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하다시피 지금의 자본주의는 200년 전 맑스주의를 창시한 경제학자 카를 맑스가 원시사회, 노예사회, 봉건사회, 제국주의를 포함한 자본주의사회, 사회주의를 이전 단계로 하는 공산주의사회 등 사회발전 5단계론에서 제시한 네번째 단계로서의 고전적 자본주의를말한다. 지금까지 현재진행형으로 400여년 동안 유지되어온 자본주의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이러저러한 변화를 거듭해왔지만 기본적인 외양과 본질은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 대표적 일례가 스웨덴이다. 흔히들 선도적 복지국가라고 하니 탈(脫)자본주의나 별종의 사회쯤으로 착각하는데, 사실은 노사 간 타협이나 협동 같은 일부 표피적인수정을 거친 자본주의에 불과한 것으로서 본질적으로는 여전히 자본주의사회의 구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스웨덴 같은 고(高)복지국을 ‘복지지향적 국가‘로, 기타 자본주의 나라들은 ‘성장위주국‘으로 양분하는데, 전거가 부실하고 설득력이 미약하여 작위성이 다분한 구분이다. - P339
북유럽 국가들을 비롯한 여러 국가의 복지제도를 비교해보면 스웨덴 복지제도만이 지닌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스웨덴 사람들 스스로가 이구동성으로 강조하다시피 이른바 빅뱅개혁과 옴부즈맨제도로대표되는 개혁성과 청렴성이다. 북유럽 4개국은 공히 글로벌 클린 국가로 정평이 나 있다. 그 가운데 스웨덴은 부패인식지수(CPI) 순위에서 지속적으로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스웨덴이 이렇게 잘살면서동시에 청렴한 사회를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은 원래부터 그랬던 것이아니라 정부의 과감한 개혁 정책과 높은 시민정신이 바탕이 되었기때문이다. - P351
여기서 우리는 스웨덴이 복지 모범국으로서의 위상을 계속 이어가는 중요한 요인의 하나가 시대의 소명과 변화에 부응하는 혁신의 길을 꾸준히 걸어왔기 때문이라는 점을 실감하게 된다. 이와 더불어 부패를 척결하고 청렴한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복지사회를 유지하는또다른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바다. 따라서 부단한 혁신, 청렴한 사회, 고도의 경제적 선진화(1인당 GDP 5만 달러 이상), 적어도 이 세가지 요인이 모두 갖춰졌을 때만이 명실상부한 복지국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 P352
우리는 국내외 정세와 통일 환경의 변화에 따라 종래 체제통일에만 한정되었던 미완의 통일론을 민족공동체 전반에 걸친 완전통일론으로 진화시켜야 한다. 즉 미시적으로 평화적 체제통일을 달성하는데 이어 의식통일과 사회통일, 문화통일까지를 포함한 명실공히 완전한 민족공동체로서의 재통일을 완성해야 한다. 이것이 필자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진화통일론‘의 요체다. 이러한 ‘진화통일‘의 바탕에서거시적으로는 남북한 체제통일에서 비롯한 막대한 편익(便益)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해 선발 복지 모범국들을 따라잡아야 한다. 그래서 1인당 GDP 5만 달러의 문턱을 넘고, 서로가 상부상조의 미덕을계승, 발휘하며, 비리와 부패가 척결된 청렴한 복지사회를 실현해야할 것이다. - P357
이렇게 노벨은 성공한 과학자이자 실업가이지만 ‘사랑에 실패한인간‘이라는 양면교차적 삶을 살았다. 엄청난 발명과 세계적 기업 운영으로 명예와 부를 동시에 거머쥐었지만, 내성적이면서 괴팍한 성격과 고질화된 우울증 등 병약한 심신으로 가정도 이루어보지 못한 채한평생 고독하게 산, 어찌 보면 안타까운 인생이었다. 만년에는 심각한 협심증과 심장발작으로 병고에 시달리다가 1896년 12월 10일 새벽 2시, 향년 63 세로 이탈리아 산레모 자택에서 곡절 많은 세상을 하직했다. 시신은 그달 29일에 고향 스톡홀름으로 옮겨져 가족묘지에안장되었다. - P367
