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선암 돌개구멍 
요선암의 강바닥은 화강암 너럭바위이기 때문에 돌개구멍이 유난히 만질만질하고 보는 위치에따라 다양한 모습을 연출하여 더욱 자연의 신비로움과 장엄함을 느끼게 한다. 요선암이 있는 주천강변 약 200미터구간의 강바닥은 천연기념물 제543호로 지정되어 있다. - P36

그 구멍이 지름 1미터 깊이 2미터가량 되고 생김새가 다양하다. 화강암에 자연스럽게 뚫린 이런 구멍을 지질학에서는 포트홀(pothole)이라고 한다. ‘둥근 항아리 모양의 구멍‘이라는 뜻일 텐데 순우리말로는
‘돌개구멍‘이라고 한다.
이런 돌개구멍은 하천의 상류지역에서 빠른 유속으로 실려온 자갈들이 강바닥의 오목한 암반에 들어가 물결의 소용돌이와 함께 회전하면서암반을 마모시켜 이루어진 형상이다. 얼마나 긴긴 세월 돌이 구르고 맴을 돌았다는 이야기인가. - P37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1970년대 유신독재 시절 많은 학생·노동자·지식인들이 민주화를 외치다 투옥되었다. 그 고난의 세월에 이들에게 큰 힘이 되어준 것은 무료변론을 맡아준 변호사들이었다. 이분들은메마른 세상의 소금 같은 희망이었다. 우리는 이분들을 인권변호사라고부르고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1988년에 이분들의 정신을 이어받은 변호사들이 결성한 것이다. - P39

적악산(치악산) 동북쪽에 있는 사자산은 수석(水石, 계곡이 30리에걸쳐 있으며, 주천강의 근원이 여기이다. 남쪽에 있는 도화동과 무릉동도 모두 계곡의 경치가 아주 훌륭하다. 복지(福地)라고 할 만하니 참으로  속세를 피해서 살 만한 땅이다. - P41

법흥사는 바로 그 사자산 턱밑에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사자산 법흥사라고 부른다. 법흥사가 등지고 있는 사자산은 영월 ·횡성·평창에 걸친험준한 산이다. 사자산이라는 이름은 법흥사가 창건될 때 불교를 수호하는 상징적 동물인 사자를 일컬어 바꾼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원래 전래되던 이름이 사재산(四財山)이었다는 전언도 있다. 네 가지 재화가 있다는 것인데, 이는 산삼 꿀 옻나무 흰 진흙이란다. - P41

법흥사의 옛 이름은 홍녕사(興寧寺)다.  이 흥녕사는 우리 불교사에서두 가지 기념비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하나는 자장율사가 모셔온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진신사리 4대 봉안처‘ 중 한 곳이라는 점이다. 나머지 세 곳은 양산 통도사, 태백산 정암사, 오대산 상원사다. 혹은설악산 봉정암까지 여기에 넣어 5대 봉안처라고 일컫기도 한다. 자장율사가 귀국한 것은 선덕여왕 12년(643) 이고 율사가 이 절을 창건할 때의이름이 흥녕사이다. - P42

또 하나의 의미는 누누이 말해왔듯 9세기 후반 하대신라의 구산선문중 하나라는 사실이다. 구산선문을 말할 때는 개창조와 법통이 중요한데 개창조는 징효대사(澄曉大師) 절중(折中, 826~900)이고 법통은 화순 쌍봉사의 철감(澈鑒國師) 도윤(道允 798-868)을 이어받았다. 그리고산문(山)의 이름은 사자산이라 했다. - P42

세상을 움직이는 주도적인 이데올로기가 불교에서 유교로 바뀐 것은 어쩔 수 없는 시류였다고 하겠지만 당시엔 문화재라는 개념이 없어 폐불정책이 결국 엄청난 문화재 파괴로 이어졌다는 것은 아픈 얘기다. - P43

그러나 이는 우리 역사만의 상처가 아니다. 일본은 19세기 메이지시대에 폐불훼석(廢佛毁釋)이라는 광란의 세월이 있어 엄청난 불교 문화재 파괴가 있었고, 오늘날에도 탈레반에 의한 불상 훼손과 이슬람 국가(IS)의 고대 신상 파괴를 볼 수 있으니 그저 무서운 것이 이데올로기일뿐이다. - P43

