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냐 개냐 덤벙대지 말구, 이얘기를 헐라걸랑 듣구 허슈. 나는 또랑물을 썼건 새암물을 썼건, 이랄머리 없이 당신 물 쓴 걸 가지구 시간 낭비적으로 이러는 게 아녀. 나는 불법적으로 불을 쓰더라는 소리가 들어와서 뭰고 허구 조사 나온겨, 왜 도전(盜電)을 허는겨? 이왕 전깃줄 사는 짐에 쬐금 더 사서 당신네 두께비집 옆댕이에다 잇어서 쓰면 누가 뭐란다? 계량기가 들어가면 작것 몇 푼어치나 들어갈겨? 그렁께 장터만 나와두 촌것 소리를 듣는겨. 츰버텀 원칙적으로 했으면 이런 일은 있을 수가 읎잖여. 그려 안 그려?"
"츰버텀 사정적으로 나왔으면 그냥 눈감어 줄 참이라. 생무지라 모르구 그랬다든지, 바쁘구 급헌 짐에 우선 선버텀이었다든지, 허기 좋은 말이사 좀 많여. 이건 으른 애두 읎이 맹문이루 올러타려구버텀 허여? 거참……… 젊은이가 생긴 건 그렇찮겄는디 인물이 아까웨・・・・・・ 아직두 한참 더 고생할 상이라 질게 말할 것 없이 가봅시다." "가다니요?" 유가 감바리답게 펄쩍 뛰었다.
"안 그러면? 논에 불붙는 사람이 임자 없이 흘러가는 물 좀 쬐금 돌려 쓴 것이, 그게 그리 대단허여?" 하고 중년은 성을 내기 시작했다.
"얼라……… 여보슈. 그러면 물 보구두 즌기가 읎어 논바닥 태먹는 사람이, 임자 없이 지나가는 걷기 좀 새치기했기루서니, 그게그리 큰 난리유?" 하고 이번에는 장이 갈마들며 중년을 몰아세웠다.
"개갈 안 나는 소리 모 붓구 있네. 젊은이들 쇠견이 그거뿐여?
"안녕하십니까. 신을쟁(申乙鍾)이올시다. 이름이 션찮여 부민장백이는 못합니다마는, 지가 여러분들보다 배운 게 많다거나, 워디가 잘나서 이 앞에 쓴 건 아닙니다. 이 점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교육에 면장님께서 꼭 나오실라구 하셨습니다마는 급헌호의가 있어서 아직 못 나오시는 걸루 알구 있습니다. 호의만 끝나면 즉시 나오셔서 교육에 임하실 줄루 알구 있습니다마는, 그동안은 지가 몇 말씀 드리겠습니다." 여기까지가 예나 이제나 조금도 변함없는 부면장의 인사였다. 부면장은 하던 말을 계속했다.
"사실은 이 시간이 교육시간입니다마는, 가만히 앉아서 자리흐틀지 말구 담배들이나 피셔유. 지 자신이 교육에 대비하여 학습해 둔 게 있는 것두 아니구 해서베랑헐말두 읎습니다. 또 솔직히 말해서 지가 예서 뭐라구 떠들어봤자 머릿속에 담구 기억허실분두 읎을 줄로 알구 있습니다. 그냥 앉어서 죄용히 담배나 피시며 시간을 채우시도록 허서유. 그런디 퇴비들을 쌓으실 때는 몇가지 유의를 해주시라 이겝니다. 위에서 누가 원제 와서 보자구헐는지 알 수 없으닝께, 퇴비장 앞에는 반드시 패찰과 척봉(棒)을 꽂으시구, 지붕 개량허구 남은 썩은새나 그타 여러 가지 찌끄레기루 쌓신 분들은 흔해터진 풀 좀 벼다가 이쁘구 날씬허게 미장을 해주서유. 정월 보름날 투가리에 시래기 무쳐 담듯 허지 마시구, 혼인 때 쓸 두붓모처럼 깨끗하게 쌓주시라이겝니다. 퇴비가일 헥타당 몇 키로 이상이라는 것은 잘들 아시구 기실 중 믿습니다마는, 아무쪼록 식전에 두 짐, 저녁에 두 짐쓱, 반드시 비시도록당부하는 것 입니다."