그의 사후에 업적을 기리는 여러 사업과 행사가 줄줄이 이어졌는데, 그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의미 있는 행사는 단연 매해 노벨의사망일에 국왕이 직접 참석하여 스웨덴(5개 부문)과 노르웨이 (1개 부문)에서 동시에 치러지는 노벨상 시상식이다. 다음으로는 노벨과 그의 가족, 노벨상과 수상자들에 관한 자료들을 상설 전시하는 스톡홀름의 노벨상박물관(2001년 건립)을 들 수 있다. 최근에는 2011년 6월8일에 발견된 원소기호 102번에 노벨을 기리기 위해 노벨륨(nobelium)이라는 이름이 붙기도 했다. 노벨상 시상식과 연회에 사용되는 흰 꽃과 노란 꽃은 반드시 노벨이 만년을 보내다 별세한 이탈리아 산레모에서 생화를 공수해 온다고 한다. 노벨에 대한 후세의 두터운 신망의표시인 것이다. - P368
노벨은 1895년 11월 27일 빠리에 있는 스웨덴-노르웨이 클럽에서 자신의 유산을 기금으로 상을 제정하겠다는 내용의 마지막 유언장에 서명했다. 그런데 당시는 전문(傳聞)에 의해서 유언장의 개략적인 내용만 알려졌기 때문에 그 구체적인 시행에 있어서는 적잖은 흔선이 빚어졌고 이러한 혼선은 상당 기간 지속되었다. 당초 유언장 원문 전체를 즉시 공표하지 못한 것은 노벨이 거액의 유산을 시상이라는 명목으로 자국민이 아닌 세계인들에게 분배하는 것은 비애국적이라는 비판적인 여론을 의식해서가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 P369
유언 집행자는 유산을 안전한 유가증권으로 바꾸어 투자하고, 그것으로 기금을 마련해 그 이자로 매년 전해에 인류를 위해 가장 크게 공헌한 사람들에게 상금 형식으로 분배해야 한다. 상금의 일부는 물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나 발명을 한 인물에게, 화학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나 개랑을 한 사람에게, 생리학과 의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을 한 사람에게 각각 주도록 한다. 물리학상과 화학상은 스웨덴 왕립과학원에서, 생리학·의학상은 스톡홀름의 카롤린스카연구소에서 각각 수여하도록 한다. 상을 수여함에 있어서 후보자의 국적을 일절 고려해서는 안 된다. 또한 남자건 여자건 조금도 차별하지 않고 가장 공로가 많은 사람에게 수여되도록 하는 것이 나의 확고한 소망이다. 나는 이것을특별히 당부한다. 그리고 나의 죽음을 확인하거든 화장해줄 것을 부탁한다. - P370
그런가 하면 대상 분야에서도 그 선정 과정과 시상 주체의 적격성과 공정성, 투명성에 관해 설왕설래가 그치지 않고 있다. 원래 유언장은 시상 분야를 물리학과 화학, 생리학·의학의 3개 분야로 한정했다. 그런데 오늘날에 와서는 여기에 문학과 평화, 경제의 3개 분야가 추가되어 6개 분야로 늘어났다. 무슨 까닭인가? 어디에도 그 이유는 제대로 밝히지 않은 채 운영 권한을 가진 이들의 일방통행식 결정에 세인들의 묵과가 더해져 슬며시 6개 분야의 첫 시상식을 치렀고, 이후관행으로 굳어진 것이다. - P373
여기서 한가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정작 추가된 3개분야(특히 문학과 평화 분야)의 시상 주체들은 추가된 원인에 관해 함구하거나 얼버무리고 있음에도 거의 모든 매체가 그것이 노벨의 유언에 따른 것이라는 허언(言)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앞서보았듯 노벨 유언장 원문에는 기타 3개 분야에 관해서는 언급이 전혀없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언론 보도와 유언장 간에는 왜 이러한 괴리가 생겼을까? 참으로 괴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P373
이렇게 추가 대상이 된 3개 부문 가운데 스웨덴 아카데미가 주관하는 노벨문학상은 노벨상 6개 분야 중에서 가장 말썽 많은 상이다. 단 문학을 대상으로 정하고 보니 소설, 시, 희곡 등 여러 장르를 아우르는데다 여타 분야들처럼 글로벌한 언어 표현과 내용, 장르 등을 종합해 선발하기는 당시의 격폐된 세상에서 여간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급기야 울며 겨자 먹기로 제2회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독일 역사학자(로마사 전공) 크리스티안 몸젠(Christian Mommsen)을 간신히 선발했다. - P374