그런데 내가보기에 이것은 아주 잘못된 문화재 지정이다. 이런 경우는 승탑과 탑비를 일괄 유물로 지정하는 것이 옳다. 더욱이 승탑이 탑비와 함께유존한다는 사실은 문화재적 가치를 한층 높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장 시절 이처럼 잘못 지정된 것을 고쳐보려고 시도한 적이있었다. 그러나 이런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고 이걸 모두 정정하면 교과서 - 백과사전 · 지도 등을  모두 바꿔야 하는 사회적 경비가 만만치 않아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이는 언젠가는 사회적 합의하에 한번은 정정해야할 사항임에 틀림없으니 현명한 후손들이 나서서 해주기를 부탁한다. - P45

징효대사 승탑  
징효대사 승탑은 하대신라에 유행한 평범한 팔각당 형식으로 기단부 탑신부 · 상륜부로 이루어졌다. 네모난 지대석 위에 장구 모양의 기단부, 팔각당의 탑신과 지붕돌을모두 갖추고 있으며, 탑신에는 문짝과 자물통이 새겨져 있고 지붕돌의 모서리에는 귀꽃이 높이솟아 있다. - P46

징효대사 탑비  
높이 약 4미터로 제법 우뚝하고 돌거북 받침(귀부)의 조각을 보면 부릅뜬 두 눈과 여의주를 물고 있는 얼굴에 생동감이 있다. 용머리 지붕돌(이수)의 조각도정교하다. 무엇보다도 최언위가 짓고 최윤이 글씨를 쓴 비문의 금석학적 가치가 높아 보물 제612호로 지정되었다. - P47

법흥사 적멸보궁  
솔숲이 끝나면 사자산을 바짝 등에 진 번듯한 적멸보궁이 나타난다. 모든 적멸보궁은 불상을모시지 않고 뒤쪽에 있는 진신사리탑을 향해 열어둔다. 그러나 법흥사 적멸보궁 뒤에는 고려시대 석실분이 있다. - P49

법흥사 소나무길  
법흥사 적멸보궁으로 가는 길에는 준수하게 자란 키 큰 소나무들이 줄기마다 붉은빛을 발하며우리를 맞아준다. 그 길이 자그마치 300미터나 되니 발걸음이 상쾌하다. 오늘의 법흥사가 내세우는 가장 큰 자랑이며 법흥사에 올 때면 이 길을 걷게 된다는 기쁨과 기대가 있다. - P48

법흥사 적멸보궁 뒤편  
법흥사 적멸보궁 뒤쪽엔 마땅히 있어야 할 진신사리 장치는 보이지 않고 엉뚱하게 고려시대 석실분이 축대 위에 입구를 드러낸 채 자리잡고 있어 당황스럽다. 무언가 착오가 있었던 모양이다. - P50

그리고 900년(효공왕 4년), 스님의 나이 75세 되던 해 3월 9일 징효대사는 제자들을 불러놓고는 "삼계(三界)가 다 공(空)하고 모든 인연이 전부고요하도다. 내 장차 떠나려 하니, 너희들은 힘써 정진하라"고 당부하고는 앉은 채로 입적했다고 한다. 법랍 56년이었다. - P52

징효대사 탑비(오른쪽)와 비문 디테일(왼쪽)  
징효대사 탑비는 스님의 일생을 증언한다는 사실뿐 아니라 비문을쓴 이가 최언위라는 사실에서도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 비석을 말하면서 최언위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다면 비석의 금석학적 가치를 반도 전하지 않는 셈이다. 징효대사의 탑비에 새겨진 비문은 이 절집의 인문적 가치를 밝히 드러내주고 있다. - P53

낭혜화상 백월보광탑비(왼쪽), 낭공대사 백월서운탑비(오른쪽)  
최언위는 문장과 글씨 모두에서 당대 최고였다.
보령 성주사의 ‘낭혜화상 백월보광탑비‘는 최치원이 문장을 짓고 최언위가 글씨를 쓴 것이다. 태자사의 ‘낭공대사 백월서운탑비는 최언위가 문장을 짓고 김생의 글씨를 집자하여 새긴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그의 문장과 글씨가 어떠했는지 알 만한 일이다. - P54

