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철학자 헤겔도, ‘로제타스톤‘을 해독한 샹폴리옹도, 불멸의 저작 『전쟁론』의 저자 클라우제비츠도 피해가지 못한 콜레라균 - P119
19세기 중엽까지도 영국 학계와 민간에서는 여전히 콜레라와 같은 감염병이 미아즈마, 즉 나쁜 공기 탓이라고 믿었다. 런던 시 당국은 원인으로 추정되는 악취를 근절하기 위해 오물 구덩이를 덮어 없애고 하수도정비사업을 대대적으로 추진했다. - P126
1858년 6월, 템스강에서 코를 찌르는 고약한 악취가 퍼져 나가면서 강변에 자리 잡은 의사당이 폐쇄되는 초유의 사태로 비화했다. 이를 계기로 런던 시 당국은 투자와 재정 지원을 쏟아부어 대대적인 하수도 시스템 정비에 나섰다. - P129
콜레라가 요괴나 악령의 소행이라고 믿는 사람도 많았다. 민간에 "나가사키에 들어온 미국인이 늑대를 데려와서콜레라가 퍼졌다"라는 괴이한 소문이 돌면서 늑대를 신으로 모시는 신사가 생겨나고 늑대를 믿는 민간신앙이 싹텄다. - P138
상하수도정비가 뒤처진 해외 빈곤지역과 분쟁지역에서는지금도 콜레라가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 세계화로 지구촌이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인 오늘날 콜레라는여전히 방심할 수 없는 주요 감염병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 P145
말라리아는 요즘은 보기 드문 열대성 전염병이다. 일본은 1870년대부터 태평양 전쟁 전까지 아열대에 속한 대만을 점령해 말라리아와 대대적인 싸움을 벌였다. 19세기에 일본은 인도와 동남아시아에서 영토를 확장한 서구 열강과 같은 길을 걸었다. 말라리아가 창궐하여 많은 사람을 괴롭히던 비교적 이른 시기에 ‘퀴닌(quinine)‘이라는 특효약이 개발되었다. 그리고 각국의 퀴닌 원료 확보 문제가 두 번의 세계대전의 향방을크게 바꾸어놓을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 P148
말라리아를 옮기는 병원체는 ‘말라리아원충‘이며, 말라리아원충은 날개에 얼룩무늬가 있는 학질모기를 통해 사람에게 감염된다. 말라리아원충은 호흡을 통해 사람 몸밖으로 배출되지 않으므로 기본적으로 사람을 통해 감염되지 않는다. - P153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투탕카멘과 마케도니아의 위대한 군주 알렉산드로스 대왕도 말라리아로 죽었다는데? - P155
로마제국 시대가 시작되고 광활한 영토를 연결하는 도로 건설이 여기저기에서 추진되었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 제국 전체로 역병이 고르게 퍼져 나갔다. - P158
세계보건기구는 말라리아를 결핵, 에이즈와 함께 ‘3대 감염병‘으로 규정하고 예방과 치료에 매진하고 있다. 21세기에 들어선 이후 말라리아원충을 구성하는 단백질 해독이 진행되었지만 현재까지 효과적인 백신은 실용화되지 않았다. - P170
이질은 전쟁터를 비롯한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굶주림에 허덕이는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과 고통으로 몰고 간 위협적인 감염병이다. 19세기 말 일본에서도 이 병이 유행하면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는데 상하수도정비 부족 등이 중요한 원인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온 세계가 눈에 불을 켜고 찾던 이질 병원균을 비로소 발견한 인물이 있다. 놀랍게도 그는 새파랗게 젊은 나이의 일본인 의학자였다. - P176
113세기 프랑스 국왕 루이 8세는 직접 십자군을 이끌고프랑스 남부의 가톨릭교 이단을 정벌하러 나섰다가 돌아오는 길에 이질로 세상을 떠났다. 이 원정에서 이질과 말라리아로 인한 병사자 수는 전사자 수를 넘어섰다. - P181
칼레 해전에서 잉글랜드 해군에 대패한 스페인의 무적함대에 또다시 치명타를 입힌 감염병, 이질과 티푸스 - P188
한때 세계 제해권을 장악했던 막강한 스페인 무적함대도, 그 무적함대를 격파하고 해양 강대국으로서 전 세계 주도권을 장악한 잉글랜드 해군도, 이질과 티푸스에는 이길 방법이 없었다. - P189
1840 년대에 시작된 아일랜드의 대기근에 이질과 티푸스 같은 감염병마저 덮쳐 100만 명도 넘는사망자가 발생했다. 이때 곤궁한 생활을 벗어나고자 목숨을 걸고 미국행 배에 오른 아일랜드인의 후손은 이후 거대한 나라 미국을 이끄는 중심인물로 부상하기도 했다. - P191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좁고 비위생적인 참호는 바이러스와병원균이 번식하기에 안성맞춤인 환경을 제공했다. 인플루엔자를 비롯해 이질, 발진티푸스, 콜레라 등이 모두참호에서 나와 전 유럽으로 확산되었다. - P198