마찬가지 이유로 2차대전 이전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운데는 역사가나 철학자 등 인문학자들이 드물지 않았고, 그래서 ‘노벨문학상‘이라고 하기보다 ‘노벨인문학상‘ 이라고 하는 것이 명실상부하다는 비아냥거림이 일기도 했다. - P374
그러다가 1950년대 이후부터는 주로 소설가나 시인이 수상하기 시작했는데, 특징이라면 반정부 성향의 문인들이 다수를 차지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특징의 부정적 결과로 수상자와 작품 선정에서 드물기는 하지만 숭고한 ‘문학정신‘에 위배되는 각종 무리와 비리, 비행이 공공연히 나타나 노벨문학상의 위신과 품격에 먹칠을 했을 뿐 아니라 시상 기준에 대한 의구심과 혼란을 낳았다. - P374
제1회 노벨문학상 수여 당시 가장 유력한 후보였던 러시아의 대문호 똘스또이는 역사적으로 스웨덴과 불편한 관계에 있던 러시아인들에게 기독교적 무정부주의를 주입했다는 이유로 후보에서 제외되었다. 그런가 하면 1920년 수상자인 노르웨이의 소설가 크누트 함순(Knut Hamsun)은 2차대전 당시 친나치 인사로 활동해 국제적 비난을 샀으며, 2019년 수상자인 오스트리아의 극작가 페터 한트케(PeterHandke)는 1990년대 유고 내전에서 인종청소를 저지른 독재자의 장례식에서 그를 두둔하는 조사를 읽은 행적으로 인해 그의 수상 취소를요구하며 노벨문학상은 최소한의 금도도 없는 ‘완전한 고무줄 상‘이라는 비분강개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 P374
평화상이 여타 상들과 달리 상대적으로 논란이 많은 원인은 그 개념이나 기준이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은 ‘평화‘라는 애매모호한 주제때문으로, 상이한 다자의 이해관계가 얽힌 가운데 시상의 당위성이나수상 자격 등에 관해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수상자가 정치적 수장이거나 사회 유력인사인 경우 논란은 더욱 치열하다. 따라서상의 주관 기관이 어떻게 불편부당하게 논란의 진위와 시비를 가려공정성을 기하는가가 항시 문제가 된다. - P377
하도 자격 미달자의 추천이 많아지자 2001년부터는 노르웨이 국회의원으로 추천자를제한했다. 노벨평화상 후보에 추천된 것으로 알려진 대한민국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례가 바로 이런 경우라고 하겠다. 애당초 자격을 운운할 여지조차 없는 민주화운동 무력탄압의 수괴에게 평화의 철퇴를내려 수상에서 퇴출시킨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 P379
1948년 유력한 수상 후보였던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는 수상자 발표를 얼마 앞두고 암살당했다. 그런데 노벨상에는 사후 추서를 불허한다는 규정이 있어 아쉽게도 그의 수상은 무산되고 말았으며 결국 그해의 노벨평화상은 이례적으로 공석이 되었다. 그후 간디에 대한 평화상 추서를 여러모로 검토했지만 끝내 성사되지 못했다. - P378
사실 이러한 모략의 진원지는 국내 보수세력이라고 추단할 수 있다. 당시 한나라당 모 의원을 필두로 한 한나라당 원외위원장들은 시상 현장인 노르웨이 오슬로까지 가서 ‘김대중 노벨상 저지 시위‘를하겠다는 계획까지 공공연히 밝혔다. 부끄러운 자중지란이다. 이것이하도 어처구니없는 짓이라서 그랬던지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나라의 위신이 깎일 수 있는 당내 일부의 모난 행동이 한나라당의공식 입장인 것처럼 외부에 비쳐지는 것이 부담스럽다"라면서 이 ‘모난 행동‘을 만류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고려대 전총장 김준엽 선생이 쓴 경구, 집안(국내)에서는 아웅다웅하더라도 일단 바깥(국외)에 나가서만은 국격과 겨레의 존엄을 위해 서로 싸우거나 헐뜯지 말라는 발언이 가슴 저리게 떠오른다. - P381
