-알라딘 eBook <집 안의 천사 죽이기> (버지니아 울프) 중에서

그녀는 분만 중에 죽었다. 자신의 삶에 대해 그토록 강렬한 감각을 지니고 있었던, 더없이 비참한 가운데서도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 나 자신을 잃는다는 것을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아니, 내가 존재하기를 그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고 외쳤던 그녀가 36세의 나이에 죽었다. 하지만 그녀는 원을 풀었다. 그녀가 땅에 묻힌 후 130년 동안 수백만의 사람들이 죽었고 잊혀 갔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녀의 편지들을 읽으며 그녀의 주장에 귀 기울인다.

-알라딘 eBook <집 안의 천사 죽이기> (버지니아 울프) 중에서

그녀는 마흔여덟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면서, 아버지처럼, 말없음표로 가득 찬 빈 종이를, 그리고 이 두 줄의 시를 남겼다.

아버지, 어떤 아마란스 꽃도 제 이마를 장식하지 못할 거예요.
지금 아버지 무덤가에 피어 있는 것으로 족하니까요.

-알라딘 eBook <집 안의 천사 죽이기> (버지니아 울프) 중에서

『폭풍의 언덕』은 『제인 에어』보다 한층 더 이해하기 어려운 책인 것이, 에밀리가 샬럿보다 더 위대한 시인이기 때문이다. 샬럿은 자기 글에서 웅변적이고 장려하고 열렬한 어조로 <나는 사랑한다>, <나는 미워한다>, <나는 괴로워한다>고 말했다.

-알라딘 eBook <집 안의 천사 죽이기> (버지니아 울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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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건가. 아빠이면서 아빠가 아니다. 남편이면서 남편이 아니다. 게다가 발기조차안 된다. 즉 남자이면서 남자도 아니다.
한심해서 마음이 파르르 떨렸다.

"현장 일을 오래하다 보면 괜히 승진할 거 없다는 생각이 들지." 나카오가 말했다. "승진이라고 해봤자 기껏해야 팀장이잖아. 거기서 더 올라가면 잔업 수당도 없어지고 업무는 갑작스럽게 홱 바뀌고, 좋을 게 하나도 없는 거같아."
"응, 맞는 말이야." 헤이스케는 솔직히 말했다.
"근데 그건 어쩔 수 없어." 나카오는 종이컵 안을 빤히 들여다보며 말했다. "회사라는 게 인생 게임이더라고. 회사에서 승진한다는 건 인간이 나이 드는 것과 똑같아. 승진하고 싶지 않다는 건 나이 들고 싶지 않다는 거야."
"그런가"

"누구든 언제까지나 어린애로 살고 싶지. 그냥 바보인 척하고 싶은 거야. 하지만 주위에서 그걸 인정해주지 않더라고. 너는 이제 아빠니까 정신 똑바로 차려, 너는 이제 할아버지니까 점잖아져, 라는 식이야. 아니요, 나는 그냥 한 남자일 뿐이올시다, 라고 해봤자 아무도 봐주지를 않아. 아이가 생기면 아빠고, 손자가 생기면 할아버지야.
그 사실에서는 도망칠 수가 없어. 그렇다면 오로지 나는 어떤 아빠가 될 것인가, 어떤 할아버지가 될 것인가를 생각해보는 수밖에 없는 거 아니겠어?"
내가 이런 소리를 하는 것도 주제넘지만, 이라고 나카오는 덧붙였다.
"나카오 씨, 항상 그런 걸 생각해?"
"에이, 설마. 언뜻 생각나서 해본 말이야. 장남으로서."
"장남?"
"응, 팀장은 장남, 계장은 아버지, 과장은 할아버지야. 그보다 윗자리는ㆍㆍㆍㆍㆍㆍ 뭔지 잘 모르겠으니까 그냥 죽은 사람이라고 할까?" 나카오가 비어버린 종이컵을 쓰레기통에획던지며 말했다.

"세계가 달라." 별수 없이 헤이스케는 말했다. "나와 우리 딸이 사는 세계와 네가 있는 세계는 완전히 다르단 말이야. 그래서 사귄다고 해도 잘될 수가 없어."

"그이가 나한테 그랬어요. 지금 후미야에게 필요한 것은 아버지다. 엄마 형편이 어렵다는데 아버지인 내가 어떻게든 해줘야 할 거 아니냐………. 그래도 당신이 친아버지도 아닌데, 라고 했더니, 그러면 후미야 입장에서 더 행복한 건 어느 쪽이냐고 묻더라고요."