"모냥 내구 있네. 몇 평이 일 헥타른지워치기 알어." 하고 두런거렸다.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거였지만, 순전히남의 말에 토 달기를 예사로 해온 입버릇 탓이었다. 그러나 좌중은 무심히 넘어가지 않았다. 김의 음성이 너무 컸던 것이다. "뭐여? 이봐유. 뭘 모른다는 규? 구식 노인네두 다 아는 상식을당신 증말 몰러서 헌 소리유?" 하며 부면장이 따져들기 시작했다. 할 말도 없는데 시간은 남고처져 심란하던 중 계제에 잘됐다는 눈치가 역연했다. 부면장은 마이크 쥔 손을 뒷짐 진 채 육성으로 떠들고 있었다. "당신 같은 사람은 워디를 가봐두 으레껀 한두 사람씩 있어. 그러나 여기는 그런 농담헐 디가 아녀." 김은 남의 눈이 수백이라 구새먹은 사정이 부러지듯 싱겁게 들어가기도 우습고, 그렇다고 졸가리 없이 함부로 말대답하기도 그렇겠고 하여 어쩔 줄 모르다가 마음에 없던 말을 엉겁결에 내뱉었다. "알면 지랄한다구 물으유? 평두 있구 마지기두 있구 배미두 있는디
는디, 해필이면 알어듣기 그북하게 헥타르라구 헐 건 뭐냐 이게유." "천동면이 이렇게 촌인가…… 저런 딱힌 사람두 다 있으니, 나보슈, 국가시책으로, 미터법에 의하야 도량형 명칭 바뀐 지가 원젠디 연태까장 그것두 모르는겨? 당신이 시방 나를 놀려보겠다―이게여?" 부면장은 당장 잡도리할 듯이 눈을 부라리며 언성을 높였다. 곁에 앉은 남병만이가 팔꿈치로 집적거리며 참으라고 했으나 김도 주눅들지 않고 앉은채로 응수했다. "내 말은 그렇게밖이 안 들리유? 저 학교 교실 벽뙈기 좀 보슈. 뭐라구 써붙였슈? 나라사랑 국어사랑……… 우리말을 쓰자는 것두국가시책이래유. 옛날버텀관공리 말 다르구 농민들 말 다른 게원칙인 게유. 천동면이 이렇게 촌인가…… 끙." 부면장은 무슨 말이 나오는 것을 참는지 한참 동안 입술만 들먹거리더니 겨우 말머리를 찾은 것 같았다. "도대체 당신 워디 사는 누구여? 뭣 허는 사람여?" 그러자 누군가가 뒤에서 큰소리로 대답했다. "그 사람두 높어유."
부면장은 들은 척도 않고 하던 말을 계속했다. "에, 날두 더운디, 지루허시드래두 자리 흐트리지 마시구 담배나 피시며 쉬서유. 저 놀미 사는 높은 양반두 승질 구만 부리시구편히 쉬서유. 미안합니다." 그러자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김은 그 박수의 임자가 자기라고 믿으며 속으로 웃었다.
"엄니, 불 좀 켜봐, 다 밝었잖여." 하는 아이 말에 "다 밝었다메 불은 지랄허러 키라남?"
"그런 디는 다다 빠지지 마슈. 요새 공기 돌어가는 것 봉께 아마 원제 슨거가 있을 모냥이던디, 나오라는 디 빼먹구서 쓸디읎이 밉뵈지 말구………. 즘심까장 먹여준다니 심심찮게 가봐유. 아침은 생일집에서 델러 올 게구, 즘심일랑 게 가서 에끼구, 오늘은 사발농사만 전문 허겄구먼. 쌀밥 두 그릇이 워디여." "・・・・・・것, 개갈 안 나는 헛소리 웬만치 아갈걸랑 그늠으 아갈머리 좀 닥치구 빚가림헐 도리나궁리혀 봐. 누구 땜이 이 지경으루 째는디 빕더스는겨." 눈뜨면서부터 비위가 뒤틀린 리는 만만한 아내와 전기밥솥을 번갈아 흘겨보며 부아를 내뱉었다.
