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는 두 종류의 커피가 있었는데,
나는 둘 중 더 검은 것을 선택했다.
그러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로버트 프로스트 - P5

커피와 권력이 서로를 갈망하고 이용하며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꾸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커피에 매혹되었다. 식용 음료로 군대에 커피를 맨 처음 보급한 이가 바로 나폴레옹이었다는 사실이 그 점을 증명해준다. 나폴레옹은 왜 맛도없고 색깔도 거무튀튀한 그 독특한 음료에 매료되었을까? 이유는 단순하다. 영양분이 거의 없는데도 왠지 힘이 나게 하는 음료였기 때문이다. - P9

이슬람 수피교도가 ‘욕망을 억제하고 수행에 정진하기 위해"
즐겨 마셨던 독특한 ‘검은 음료‘, ‘커피‘라는 이름의 이 음료는 역설적으로 17세기 유럽 상업자본가와 정치권력자의 욕망을 자극하며 유럽과 전 세계 문화를 바꿔놓기 시작했다. - P12

어느날 칼디가 새 목초지를 찾아 산양 무리를 몰고 갔다가어둑어둑한 저녁녘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한데 웬일인지낮 동안 배가 부르도록 실컷 풀을 뜯어 먹은 양들이흥분한 채 밤늦도록 잠들지 못했다. - P29

"이 검은 물에는 잠잠성수(Zamzam water)와 같은 신비한 힘이 들어 있습니다."
잠잠성수란 뭘까? 메카의 카바신전 옆에 있는 신비한 우물물을 말한다. 그 크고 깊은 우물은 오랜 옛날 하갈이 황야에서 방황하던 중 물병에 물이 한 방울도 남지 않아 갈증으로 고통받던 아들 이스마엘이 목숨을 잃을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을 때 아들을 살려달라고 슬피 울며 기도하자 신이 그녀의 눈을 밝게 해서발견한 것이라고 한다. 이는 아브라함에게서 아들을 낳은 하갈이본처 사라의 시기로 아들과 함께 추방되었을 때 벌어진 일이다.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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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철학자 헤겔도, ‘로제타스톤‘을 해독한 샹폴리옹도,
불멸의 저작 『전쟁론』의 저자 클라우제비츠도
피해가지 못한 콜레라균 - P119

19세기 중엽까지도 영국 학계와 민간에서는 여전히
콜레라와 같은 감염병이 미아즈마, 즉 나쁜 공기 탓이라고 믿었다.
런던 시 당국은 원인으로 추정되는 악취를 근절하기 위해 오물 구덩이를 덮어 없애고 하수도정비사업을 대대적으로 추진했다. - P126

1858년 6월, 템스강에서 코를 찌르는 고약한 악취가 퍼져 나가면서 강변에 자리 잡은 의사당이 폐쇄되는 초유의 사태로 비화했다.
이를 계기로 런던 시 당국은 투자와 재정 지원을 쏟아부어 대대적인 하수도 시스템 정비에 나섰다. - P129

콜레라가 요괴나 악령의 소행이라고 믿는 사람도 많았다.
민간에 "나가사키에 들어온 미국인이 늑대를 데려와서콜레라가 퍼졌다"라는 괴이한 소문이 돌면서 늑대를 신으로 모시는
신사가 생겨나고 늑대를 믿는 민간신앙이 싹텄다. - P138

상하수도정비가 뒤처진 해외 빈곤지역과 분쟁지역에서는지금도 콜레라가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
세계화로 지구촌이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인 오늘날 콜레라는여전히 방심할 수 없는 주요 감염병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 P145

말라리아는 요즘은 보기 드문 열대성 전염병이다.
일본은 1870년대부터 태평양 전쟁 전까지 아열대에 속한 대만을 점령해
말라리아와 대대적인 싸움을 벌였다. 19세기에 일본은 인도와 동남아시아에서
영토를 확장한 서구 열강과 같은 길을 걸었다. 말라리아가 창궐하여
많은 사람을 괴롭히던 비교적 이른 시기에 ‘퀴닌(quinine)‘이라는 특효약이 개발되었다. 
그리고 각국의 퀴닌 원료 확보 문제가 두 번의 세계대전의 향방을크게 바꾸어놓을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 P148