통일신라 말에 당나라 빈공과에 합격한 인물로는 최언위 이외에 최치원(崔致遠, 874년 합격)과 최승우(崔承祐, 893년 합격)가 있다. 이 세명의 최씨를 일찍이 일대삼최(一代三崔)라 했다. 최언위는 최치원의 사촌동생으로  전주 최씨의 시조이기도 하다.
나말여초라는 혼란기를 거치면서 이 세 명의 최씨는 각기 운명을 달리했다. 최치원은 벼슬을 사직하고 각지를 떠돌다 해인사에 은거하여 신라인으로서 생을 마쳤다. 최언위는 왕건에게로 가 고려인이 되었고 최승우는 견훤 밑으로 들어가 후백제인이 되었다. - P54

팔공산 전투를 치르고 나서 국서를 교환할 당시 양쪽에서 이를 담당한이가 고려의 최언위와 후백제의 최승우였다니 일대삼최의 운명은 묘한것이었다. - P55

최언위는 문장과 글씨 모두에서 당대 최고였다. 구산선문의 하나인보령 성주사의 ‘낭혜화상 백월보광탑비(국보 8호)는 최치원이 문장을 짓고 최언위가 글씨를 쓴 것이다. 김생(金生)의 글씨를 집자한 것으로 유명한  태자사의 ‘낭공대사 백월서운탑비‘는 최언위가 문장을 지은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그의 문장과 글씨가 어떠했는지 알 만한 일이 아닌가. - P55

나는 최언위의 일생을 통해 통일신라가 왜 망했고 고려가 어떻게 새왕조를 세웠는가를 생각해본다. 통일신라는 끝내 골품제를 벗어나지 못했다. 당나라 과거에 급제한 지식인들을 여전히 6두품에 두어 아찬(阿飡) 이상  올라갈 수 없게 했다. 최치원이 제시한 ‘시무십조(時務士條)‘라는 개혁안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기득권을  갖고 있던 보수적인 귀족들이개혁은커녕 자신들의 보호막을 더욱더 두껍게 두르다가 종국엔 멸망의길로 들어갔던 것이다. - P55

이에 반해 고려는 달랐다. 고려는 이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지식인들을 기꺼이 받아들여 새 국가 건설의  브레인으로 삼았다.  신라에서 6두품에 지나지 않던  최언위가 고려왕조에 와서는 태자사부(太子師傅)를 거쳐  평장사(平章事)에 이르렀다. 이것이 통일신라와 고려의  운명을 가른 것이었다. - P55

고승의 비문을 보면 거의 예외 없이 스님의 남다름을 말해주는 일화가 나오는데 이 비문 중에 징효대사가 도담선사에게 배움을 구할 때 주고받은 선문답 이야기는 참으로 오묘하다. - P56

어느 날 징효대사가 도담선사를 뵙고 배움을 구하고자 절을 올렸는데 처음 뵙는 분 같지가 않았다고 한다.  도담선사도 그러한 느낌이었는지 징효를 보면서  "이렇게 늦게야 상봉하니 그동안이 얼마나 되었는가?"
하고 물으니 징효는 앞에 있는 물병을 가리키며 "이 물병이 물병이 아닌때는 어떠했답니까?"라고 대답했단다. 이에 도담선사는 속으로 ‘어쭈, 제법이네‘라고 생각하고는 다시 수준을 높여 이렇게 물었다.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절중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절이 아닌 때는 누구인가?"
이렇게 나오면 징효는 당황하여 대답을 잘 못할 줄 알았다. 그러나 징효는 당당히 받아넘겼다.
"절중이 아닌 때는 이와 같이 묻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 P56

선문답이란 이처럼 대단히 매력적인 대화법이다. 그 속엔 철리를 꿰뚫는 인식론과 실천론이 다 들어 있다. 한번은 법흥사 답사를 마치고 영월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오르는데 답사에 처음 따라왔다는 한 중년 아주머니가 내게 특청이 있다고 했다. - P57