리는 돌아앉아 책상 서랍에서 수첩을 꺼내놓고다시 한 번 그믐날까지 갚지 않으면 안 될 돈을 조목별로 훑어보았다. ○ 하이닥크 입제, 모게산도 입제, 아비로산 입제 제초제 대금 계 9,500원. ○ 다찌가렌, 바리다마신, 호리치온, 다이야논유제, 엘산 다이야지입제 병충해방제 대금계 12,000원. ○ 복합비료, 규산질, 용성인비-비료 대금 계57,000. ○ 불도저 사용료 200,000원. ○ 테레비, 전자자, 선풍기, 전기밥솥 대금 계187,000. ○ 총계 465,500원.
"죽은 자지두 시 번은 끄덱그린다는디 하물며 하루 시 끄니 밥먹는 사람이………… 속절없이 그대로 그냥 살면 간 안 맞어 살겄네? 그렁께 늬덜두 핵교 가서나 집이 오너서나 절대 넘으 장단에 덩달지 말구 늬덜 깜냥껏 줏대 있어 살으란 말여." "......." 아이들은 아비의 속을 모르겠는 모양이었다.
리는 절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배와 한이 쌀을 얻을 데가 없었다면 이미 다 틀린 일이었다. 이낙수 말마따나 소를 파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을 거였다. 소 시세는 좋은 편이었다. 일찍이 황소한 마리가 경운기 한 대와 맞먹은 적이 없었으나, 요즘은 경운기를 사고도 우수리가 떨어질 정도로값이 채였다. 그러나 막상 소 소리를 들으니 속이 뒤집힐 것 같았다. 소는 가축이라기보다 가족의 일원이었다. 값지고 덩치 있는 짐승이라서가 아니라 기른 공력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소를 내놓으려면반드시 그에 값하는 경사가 뒤따라야 보람도 뵈고올차며 오달진 거였다. 논이 는다든가, 자식이 대학을 간다든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누에고치 수입을 거절한다는 단 한 가지 구실로 누에고치 값이 사 년전 시세 그대로 묶여버려, 올들어 비로소꼴같아진 뽕밭을 뒤집어엎는 비용으로 소가 나간다면 진실로 염치없는 일이었다. 리는 되새겨 볼수록 부끄러웠다. 땅임자답게 땅을 거루지 못해 부끄럽고, 겨우 뿌리가 잡힐 만하여 캐어버린 뽕나무의 주인됨이 부끄러웠고, 소임자답게 소를 가다루지 못해 부끄러웠으며, 자기 가늠을 저버리고 시킨 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던, 무능하고 무력한 됨됨이가 짝없이부끄럽던 것이다.
그는 해마다 놀미 성낙근이네 고지논을 얻어고지만 먹고 살다시피 한 터였다. 남의 고지논을짓기가 얼마나 고달픈가는 지어본 사람이나 알 만한 일. 하늘이 너그러워 물이 흔해야 하고, 작년처럼 모잘룩병 초장에 다찌가렌과 부라에스가 있었음에도 장마로 때를 놓친다거나, 배동이 오르면서흰등멸구가 번져가도 다이야지 논유제를 못 구하여 이틀씩이나 허둥거리는 일이 없어야만, 한나절을 엎드렸다 일어나도 터가 나던 것이다. 고지를 쓰는 사람이 한 가지 괜찮은 것, 그것은한 해 품삯을 미리 받아먹는다는 것뿐이었다. 그것도 농사 됨새가 시원찮으면 이듬해에 다시 말하기가 수월찮아 탈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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