말라리아를 옮기는 병원체는 ‘말라리아원충‘이며, 말라리아원충은
날개에 얼룩무늬가 있는 학질모기를 통해 사람에게 감염된다.
말라리아원충은 호흡을 통해 사람 몸밖으로 배출되지 않으므로
기본적으로 사람을 통해 감염되지 않는다. - P153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투탕카멘과
마케도니아의 위대한 군주 알렉산드로스 대왕도
말라리아로 죽었다는데? - P155

로마제국 시대가 시작되고 광활한 영토를 연결하는
도로 건설이 여기저기에서 추진되었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 제국 전체로 역병이 고르게 퍼져 나갔다. - P158

세계보건기구는 말라리아를 결핵, 에이즈와 함께
‘3대 감염병‘으로 규정하고 예방과 치료에 매진하고 있다.
21세기에 들어선 이후 말라리아원충을 구성하는 단백질 해독이 진행되었지만 현재까지 효과적인 백신은 실용화되지 않았다. - P170

이질은 전쟁터를 비롯한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굶주림에 허덕이는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과 고통으로 몰고 간 위협적인 감염병이다.
19세기 말 일본에서도 이 병이 유행하면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는데
상하수도정비 부족 등이 중요한 원인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온 세계가 눈에 불을 켜고 찾던 이질 병원균을
비로소 발견한 인물이 있다. 놀랍게도 그는 새파랗게 젊은 나이의 일본인 의학자였다. - P176

113세기 프랑스 국왕 루이 8세는 직접 십자군을 이끌고프랑스 남부의 가톨릭교 이단을 정벌하러 나섰다가 돌아오는 길에
이질로 세상을 떠났다. 이 원정에서 이질과 말라리아로 인한 병사자 수는 전사자 수를 넘어섰다. - P181

칼레 해전에서 잉글랜드 해군에 대패한
스페인의 무적함대에 또다시 치명타를 입힌 감염병,
이질과 티푸스 - P188

한때 세계 제해권을 장악했던 막강한 스페인 무적함대도,
그 무적함대를 격파하고 해양 강대국으로서 전 세계 주도권을 장악한 잉글랜드 해군도, 이질과 티푸스에는 이길 방법이 없었다. - P189

1840 년대에 시작된 아일랜드의 대기근에
이질과 티푸스 같은 감염병마저 덮쳐 100만 명도 넘는사망자가 발생했다. 이때 곤궁한 생활을 벗어나고자
목숨을 걸고 미국행 배에 오른 아일랜드인의 후손은 
이후 거대한 나라 미국을 이끄는 중심인물로 부상하기도 했다. - P191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좁고 비위생적인 참호는 바이러스와병원균이 번식하기에 안성맞춤인 환경을 제공했다.
인플루엔자를 비롯해 이질, 발진티푸스, 콜레라 등이 모두참호에서 나와 전 유럽으로 확산되었다. - P198

1904년에 발발한 러일전쟁에서 일본군은 청일전쟁에서 얻은교훈을 바탕으로 병영의 위생을 철저히 관리했다. 그 주요 대책중 하나로 오늘날에도 판매되는 ‘정로환(正露丸)‘이라는 배탈약을이질과 티푸스 예방책으로 병사들에게 보급했는데, 이 약이 뛰어난 효과를 발휘했다. 당시에는 ‘러시아를 정벌하는 약‘이라는 의미로 ‘바를 정‘ 대신 ‘정복할 정‘을 써서 ‘정로환(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 P202

