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의 첫문장 比較
国境の長いトンネルを抜けると
雪国であった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 군마 현(郡馬縣)과 니가타 현(新潟縣)의 접경을 말한다. 본문의 <국경>은 모두 이 뜻이다.
† 군마현과 니가타 현을 잇는 시미즈(淸水) 터널을 가리킨다.

1. 민음사, 유숙자 번역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건너편 자리에서 처녀가 다가와 시마무라(島村) 앞의 유리창을 열어젖혔다.  차가운 눈 기운이 흘러 들어왔다.  처녀는 창문 가득 몸을 내밀어 멀리 외치듯,
「역장님, 역장님 ―」등을 들고 천천히 눈을 밟으며 온 남자는, 목도리로 콧등까지 감싸고 귀는 모자에 달린 털가죽을 내려 덮고 있었다.

2. 청목사, 유승휴 번역
국경의 터널을 빠져나가니, 설국雪國이었다.  밤의 끝자락은 이미 희뿌연히 밝아 왔다. 신호소에 기차가 멎었다.
맞은편 자리에서 처녀가 일어나 시마무라 島村 앞의 유리창을 열었다. 차가운 냉기가 밀려 들어왔다. 처녀는 창 밖으로 온통 몸을 내밀고 멀리 외치듯이 소리쳤다.
˝역장님! 역장님!˝
등을 들고 천천히 눈을 밟고 온 사내는 목도리를 코 위에까지 두르고 귀에 모자의 털가죽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3. 문예출판사, 장경룡 번역
현(懸) 접경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자 눈(雪)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서 기차가 멎었다. 
건너편 좌석에서 처녀가 일어나 이쪽으로 걸어오더니, 시마무라(島村) 앞에 있는 유리창을 열었다. 차디찬 눈의 냉기가 흘러들었다. 처녀는 차창 밖으로 잔뜩몸을 내밀더니 멀리 대고 외쳤다.
˝역장니임, 역장니임!˝
등불을 들고 천천히 눈을 밟으며 다가온 사나이는 목도리로 콧등까지 싸매고 귀는 모자에 달린 털가죽으로 내리덮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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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9-29 11: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유명한 첫 문장으로 자주 언급되지요. 저도 저 문장이 넘 좋아서 읽다가 줄거리가 ?! ㅎㅎㅎ 전 민음사 판으로 읽었어요. 이렇게 정리해주시니 좋네요 *^^*

대장정 2022-09-29 18:18   좋아요 1 | URL
네. 저도 민음사판으로 읽고, 청목사판 또 읽고 있습니다. 편안한 저넉시간 보내세요 미니님! ><.
 

<이봐요, 당신은 젊은 여성이에요. 그런데지금 당신은 남자가 쓴 책에 대해 글을 쓰려 하는군요. 다정하고 상냥하게 굴어요. 아첨하고 적당히 비위를 맞추는 거예요. 우리 여성의 모든 술수와 책략을 쓰도록 해요. 당신에게 당신만의 생각이 있다는 것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해요. 무엇보다도, 정숙하세요.> 그러면서 그녀는 내 펜을인도할 태세였습니다.

나는 몸을 돌려 그녀의 멱살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그녀를 죽였습니다. 만일 내가 법정에 서게 된다면, 나는 그것이 정당방위였다고 변명할 것입니다. 만일 내가 그녀를 죽이지 않았다면, 그녀가 나를 죽였을 테니까요. 그녀는 내 글쓰기에서 심장을 움켜 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펜을 종이에 대자마자 깨달았기때문입니다. 소설책 한 권을 평하려 해도, 자기만의 생각을 가져야 하며, 인간관계와 도덕과 성에대해 자신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바를 표현할 수밖에 없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집 안의 천사>에따르면, 여성은 이 모든 문제를 자유롭고 공개적으로 다룰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성들은 성공하려면 매력적이라야 하고 환심을 사야 한다. 요컨대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나는 내 종이 위에 그녀의 날개 그림자나 후광의 광채가 느껴질 때마다 잉크병을 집어 그녀에게 던졌습니다. 그녀는 좀처럼 죽지 않았습니다. 그녀가허구적인 존재라는 것이 그녀를 도왔지요. 유령을죽이기란 실재하는 존재를 죽이기보다 훨씬 어려우니까요. 그녀는 내가 쫓아 버렸다고 생각한 순간 다시 기어 나왔습니다. 결국은 그녀를 죽여 버렸다고 스스로 대견해하고 있지만, 그것은 아주질긴 싸움이었고, 차라리 그리스어 문법을 배우든지 모험을 찾아 온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데 썼더라면 좋았을 만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진짜 경험, 그 시절의 모든 여성 작가에게 닥칠 수밖에 없는 경험이었습니다. <집 안의 천사>를 죽이는 것은 여성 작가가 해내야 할 일의 일부였습니다.