"법흥사 답사는 법흥사로 가는 길이 아름다울 뿐 절 자체는 그저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비문에 실려 있는 도담과 징효 스님이 주고받은 선문답을 듣고 보니 참으로 느끼는 바가 크네요.
우리 시아버지는 대화 중에 말이 안 통하면 ‘선문답하네‘라며 외면하곤 하셔서 저는 그저 선문답이라는 것이 엉뚱한 소리인 줄로 알았는데참으로 오묘하네요. 선생님, 가면서 이런 선문답 이야기 좀 더 해주실 수있으셔요?" - P57

"밖에 누가 왔느냐?"
"예, 아무개가 가르침을 구하고자 찾아왔습니다."
"일없다. 돌아가거라." - P58

"밖에 누가 왔느냐?"
"예, 스님께 배움을 구하고자 하는 제가 또 찾아왔습니다."
"밖에 눈이 오느냐?"
"예, 많이 옵니다."
"그러면 더 오기 전에 빨리 내려가거라. 길을 잃어버릴라." - P58

"밖에 누가 왔느냐?"
"예, 제가 또 왔습니다."
"밖에 눈이 오느냐?" - P58

"예, 길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이 옵니다.
"길이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찾아왔느냐?"
"옛길을 더듬어 찾아왔습니다."
"그러면 이제 옛길을 버리면 되겠구나." - P59

이 마지막 말에 수도승은 문득 ‘옛길을 버리면 새길이 열린다‘는 깨달음을 얻어 "예, 잘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고는 다시는 찾아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고전으로 들어가 새것으로 나온다는 입고출신(入古出新)의자세이다.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안다는 온고지신(溫故知新),  옛것을 본받아 새것을 만든다는 법고창신(法古創新),  옛것을 빌려와 현재 상황을 풀어낸다는 차고술금(借古述), 옛것을 가지고 현재를 지탱한다는 이고지금(以持), 그 모두가 비슷한 개념이지만 이 선문답은 개념적 언어가아니라 현재 처한 상황에 입각한 비유법을 통하여 그 깊은 뜻을 인식론이아니라 실천론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선문답의 묘미이다. - P59

관란정  
관란정은 생육신의 한 분인 원호가 단종이 영월로 유배되자 이곳에 내려와 살며 충절을 지키다 세상을 떠난 곳에 세운정자다. 법흥사에서 영월로 가는 길목인 신천리라는 곳의 강 언덕에 있다.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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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성(原城, 오늘의 원주) 부곡 옛 고을 서쪽에
깎아 세운 듯한 높은 봉우리 우뚝 솟아 창연히 섰고
벼랑 아래는 물이 깊고 맑아 굽어보면 검푸른데
돌 술통이 부서져 강가에 가로놓였네
<강희맹> - P22

原城部曲古縣西
斷峯峡岘臨蒼然
崖下泓澄瞰黝碧
石槽破碎橫江坝 - P22

수주면에는 아름답고 호젓한 작은 강마을이 점점이 이어진다. 복숭아꽃이 만발하기만 한다면 무릉도원(武陵桃源)이 따로 없을 것 같은데 옛날에는 더 그랬는지  마을 이름에 무릉리도 있고 도원리도 있다. 어디엔가 유서 깊은 명소가 있음직한데 무릉리 강변 절벽에 요선정(亭)이라는 정자가 있어 우리를 부른다. 무릉이란 이상향의 상징이고 요선이란 ‘신선을 맞이한다‘는 뜻이니  이름만 보아도 그 풍광이 아름답다는 것을알 수 있지  않은가. 그리하여 남한강을 따라가는 나의 영월 답사는 이곳요선정을 첫 기착지로 삼게 된다. - P23

듣건대 주천에 두 누각이 있다던데
몇 번이나 수리하여 아직도 온전한가
높고 높은 석벽은 구름에 닿아 있고
맑고 맑은 강물은 푸르게 이어졌네
산새들은 나무 위에서 지저귀고
들꽃과 봄풀은 뜰아래 비치이네
술 지니고 누에 올라 아이 불러 따르게 하고
취하여 난간에 기대어 낮잠을 즐기누나 - P25