유럽에서 마치 페스트와 바통을 주고받듯 결핵이 등장했다.
19세기의 상황이다. 인간사회에 새롭게 등장한 결핵은새로운 현상을 창조했다. 예컨대 창백한 얼굴로 울컥 피를 토하다가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는 환자의 모습이 문학과 연극 등의예술작품에서 비극적 소재로 다루어졌다. 그리고 결핵환자들이몸을 추스를 수 있는 전문 요양시설 같은 새로운 산업이공기가 깨끗한 지역에 생겨났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시점인1945년 즈음까지 ‘불치병‘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던 이 질병은근대 이후 어떻게 감염병의 대표주자가 되었을까? - P208

19세기 유럽에서는 결핵이 확산되며 이 병을 비극적 모티브로 그린문학과 예술작품이 대거 탄생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알렉상드르 뒤마 피스의 『춘희』를 꼽을 수 있다.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는 실제로 풍채가 좋고 활동적인 인물이었으나폐병을 앓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 애를 썼다고 알려져 있다. - P219

19세기 유럽에서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는 산악지대나따스한 햇빛이 풍부한 지중해 연안에 세워진결핵 전문 근대적 요양시설은 상류계급 전용 사교의 장이었다. - P224

21세기 현재 시점에 인류가 거의 극복한 감염병이 있다.
바로 천연두(天然)다. 그러나 인류가 천연두라는 질병을극복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아니, 무척이나 길고험난한 여정이었다.
천연두는 원래 ‘두창(痘瘡)‘, ‘포창(疱瘡)‘ ‘마마(媽媽)‘라고 불렸다.
이 질병은 고대부터 아시아와 유럽의 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갔다.
한편 수천년 동안 천연두와 무관하게 살면서 면역이 생기지 않은지역이 존재했다. 그리고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처럼 천연두의 손길이전혀 미치지 않은 이 지역에 천연두가 포악한 짐승처럼 상륙하면서세계사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 P230

코르테스가 훑고 지나간 곳에 살던 아스테카 사람들이천연두에 걸렸다. 온몸에 종기가 생기고 거동이 힘들 정도로심하게 앓는 사람이 많았다. 군인과 민중이 차례로 쓰러지며스페인군에 저항다운 저항조차 할 수 없었다.
아스테카제국이 멸망하는 데는 2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 P244

백인 이주자들이 오세아니아대륙 개척을 시작한 이후선주민 사이에 세 차례 천연두가 대유행했다.
초기 개척이 진행된 남부에서는 백인의 토지 수탈과의도적 학살 외에도 천연두를 비롯한 각종 감염병이 창궐하며선주민의 절반 정도가 사라졌다. - P254

이 실험으로 제너는 면역이론을 확립했다. 우두를 접종해 천연두 감염을 예방하는 ‘종두법‘이 탄생한 것이다. 제너는 이 치료법을 라틴어로 ‘암소‘를 뜻하는 vacca에서 따와 vaccination이라고 이름 붙였다. 오늘날 천연두뿐 아니라 수많은 감염병 치료에 사용하는 ‘백신‘이라는 용어가 이렇게 세상에 나왔다. - P256

‘면역‘ 개념은 에드워드 제너가 단독으로 발견한 게 아니다.
오랜 세월 축적된 지식과 눈에 보이지 않는 자산이 있었기에완성될 수 있었다. 천연두에 한 번이라도 걸렸다가 회복한 사람은다시는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고대부터 이미 알려져 있었다. - P257

이러한 노력으로 1977년 아프리카 동부 소말리아에서 발생한환자를 마지막으로 세계 어디에서도 천연두 환자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로부터 2년여 감시 기간을 거친 후 1980년 5월에 세계보건기구는 천연두의 ‘세계 퇴치 선언‘을 발표했다. 천연두는인류 역사상 최초로 사실상 완전히 퇴치한 감염병이 되었다.
그 후 각국이 보유한 천연두 백신은 대부분 폐기되었는데, 미국과 소련은 생물 병기 대책을 위해 계속 보관했다. 그런데 그중일부가 1990년대 소련 붕괴 후 혼란을 틈타 해외로 반출되었다고 알려졌다. - P260