1904년에 발발한 러일전쟁에서 일본군은 청일전쟁에서 얻은교훈을 바탕으로 병영의 위생을 철저히 관리했다. 그 주요 대책중 하나로 오늘날에도 판매되는 ‘정로환(正露丸)‘이라는 배탈약을이질과 티푸스 예방책으로 병사들에게 보급했는데, 이 약이 뛰어난 효과를 발휘했다. 당시에는 ‘러시아를 정벌하는 약‘이라는 의미로 ‘바를 정‘ 대신 ‘정복할 정‘을 써서 ‘정로환(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 P202
유럽에서 마치 페스트와 바통을 주고받듯 결핵이 등장했다. 19세기의 상황이다. 인간사회에 새롭게 등장한 결핵은새로운 현상을 창조했다. 예컨대 창백한 얼굴로 울컥 피를 토하다가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는 환자의 모습이 문학과 연극 등의예술작품에서 비극적 소재로 다루어졌다. 그리고 결핵환자들이몸을 추스를 수 있는 전문 요양시설 같은 새로운 산업이공기가 깨끗한 지역에 생겨났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시점인1945년 즈음까지 ‘불치병‘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던 이 질병은근대 이후 어떻게 감염병의 대표주자가 되었을까? - P208
19세기 유럽에서는 결핵이 확산되며 이 병을 비극적 모티브로 그린문학과 예술작품이 대거 탄생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알렉상드르 뒤마 피스의 『춘희』를 꼽을 수 있다.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는 실제로 풍채가 좋고 활동적인 인물이었으나폐병을 앓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 애를 썼다고 알려져 있다. - P219
19세기 유럽에서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는 산악지대나따스한 햇빛이 풍부한 지중해 연안에 세워진결핵 전문 근대적 요양시설은 상류계급 전용 사교의 장이었다. - P224
21세기 현재 시점에 인류가 거의 극복한 감염병이 있다. 바로 천연두(天然)다. 그러나 인류가 천연두라는 질병을극복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아니, 무척이나 길고험난한 여정이었다. 천연두는 원래 ‘두창(痘瘡)‘, ‘포창(疱瘡)‘ ‘마마(媽媽)‘라고 불렸다. 이 질병은 고대부터 아시아와 유럽의 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갔다. 한편 수천년 동안 천연두와 무관하게 살면서 면역이 생기지 않은지역이 존재했다. 그리고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처럼 천연두의 손길이전혀 미치지 않은 이 지역에 천연두가 포악한 짐승처럼 상륙하면서세계사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 P230
코르테스가 훑고 지나간 곳에 살던 아스테카 사람들이천연두에 걸렸다. 온몸에 종기가 생기고 거동이 힘들 정도로심하게 앓는 사람이 많았다. 군인과 민중이 차례로 쓰러지며스페인군에 저항다운 저항조차 할 수 없었다. 아스테카제국이 멸망하는 데는 2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 P244
백인 이주자들이 오세아니아대륙 개척을 시작한 이후선주민 사이에 세 차례 천연두가 대유행했다. 초기 개척이 진행된 남부에서는 백인의 토지 수탈과의도적 학살 외에도 천연두를 비롯한 각종 감염병이 창궐하며선주민의 절반 정도가 사라졌다. - P254
이 실험으로 제너는 면역이론을 확립했다. 우두를 접종해 천연두 감염을 예방하는 ‘종두법‘이 탄생한 것이다. 제너는 이 치료법을 라틴어로 ‘암소‘를 뜻하는 vacca에서 따와 vaccination이라고 이름 붙였다. 오늘날 천연두뿐 아니라 수많은 감염병 치료에 사용하는 ‘백신‘이라는 용어가 이렇게 세상에 나왔다. - P256
‘면역‘ 개념은 에드워드 제너가 단독으로 발견한 게 아니다. 오랜 세월 축적된 지식과 눈에 보이지 않는 자산이 있었기에완성될 수 있었다. 천연두에 한 번이라도 걸렸다가 회복한 사람은다시는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고대부터 이미 알려져 있었다. - P257