聞說雙樓在酒泉
幾經芎理尙能全
峨峨石壁靑雲接
漾漾澄江碧水連
山鳥好禽鳴樹上
野花春草映階前
携登官醞呼兒酌
醉倚欄干白日眠 - P25

이것이 숙종이 지은 「빙허 청허 양루시(淸兩樓詩)」 이다. 숙종은이 시를 직접 써서 당시 원주목사인 심정보(沈輔)에게 내려주며 청허루에 걸게 했다.  이것이 숙종의 어제어필시문(御製御筆) 현판이다. - P25

임금께서 주천에 글 내리신 것을 아직도 말하니
청허루는 이로부터 더 명승이 되었네
누각의 모습은 임금의 글씨와 더불어 빛나고
땅의 기운은 도리어 하늘에 닿았구나
백 리의 농사일은 달라진 것이 없고
봄날의 꽃과 새도 전처럼 여전하구나
이르노니, 지척에 근심이 있음을 분간하여
태수는 쉬면서 술에 취해 잠들지 말지어다 - P28

尙說黃封降酒泉
清虛從此勝名全
樓容重與雲章煥
地氣還應壁宿連
百里桑麻渾不改
一春花鳥摠依前
瞻言咫尺分憂在
太守休爲醉後眠 - P28

농무의 신경림 선생은 남한강의 시인이자 민요기행』의 시인이기도한데, 남한강을 따라 민초들의 서정을 찾아 나섰다가 이 마애불을 보고절로 일어나는 웃음을 참지 못해 그 천진난만함이 낳았을 만한 얘기를시적 상상력에 담아 이렇게 노래했다. 제목은 주천강가의 마애불-주천에서」이다. - P32

다들 잠이 든 한밤중이면
몸비틀어 바위에서 빠져나와
차디찬 강물에

손을 담가보기도 하고
뻘겋게 머리가 까뭉개져
앓는 소리를 내는 앞산을 보며
천년 긴 세월을 되씹기도 한다.

빼앗기지 않으려고 논밭들에
깊드리에 흘린 이들의 피는 아직 선명한데.
성큼성큼 주천 장터로 들어서서 보면
짓눌리고 밟히는 삶 속에서도
사람들은 숨가쁘게 사랑을 하고
들뜬 기쁨에 소리지르고
뒤엉켜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참으려도 절로 웃음이 나와
애들처럼 병신 걸음 곰배팔이 걸음으로 돌아오는 새벽별들은 점잖지 못하다.
하늘에 들어가 숨고
숨 헐떡이며 바위에 서둘러 들어가 끼여
앉은내 얼굴에서는
장난스러운 웃음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 P33

요선정 절벽 위의 소나무와 주천강 
마애불 바로 뒤에는 멋지게 자란 소나무가 마치 정성 들여 가꾼 정원수처럼벼랑 끝을 장식하고 있다. 소나무 너머로 비껴 보이는 주천강은 더더욱 아름답다. 거의 환상적이다. -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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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월에 사재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중남미 소설들 위주로 16
.의지와 운명 1, 2
.영혼의 집 1, 2
.세피아빛 초상
.운명의 딸 1, 2
.콜레라시대의 사랑 1, 2
.채털리 부인의 연인 1, 2
.달려라 메로스
.어둠속의 사건
.연인
.태평양을 막는 제방
.깊은강

가을엔 책을 읽으라고 누가 말했는가

천고마비,
“‘하늘은 높아 푸르고 말이 살찔[天高馬肥(천고마비)]’ 때가 가장 두려워! 언제 흉노가 쳐들어올지 모르니까.”

어제, 아부지 산소 벌초를 했다.

벌초하면서 바라본 하늘은 아주아주 파랬다.

놀러가고 싶어지는 하늘이었다.