고대부터 전해온 기록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고  근대 이후에 ‘퍼진 감염병도 여럿 있다. 황열병 (熱病)이 대표적 사례인데,
이 병은 백인이 남북아메리카대륙 개척에 나선 이후 본격적으로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한 감염병이다.
19세기에 세워진 신흥국 미합중국은 황열병과 징글징글하게질긴 인연을 가진 나라다. 광활한 영토를 확보하고 인접한 중미 지역에우선권을 주어 안전한 무역로를 확보한 채 순조롭게 출발한미국이라는 새내기 나라는 그 시작점부터 황열병과 동고동락해왔다. - P264

19세기 말 쿠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쿠바의 독립을 지지하던 미국이 스페인에 선전포고하면서쿠바 독립 투쟁은 미국-스페인 전쟁으로 발전했다.
이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함으로써 쿠바는 독립을 쟁취했으나실질적으로는 미국의 지배를 받는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 P277

인간이 열대성 감염병과 맞대결하여 거둔 승리가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항로로 무역망을 발전시켰다.
파나마 운하 개통으로 자신감을 얻은 인류는 모기를 박멸하면황열병을 예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이해했다. - P284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1세는 전 유럽 패권 장악의 가슴 벅찬 순간을눈앞에 두고 있었다. 결승선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그가 주도적으로 벌인 가장 큰 군사 행동은 ‘러시아 원정‘이었는데,
불행하게도 그 원정이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실패는나폴레옹의 모든 성공과 영광을 무위로 돌리고 그를몰락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기 시작했다.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실패를 두고 일반적으로 혹한과 러시아 측의교묘한 군사 작전이 운 좋게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사실 여기에는 그보다 더 큰 원인이 숨어 있었다. 그게 뭘까?
그것은 바로 감염병 ‘티푸스(발진티푸스)‘였다. 티푸스가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며 전쟁의 향방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것이었다.
티푸스가 승패를 뒤바꾸는 심술궂은 운 좋게 승리한 측에게는 천만다행스러운)캐스팅보트 역할을 한 것은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만이 아니었다. - P293

장티푸스와 발진티푸스가 완전히 다른 병이라는 점을
밝혀낸 영국 의사 윌리엄 제너

고열과 발진을 동반하는 질병을 통틀어 ‘티푸스‘라고 부르며 ‘장티푸스‘, ‘파라티푸스‘, ‘발진티푸스‘, 이렇게 세 종류가 알려져 있다. 티푸스라는 이름은 ‘혼란스러운‘이라는 뜻의 그리스어typhos(thphus)에서 따왔는데 환자가 고열로 몽롱해진 상태를 나타낸다. - P295

19세기 초 유럽을 제패한 프랑스 나폴레옹 1세의 권력이내리막길로 들어서는 변곡점으로 러시아 원정 실패를 들곤 한다.
40만 대군이 의기양양하게 출발했다 2만명만 돌아올 수 있었던러시아 후퇴에는 티푸스 창궐이 큰 영향을 미쳤다. - P299

"이가 이기느냐, 사회주의가 이기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발진티푸스는 나폴레옹의 프랑스군만 괴롭힌 것은 아니었다. 이 악랄한 감염병은 러시아에서도 어느새 풍토병으로 자리잡았는지 1917년 러시아혁명 전후로도 한 차례 대유행의 광풍이몰아쳐 러시아 국내적으로도 큰 문제가 되었다.
그 무렵 혁명 지도자 레닌(Lenin, 본명은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Vladimir Il‘ich Ulyanov)이 "이가 이기느냐, 사회주의가 이기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말까지 남겼을 정도로 지도층의 골머리를않게 했던 지독한 병이었다. - P300