이러한 노력으로 1977년 아프리카 동부 소말리아에서 발생한환자를 마지막으로 세계 어디에서도 천연두 환자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로부터 2년여 감시 기간을 거친 후 1980년 5월에 세계보건기구는 천연두의 ‘세계 퇴치 선언‘을 발표했다. 천연두는인류 역사상 최초로 사실상 완전히 퇴치한 감염병이 되었다. 그 후 각국이 보유한 천연두 백신은 대부분 폐기되었는데, 미국과 소련은 생물 병기 대책을 위해 계속 보관했다. 그런데 그중일부가 1990년대 소련 붕괴 후 혼란을 틈타 해외로 반출되었다고 알려졌다. - P260
고대부터 전해온 기록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고 근대 이후에 ‘퍼진 감염병도 여럿 있다. 황열병 (熱病)이 대표적 사례인데, 이 병은 백인이 남북아메리카대륙 개척에 나선 이후 본격적으로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한 감염병이다. 19세기에 세워진 신흥국 미합중국은 황열병과 징글징글하게질긴 인연을 가진 나라다. 광활한 영토를 확보하고 인접한 중미 지역에우선권을 주어 안전한 무역로를 확보한 채 순조롭게 출발한미국이라는 새내기 나라는 그 시작점부터 황열병과 동고동락해왔다. - P264
19세기 말 쿠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쿠바의 독립을 지지하던 미국이 스페인에 선전포고하면서쿠바 독립 투쟁은 미국-스페인 전쟁으로 발전했다. 이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함으로써 쿠바는 독립을 쟁취했으나실질적으로는 미국의 지배를 받는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 P277
인간이 열대성 감염병과 맞대결하여 거둔 승리가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항로로 무역망을 발전시켰다. 파나마 운하 개통으로 자신감을 얻은 인류는 모기를 박멸하면황열병을 예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이해했다. - P284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1세는 전 유럽 패권 장악의 가슴 벅찬 순간을눈앞에 두고 있었다. 결승선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그가 주도적으로 벌인 가장 큰 군사 행동은 ‘러시아 원정‘이었는데, 불행하게도 그 원정이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실패는나폴레옹의 모든 성공과 영광을 무위로 돌리고 그를몰락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기 시작했다.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실패를 두고 일반적으로 혹한과 러시아 측의교묘한 군사 작전이 운 좋게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사실 여기에는 그보다 더 큰 원인이 숨어 있었다. 그게 뭘까? 그것은 바로 감염병 ‘티푸스(발진티푸스)‘였다. 티푸스가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며 전쟁의 향방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것이었다. 티푸스가 승패를 뒤바꾸는 심술궂은 운 좋게 승리한 측에게는 천만다행스러운)캐스팅보트 역할을 한 것은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만이 아니었다. - P293
장티푸스와 발진티푸스가 완전히 다른 병이라는 점을 밝혀낸 영국 의사 윌리엄 제너
고열과 발진을 동반하는 질병을 통틀어 ‘티푸스‘라고 부르며 ‘장티푸스‘, ‘파라티푸스‘, ‘발진티푸스‘, 이렇게 세 종류가 알려져 있다. 티푸스라는 이름은 ‘혼란스러운‘이라는 뜻의 그리스어typhos(thphus)에서 따왔는데 환자가 고열로 몽롱해진 상태를 나타낸다. - P295
19세기 초 유럽을 제패한 프랑스 나폴레옹 1세의 권력이내리막길로 들어서는 변곡점으로 러시아 원정 실패를 들곤 한다. 40만 대군이 의기양양하게 출발했다 2만명만 돌아올 수 있었던러시아 후퇴에는 티푸스 창궐이 큰 영향을 미쳤다. - P299