흉노가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고 날도 푸르고 좋으니 가을엔 책을 읽지 말고 놀러나 다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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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8-28 16: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와 ! 대장정님이 포착 하신 하늘! 눈부신 햇살! 푸른 빛에 초록 초록!^^ 읽은 책은 쟁여두고 화창하게 개인 날은 놀멍 쉬멍 ੧ᐛ੭

대장정 2022-08-28 16:55   좋아요 3 | URL
완연한 가을날씨입니다. 파란하늘, 초록빛 산. 놀기에 최적인 날씨입니다만. 🏡 콕하고 있네요. 벌초 후유증. 삭신이 쑤십니다ㅠㅠ

Falstaff 2022-08-28 18: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사람들은 (아직) 모릅니다. 천부의 바람둥이 푸엔테스가 쓴 <의지와 운명>이 아옌데 버금가게 재미있다는 것을 말입죠.

대장정 2022-08-28 22:03   좋아요 2 | URL
재밌다니 빨리 읽고 싶어지네요. 감사합니다 ~~

기억의집 2022-08-28 19: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하늘이 너무 파래 찍었습니다~ 벌초 하셨군요!! 수고하셨습니다~

대장정 2022-08-28 22:05   좋아요 2 | URL
파란하늘이 밖으로 유혹하고 벌초 후유증으로 몸은 피곤하고. 힘든 하루였습니다. 감사합니다 ~~^^

거리의화가 2022-08-29 08: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벌초하고 오셨군요^^ 옆지기도 어제...ㅎㅎ 무척 힘들었다고 하네요. 요새 하늘도 구름도 이뻐서 넘 좋네요. 가을이 성큼 온 느낌입니다. 모아놓고보니 중남미 소설들이 이리도 많군요. 역시 안 읽어본 소설들만 잔뜩... 남은 8월 행복하게 보내시길^^*

대장정 2022-08-29 09:10   좋아요 2 | URL
0ㅇㅇ0저도 안 읽은게 태반이에요.~~벌초할때마다 나중에 내 묘는 아들놈이 깍아주기나 할라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딱 우리 세대까지 인거 같습니다. 행복한 가을 되세요~~^^ 🍂 🥮 🍃 🍂

mini74 2022-08-30 14: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늘 사진 진짜 👍전 콜레라시대의 사랑 넘 찌질하고 재미있었어요 ㅎㅎㅎ 좋은 책들을 잔뜩 사셔서 넘 행복하실듯 합니다 ~

대장정 2022-08-30 22:12   좋아요 1 | URL
찌질하고 재밌다. 왠지 빨리 읽어봐얄것 같네요. 좋은책과 구석진 방만 있으면 한없이 행복하죠 ㅎㅎ 감사합니다 ^^
 

동양화에서 산수화는 5세기 남북조시대 화가 종병이 늙어서 더이상 산에 오르기 힘들어지자 산수화를 그려놓고 누워서 보며 즐긴 데서 나왔다고 한다. 이를 누워서 노닌다고 하여 와유(臥遊)라고 한다.  나의 답사기가 꼭 현장에 가보지 않는다 하더라도 소파에 편하게 기대어독서하는 또 다른 와유가 되기를 바란다.
2015년 9월 유홍준 - P9

남한강의 수맥
국토를 인체에 비유하면 산맥은 뼈, 들판은 살, 강은 핏줄이다. 산과들은 국토의 골격을 이루고 강물은 대지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강은 언제나 그렇듯이 유유히 흐르면서 국토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며 흐르는강물은 여기에 살던 사람들의 애환을 침묵 속에 증언한다. 그리하여 강은 그 이름만 불러보아도 국토의 향기와 역사의 고동이 일어난다. 압록강·두만강·청천강·대동강 임진강·한강·금강·낙동강·섬진강.....…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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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세월을 보낸다. 이때 도련님은 올라갈 적에 숙소마다 잠 못 이뤄, 보고지고 나의 사랑 밤낮으로 보고지고, 그리운 우리 사랑, 날 보내고 그리는 마음 속히 만나 풀리라. 날이 갈수록 마음 굳게 먹고 과거급제하여 외직으로 나가기를 바라더라. - P93

이때 몇 달 만에 신관 사또가 부임하니 자하골 변학도라 하는양반이라. 문필도 볼 만하고 인물 풍채 활달하고 풍류에 통달하여 외입 또한 좋아하되, 한갓 흠이 성격이 괴팍한 중에 가끔씩미친 듯이 날뛰는 증상을 겸하여 혹 실덕(德)도 하고 잘못 처결하는 일이 간간이 있는 것이라. 세상에 아는 사람은 다 고집불통이라 하겠다.
부하 관리들이 사또를 맞이하러 간다.
"부하 관리들 대령이오."
"이방이오."
"감상 126)이오." - P94