"한국으로부터 로비가 있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정치적 반대자 등으로부터 상을 주면 안 된다는 로비였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우리는 노벨상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 P382
2년 후 국내의 어느 일간지가 이 문제에 관한 노벨위원회의 공식 입장을 묻자 답신에서 이 위원회의 사무총장 예이르 루네스타(Geir Lundestad)는 다음과 같은 보다 명확하고 단호한 입장을 전해왔다. 그는 "나는 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에 노벨평화상을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받았음을 암시하는어떠한 주장에 대해서도 반대한다"라며 "노벨위원회가 그에게 상을주는 대가로 돈을 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은 매우 무례하며, 위원회의심사 절차 등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이렇게 해서 한때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놓고 시끌벅적 떠들어대던 모략극은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 P382
구태로 가장 많이 지적되는 것이 수상의 편향성 내지 독식이다. 노벨상이 시행된 1901년부터 2021년까지 총 975 명의 수상자가 배출되었는데, 그중 미국이 398명으로 단연 1위이고, 2위는 137명의 영국, 3위는 111명의 독일, 4위는 70명의 프랑스, 5위는 32명의 스웨덴의 순이다. 이에 비해 세계 인구의 약 55%를 차지하는 아시아의 수상자는58명에 불과한데, 그중 일본이 29명으로 1위이고 그뒤를 인도(12명)와 중국(10명)이 쫓고 있다. 알다시피 한국의 경우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 (2000년 평화상) 한명뿐이다. - P385
이상에서 필자는 노벨의 생애와 그가 과학의 발달과 평화 수호를위해 가장 값진 유산으로 남겨놓은 노벨상의 이모저모, 상 운영에서나타나는 숱한 비과학적이고 불공정하며 진부한 구태 가운데 중요한몇가지를 선정해 살펴보았다. 두말할 나위 없이 노벨상은 121 년 전에닻을 올린 제정 취지에 따라 응분의 기여를 해왔다. 그러나 시대의 급속한 흐름에 부응하지 못하는 폐쇄성 등으로 인해 그 이상과 기능이석양낙조(落照)를 방불케 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점이 기우에그쳤으면 하는 바람 속에 현장을 누빈 필자의 고언을 한마디로 줄이면 ‘노벨상, 이제 그 구태를 벗어나야 한다‘라는 것이다. - P393
이제 이 국제도시의 역할과 위상, 특징에 관한 세인들의 평가 몇가지를 모아 소개하고자 한다. ‘북방의 백야 도시‘ ‘해가 지지 않는 도시‘ ‘북방의 청결한 도시‘ ‘세계 유수의 과학기술의 도시‘ ‘지구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의 하나‘ ‘지구상에서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도시의 하나‘ ‘고전미와 현대문명을 하나로 융합시킨 도시‘ ‘도시의건축과 자연풍광을 절묘하게 결합시킨 꽃의 도시‘ ‘활력이 넘치는 문화도시‘ ‘유럽의 9개 문화도시의 하나‘ ‘신구가 혼연일체된 도시‘ 등 헬싱키에 관한 평가는 구구하다. - P412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높고 부패가 없는청렴한 나라, 세계 1위의 안전국, 유럽 최초(1906)로 모든 성인에게 선거권을 부여하고 보통선거를 치른 나라, 명실상부한 양성평등 실현국, 인구 대비 대학이 가장 많은 나라(2019년 기준 35개), 인구 대비 올림픽 금메달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 등 부문별로 다양하다. 근간에 핀란드의 양성평등과 관련해 특별히 회자되는 사항은 2019년 12월 35세의 사상 최연소 여성 총리 산나 마린 (Sanna Marin, 사회민주당 대표)의 탄생과 연정에 참여한 5당 대표가 모두 여성일 뿐만 아니라 그중 4명은30대의 젊은이라는 격세지감의 낭보다. - P417