매독은 전 세계로 뻗어 나가며 폭발적으로 유행했다. 이 병은 사람간 접촉인 성관계로 감염되는 대표적인 질병이다. 일본도 예외는아니었는데, 희한하게도 일본인은 매독을 낙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경향이 있었다. 그런 터라 일본을 찾는 외국인의 눈에는 매독에 대한· 일본인의 관점이 상당히 특이하게 비친 모양이다. 그들 나라에서는매독을 나라를 망하게 할 정도로 공포스럽고 위협적인 질병으로 여기고있었는데 말이다.
어쨌든 매독은 확실하게 생명을 갉아먹는 불치병이었기에 매독에 걸려고통스럽게 임종을 맞이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 P308

전 유럽인을 상대로 ‘가짜 매독 특효약‘을 만들어 팔아 막대한 부를 챙긴 푸거 가문 - P315

아메리카대륙에서 수입한 유창목 진액으로 만든 약이매독에 잘 듣는다는 소문이 퍼져 나갔다. 수은 요법의 부작용으로고생하던 매독 환자들은 지갑을 활짝 열고 이 약을 경쟁하듯사들였지만, 유창목 진액은 매독에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유창목을 수입한 푸거가만 떼돈을 벌었다. - P316

일본에서는 남녀 모두 매독을 예사롭게 여길 뿐 아니라 전혀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이는 무로마치시대 말기에 선교 목적으로 일본을 찾은 포르투갈 출신 예수회 사제 루이스 프로이스(Luis Fráis)가 남긴 기록이다. 또 1823년에 일본을 찾은 독일 의사 필리프 프란츠 폰 지볼트(Philipp Franz Balthasar von Siebold)는 "매독은 일본에 깊숙이 뿌리 내린질병"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 P320

불치병인 매독은 많은 예술가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가곡의왕‘이라는 애칭으로 널리 알려진 오스트리아 작곡가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는 매독 혹은 매독 치료를 위해 사용한 수은 중독이 원인이 되어 목숨을 잃었다. 연작 교향시 <나의 조국>을 남긴체코의 베드르지흐 스메타나(Bedřich Smetana)도 공식 부검 기록과유해 근육 조직 분석을 통해 매독이 사인으로 판명되었다.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 (Friedrich Wilhelm Nietzsche)는 만년에매독균이 뇌를 침범해 정신착란을 일으켜 광기에 사로잡힌 채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일본 소설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가 중국 여행 중매독에 걸렸다는 소문도 있다. 그런 터라 그의 작품 중 매독에 걸린 창부를 그린 단편소설 난징의 그리스도(南京)基督)」속 어느일본인 여행자는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을 모델로 삼았다고여겨졌다. - P322

요코하마에는 1,000여 명의 윤락여성이 있는데 그중 3분의 1이 스물다섯 살까지도 못 살고 매독으로 세상을 떠난다. 요코하마의 매독 감염률은 평균 수치의 두 배를 훨씬 웃돈다. 일본 전국에 수만 개의 윤락시설이 있고 도시에 사는 서른 살 남성의 3분의 1이 매독에 걸렸다. - P323

인류는 오랜 역사를 역병과 싸우며 힘겹게 걸어왔다. 그리고 한편으로인류는 야생동물의 가축화, 도시 밀집 거주, 상업, 교역, 전쟁 등의 행위를통해 온갖 감염병을 전세계 곳곳에 퍼뜨린 주범이기도 했다.
다음의 세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감염병을 일으키는 병원체의 정체는뭘까?‘ ‘병원체는 어떻게 인간의 생활공간에 침입하고 사람들을 감염시켜왔을까?‘ ‘인류는 어떻게 이 감염병과 싸우는 방법을 찾아내고 실행에옮겼을까?" - P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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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반니 보카치오가 『데카메론』을 쓸 무렵 페스트는그야말로 들불처럼 번지고 있었다. 중류층 이하 사람들이하루에 1,000명 이상 페스트에 걸리는 참혹한 상황이다 보니사회 전체에 방황과 혼란스런 분위기가 가득했다. - P48