사또 매우 기뻐 춘향더러 분부하되,
"오늘부터 몸단장 바르게 하고 수청을 거행하라."
"사또 분부 황송하나 일부종사(從事) 바라오니  분부시행못하겠소."
사또 웃으며 말한다.
"아름답도다. 계집이로다. 네가 진정 열녀로다. 네 정절 굳은 마음 어찌 그리 어여쁘냐 - P109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이요 열녀불경이부(烈女不更二夫)라.  절개를 본받고자 하옵는데 계속 이렇게  분부하시니, 사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하옵고 열녀불경이부오니 처분대로 하옵소서." - P111

이때 회계 나리가 썩 나서 하는 말이,
"네 여봐라. 어 그년 요망한 년이고, 사또 일생 소원이 천하의 일색(一色)이라. 네 여러 번 사양할 게 무엇이냐?  사또께옵서 너를 추켜세워 하시는 말씀이지 너 같은  기생 무리에게 수절이 무엇이며 정절이 무엇인가?  구관은 전송하고 신관 사또 영접함이 법도에 당연하고 사리에도 당연커든 괴이한 말 하지 말라. 너희 같은 천한 기생 무리에게 ‘충렬(忠烈)‘ 두 자가 웬말이냐?" - P111

춘향이 악을 쓰며 하는 말이,
"유부녀 겁탈하는 것은 죄 아니고 무엇이오?"
사또 기가 막혀 어찌 하시던지 책상을 두드릴 제, 탕건이 벗어지고 상투가 탁 풀리고 첫마디가 목이 쉬어,
"이년을 잡아 내리라."
호령하니 골방에서 수청들던 통인,
"예."
하고 달려들어 춘향의 머리채를 주루루 끄어내며
"급창" 156)
"예." - P113

집장사령 161) 여쭈오되,
"사또 분부 지엄한데 저만한 년을 무슨 사정 두오리까. 이년! 다리를 까딱도 하지 말라.  만일 움직이다가는  뼈가 부러지리라."
호통하고 들어서서는 구호에 발맞추어 서면서 춘향에게 조용히 하는 말이,
"한두 대만 견디소. 어쩔 수가 없네. 요 다리는 요리 틀고 저다리는 저리 트소."
"매우 쳐라."
"예잇, 때리오."
딱 붙이니 부러진 형장 막대는 푸르르 날아 공중에 빙빙 솟아대뜰 아래 떨어지고, 춘향이는 아무쪼록 아픈 데를 참으려고 이를 복복 갈며 고개만 빙빙 돌리면서,
"애고 이게 웬일이여." - P115

춘향이는 저절로 설움 겨워 맞으면서 우는데,
"일편단심 굳은 마음은 일부종사하려는 뜻이오니 일개 형벌로 치옵신들 일 년이 다 못 가서 잠시라도 변하리까?"
이때 남원부 한량이며 남녀노소 없이 모두 모여 구경할 제 좌우의 한량들이,
"모질구나 모질구나. 우리 골 원님이 모질구나. 저런 형벌이왜 있으며 저런 매질이 왜 있을까. 집장사령놈잘 보아 두어라.
삼문三門) 밖 나오면 패죽이리라."
KA보고 듣는 사람이야 눈물 아니흘릴 자 있으랴. 둘째 매를 딱붙이니, - P117

"아무 데 살든지라니. 당신은 눈구멍 귓구멍 없나? 지금 춘향이가 수청 아니 든다 하고 형장 맞고 갇혔으니, 기생집에 그런열녀 세상에 드문지라. 옥결 같은 춘향 몸에 자네 같은 동냥치가추잡한 말 하다가는 빌어먹지도 못하고 굶어 뒤지리. 올라간 이도령인지 삼 도령인지 그놈의 자식은 한번 간 후 소식이 없으니,
사람이 그렇고는 벼슬은커녕 내 좆도 못 되지."
"어 그게 무슨 말버릇인고?"
"왜? 뭐 잘못되었나?"
"잘못되었다기보다는 아무리 남이라고 하지만 말버릇이 너무고약한고."
"자네가 철모르는 말을 하니 그렇지."
수작을 끝내고 돌아서며, - P154