핀란드인은 다른 사람에게 좀처럼 자기 속내를 보이지 않는 성격이흔하다. 핀란드에서 룸메이트로 핀란드인과 6개월간 살면 5개월 정도되어서 처음으로 말을 튼다고 할 정도다. (…) 이런 모습 때문에 핀란드인들은 고독한 늑대 같다는 편견이 있다. 핀란드를 대표하는 영화감독아키 카우리스마키가 만든 영화들은 이런 핀란드인들의 무뚝뚝한 감수성을 영화에 잘 녹여내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감독 본인도 퉁명스럽고시니컬하게 인터뷰하기로 유명하다. - P421
다관의 작지만 강한 나라 핀란드가 벅차게 진화해온 역사를 잠시훑어보노라면 일상에서 통용되는 변증법이나 상식으로는 도저히 풀이가 안 되는 낯선 현상들이 많이 발견되어 놀라움에 입이 벌어질 지경이다. 살을 에는 한랭대의 습지에서 살아남았고, 무에서 유가 창조되며, 작음이 오히려 강함이 되고, 동상을 세워 식민 수괴를 기리며, 인구 5.2%와 0.04%만이 사용하는 스웨덴어와 사미어까지 국가 공용어로 인정하는 관용(87.3%가 핀란드어 사용), 사상 미증유의 700년 식민통치하에서도 꿋꿋이 지켜온 민족의 정체성과 정기, 칠전팔기로 기사회생하는 오뚜기…… - P423
아, 핀란드여, 보라, 이제 밤의 위협은 저 멀리 물러났다. 찬란한 아침에, 종달새는 다시 영광의 노래를 부르고, 천국의 대기가 충만하였다. 어둠의 힘은 사라지고 아침 햇살은 지금 승리했으니, 너의 날이 다가왔다, 오 조국이여.
아, 일어나라, 핀란드여, 높이 들어올려라. 너의 과거는 자랑스럽게 등극하였다. 아, 일어나라, 핀란드여, 노예의 흔적을 몰아내고새로운 세상 보여주어라. 억압에 굴복하지 않았으니, 자랑스러운 아침이 시작되리라, 조국이여. - P429
핀란드 부흥의 3대 정신적 지주의 세번째인 시수는 인내와 용기, 끈기와 극기, 회복탄력성 등의 다양한 의미를 포함하는 단어로 핀란드 고유의 정신문화와 국민성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이 말을 정확하게 외국어로 번역하는 것은 도시 불가능하다는 것이 어학자들의 한결같은 견해다. 예컨대 이말에 담긴 용기 하나만 보아도, 용기는 용기이되 암울하고 두려운 현실에 맞서 보기에 승산 없는 싸움을 할 때나타나는 그러한 용기를 가리킨다. 승산 없는 싸움을 하면서도 역경에 맞서 결연함을 내보일 수 있다는, 실패하고 또 실패하더라도 그 결정과 행로를 밀고 나갈 수 있다는 그러한 성격의 개념이다. - P429
일부 역사가들은 혹한과 조밀한 술 때문에 소련이 패전했다고 하는데, 결코 그런 것만은 아니다. 압도적 전력 차이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버텨 소련의 완전 점령을 면한 데는 핀란드 국민의 시수 정신이크게 한몫했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다. 이렇게 보면 시수는 온갖 고난을 이겨내는 마법의 말이고,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며, 심원한 삶의 철학이라고 하겠다. - P431
대통령에 임명된 파시키비(Juho K. Paasikivi, 재임 1946~56)는 전시 소련과의 평화조약 협상을 주도했던 유능한 외교관 출신으로서, 핀란드가지리적 위치를 바꿀 수 없는 이상 동쪽의 이웃(러시아)과도 사이좋게지내야 한다"라며 서방과 소련 사이의 중립적 외교 노선을 천명했다.핀란드의 중립평화외교의 기틀을 마련한 그는 보수당 출신이지만 합리적 실용주의자였다. 그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다"라는 유명한 잠언을 남겼다. - P479
26년간 대통령으로 재임하면서 소극적 중립외교에서 적극적 중립외교로 전환의 틀을 마련한 케코넨은 자서전에서 핀란드 중립외교의 구도를 이렇게 개괄하고 있다. "핀란드 외교정책의 기본 과제는 핀란드의 지정학적 환경을 지배하는 이해관계에 핀란드의 실존을 맞추는 것이다. (・・・) 핀란드의 외교정책은 예방외교다. 위험이 코앞에 닥치기 전에 미리 감지해서 위험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될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가급적 눈에 띄지 않게!" 그야말로 노련한 정치가, 외교가의 충언이다. - P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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