"친아버지가 내가 아닌 게 더 행복한가. 아니면 아버지는 나라는 것으로 해두는 게 더 행복한가. 그 둘 중에 어느 쪽이냐는 거예요. 내가 한참 생각해보다가 그야 당신이 아버지인 게 더 좋다고 대답했어요. 그랬더니 그이가말하더군요. 거봐, 그렇잖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앞으로도 나는 후미야의 아버지로 남기로 했다. 후미야가 힘든 상황이라면 아버지로서 그 고비를 넘도록 도와주고 싶다…………. 예전에는 후미야가 내 핏줄이 아니라는 말

나오코………….
당신, 아직 사라지지 않은 거야? 단지 사라진 척했던 것뿐이야?
헤이스케는 처음으로 모나미가 나왔을 때의 일을 떠올렸다. 그 전날, 헤이스케는 한 가지 결심을 했었다. 그녀를 모나미로만 대하고 나는 오로지 아빠가되자고 결심했었다. "모나미"라고 부르는 것으로 그런 자신의 의지를 표했었다.
그런 의지를 마주하고 나오코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남편이 어떤 각오를 했는지 깨닫고 분명 그녀도 한 가지 결단을 내렸던 게 아닐까.
모나미가 살아 돌아온 것처럼 하고, 앞으로 계속 모나미로 살아가자, 라고,
하지만 그건 갑작스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한 가지 방법을 선택했다. 그것이 나오코를 조금씩 지워간다는 것이었다.
9년 동안…………. 그녀가 연기를 계속해온 햇수다. 그것을 그녀는 죽을 때까지 이어갈 마음인 것이다.

야마시타 공원에서의 일이 생각났다. 그날은 나오코가 사라진 날이 아니라 그녀가 나오코로서 사는 것을 완전히 포기했던 날이었던 게 아닐까. 모나미로서 눈을 뜬 뒤에 큰 소리로 엉엉 울었던 것은 자기 자신을 내버린 슬픔의 눈물이었던 게 아닐까.
나오코, 당신은 아직 살아 있는 건가………….

"와아, 예쁘다! 예쁘다는 말밖에 달리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어." 그리고 헤이스케를 보았다. "그렇죠, 아버님?"
"그딴 건 30년 전부터 알고 있었어." 헤이스케는 말했다. "그보다 후미야, 잠깐 이리 와봐."
"네, 무슨 일이신지."
후미야를 다른 대기실로 데려갔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헤이스케는 이제 곧 모나미와 결혼할 놈의 얼굴을 보았다. 바짝 긴장한 얼굴이다.
"내가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네, 말씀만 하십쇼."
"별로 어려운 거 아니야. 흔히들 얘기하잖아. 신부아버지가 신랑에게 꼭 하고 싶다는 거. 그걸 나도 하게 해줬으면 하는데."
"예? 그게 뭔데요?"
"이거야." 헤이스케는 주먹을 후미야 앞에 내밀었다. "좀 맞아줘."
"예?" 후미야의 몸이 흠칫 뒤로 젖혀졌다. "지, 지금 여기서요?"
"안 되겠나?"
"아, 아뇨, 이것 참, 어떻게 하지, 지금 사진도 찍어야 하는데." 후미야는 머리를 긁적이더니 이윽고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저렇게 아름다운따님을 데려가는데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요. 한 대, 기꺼이 맞겠습니다."

"아니, 두 대야."
"두 대요?"
"한 대는 딸을 빼앗긴 몫이고, 또 한 대는………… 다른 한 사람의 몫이야."
"다른 한 사람……...."
"뭐든 됐어. 눈 꽉 감으라고."
헤이스케는 주먹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하지만 그 주먹을 휘두르기도 전에 눈물보가 터져버렸다. 그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얼굴을 가리고 목이쉬도록 꺼억꺼억 울었다.

《비밀》을 쓰기까지 나는 장편을 1년 넘게 출간하지 못했다. 당연히 서평가들은 한동안 나를 다뤄주지 않았다. 하지만 《비밀》은 오랜만에 내는 장편소설이고 내용도 내용인지라 서평가들이 언급해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라는 내 나름대로의 계산이 있었다. 실제로 여기저기서상당히 이 작품을 얘기해주었다. 결과적으로 많은 독자들에게 받아들여져서 나에게는 자타 공히 인정하는 터닝 포인트 작품이 되었다. 방향을 전환해서 인간의 마음을 써보자, 라고 내내 고심했던 것이 <비밀>에서 결실을 맺었다. 솔직히 다행이다. 라고 생각했다. ‘
-<야성시대> 2006년 Vol.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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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발견했을 때, 한 여자분이 아래쪽에 깔린 것처럼 보였어요. 근데 자세히 보니까 그분 밑에 어린 여학생이 숨어 있었습니다. 아이를 감싸듯이 어머님이 위에서 감싸준 거예요. 온갖 파편이 박혀 어머님은 피투성이였지만 아이는 거의 아무 상처도 없었습니다."
그게 선생님의 부인과 따님이에요, 라고 그는 말했다.
"그 얘기를 꼭 해드려야 할 것 같아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그의 말을 들었을 때 헤이스케의 가슴속에서 뭔가가 뚝 끊겼다. 동시에 그는 울고 있었다. 꺼억꺼억 소리내어울고 있었다.