하직하고 한 모퉁이를 돌아드니 아이 하나 온다. 지팡이 막대끌면서 시조(時調) 절반, 사설(辭) 절반 섞어 하되,
"오늘이 며칠이고, 천릿길 한양성을 며칠이나 걸어 올라가랴.
조자룡이 강을 넘던 청총마가 있었다면 하루만에 가련마는 불쌍하다. 춘향이는 이서방을 생각하여 옥중에 갇히어서 목숨이경각이라. 불쌍하다. 몹쓸 양반이 서방은 한번 간 후 소식을 끊어버리니 양반의 도리는 원래 그러한가." - P155

지난 해 어느 때에 님을 이별하였던고
엊그제 겨울눈이 내리더니 또 가을이 되었네
미친바람 깊은 밤에 눈물이 눈 같으니
어찌하여 남원 옥중의 죄수가 되었는고

거세하시군별첩(去歲何時君別妾)
고작이동설우동(已冬雪又動秋)라.
광풍반야누여설(狂風半夜淚如雪)하니
하위남원옥중수(何爲南原獄中囚)라. - P158

금준미주(金樽美酒) 천인혈(千人血)이요
옥반가효(玉盤佳着) 만성고(萬姓膏)라
촉루낙시(燭淚落時) 민루낙(民淚落)이요
가성고처(歌聲高處) 원성고(怨聲高)라.
이 글 뜻은, - P175

금동이의 아름다운 술은 일만 백성의 피요
옥소반의 아름다운 안주는 일만 백성의 기름이라.
촛불 눈물 떨어질 때 백성 눈물 떨어지고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 소리 높았더라. - P176

"어 추워라. 문 들어온다 바람 닫아라. 물 마르다 목 들여라."
관청색(官廳色)은 상을 잃고 문짝을 이고 내달으니,  서리, 역졸 달려들어 후닥딱.
"애고 나 죽네." - P179

"기생 월매의 딸이온데 관청에서 포악한 죄로 옥중에 있삽내다."
"무슨 죄인고?"
형리 아뢰되, 본관사또 수청 들라고 불렀더니 수절이  정절이라 수정 아니들려 하고 사또에게 악을 쓰며 달려든 춘향이로소이다."
어사또 분부하되,
"너 같은 년이 수절한다고 관장(官長)에게 포악하였으니 살기를 바랄쏘냐. 죽어 마땅하되 내 수청도 거역할까?"
춘향이 기가 막혀,
"내려오는 관장마다 모두 명관(官)이로구나. 어사또 들으시오. 층암절벽 높은 바위가 바람 분들 무너지며, 청송녹죽 푸른나무가 눈이 온들 변하리까. 그런 분부 마옵시고 어서 바삐 죽여주오."
하며,
"향단아, 서방님 어디 계신가 보아라. 어젯밤에 옥 문간에 와계실 제 천만 당부하였더니 어디를 가셨는지 나 죽는 줄 모르는가."
어사또 분부하되,
"얼굴 들어 나를 보라." - P181

이때 어사또는 좌도와 우도의 읍들을 순찰하여 민정을 살핀후에, 서울로 올라가 임금께 절을 하니 판서, 참판, 참의들이 입시하시어 보고서를 살핀다. 임금께서 크게 칭찬하시며 즉시 이조참의 대사성을 봉하시고 춘향으로 정렬부인을 봉하신다. 은혜에 감사드리고 물러나와 부모께 뵈오니 성(聖恩)을 못 잊어 하시더라.  이때 이조판서 호조판서, 좌의정, 우의정, 영의정 다 지내고 퇴임한 후에 정렬부인으로 더불어 백년동락(百年同樂)할새, 정렬부인에게 삼남삼녀(三男三女)를  두었으니 모두가 총명하여 그 부친보다 낫더라. 
일품 관직이 대대로 이어져 길이 전하더라. - 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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