일설에 따르면, 이탈리아 북부 베네치아의 사망률은 4분의 3.
파도바의 사망률은 3분의2 수준이었다. 오늘날 프랑스 남부에서 스페인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서는 무려 전체 인구의 80퍼센트나 되는 엄청난 수의 사람이 사라졌다고 추정된다. 페스트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기 전인 1328년 프랑스 인구는 1,500만~1,800만 명으로 추정된다. 페스트 이전 수준까지 인구가 회복되려면 400년 이상의 기나긴 세월이 필요해, 18세기 말이 되어서야 가까스로 인구수를 회복했다. 1350년 전후의 유럽 인구는 1억명에 가까운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중 4분의 1에서 3분의 1이 페스트로 사망한 셈이다. - P49

시대를 역행한 아시아와 달리 유럽에서는 페스트를 계기로 중세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중요한 도약이 이루어졌다. 페스트가 유행한 이후 유럽에서 나타난 변화를 크게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장인과 상인, 농민의 지위가 향상되는 ‘을의 반란‘이 일어났다. 둘째 가톨릭교회의 권위가 실추되며 종교개혁의불씨가 지펴졌다. 셋째 신분과 가문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인재 등용 방식이 등장했다. - P50

노예에 가까운 농민을 자유로운 신분의 농업 노동자로변신시키고 농지를 소유한 독립 자영농이라는 신흥 계급을 탄생시킨 페스트 팬데믹 - P53

페스트가 지나간 후 유럽에서는 ‘왕도 귀족도 농민도
죽음 앞에서는 모두 평등하다‘라는 생각이 번져 나갔다.
‘죽음‘을 모티브로 한 예술작품이 활발히 제작되었고 사람들은
누구나 죽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음을 새삼 인식하게 되었다. - P62

중세 마녀재판이 고양이 수를 급감시키고
쥐가 들끓게 만들어
페스트 팬데믹을 초래한 중요한 원인이었다는데? - P64

1660년대 네덜란드에서 이탈리아로 퍼져 나간 페스트로인해 뜻밖의 부산물이 생겨났다. 그것은 바로 위대한 과학자 아이작 뉴턴 (Isaac Newton)과 관련된 일이다. 당시 잉글랜드의 수도 런던 근교 케임브리지대학교 트리니티칼리지에서 공부하던 뉴턴은 페스트 대유행을 피해 고향으로 돌아가 연구와 사색에 깊이몰두했다. 뉴턴은 페스트가 기승을 부리는 동안 미적분, 만유인력의 법칙, 분석 광학 등 기초 이론을 완성할 수 있었다. - P67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 (Albert Camus)가1947년에 발표한 소설 『페스트(La Peste)』는 북아프리카의 프랑스령 알제리의 페스트 유행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 P69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인플루엔자는 인류에게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공포스러운 위협이었으며, 인종과 민족을 가리지 않고 그야말로전 세계인의 목숨을 ‘공평하게‘ 앗아갔다. 물론 지금은 의학기술이 발달해인플루엔자의 경우 적절한 치료를 받기만 하면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은아니게 되었다. 아무튼 20세기 초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인플루엔자는신쟁의 향방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 정도로 엄청난 위력을 자랑했다.
잠시 심호흡을 하고 곰곰이 생각해보자. 전 세계를 위험하는 감염병이창궐했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대처했을까? 이 점을 주의 깊게 조사하고연구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과거 인류가 인플루엔자라는전대미문의 재앙에 대처하는 자세와 태도에서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우리는 지혜로운 교훈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P72

한 마을에서 어느날 갑자기 대다수 주민이 고열에 시달리며 몸을벌벌 떨고 기침이 멈추지 않는 심각한 증상을 보였다. 이 미증유의병은 돌림병이라 온 마을에 퍼졌는데, 희한하게도 어느 날 갑자기사라졌다.
기원전 412년 히포크라테스가 남긴 기록이다 - P73