소설가의 주된 욕망은 - 제가 행여 직업적  비밀을 누설하는 것은 아니기를 바랍니다만 - 가능한 한 무의식적이 되는 것이랍니다. 그는 자신 안에 항시 나른한 상태를 유도해야 합니다. 그는 삶이 더없이 고요하고 규칙적으로 진행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글을 쓰는 동안 날마다 같은 얼굴들을 보고 같은 책들을 읽으며 같은 일들을 함으로써, 자신이 머무르고 있는 환상이 그 무엇으로도깨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상상력이라는, 그 지극히 수줍고 가뭇없는 정신 작용을 둘러싼 모색과탐사, 그리고 그 날쌔고 돌연한 발견 같은 것들이그 무엇으로도 방해받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이런 상태는 남녀 불문하고 같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밖에도, 우리가 싸우고 있는 목표, 이 막강한 장애물들과 싸움을 벌이는 목적에대해서도 논의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목표를 당연시해서는 안 됩니다. 계속해서 의문을 제기하고 검토해 보아야 합니다. 역사상 처음으로수많은 직종, 나로서는 다 알 수도 없는 직종에서일하는 여성들로 둘러싸인 여기 이 자리에서 내가보듯, 그 전체적인 형세는 대단히 흥미롭고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남성들이 전유하던 집에서 자기만의 방을 획득했습니다. 여러분은엄청난 노력과 수고 끝에 그 집세를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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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린 도독은 『난중일기』와 『징비록』에 공적에 욕심을 부리고 퇴각하는 왜군을 쫓는 데 소극적이었다고 기술되어 있고, 춘원 이광수의 소설『충무공 이순신에서 진린이 이순신 장군의 공을 가로챈 나쁜 사람으로묘사된 이래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지금까지 진린 도독에 대한 우리의 평가가 가혹할 정도로 왜곡되었다며 객관적 자료에 의해 재평가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 P336

대국의 지원군으로 온 진린이 처음에는 술잔을 집어던지는 등 고압적인 태도를 취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내 이순신 장군의 인품과 전술에 탄복하여 힘을 합쳐 왜적을 물리쳤고, 이순신 장군의 사망 소식을듣는 순간 놀라 의자에서 떨어져 가슴을 치며 크게 통곡했다고 한다. - P336

진린은 명나라 황제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순신이 조정 대신의 모함을 받아 통제사 지위를 빼앗기고 백의종군한 바 있는데 전란이 끝난 뒤또다시 이런 일이 벌어질까 걱정했다. 아울러 통제사 이순신의 목숨을구하여 황제의 신하로 삼아달라고까지 했다. 명나라 황제가 이순신에게 팔사품(八賜品 보물 제440호)을 내려주었다는  것이 400년 전부터 지금까지 정설이었는데, 장경희 교수는 최근에 이 팔사품 또한 진린 도독이 주고 간 것으로 이후 제1대 통제사 이순신을 기억하는 상징이 되었음을 밝혔다 - P336

이순신은 하늘과 땅을 경영하는 재능이 있었고,
찢어진 하늘을 꿰매고 흐린 태양을 목욕시킨 공로가 있습니다. - P337

이순신 장군을 이처럼 한없이 칭송했던 진린 도독이었다. 진린은 귀국하고 얼마 안 되어 1607 년 광동 도독 재임 중 향년 64세로 세상을 떠났다. 1644년 끝내 명나라가 망하자 광동성에 살고 있던 진린의 손자 진영소(陳)는 수하의 수병 5명과 함께 오랑캐에 짓밟힌 조국 명나라를떠나 조상의 얼이 살아 있는 조선으로 건너와 고금도 관왕묘에 있는 조부 진린 도독의 영전에 절을 올렸다. - P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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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고 행복한 세대인 여러분은 아마 그녀에 대해 들어 보지 못했고, <집 안의천사>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를 것입니다. 가능한 한 간략히 그녀를 묘사해 보겠습니다. 그녀는 아주 정이 많습니다. 아주 매력적이고 자기 욕심이라고는 없습니다. 가정생활의 어려운 일들을척척 해냈지요. 날마다 자신을 희생했습니다. 닭고기를 먹을 때면 다리를 집었고, 외풍이 들면 바람막이가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그녀는 자기 몫의생각이나 소원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이 항상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소원에 공감하는 편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 두말할 필요도 없는일이지만 - 그녀는 정숙했습니다. 정숙함이야말로 그녀의 주된 아름다움으로 여겨졌지요. 부끄러워 낯을 붉히는 모습이 더없이 우아하다고들 했습니다. 그 시절, 그러니까 빅토리아 여왕의 말년에는, 집집마다 그런 천사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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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1963년, 동관왕묘는 대한민국의 보물 제142호로 다시 지정되었지만 명칭은 여전히 동묘였다. 1973년 공원화 사업이 추진되며 만든
‘동묘공원‘이라는 푯말이 지금도 서 있고 인근에 동묘 파출소, 동묘상회가 들어서며 지하철역 이름도 동묘앞이 된 것이다. 논리학에서 말하기를형식은 내용을 규정하고 구속한다. 동묘라는 이름이 ‘서울 동관왕묘‘로제 이름을 되찾은 것은 2010년에 와서의 일이다. - P309

동관왕묘
 동묘는 ‘동관왕묘‘의 준말이며 관왕묘는 삼국지의 영웅인 관우가 사후에 관왕(關王)으로 신격화되어 모셔진  사당이다. 공자를 모신 문묘에 대한 무묘이다. 해방 전 촬영한 동묘의 옛 모습이다. - P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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