"모나미는 이 인형을 애지중지했어. 잘 때도 항상 이불 속에서 껴안고 잘 만큼. 그러니까 나도 항상 곁에 둘 거야. 그러면 당신 아내라는 것도 자각할 수 있을 테니까."
그녀의 말에 헤이스케는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 자각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라는 마음이 문득 들었다.
"이 테디베어는 우리 둘만의 비밀이야." 나오코가 인형을 껴안으면서 말했다.

"그런 게 아냐. 자립적인 여자가 전업주부가 되겠다면 그건 괜찮지. 내가 싫었던 건 자립하지 못한 여자가 어쩔수 없이 전업주부로 들어앉는 구조야. 남편이 싫어졌는데도 오해하지 마, 이를테면 그렇다는 얘기니까 단지 먹고살기 힘들어서, 나가기가 겁이 나서 사회에 진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잖아. 그런 식으로 사는 건 모나미는 하지 말아줬으면 했던 거야. 남자에게 매달려 살 수밖에 없는 인생이라니, 너무 비참하잖아. 나는 진짜 운이 좋았던것뿐이야. 당신을 만났으니까. 하지만 당신이 아니라 다른 몹쓸 남자였다면 어땠을까 싶더라고. 결국 내 행복이라고 해봤자 모두 당신에게 걸린 거였어."

갑작스럽게 표현할 길 없는 고독감이 엄습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터널에 혼자 덜렁 남겨진 듯한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함께 걸어왔던 나오코의 모습은 이제 없다. 단지 그녀의 목소리만 들릴 뿐이다. 그리고 그녀는 이미 다른 세계를 걸어가고 있다. 이곳에 존재하는 건 나뿐이다.

동시에 화가 솟구쳤다. 자신이 부조리한 일에 희생된 것만 같았다. 내 인생은 대체 어디에 있는가. 나는 이대로죽어가는 것인가.

헤이스케의 손이 아래로 내려갔다. 음경이 서서히 팽창하기 시작했다.
내가 사랑 좀 하겠다는데 누가 뭐래, 라고 생각했다. 나도 사랑할 권리가 있다. 왜냐면 나한테는 아무것도 없기때문이다. 나에게 아내라고는 없다. 성의 기쁨을 서로 나눌 상대도 없다. 내게 있는 것은 단지 기묘하게 일그러진숙명뿐이다….
하시모토 다에코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그는 애써 외설스러운 망상을 머릿속에 떠올리려고 했다. 자위하려고 했다. 사실 이 사진을 보면서 몇 번 그렇게 했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 밤은 잘 되지 않았다. 그의 손 안에서 그 자신은 급속히 힘을 잃어갔다.
포기하고 사진을 책 틈새에 다시 끼웠다. 그대로 그는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규칙 하나를 깨면 두 번째, 세번째가 깨지는 건 순식간이야. 결국 엉망이 되겠지. 예전의 내 인생이 그런 식이었어. 결국 초등학교에서 전문대까지 14 년씩이나 학교에 다녔으면서도 살아가기 위한 방도를 하나도 배우지 못했어. 나는 그런 짓은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아. 그런 깊은 후회를 되풀이하는 건 절대로 싫어."
그리고 깔끔하게 깎아낸 사과를 네 개로 자르고 포크로 쿡 찍어 헤이스케에게 내밀었다. 그는 그 사과를 먹으면서 예전의 인생이 그토록 후회로 가득했었나, 라고 내심 중얼거렸다.

하지만 공부만이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 공부 이외의 세계도 소중하다는 인식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예전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책을 읽었다. 먼지를 뒤집어쓴 채 방치되어 있던 미니 오디오를 싹싹 닦아 음악도 들었다.
"이 세상에 멋있는 게 진짜 많아. 돈도 별로 안 들이고 행복해지는 거, 세계관이 확 바뀌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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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 출연(1 사진, 의대교수 役), 비밀. 안녕, 아빠

!

예쁜 히로스에 료코

이제 책을 읽어보자

OST 다케우치 마리야
˝천사의 한숨˝ 天使のため息
たけうちまりや, 竹内まりや,
Takeuchi Mariya

한없이 선량하게 생긴 저 스키타 헤이스케 (코바야시 카오루)를 보면 정말 한숨만 나온다

아내와 딸 모두 빼앗기고ㅠㅠ 어찌 긴 밤 보낼꼬
불쌍해서 우이할꼬

우....
역시 영화와 책은 많이 다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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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10-01 14: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게이고옹 ^^

대장정 2022-10-01 14:59   좋아요 2 | URL
관동의과대학 교수역 10초정도 출연하네요^^, 목소린 30초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