우리나라의 ‘감기(感氣)‘는 한자어로 ‘(찬) 기운을  느끼다 (찬) 기운에 감염되다‘라는 의미다. 
감기는 순우리말로 ‘고뿔‘이라 한다. ‘코에서 나는 불‘로 해석할 수 있는데, 감기에 걸리면 콧물이 흐르고 코가 막히며 코에서 열기가 나는증상을 일컬어 명명한 것이다. - P75

스페인 독감이라고 하니 이 감염병이 당연히 스페인에서 맨 처음발생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스페인 독감은 미국 중서부 캔자스주 해스켈 카운티의 미군 훈련지캠프 펀스턴에서 최초 감염 사례가 보고되었다. - P83

샌프란시스코 보건위원회는 1918년 11월 1일, 전 시민에게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는 조례를 제정하고 시행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시민의 99퍼센트가 조례 시행을 기다리지 않고
자발적으로 마스크 착용을 생활화하고 있었다. 
의료 종사자가마스크를 착용한 모습을 본 시민들은 너도 나도 마스크를 구해쓰고 다녔다. - P94

인플루엔자를 앓고 나면 면역세포의 신경작용에 변화가 나타나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인플루엔자는 윌슨 대통령의 몸과 마음을 동시에 약하게 만들었다. - P101

오스트리아 화가 에곤 실레는 스승과도 같았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가 스페인 독감으로 영면에 든 모습을 스케치했다.
그리고 얼마 후 에곤 실레의 임신한 아내와 에곤 실레 자신 모두
스페인 독감에 걸려 서른 살도 못 채운 짧은 삶을 마감했다. - P103

콜레라는 본래 특정지역에서만 유행하던 풍토성 감염병이었다.
그러던 것이 무역이 발달하고 사람과 물자의 이동이 활발해지면서
세계 각지로 활동영역을 넓혀나갔다.
인구가 급증하고 과밀한 도시는 특히 콜레라에게 안성맞춤의
무대가 되었다. 콜레라는 각국 정부가 대규모 집단 감염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도시 인프라 정비를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계기를마련해주었다. - P111

18세기까지만 해도 인도 등에서 국지적으로 발생하는 풍토병이던 콜레라는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전 세계로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당시 인도를 점령한 영국군의 활발한 군사 활동과 무역 활동이 콜레라의 전 세계 확산을 가장 적극적으로 도왔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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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6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획기적인 변화로 다음의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앞서 언급한 ‘인건비 폭등에 따른 신기술도입‘이다. 둘째 ‘장인, 상인, 농민의 지위 향상‘이다. 셋째, 신분이나 출신 가문 따위의 허울에 얽매이지 않고 열정적으로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기술을 연마하는 새로운 ‘인재‘가 등장한 일이다.
한데, 놀랍게도 이 세 가지 중요한 변화가 모두 페스트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 P29

패혈증이란 병원균이 혈액으로 들어가 온몸을 도는 상태를의미하는데, 페스트가 중증화하면 ‘패혈성 페스트‘로 악화할수 있다. 몸 안의 혈액이 페스트균에 오염되면 피부에 반상출혈(ecchymosis)이 나타나고 온몸에 검푸른 반점이 생겨 이내 사망에이른다. 페스트를 ‘흑사병‘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 P31

전쟁 중에 아테네는 농성전을 펼쳤다. 수많은 시민이 도시의 좁은 공간에 빽빽이 모여 어깨를 부대끼며 생활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역병이 창궐했다. 페스트로 알려진 이 역병으로 수많은 아테네시민이 목숨을 잃었고 위대한 정치 지도자로 전투를 몸소 지휘했던 페리클레스도 결국 이 병에 걸려 사망했다. - P32

유럽 고대 문헌에 등장하는 라틴어 pestis에서
오늘날의 ‘페스트‘가 유래했는데, 당시 pestis는
역병이나 괴질 전반을 의미했기에 문헌에 등장하는 질병을
모두 페스트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 P32