"이가 이기느냐, 사회주의가 이기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발진티푸스는 나폴레옹의 프랑스군만 괴롭힌 것은 아니었다. 이 악랄한 감염병은 러시아에서도 어느새 풍토병으로 자리잡았는지 1917년 러시아혁명 전후로도 한 차례 대유행의 광풍이몰아쳐 러시아 국내적으로도 큰 문제가 되었다. 그 무렵 혁명 지도자 레닌(Lenin, 본명은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Vladimir Il‘ich Ulyanov)이 "이가 이기느냐, 사회주의가 이기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말까지 남겼을 정도로 지도층의 골머리를않게 했던 지독한 병이었다. - P300
매독은 전 세계로 뻗어 나가며 폭발적으로 유행했다. 이 병은 사람간 접촉인 성관계로 감염되는 대표적인 질병이다. 일본도 예외는아니었는데, 희한하게도 일본인은 매독을 낙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경향이 있었다. 그런 터라 일본을 찾는 외국인의 눈에는 매독에 대한· 일본인의 관점이 상당히 특이하게 비친 모양이다. 그들 나라에서는매독을 나라를 망하게 할 정도로 공포스럽고 위협적인 질병으로 여기고있었는데 말이다. 어쨌든 매독은 확실하게 생명을 갉아먹는 불치병이었기에 매독에 걸려고통스럽게 임종을 맞이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 P308
전 유럽인을 상대로 ‘가짜 매독 특효약‘을 만들어 팔아 막대한 부를 챙긴 푸거 가문 - P315
아메리카대륙에서 수입한 유창목 진액으로 만든 약이매독에 잘 듣는다는 소문이 퍼져 나갔다. 수은 요법의 부작용으로고생하던 매독 환자들은 지갑을 활짝 열고 이 약을 경쟁하듯사들였지만, 유창목 진액은 매독에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유창목을 수입한 푸거가만 떼돈을 벌었다. - P316
일본에서는 남녀 모두 매독을 예사롭게 여길 뿐 아니라 전혀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이는 무로마치시대 말기에 선교 목적으로 일본을 찾은 포르투갈 출신 예수회 사제 루이스 프로이스(Luis Fráis)가 남긴 기록이다. 또 1823년에 일본을 찾은 독일 의사 필리프 프란츠 폰 지볼트(Philipp Franz Balthasar von Siebold)는 "매독은 일본에 깊숙이 뿌리 내린질병"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 P320
불치병인 매독은 많은 예술가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가곡의왕‘이라는 애칭으로 널리 알려진 오스트리아 작곡가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는 매독 혹은 매독 치료를 위해 사용한 수은 중독이 원인이 되어 목숨을 잃었다. 연작 교향시 <나의 조국>을 남긴체코의 베드르지흐 스메타나(Bedřich Smetana)도 공식 부검 기록과유해 근육 조직 분석을 통해 매독이 사인으로 판명되었다.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 (Friedrich Wilhelm Nietzsche)는 만년에매독균이 뇌를 침범해 정신착란을 일으켜 광기에 사로잡힌 채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일본 소설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가 중국 여행 중매독에 걸렸다는 소문도 있다. 그런 터라 그의 작품 중 매독에 걸린 창부를 그린 단편소설 난징의 그리스도(南京)基督)」속 어느일본인 여행자는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을 모델로 삼았다고여겨졌다. - P322
요코하마에는 1,000여 명의 윤락여성이 있는데 그중 3분의 1이 스물다섯 살까지도 못 살고 매독으로 세상을 떠난다. 요코하마의 매독 감염률은 평균 수치의 두 배를 훨씬 웃돈다. 일본 전국에 수만 개의 윤락시설이 있고 도시에 사는 서른 살 남성의 3분의 1이 매독에 걸렸다. - P323
인류는 오랜 역사를 역병과 싸우며 힘겹게 걸어왔다. 그리고 한편으로인류는 야생동물의 가축화, 도시 밀집 거주, 상업, 교역, 전쟁 등의 행위를통해 온갖 감염병을 전세계 곳곳에 퍼뜨린 주범이기도 했다. 다음의 세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감염병을 일으키는 병원체의 정체는뭘까?‘ ‘병원체는 어떻게 인간의 생활공간에 침입하고 사람들을 감염시켜왔을까?‘ ‘인류는 어떻게 이 감염병과 싸우는 방법을 찾아내고 실행에옮겼을까?" - P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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