맨 처음 페스트는 어디에서 발생했을까? 많은 학자가 
톈산산맥 북부 이식쿨호(Lake Issyk-Kul,  키르기스스탄) 주변으로 추정한다.
기원전 202년, 한(前漢) 왕조가 성립하자 당시  대부분의  유럽을 지배하던 로마제국과의 사이에  실크로드 무역이 활발해졌다. 이시기 톈산산맥 주변 지역을 통과하는 무역 상인이 유라시아대륙을 동서로 분주히 오가며 페스트균을 퍼뜨렸다고 생각한다. - P35

전 세계 인구 2억 명중 33~40퍼센트의 
목숨을 앗아가고
이후 200년간 인구 증가를 막은 6세기 페스트 팬데믹

역사적으로 페스트의 전 세계적 대유행, 즉 팬데믹은 세차례 확인되는데 각각 6세기, 14세기, 19세기에 발생했다. - P34

십자군 원정에서 돌아온 병사들의 짐에 섞여
유럽에 들어온 곰쥐,
페스트 팬데믹의 도화선이 되다 - P38

급격히 인구가 몰린 도시에서는 페스트의 매개체인 쥐가 급격히 개체수를 늘렸다. 이러한 상황이 반영된 사건이 바로 그 유명한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다. 독일 서부의 도시 하멜른에서쥐가 엄청난 속도로 번식하기 시작했다. 이에 고민에 빠진 시민들은 쥐 잡이를 고용했는데, 그가 쥐를 성공적으로 잡아주었음에도 차일피일 미루며 약속한 보수를 지급하지 않았다. 자신이 땀흘려 일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해 화가 난 쥐 잡이가 어느 날 그도시의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 P39

몽골제국이 촉발한 ‘세계화‘,
14세기 페스트 팬데믹의 결정적 트리거가 되다 - P40

몽골인이 닦아 놓은 동서 무역 통상로가 지중해 상인의통상망과 이어짐으로써 세계 최초 글로벌 상권이 완성되었다.
이 통상로를 통해 전해진 것은 값비싼 무역품만이 아니었다.
페스트 역시 이 길을 따라 유럽 각지로 번져 나갔다. - P41

이를 전후로 한 시기에 원의 각지에서 대지진과 홍수가 잇따랐고, 허시지방(河西, 황허 유역 서부) 등지에서 곡물을 갉아먹는 메뚜기 떼가 대량 발생(황충(蟲)이 일으키는 재해라 해서 ‘황해(害)‘라고 불렀다)했으며 페스트 유행과 맞물려 심각한 식량 위기를 초래했다.
‘역사는 반복된다‘라는 말대로, 코로나19가 대유행한 2020년에아프리카 동부에서 메뚜기 떼가 창궐해 중동에서 인도까지 휩쓴상황과 흡사하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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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 페스트 팬데믹이 없었다면
구텐베르크 금속활자 발명으로 인한 지식혁명도,
종교개혁도, 르네상스도, 산업혁명도 없었다."
본문 중에서 - P5

‘흑사병(黑死病, Black Death)‘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페스트는
고대부터 일정한 주기로 공포스러운 얼굴을 드러내며 수차례 지구를 휩쓸었다. 
페스트는 14세기에 특히 맹위를 떨쳤는데 당시 북동아시아에서 출발해 유럽까지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한  몽골제국의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 활동이 페스트를 전파시키는 엄청난 촉매제가 되어 전 세계적 팬데믹을  초래했다.
중세 후기에 유럽은 전체 인구의 4분의 1이 넘는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페스트로 인한 끔찍한  죽음이었다. 그러나 불탄 자리에서 나무가 새싹을  틔우듯이 참담한 재난에서도 긍정적 기운이 싹텄다. 
페스트가 촉발한 급격한 인구 변동이 비극적 재난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사회변혁을 낳는 마중물 역할을 했던 것이다. - P24

"유럽의 근대화는 페스트에서 시작되었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이 가장 명징하게 드러난 분야는 ‘출판‘이었다.
페스트를 계기로 출판문화가 그저 확대된 정도가 아니라
그야말로 ‘폭발‘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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